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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셔틀 외교' 위해 과거사 포기한 윤 대통령의 '대일 퍼주기'

[5.7 한일정상회담 분석] 기시다 "가슴 아파" 발언 부각...일 '역사 책임' 면제, 한미일 안보협력 질주

등록 2023.05.08 10:31수정 2023.05.08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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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게 웃는 한일 정상 윤석열 대통령과 1박2일 일정으로 한국을 찾은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공동 기자회견이 끝난 뒤 악수하고 있다. 2023.5.7 ⓒ 연합뉴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지난 7일 서울로 와 윤석열 대통령과 회담했습니다. 3월 16일 도쿄 정상회담 이후 두 달도 되지 않은 상황에서 벌어진 이례적인 일입니다. 이 때문에 3월 회담을 계기로 지지율이 오른 기시다 총리가, 지지율 추락의 곤경에 처한 윤 대통령을 구하기 위해 '급히 만든 회담'이란 해석을 피하기 어렵게 됐습니다.

여하튼 일본 총리가 양자 차원에서 우리나라를 방문한 것은, 2011년 10월 노다 요시히코 총리 이후 무려 12년 만입니다. 그래서인지 두 정상 모두 셔틀 외교의 복원을 유난히 강조했습니다.

윤 대통령은 공동회견 모두발언의 처음과 마지막에 "셔틀 외교가 본격화된 것을 뜻깊게 생각한다", "이번 기시다 총리 님의 방한을 통해 정상 간 셔틀 외교 복원 그리고 양국 관계 정상화가 이제 궤도에 오른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그것도 성에 차지 않았는지 질의응답 과정에서도 한 차례 더 셔틀 외교라는 단어를 썼습니다.

이에 맞장구라도 치듯, 기시다 총리도 모두발언 첫 문장을 "~ 서울을 방문해 셔틀 외교를 본격화하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합니다"라는 말로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셔틀 외교는 계속됩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단락으로 발언을 마쳤습니다.

셔틀 외교는 목적이 아니라 수단일 뿐

두 정상의 말만 들으면, 마치 이번 정상회담의 목적이 셔틀 외교의 복원이라도 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셔틀 외교가 그렇게 대단한 걸까요. 원래 셔틀 외교는 외교 및 국제관계에서 제3자가 분쟁 당사자 사이를 오가며 하는 중재 외교를 설명하기 위한 용어였습니다. 구체적으로는 1973년 11월 헨리 키신저 미국 국무장관이 이스라엘과 아랍 쪽을 빈번하게 왕래하며 제4차 중동전쟁을 중재했던 데서 유래했습니다.

이것이 한일 사이에는 양국 수뇌가 1년에 한 차례씩 상대국을 방문해 자유롭게 현안을 논의하자는 뜻으로 변형돼 쓰이고 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과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 시절인 2004년에 처음 시작해, 우여곡절을 겪으며 이명박 대통령과 노다 요시히코 총리 때까지 이어졌습니다. 그런데 의욕적으로 시작했던 한일 정상 간 셔틀 외교가 왜 그리 오랫동안 중단됐었을까요.


크게 두 번 중단됐는데, 모두 역사 문제가 원인이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 때는 고이즈미 총리의 2005년 8월 15일 야스쿠니신사 참배가 중단 원인이었고, 이명박 대통령 때는 2011년 12월 열린 교토 정상회담에서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충돌이 원인이었습니다. 이런 역사적인 경위를 보면, 역사 문제의 해결 없이 셔틀 외교의 지속이 쉽지 않다는 걸 엿볼 수 있습니다. 역사 문제를 외면하고 셔틀 외교를 하는 것이 내용보다 형식을 앞세우는 것, 아니 목적보다 수단을 강조하는 것이어서 국민의 지지를 받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기시다 총리는 윤 대통령의 결단력과 행동에 보답하기 위해 시기를 앞당겨 방한했다는 투로 말했습니다. 그 말 속에는 그의 조기 방한, 즉 셔틀 외교의 조기 복원이 과거사 '책임 면제'에 대한 선물이라는 뉘앙스가 담겨 있습니다. 그렇다면 과거사 면제의 대가치고는 너무 값싼 대가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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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태규

  
기시다 총리, 강제 동원 관련 용어 철저히 회피

한일간 역사 문제에 관심이 큰 분들은 이미 눈치챘겠지만, 기시다 총리는 3월 회담에 이어 이번 회담에서도 강제동원 문제와 관련한 용어의 사용을 철저하게 피했습니다. 3월 회담 때 공동기자회견에서 썼던 '조선반도에서 건너온 노동자 문제'라는 말조차 쓰지 않았습니다. 굳이 그와 관련한 표현을 찾자면, '3월에 윤 대통령께서 나타내신 결단력과 용기' '윤 대통령의 결단으로 3월 6일 발표된 조치'라는 표현이 전부입니다.

