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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호 "전주영화제 정체성 훼손? 목 내놓고 막겠다"

[24th JIFF] 전주국제영화제 민성욱·정준호 공동집행위원장 인터뷰

23.04.30 11:34최종업데이트23.04.30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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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회 전주국제영화제 민성욱, 정준호 공동집행위원장. ⓒ 전주국제영화제


파격 혹은 충격. 올해 24회째를 맞은 전주국제영화제가 민성욱·정준호 공동집행위원장 체제를 택하며 불거진 표현들이다. 1회 때부터 사무국장을 역임하며 전주영화제 안팎에서 꾸준히 관련 일을 해 온 민 위원장과 달리 배우 정준호의 선임을 두고 영화계, 특히 독립예술영화계에서 비판 목소리가 나왔고 일부 이사진이 사퇴하는 등 내홍도 겪었다. 대안과 독립이라는 정체성을 추구해 온 영화제와 정 위원장의 행보가 들어맞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일련의 상황을 지나며 지난 27일 영화제는 개막했고, 3일 차까지 별다른 문제 없이 행사가 진행되고 있다. 관련하여 29일 오전 민성욱-정준호 공동집행위원장을 직접 만나 그간의 과정을 묻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절실한 예산 증액
 
코로나19 엔데믹 시기를 맞은 전주국제영화제는 온라인 상영은 물론이고, 모든 오프라인 행사를 정상 진행 중이다. 오는 6일까지 42개국 247편의 영화가 상영되며 행사 장소도 영화의 거리와 함께 전북대학교, 전주 시내 곳곳 주요 시설을 활용하는 등 확대된 모양새다. 올해 전주를 찾은 해외 게스트는 약 130명 수준, 2019년과 비슷하거나 다소 늘어난 수치다. '우리는 늘 선을 넘지'라는 새로운 슬로건은 대안과 실험정신이라는 정체성을 강조하고 이어가겠다는 의지로 풀이할 수 있다.
 
두 위원장은 지난 3일간 함께 혹은 따로 행사장을 다니며 영화제를 찾은 사람들을 만나고 있었다. 개막식, 28일 전주시네마 프로젝트 파티를 비롯해 영화의 거리 곳곳에서 일정을 소화하는 두 사람을 발견할 수 있었다. 기자와 만난 두 위원장은 예산 확대 부문을 강조하며 청사진을 그리는 모습이었다.

개막식에서 정준호 위원장은 "안방 살림은 민성욱 위원장이 대외협력과 홍보, 스폰서 유치는 제가 중심이 돼서 하고 있다"라고 역할 분담을 언급한 바 있다. 그 성과일까. 비공식 정보지만 정준호 위원장이 유치해 온 후원 금액이 역대 집행위원장 중 최고라고 한다. 정 위원장은 "당장 큰 금액보단 꾸준한 후원이 중요하다"고 운을 뗐다.
 
"전주영화제 활성화 차원에서 더 많은 창작자에게 기횔 드리기 위해 우리가 직접 지원하는 방법밖엔 없다. 그간 전주영화제가 그런 부분을 과감하게 잘 해왔다고 본다. 힘을 보태기 위해 후원회를 조직했고 100여 개 기업을 선정했다. 물론 그 중엔 제 지인도 있고, 현재까지 40여 기업이 참여했다. 전라북도 지원금이 2억 원 정도인데, 그보다는 많이 모였다. 대한민국 콘텐츠에 투자하는 마음으로 참여하시라, 여러분이 밀어주는 영화가 이런 작품이니 영화제에 오셔서 보시고, 소통도 해주시라 말하고 다녔다. 중요한 건 단기 후원이 아닌 지속성이다. 그래서 제가 금액을 좀 낮춰 말씀드리곤 했다. 당장 큰 돈을 모아올 수도 있었겠지만, 적은 돈이라도 지속적으로 후원하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 아직까지 한 분도 난색을 표하거나 반대하신 분은 없었다." (정준호 위원장)
 
정준호 위원장은 "K 콘텐츠 열풍이 부는 지금이야말로 투자의 적기다. 특히 특색 있고 사회적 메시지가 있는 작품들을 위해 지원 예산을 늘려야 한다고 설득했다"며 "중소기업 박람회 등에 가보면 뛰어난 상품이 많은데 결국 투자를 못 받아 사장되는 경우가 많더라. 독립영화도 그렇다. 창작자들을 지원하기 위해선 이런 예산 확보가 필수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사실 1회 때부터 스폰서 모집은 쉽지 않았다. 제가 사무국장으로 여러 대기업에 제안을 했는데 연락이 아무 곳에서도 안 왔다. 하지만 이 소식을 듣고 감사원장을 지냈던 고 한승원 원장께서 도와주셨다. 손수 기업에 연락해주셨고, 연락이 오더라. 그때 약 10억 원이 모였다. 역대급이었지. 물론 영화제 자부담률을 높여야 하는 건 동의하는데 이처럼 특출난 분이 노력해주시지 않으면 협찬받기가 힘든 건 사실이다.
 
