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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성천 벌목사태' 기자회견 직접 찾은 군수... 시민단체 "지켜볼 것"

김학동 예천군수 "사태 사과, 대책 등 의견 청취"... 시민단체 "전향적 태도, 향후 행보 볼 것"

등록 2023.05.09 10:25수정 2023.05.09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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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안동, 포항, 예천 등지에서 함께 모인 환경사회단체 인사들이 예천군청 앞에서 이번 내성천 왕버들 군락지 싹쓸이 벌목 사태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파격이었다. 일선 단체장이 그 시군을 비판하는 기자회견장에 직접 나와서 전후 사정을 이야기하면서 의견을 구하는 일은 흔치 않다. 8일, 김학동 예천군수는 나를 포함해, 군청 앞에서 '내성천 왕버들 싹슬이 벌목 규탄' 기자회견을 벌였던 이들에게 낯설고 파격적인 행보를 보였다(관련 기사 : 내성천 수백 그루 나무 싹쓸이 벌목, 왜?). 

이날 김학동 예천군수는 출근길 군 청사 앞마당에서 열린 기자회견장에 들러 다음과 같이 직접 양해를 구했다. 

"어제 관련 부서의 얘기는 들었습니다. 상당히 사태가 심각하구나, 이런 상황을 인지했습니다. 지난 주말은 저희가 축제 때문에 상당히 바빴습니다만, 관계 부서가 몇 차례 모여서 이 문제에 대한 대책 등을 수립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받았습니다.

우리가 행정을 하다 보면 미처 생각지 못한 이런 일들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이런 사안은 민간단체에 우리보다 더 전문성이 있는 분들이 많이 계시니까, (이참에) 얘기를 듣는 좋은 기회가 될 것 같습니다. '(시민단체 분들이 기자회견 하러) 오시면 제 방에 모시고 충분히 말씀을 드려야 되겠다' 이렇게 생각하고 이 자리에 왔습니다. 제가 또 모르는 것이 있으면 또 알려주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제 방에 모시고, 이후의 대책이나 여러분의 의견을 청취하도록 하겠습니다. 안으로 모실게요."


김학동 예천군수의 파격 행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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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동 예천군수가 기자회견장을 직접 찾아 이번 사태에 대해 유감을 표하면서 대화를 요청하고 있다. 경상도 단체장의 이례적 파격 행보에 기자회견 참석자들의 귀가 쏠렸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이후 집무실 안 회의실에서 이어진 만남에서 그는 "군청에 이렇게 항의 방문까지 하시도록 하고, 우선 행정에서 정말 죄송하다는 말씀을 먼저 드립니다"라고 공식 사과했다. 그러면서 "(공무원들에게) 오늘 손님들이 오시거든 그분들의 시각에서 보는 보완 대책이 무엇인지 듣고, 또 군 자체에서 계획할 게 있으면 보완 대책을 내놔라 이렇게 지시한 바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왕 이렇게 오셨으니 그런 행위(벌목)에 대해서 야단치고 벌 주고 이러시는 것도 좋지만, 이런 것은 이렇게 해라 코치를 해주시고 가시면 현장에서도 많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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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동 예천군수 집무실 회의실에서 김학동 군수와 만난 기자회견 참석자들은 이번 벌목 사태에 대한 우려와 내성천 보존 활동 등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권정택

   
그의 이같은 행보에 기자회견에 함께한 이들은 놀라움을 느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어떤 가능성을 옅본 것 같아 기대감을 갖기도 했다. 사태 해결을 넘어서, 문제의 핵심인 내성천 보존에 대한 구체적 방향성까지 잡아갈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이 자리에 함께한 김수동 안동환경운동연합 대표는 이같은 김학동 군수의 발언에 다음과 같이 화답했다.


"예천군에서 (이번 벌목 사태에 대해) 사과하고 문책을 해야 하는데, 무엇이 잘못됐다라는 것조차도 인식을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서 정말 안타까웠습니다. 그래서 군수님께 당부를 드리고 싶습니다. 군에는 이런저런 자문위원회 있지 않습니까. 이런 사안이 있을 때는 급하게라도 자문위원회를 구성해서 처리를 하는 것이 맞지 않겠나 싶습니다. 전문가들, 시민단체들 입장은 어떤지 파악하는 게 올바른 문제 해결 방식이라고 봅니다. 

또, 제가 오랫동안 시민운동을 하면서 기자회견장이나 집회장을 많이 가봤는데, 군수님이 직접 나오시는 경우는 흔치 않아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이렇게 전향적으로 문제에 대해서 인정하시고 해결하시려고 하는 노력에 대해선 정말 고맙게 생각합니다."


"내성천 보존을 위한 종합적 그림 필요"

이러한 기자회견과 항의 방문을 통해, "내성천 왕버들 군락 싹쓸이 벌목을 단행하고도 반성조차 모르는 예천군을 강력 규탄하고, 김학동 예천군수는 이번 사태에 대해 즉각 사과하고, 책임자를 엄중 문책하라"는 시민단체의 요구는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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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회견에서 민예천 예쳔지부 김두년 지부장이 이번 사태를 엄중히 바라보고 책임자를 엄충히 문책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자신의 일에 대한 책임을 지라는 것이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이들은 이날 준비한 항의 서한을 통해 김학동 예천군수에게 다음과 같은 사항을 공식 요청했다. 

