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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이 썩어 구멍이 크게 뚫려도 너무 예쁩니다

천연기념물 지정된 순천 승주 평지마을 이팝나무

등록 2023.05.01 11:30수정 2023.05.01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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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 백양사 쌍계루 앞의 이팝나무. 각진국사가 꽂은 지팡이가 자랐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꽃이 활짝 핀 지난해 5월 풍경이다. ⓒ 이돈삼

 
이팝나무꽃이 피고 있다. 연둣빛 이파리 사이로 피어난 순백색의 꽃이 화사하다. 얼마나 순결하고 아름다운지 한동안 눈을 떼지 못할 정도다. 봄날의 신록을 본 수필가 피천득은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스물한살 청신한 얼굴'이라고 했다. 이팝나무꽃이 청신한 얼굴 같다.

남도에는 '명물' 이팝나무가 많다. 순천 평지마을에 수령 400년 된 이팝나무가 있다. 1962년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됐다. 광양 유당공원의 수령 400년 된 이팝나무도 천연기념물이다. 순천 평촌리에도 400살 된 이팝나무가 있다.


나주 용곡리의 이팝나무는 500여 년 됐다. 장흥 용곡리에는 수령 370년 된 나무가 있다. 해남 맹진리엔 수령 300년 된 이팝나무가 있다. 곡성 내동리 이팝나무, 화순읍사무소 앞 이팝나무, 그리고 각진국사가 꽂은 지팡이가 자랐다는 백양사 쌍계루 앞의 이팝나무도 멋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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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팝나무와 정자가 어우러지는 평지마을 풍경. 논에서 꽃을 피운 철쭉이 봄을 노래하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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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권병안 선생을 기리는 동상과 비석. 권병안 선생은 의병활동을 하다가 일본군에 붙잡혀 죽임을 당했다. ⓒ 이돈삼

 
그 가운데 하나, 평지(平地)마을의 이팝나무를 찾아간다. 평지마을은 중대(中垈), 승평(昇平)과 함께 전라남도 순천시 승주읍 평중리(平中里)에 속한다. 평지는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평지를, 중대는 담장 터를 가리킨다. 승평은 승주와 평중의 앞 글자를 따서 이름 붙여졌다.

풍수지리상, 마을에 대장군 혈이 두 군데 있다. 그 중간에 마을이 자리했다. 담을 쌓아둔 것 같다고 '담터'라 불렸다. 한자로 '장대(墻垈)'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중대(中垈)' '상대(上垈)'로 나뉘었다.

'웃 담터(上垈)'인 평지마을은 승주읍내 한가운데에 자리하고 있다. 대왕산(412m) 남쪽 자락이 내려온 구릉지다. 한때 군청의 소재지였다. 1983년 순천시내에 있던 승주군청이 옮겨오면서다. 1995년 순천시와 승주군이 통합되면서 군청 소재지의 기능을 잃었다.

마을에 순천기상대가 자리하고 있다. 6·25참전용사 기념탑도 기상대 뒤편에 있다. 국도변엔 독립운동가 권병안(1871-1909) 선생을 기리는 동상이 서 있다. 선생은 의병활동을 하다가 일본군에 붙잡혀 죽임을 당했다.

마을 앞으로 호남고속국도가 지나고, 승주나들목이 나 있다. 순천과 화순을 잇는 22번 국도도 마을 앞을 지난다. 교통이 아주 좋은 편이다. 평지마을에는 30여 가구 50여 명이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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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의 더께가 고스란히 묻어나는 평지마을의 이팝나무. 속이 썩어 구멍이 크게 뚫렸다. 동공을 막아주는 외과수술을 한 흔적이 보인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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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꽃이 활짝 핀 평지마을의 이팝나무. 마을과 주변 풍경까지도 환하게 밝혀준다. 오가는 사람들의 발걸음까지도 가붓하게 해준다. 꽃이 활짝 핀 지난해 5월 풍경이다. ⓒ 이돈삼

 
평지마을 입구에 이팝나무가 있다. 마을이 형성될 때 선암사 승려가 심었다고 전한다. 이팝나무는 바위 위에서 자라고 있다. 주변을 돌로 쌓아 높였다. 나무의 키가 16m, 가슴높이 둘레 4m를 넘어 우람하다. 나무는 두 갈래로 나뉘어 키재기를 한다. 하나는 반듯하게, 다른 하나는 다소 비스듬히 뻗었다.