사실 전주영화제 프로그램은 여느 영화제 이상이라 생각한다. 한 단계 도약할 때인데 그러려면 예산이 뒷받침돼야 한다. 여러 아이디어가 있음에도 예산 문제로 못하는 게 있는데 올해는 좀 다른 분위기인 게 조직위원장인 우범기 시장, 김관영 전북도지사께 직접 예산 지원 증액을 요청드렸고, 긍정적인 것으로 보인다. 3년 안에 독립영화의 집이 완공될 텐데 저희 임기 내에 혹은 그 직후에 영화제가 도약할 길이 열릴 것이라 기대한다." (민성욱 위원장)

 

전주국제영화제의 민성욱 공동집행위원장. ⓒ 전주국제영화제


"독립, 대안 가치 지켜갈 것"
 
아픈 질문이겠지만 공동집행위원장 체체를 두고 독립영화인들 사이에서 일었던 영화제 보이콧 징후, 영화계 안팎의 우려와 비판을 두 사람 모두 잘 알고 있었다. 민성욱 위원장은 "1회 때 정신을 그대로 이어간다고 볼 수 있다"며 말을 이었다.
 
"처음 생길 때 디지털, 독립, 대안을 외쳤잖나. 그때만 해도 무슨 디지털이냐 하는 반응이 많았는데 이젠 디지털 영화가 주류가 됐다. 그 이후로는 독립, 대안을 지켜가는 것을 우리 정체성으로 하고 있다. 더불어 프로듀서로서 영화를 생산하는 영화제를 표방한다. 초기에 정성일, 김소영 등 걸출한 프로그래머의 덕을 보긴 했는데 초반에 전주가 작품 수급이 어려운 때가 있었다. 한국 변방에서 상영한다니까 작품을 잘 안 주곤 했었지. 그럴 바에야 우리가 만들자, 좋은 감독을 섭외하자 했던 게 '디지털 삼인삼색'(세 감독의 단편을 직접 지원해서 영화제에서 상영하던 프로그램으로 현재는 장편 지원으로 확대된 전주시네마프로젝트로 운영 중이다.-기자 말)으로 시작했던 것이다.
 
존 아캄프라, 장위엔, 박광수 감독으로 시작한 삼인삼색에 봉준호 감독, 아오야마 신지, 아피찻풍 위라세타쿤 감독 등이 거쳐갔잖나. 그런 훌륭한 감독들이 작품을 출품해주고 가장 먼저 전주에서 소개하게 되면서 성장 동력이 됐다. 또 우리 영화제 워크숍을 통해 성장한 분들이 전북 독립영화협회 등에서 지금 활약 중이다. 사실 이 정도면 이젠 전라북도 분들이 다 알 거라 생각하는데 여전히 지자체에선 영화제만의 리그라고 생각하는 면이 있더라. 그런 의견을 외면할 순 없어서 포용하고 배려하며 가보자는 게 지금 방침이다. 개막식 레드카펫에 유명 배우가 안 온다고 지적하는 분도 있는데 사실 지금은 낯설지만 우리 영화를 찾는 분들이 금방 유명해지신다. 봉준호, 류승완 감독이 1회 때 <플란다스의 개>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로 왔는데 그때 아무도 몰라봤잖나." (민성욱 위원장)

 
이번 인사를 두고 불거진 비판에 누구보다 정준호 위원장은 느낀 바가 많아 보였다. "그간 제가 상업영화만 주로 했고, 내 갈 길만 신경 썼던 것 같았다"며 그는 "돌아보고 옆도 보고 사람들을 만나보니 우리가 소소한 마음으로 영화를 시작하던 마음을 잊고 있었더라. 미안하기도 하고 빚진 마음이 생기는 것 같다. 영화계에서 제가 받은 인기와 명예를 돌려줄 때가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물었다. 전주영화제가 성장하며 겪었던 여러 부침 사례를 들며 지자체나 정치적 외압 등 유사시에 집행위원장으로서 어떤 자세를 취하겠는지 묻는 질문에 그는 "외압이 있을 가능성은 아주 적다"라면서 말을 이었다.
 
