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들이 어머니가 생전에 정성껏 키우던 화분을 보면 어머니를 그리워하고 있다.
유성호
하루아침에 엄마가 사라졌다. 가족들 건강을 위해 소금간을 안 한 음식들로 식탁을 차리던 엄마가, 아버지의 휴무일이면 '어디어디 가야 한다'며 시장을 순회하던 엄마가, 아끼던 화분들에 꼬박 물을 주며 키워내던 엄마가, 아무도 마시지 않는 인삼주를 10병 넘게 담가 전시만 해두던 엄마가, 어느 모임이건 호탕하게 사람들을 웃게 했던 엄마가, 없다.
엄마가 떠나고, 많은 일상들이 바뀌었다.
김치는 물론 된장·고추장을 담가 보관하고, 반찬을 한가득 해 넣어놓고, 식재료들을 잔뜩 쟁여놔 꽉꽉 찼던 냉장고 4대. 엄마가 떠난 뒤 2대만 남은 냉장고는 그마저도 텅 비었다.
반평생 택시 운전을 한 아버지는 폐차를 해야 할 정도의 큰 사고를 냈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제 일 그만하시라" 했지만, 자녀 셋이 모두 출가한 집에 혼자 남은 아버지의 상태는 더욱 안 좋아졌다. 한 달 전쯤, 아버지는 다시 운전대를 잡았다. 점심 때 쯤 나가서 오후 8시쯤 돌아오신다고 했다. 조씨는 "아버지가 손님이라도 있으면 그나마 견디니, 돈 벌러가 아니라 살려고 나가신다"고 했다.
대학병원 응급실 간호사였던 큰 누나는 일을 그만두고 동네 작은 병원 파트타임으로 일하기 시작했다. 막내아들이 아파, 병원비를 감당하기 위해 야간근무만 해온 누나. 밤낮없이 일을 해야 하는 큰 누나 부부를 위해 엄마는 월요일이면 서울에 올라가 누나 아이들 셋을 돌봐주고 금요일에 대구로 다시 내려오는 일상을 이어왔다. 그렇게 의지한 엄마가 없어지니, 누나에게 남은 선택지가 없었다.
"이제 애들 돌볼 시간은 되는데, 돈을 적게 버니까요. 말은 안 해도 누나도 많이 힘든 거 같아요."
평소 아버지를 살뜰히 챙기던 작은 누나는 하루가 멀다 하고 아버지와 싸운다고 했다.
"작은 누나가 엄마랑 제일 비슷해요. 아버지를 많이 챙겼는데, 사람이 예민해지니까 아버지랑 매일 싸워요. 재판 어떻게 준비할지 정해야 하는데, 각자 의견이 다르니 그런 걸로 평생 안 볼 것처럼 싸워요. 그럼 작은 매형이 아버지한테 전화해요. 매형이 새벽에 일어나는데 아버지도 그 때 일어나시니까 매일 안부 전화하면서 누나랑 아버지 사이를 좀 풀어놓으면 점심 때 전화해서 또 싸우고, 그걸 반복하고 있어요."
조씨는 불안감이 높아졌다. 어떤 길을 걸어도 세 걸음에 한 번씩은 뒤를 돌아보게 된다고 했다. 차가 아예 진입할 수 없는 곳이더라도 마찬가지다.
"엄마 사고도 초록색 보행등이 십 몇 초 남은 상황인데, 갑자기 뒤에서 차가 덮친 거잖아요. 언제 어떻게 사고가 날지 아무도 몰라요. 잠도 거의 못자면서 살죠."
이제 막 결혼 두 달차가 된 신혼부부. 그러나 매일 매일 언쟁의 연속이라고 했다.
"와이프가 많이 지쳤을 거예요. 웃고 있다가도 말 한마디에 '왜 그렇게 얘기해' 하고 싸우기 시작하니까요. 하루에도 몇 번씩 싸워요. 매일 웃다가 울다가 웃다가 짜증 내고... 제가 진짜 화를 안 내던 사람이었는데 누가 '니(너) 어쩌고' 말만 해도 '싸우자'가 되는 거예요... 지옥이에요 지금."
조씨는 엄마의 사고 장면을 돌려 보고, 또 돌려본다고 했다.
"사고 전 주에 엄마가 작은누나랑 여행 가서 못 봤고, 그 주에 대구 오면 보자 했어요. 사고 나고 영상을 보는데 너무 오랜만에 엄마를 보는 거 같았어요. 그래서 수천 번 돌려봤어요. 그 짧은 0. 몇 초를."
음주전과 2범, 사람을 치어죽인 가해자에게 내려진 징역 3년형

▲ 아들이 어머니의 사진을 보며 지난날을 회상하고 있다.
유성호
지옥 속에 살고 있는 가족들을 더 깊숙이 내몬 건, 1심 재판 결과였다. 지난 3월 31일, 대구지법 서부지원은 엄마를 죽인 가해자에게 징역 3년형을 선고했다.