첫째, 이번 내성천 왕버들 싹쓸이 벌목 사태에 대해서 사과해주실 것을 요청드립니다.
둘째, 왜 이같은 일이 일어나게 됐는지 상세한 경위를 밝혀주실 것을 요청드립니다.
셋째, 이번 사태의 책임자를 문책해주십시오.
넷째, 향후 이와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재발 방지 대책을 세워주십시오.
다섯째, 차제에 국보급 하천인 모래의 강 내성천 보존을 위한 종합적 계획을 세워주십시오.


한편, 이날 기자회견에서는 전국 조직인 가로수시민연대가 이번 내성천 왕버들 벌목 사태에 대해 낸 입장문이 공개됐다. 이 입장문은 이명은 생명평화아시아 국장이 대독했다. 그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나무는 살아있습니다. 그리고 산 생명을 죽여달라는 민원은 그 어떤 경우에라도 '합당한 민원'으로 취급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자연에 맡겨야만이 미래가 보입니다. 중앙정부와 지자체들은 지금부터라도 정신 차리십시오. 정신 차리고 더 이상 이 나라의 소중한 국토생태계가 지난 수천 년, 풍요로운 지역경제를 위해 돈 한 푼 받지 않고 묵묵히 해온 (자연의) 일들에 함부로 개입하지 마십시오.

또한 마을 이장님이든 예천군이든 경상북도청이든, 살아있는 뭔가의 생사가 걸린 문제에 대한 결정은 '다 같이' 하십시오. 어떤 결정이 됐든, '한쪽 민원'만으로 내리고 집행하지 마십시오."


토목공사를 위한 사전 포석이 아니길

이들은 기자회견과 김학동 예천군수 항의 방문을 모두 마치고 벌목지 현장 조사를 벌였다. 이 조사에는 <한국식물생태보감>의 저자이자 저명한 식물사회학자인 김종원 계명대 전 교수가 동행했다.

현장을 살펴본 그는 다음과 같이 이곳의 가치에 대해 평가하고 향후 이곳에서 일어날 일을 다음과 같이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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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령이 최소 80년 이상된 잘려진 왕버들 나무 앞에서 김종원 전 교수가 왕버들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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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민둥의 길이가 3미터가 넘는 이 거대한 왕버들도 무참히 잘려나갔다. 생태 테러란 말이 절로 나오는 현장이 아닐 수 없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내성천에는 군데군데 오랜 세월에 걸쳐 형성된 왕버들 갤러리(군락)가 발달해 있는데, 그것들 중 한 부분이 완전히 사라져 버려서 너무나 안타깝다. 그리고 홍수시 이 앞 왕버들이 거센 물살에 대한 완충 작용을 해줘 뒤에 있는 왕버들이 왕성히 자랄 수 있었는데 이번에 모두 베어버려서 이제 제방의 안정성을 걱정해야 할 지경에 이른 것 같다.

곧 이 제방에 토목 공사를 벌일 것이라는 소리가 나올 것만 같아 우려스럽다. 그리되면 이 일대 자연제방은 모두 사라지고 콘크리트 블록으로 쌓인 인공 제방이 놓일 것 같다. 견고한 나무 뿌리로 지탱해 그동안 아무 문제가 없었는데, 왕버들을 벌목함으로써 자연제방을 부실하게 만들었다. 다시 제방공사를 벌여야 될 상황이 올 것만 같아 대단히 우려스럽다."


그는 이것이 계획된 벌목이 아닌가 의심했다. 그러지 않고는 이런 이런 반생태적인 벌목이 벌어진 것을 이해할 수 없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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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가 베어진 자리에 가시박이 무더기째 올라온다. 벌목이 가시박의 생장을 더욱 촉진한다고 김종원 교수는 설명한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예천군은 벌목을 진행한 이유 중 하나로 '가시박 제거를 위해서 나무까지 모두 베어낼 수밖에 없었다'고 밝힌 바 있다. 현장에서 확인한 바에 의하면 그같은 행위가 오히려 가시박의 확산에 더 기여하는 모습이었다. 김종원 교수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가시박은 원래 음지에서는 잘 자라는 식물이 아니다. 음지에서는 씨앗 상태로 그대로 남아있는데 이렇게 나무를 모두 베어버리니 햇볕을 그대로 받으면서 음지의 씨앗들이 한번에 발아해 이렇게 엄청나게 싹을 틔운 것이다. 벌목이 이들의 생육을 오히려 촉진시킨 것이다. 앞으로 이런 일을 할 때는 제발 (전문가에게) 물어보고 했으면 좋겠다."

이제 공은 예천군으로 넘어갔다. 김수동 대표는 "예천군이 앞으로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가는지를 지켜보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향후 예천군의 행보를 봐가면서 추가 행동을 이어갈 것"이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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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제방을 지탱해주던 저 거대한 왕버들을 무참히 베어버림으로써 강한 물살에 의해 제방이 침식될 우려를 보여주는 현장이 아닐 수 없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덧붙이는 글 기자는 대구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으로 지난 십수 년을 내성천을 오가면서 내성천의 아름다움과 가치를 전파하기 위해 노력해오고 있다. 영주댐 철거하고 내성천을 국립공원으로!
#내성천 #나무 벌목 #예천군 #김학동 예천군수 #김종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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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은 깎이지 않아야 하고, 강은 흘러야 합니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의 공존의 모색합니다. 생태주의 인문교양 잡지 녹색평론을 거쳐 '앞산꼭지'와 '낙동강을 생각하는 대구 사람들'을 거쳐 현재는 대구환경운동연합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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