"영화제가 그들만의 리그로 보이면 안 되기에 일단 도민과 시민이 소통할 수 있게 하자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올해 개막식에 태권도 시범단 공연을 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제가 느낀 영화제 정체성은 결국 실험과 도전이었기에 가장 시급한 예산 문제 해결을 위해 뛴 것이다. (정치적) 색깔로 절 우파라고들 하시는데 전 개인적으론 인사권자의 권한을 따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다. 시민이 뽑아준 시장이 (영화제) 인사권에 의견을 낸다면 일단 존중하는 것이지. 근데 영화계에서 반대하는 것처럼 보이니 전 몇 번을 그만두려고도 했다. 제가 발품 팔고, 신세 져가며 봉사하자는 마음이었는데 서로 오해가 있었던 것 같다. 외부에서 볼 때 전주영화제 정체성이 흔들리고 상업 영화제로 바뀌는 거 아니냐고도 하시는데 (독립, 대안의) 전주영화제 정신이 훼손되는 것 같다면 목을 내놓고 막겠다." (정준호 위원장)
 
"공동집행위원장 선정 과정이 매끄럽진 않았지만 불법은 아니라 정리할 수는 있겠다. 전주시는 지원은 하되 간섭 안 한다는 모토로 계속 지원해주셨는데 지금 조직위원장도 마찬가지다. 다만 첫해니까 자신의 비전을 주장하고 싶으셨던 게 있을 것 아닌가. 그게 집행위원장 체제였던 것이다. 이사진 만장일치였다면 좋았겠지만 투표까지 갔고, 이후에 조직위원장은 뒤로 빠지셔서 전폭적으로 지원하고 계시다. 제가 전주영화제가 걸어온 길을 다 아니까 앞으로도 정체성에서 벗어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오히려 정준호 위원장과 같이 안 했으면 더 힘들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같이 할 수 있는 일은 하고 나머지 부분에서 전 내부 일을, 정 위원장은 대외협력을 맡는데 의외로 효율적인 면이 있다." (민성욱 위원장)

 

전주국제영화제 정준호 공동집행위원장. ⓒ 전주국제영화제

 
엔데믹 시대를 맞이하며
 
올해 초 정준호는 독립영화 한 편 촬영을 마쳤다. 재미교포 여소영 감독의 <스모킹 타이커>에서 꽉 막힌 아버지를 연기했는데 그 입장에선 거의 첫 독립영화 출연이라고 할 수 있다. "제작비가 적을 뿐이지 시스템은 상업영화와 똑같다"며 "제가 제작비 걱정을 했는데 그건 자기가 알아서 한다며 집요하게 촬영하더라"고 후일담을 전하기도 했다.
 
엔데믹 시기를 맞으며 한국 영화제는 물론이고 세계 영화제들은 지금 큰 지형 변화를 겪고 있다. 영화 산업 위기론 또한 불거지며 몇몇 유수 영화제들은 중단되거나 사라지기도 했다. 전주영화제는 어떤 비전을 갖고 있을까. 두 사람에게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앞으로 팬데믹이 안 온다는 보장이 없잖나. 지난 팬데믹 때 전주가 지혜롭게 대처했더라. 앞으로를 대비해서 온라인 상영도 주도면밀하게 준비하겠다. 관람 형태가 변화하고 있어서 천만 영화는 아마 가뭄에 콩 나듯 나오겠지만 창작자의 열정은 식지 않을 것이다. 얼마 전 다녀온 베를린 영화제는 독일의 아픈 역사가 있는 곳을 상영관으로 활용하더라. 우리 같으면 다 없애고 새로 지을 텐데. 저도 앞으로 공부를 많이 하겠다." (정준호 위원장)
 
"TV가 발명됐을 때도 영화가 망한다는 말이 있었는데 아니었잖나. 극장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영화관의 힘을 믿는데 다만 좋은 영화가 나와야 하고, 개봉 또한 몰리지 않아야 할 것이다. 극장 관람료 인상이 지금 한국 영화 산업 정체에 큰 영향을 미친 것 같다. 극장 수익 보전을 이해는 하지만 더 버텼어야하지 않나 싶다. 중국은 시간 대나 영화별로 요금이 다르다. 일본도 독립영화관은 일반 영화 한 편 관람료로 두 편을 볼 수 있게 하는 식의 요금제가 있더라. 다양한 요금 정책이 맞물려야 극장이 살아나지 않을까 싶다. 여기에 킬러 콘텐츠도 꾸준히 나와줘야 한다." (민성욱 위원장)
전주국제영화제 민성욱 정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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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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