나무에서 세월의 더께가 고스란히 묻어난다. 윗가지가 부러지고 찢겼다. 줄기도 많이 썩어 구멍이 크게 뚫렸다. 동공(洞空)을 막아주는 외과수술을 한 흔적이 뚜렷이 남아있다. 하지만 나무의 자태는 의연하다. 전체적으로 균형을 이루고 있다. 품새가 이쁘다. 옛 사람들이 신령스럽게 여기던 당산나무의 모습 그대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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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팝나무꽃. 꽃 하나하나의 생김새가 쌀과 닮았다. 영락없는 쌀이고 쌀밥이다. ⓒ 이돈삼

 
이팝나무는 '쌀나무', '쌀밥나무'로 통한다. 꽃의 생김새가 쌀과 흡사하다. 우리 선조들은 이팝나무꽃이 활짝 피면 풍년이 든다고 믿었다. 입하(立夏) 무렵에 쌀밥 같은 꽃을 피운다고 '입하목', '입하나무'라는 이야기도 있다.

일부 지역에선 쌀밥을 '이밥'이라 부른다. 왕족이나 양반들만 먹던 이씨(李氏)의 밥, '이밥'에서 비롯됐다는 설도 있다. 가난한 백성들의 벼슬아치 성토의 뜻이 담겨 있다.

이팝나무에 얽힌 전설도 애틋하다. 꽃 이야기에서 흔히 등장하는 착한 며느리와 마음씨 고약한 시어머니가 주인공이다. 쌀밥에 맺힌 한으로 죽은 며느리의 넋이 변해 핀 꽃이라는 전설이다. '영원한 사랑'을 꽃말로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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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지마을 전경. 이팝나무 아래에서 본 마을의 모습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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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의 더께가 고스란히 묻어나는 이팝나무와 평지마을. 속이 썩어 구멍이 크게 뚫렸다. 갖은 고생을 다 하고도 밝게 사는 마을사람들을 닮은 것 같다. ⓒ 이돈삼

 
이팝나무는 우리나라의 향토수종이다. 물푸레나무과에 속한다. 암나무와 수나무가 따로 있다. 꽃은 암나무에서만 핀다. 꽃의 향기가 은은하다. 평지마을 사람들의 순박한 마음결을 닮았다. 꽃이 떨어지면서 눈꽃처럼 날리는 풍경도 장관이다. 꽃이 지고 나면 보랏빛 열매가 열린다.

이팝나무 아래에 정자도 멋스럽다. 나무와 정자가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다. 마을과 논밭이 한데 어우러져 운치를 더해준다. 햇볕 뜨거운 날엔 마을 사람들의 쉼터를 겸한 사랑방으로 쓰인다.

이팝나무 하얀 꽃이 나무와 정자 주변을 밝혀준다. 마을로 들어가는 길도 환해졌다. 꽃을 보며 오가는 사람들의 마음도 밝아져 발걸음을 가붓하게 해준다. 평지마을을 돋보이게 하고, 순천까지 알리는 명물 나무다. 해마다 이맘때 봄날을 더욱 화사하게 해주는 이팝나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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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지마을 골목. 평범하면서도 전형적인 농촌의 골목 풍경이다. ⓒ 이돈삼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전남일보에도 실립니다.
#이팝나무 #평중리이팝나무 #순천평중리 #순천평지마을 #순천승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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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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