"이 사건은 음주로 교통사고를 일으켜 피해자를 사망하게 한 것으로, 당시 혈중 알코올 농도, 피고인의 과실 정도, 사망이라는 중대한 결과를 초래한 점에 비추어 죄책이 무겁다. 피고인은 음주운전으로 2회 벌금형의 처벌을 받은 전력이 있음에도 다시 음주운전을 하였다. 피해자 유족이 피고인에 대한 엄벌을 탄원하고 있다."
그 말끝에 나온 형량이 3년형이었다.
"유족이 엄벌을 탄원했는데 징역 3년? 이게 뭔가 싶었죠. 답은 이미 정해져있었던 게 아니었나 싶었어요. 검찰이 구형한 7년만 나왔어도 안 이랬을 거예요. 정말 숨이 턱 막히더라고요."
조씨는 난생 처음 조사·수사·재판 과정을 겪어내며 그 누구도 피해자 편에 서주지 않는 것 같아 절망했다고 했다.
"가해자가 아프다는 이유로 구속 수사도 안 했어요. 열심히 조사한다고 말은 하는데 우리한테 알려주는 게 하나도 없어요. 사고 현장 지나던 다른 차량 블랙박스 영상도 저희가 SNS에 사건을 알려서 겨우 구했어요.
작년 11월에 첫 재판이 열렸는데, 연기됐어요. 그런데 우리 가족한테는 아무런 연락이 없었어요. 누나들도 다 휴가 쓰고 왔는데 재판이 안 열린다는 거예요. 법원 가서 '왜 안 알려줬냐'고 따지니 '알려줄 의무가 없대'요. 형사재판이라. 그러면서 '당일에도 일정이 바뀔 수 있으니 알아보고 오라'대요.
가해자가 벌 많이 받게 하려면 어째야 하냐고 변호사, 담당 검사한테 물으니 탄원서를 쓰래요. 솔직히 판사가 읽을까요.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없었어요. 아무것도. 그런데 가해자들은 할 수 있는 게 많은 거예요. 공탁 걸고, 손해배상액도 지급하고, 반성문 쓰고. 그럼 감경 사유가 되잖아요. 우리가 탄원서 내는 건 가중 사유가 안 되는데, 이게 뭔가 싶더라고요. 피해자 편은 아무도 없다는 생각이 정말 많이 들었어요."
그리고 나온 결과는 징역 3년.
3천만 원 제시한 가해자의 매형... "얼마면 됩니까?" 흥정했다

▲ 2022년 6월 16일 대낮인 오전 11시 53분 차량 운전자는 혈중알코올농도 0.156% 만취 상태에서 인도로 돌진해 길을 지나던 60대 보행자를 덮쳐 숨기게 했다.
대구 달서소방서 제공
첫 공판에서 마주친 아버지 앞에서 "몸으로 때우겠다"며 고개 숙였던 가해자는 2019년 2월까지 대구지법 서부지원장을 지낸 이를 변호사로 선임했다.
"대구지법 서부지원에서 재판받는데 거기서 장을 지낸 사람이잖아요. 뭐가 있지 않겠나, 재판에 영향을 주지 않겠나.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재판정에서 만난 가해자의 매형이라는 사람이 "합의를 좀 했으면 한다, 형제들이 돈을 모았다"며 이야기를 꺼내기도 했다. 합의금으로 제시한 금액은 3000만 원. 그 매형은 "얼마면 됩니까?"라며 가격을 흥정하듯 얘기했다고 한다. 그게 끝이었다. 가족들에게 합의 의사가 없음을 확인한 가해자는 그 3000만 원을 공탁(법령에 따라 공탁소에 금전, 유가증권 및 물건 등을 맡김으로써 일정한 법률적 효과를 얻는 제도)했다. 유가족들은 받고 싶지도 않은 그 돈이 '감경사유'가 됐다. 재판부는 유리한 정상으로 "피고인이 피해자를 위해 추가로 3000만 원을 형사공탁했다"고 언급했다.
가해자에게 3년형이 선고된 그 날, 가해자 측 관계자는 "가진 게 없다더니 뭐하는 짓이냐"며 울부짖는 누나를 향해 "공탁 할 수 있으니 한 것뿐인데, 뭘 잘못했냐"며 자리를 피해버렸다.
'피해자 가족으로서 아무것도 할 게 없어' 무기력했던 그는, 최근 1심 선고 후 언론사의 취재에 응하며 "할 수 있는 게 있어 그나마 나아지고 있다"고 했다.
"제가 바라는 건 하나예요. 최대한 가해자가 형량을 많이 받아서 '좋은 선례'가 되는 거요. 저희 엄마는 이미 돌아가셨고 어쩔 수 없지만, 다른 사람들한테 좋은 영향이 되면 그나마 나을 거 같아요. 음주운전 전과 있는 사람은 운전면허 발급을 아예 못 받게 하는 등의 조치도 필요하고요. 그 사람들, 나오면 또 음주운전 할 거예요."
그의 예상은 현실이었다.
(* 다음 기사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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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두 달 지난 신혼... "나는 지옥 속에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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