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남주뜰과 김남주홀을 품고 있는 전남대 인문대학 건물. 김남주는 이름 석 자가 칼이고, 시였던 혁명시인으로 알려져 있다. 건물은 등록문화재로 지정돼 있다.
이돈삼
정의의 길은 여기에서 윤상원숲으로 이어진다. 윤상원 열사는 '오월광주의 영원한 대변인'으로 통한다. 노래 '임을 위한 행진곡'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5·18 때 '투사회보'를 제작했고, 항쟁지도부의 대변인으로 활동하다가 5월 27일 새벽 계엄군의 총격을 받고 짧은 생을 마감했다.
윤상원숲은 사회대 앞에 만들어졌다. 시민군들의 어록을 돌에 새긴 어록석 8개와 비석, 윤상원의 흉상이 세워져 있다. 사회대 1층에 윤상원 열사를 기리는 기념홀도 만들어져 있다.
윤상원숲에서 발걸음을 인문대 앞으로 돌리면 김남주뜰과 교육지표마당을 만난다. 김남주는 이름 석 자가 칼이고, 시였던 혁명시인이다. 민주주의와 민족해방을 위해 독재정권에 온몸으로 저항한 민중시인이다. 인문대 옆에 김남주뜰이 만들어져 있고, 바닥에 김남주의 시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을 새겨 놓았다. 인문대 안에 김남주홀도 만들어져 있다.
인문대 앞에 있는 교육지표마당은 교수들의 유신교육 반대를 기념한 공간이다. 우리교육지표는 78년 6월 전남대 교수들이 박정희 정권의 비민주·비인간적인 교육정책과 국민교육헌장을 비판하고, 대학의 자율성과 교육의 민주화를 선언한 사건을 가리킨다.
여기에 서명한 교수 전원이 붙잡혀 가고, 학교에서 쫓겨났다. 송기숙 교수는 구속돼 실형을 선고받았다. 교육지표사건은 학생들의 민주교육과 유신철폐 요구 시위로 이어지면서, 유신독재 반대투쟁에 불을 당긴다. 교육지표마당에 책을 쌓아 놓은 모양의 조형물이 세워져 있다. 5권의 책은 오월을, 11개의 잎사귀는 당시 11명의 서명 교수를 상징하고 있다.

▲ 교육지표마당에 세워져 있는 '우리교육지표' 조형물. 5권의 책은 오월을, 11개의 잎사귀는 당시 11명의 서명 교수를 상징하고 있다.
이돈삼

▲ 사범대 건물에 걸려 있는 광주민중항쟁도. 가마솥에 밥을 짓는 모습의 공동체 정신과 통일운동의 열망을 담은 그림으로 90년 6월에 처음 그려졌다. 시간이 흘러 색이 변하고 칠이 벗겨진 것을 2017년에 복원했다.
이돈삼
사범대 건물에는 광주항쟁을 묘사한 대형 벽화가 그려져 있다. 가마솥에 밥을 짓는 모습의 공동체 정신과 통일운동의 열망을 담은 그림이다. 90년 6월에 그려진 광주민중항쟁도이다. 시간이 흘러 색이 변하고 칠이 벗겨진 것을 2017년에 복원했다.
전남대5·18광장은 평소 돗자리 펴고 쉬기에 참 좋은 공간이다. 수많은 집회와 시위가 열린 민주화운동의 기념비적인 공간이기도 하다. 80년 봄, 학생들은 이 광장에 모여서 민주화를 외쳤다. 이후에도 5·18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독재정권 타도와 민주주의 쟁취 등을 요구하는 시위가 끊이지 않았던 곳이다.
광장 가운데의 수변공간인 '봉지'는 광복의 의미를 담아 지름 8.15m로 축소했다. 봉지의 물이 5·18광장에서 수로를 거쳐 정문까지 흐르도록, 민주화 물결이 이어지도록 연결한 것도 돋보인다.
박승희정원은 91년 4월 노태우 정권 타도를 외치며 분신 항거한 전남대학생 박승희 열사를 기리는 공간이다. 대학본부였던 용봉관은 지금 대학역사관으로 쓰이고 있다. 건물은 등록문화재로 지정됐다. 역사관 앞 용봉탑은 70년대 후반 학생들의 모금으로 세워진 기념탑이다.

▲ 전남대5.18광장은 수많은 집회와 시위가 열린 민주화운동의 기념비적인 공간이다. 80년 봄, 학생들은 이 광장에 모여서 민주화를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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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남대수목원 풍경. 여러 가지 나무로 꾸며진 정원이다. 전남대민주길을 따라 걷는 발걸음을 더욱 가볍게 해주는 학교숲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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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의 길에는 용봉열사 추모의 벽과 오월열사 기억정원이 있다. 추모의 벽은 이 땅의 민주주의를 위해 희생한 전남대 열사들을 기리는 공간이다. 기억정원은 80년 5월 죽음으로 저항한 전남대학생 서호빈, 류영선, 이정연 등 오월열사들을 기리는 공간이다.
후문 앞 '용지'도 전남대학교의 명소다. 1971년 향토사단의 장비를 지원받아 조성한 인공호수이다. 호수에 반영돼 비치는 주변 풍광도 멋스럽다. '호숫가에서 키스하는 커플은 반드시 헤어진다'는 말이 회자되는 것도 흥미롭다.
평화의 길의 윤한봉 정원과 전남대수목원도 꼭 들러봐야 한다. 5·18민중항쟁의 마지막 수배자로 알려진 윤한봉은 1981년 4월 미국으로 망명해, 미국에서 청년운동과 통일운동에 헌신했다. 93년 수배가 해제되고 12년 만에 광주로 돌아와선 5·18진상규명과 정신 계승운동에 앞장섰다.
전남대수목원은 나무로 꾸며진 정원이다. 수목원에 들어선 것만으로도 힐링이 되는 곳이다. 전남대 민주길은 광주, 나아가 '한국의 민주길'로 불러도 손색이 없다. 이 길만 따라 걸어도 80년 5월 광주를 만날 수 있다.

▲ 인권의 길에서 만나는 용봉열사 추모의 벽. 이 땅의 민주주의를 위해 희생한 전남대 열사들을 기리는 공간이다.
이돈삼
전남대학교는 70년대 유신독재 반대운동, 80년대 이후 5·18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운동까지, 우리의 현대사를 관통하고 있다. 민주길에는 70∼80년 당시의 구호와 유인물, 민주와 통일운동 구호를 새긴 바닥도판 100여 개도 깔려 있다. 구호나 문구를 보면서, 당시의 모습도 떠올려볼 수 있다.
지금은 너무나 당연한 민주·인권·평화가 우리 선배들의 쉼없는 투쟁과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을 통해 가까스로 일궈낸 결실이라는 것도 알게 된다. 그 사실을, 우리가 일상에서 기억하고 잊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 고마움을 다시 한번 새겨야 할 5월이다.

▲ 전남대역사관 내부 풍경. 전남대 민주길은 광주, 나아가 ‘한국의 민주길’로 불러도 손색이 없는 곳이다.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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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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