역사 인식과 관련해서도 "저는 1998년 10월에 발표된 일한 공동선언을 포함해 역사 인식과 관련한 역대 내각의 입장을 전체적으로 계승하고 있음을 명확하게 말씀드렸다"라면서 여전히 간접화법을 구사했습니다. 그래도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했는지 "이런 정부 입장은 앞으로도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는 말을 더하고, "저도 당시 혹독한 환경 속에서 일하게 된 많은 분이 힘들고 슬픈 경험을 하신 데 대해 가슴 아프게 생각한다"라고 처음으로 직접 화법의 개인 소견을 밝혔습니다.

하지만 개인 소견을 "강제동원 피해자에 대한 말씀으로 명확하게 이해해도 되느냐"는 한국 기자의 확인 질문에는 "그 당시 힘든 경험을 하신 분에 대해 제 심정을 솔직하게 말씀드린 것"이라고 얼버무렸습니다. 주어는 있되 목적어가 없는 부실 소견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물론 피해자와 우리 국민이 바라는 사과나 사죄의 말은 전혀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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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한일 정상 공동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윤 대통령, 일본의 '역사책임' 면제 재확인하며 안보 협력 가속화

윤석열 대통령은 3월 정상회담에 이어 이번에도 일본이 역사책임을 재차 확실하게 면제해줬습니다. 윤 대통령은 강제동원 피해자에 대한 제3자 변제 방안의 변경 가능성을 묻는 일본 기자의 질문에 "바뀌지 않는다고 말씀드리겠다"고 단언했습니다. 이어 "우리가 발표한 해법은 1965년 청구권협정과 2018년 대법원의 판결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절충안으로서 법적 완결성을 지난 유일한 해법"이라고 부연까지 했습니다.

'원고들(강제 동원 피해자)이 주장하는 피고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은 청구권협정의 적용 대상에 포함된다고 할 수 없다'는 것이 대법원의 핵심적인 판단 이유 중 하나인데, 도대체 이것이 무슨 망발인지 모르겠습니다. 아예 대법원의 판결문을 읽어보지 않았거나 알면서도 깔아뭉개자는 생각이 아니라면 나올 수 없는 발언입니다.

더구나 여기에 '과거사에 대한 인식은 어느 일방이 상대에게 요구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과거사가 완전히 정리되지 않으면 미래 협력을 위해 한 발짝도 발걸음을 내디뎌서는 안 된다는 인식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역사 책임론 부활 가능성에 대못질까지 했습니다.

이런 점에서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시찰단 파견과 내달 히로시마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참석 때 한국인 원폭 피해자 위령비 공동 참배 등은 과도한 과거사 문제 양보로 인해 나올 수 있는 국내의 반발을 누그러뜨리려는 꼼수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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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한일 정상 공동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두 정상이 사전에 입이라도 맞춘 듯이 강조한 또 하나의 사안은, 한·일, 한·미, 미·일, 한·미·일 안보 협력의 강화입니다. 두 정상은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 인도·태평양 지역의 전략적 중요성, 지역 안보 환경 변화, 프놈펜 3국 공동성명을 주거니 받거니 거론하며, 안보 협력의 필요성을 되뇌었습니다.

4월 26일의 한·미 정상회담과 5월 히로시마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19~21일) 사이에 급히 한·일 정상회담을 징검다리로 끼워 넣은 것이, 중국과 북한을 겨냥한 한·미·일 군사 협력의 강화로 원활하게 가기 위한 사전포석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입니다.

일본의 역사책임을 면제해주고 셔틀 외교 부활을 앞세운 채 한·미·일 군사동맹을 향해 질주하는 윤 대통령의 모습이, 섶을 지고 불 속에 뛰어드는 것처럼 불안해 보이는 것은 저 혼자만의 기우일까요.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시민언론 민들레>에도 실립니다.
#한일 정상회담 #셔틀외교 #강제동원 #과거사 책임 #한미일 안보협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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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논설위원실장과 오사카총영사를 지낸 '기자 출신 외교관' '외교관 경험의 저널리스트'로 외교 및 국제 문제 평론가, 미디어 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한일관계를 비롯한 국제 이슈와 미디어 분야 외에도 정치, 사회, 문화, 스포츠 등 다방면에 관심이 많다. 1인 독립 저널리스트를 자임하며 온라인 공간에 활발하게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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