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아, 결전항공대>의 포스터 가미카제 특공대의 창시자 오니시 다키지로 제독을 주제로 하는 1974년작 영화. 나라를 위해 출격하는 특공대원, 철저항전을 주장하는 오니시 및 강경파 장교들의 목소리를 통해 역설적으로 '멋대로 전쟁을 일으켜놓고는 이제와서 스스로의 보신에만 급급한' 국가지도자들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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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와 같은 내부적인 성찰이 곧바로 타자이해로 이어진 것은 아니다. 가령, 후쿠마 요시아키는 <아아, 결전항공대>에서 가미카제특공대의 창시자 오니시 다키지로(大西瀧治郎)제독이 특공으로 죽어간 청년들에게 죄책감을 느끼고, 그들의 죽음을 헛되게 한 천황과 국가를 비판하며, 끝내는 자살하기까지에 이른 과정이 묘사된 것의 의의를 평가하면서도, 해당 영화에 오니시 제독이 지휘했던 '충칭 공습'이나 필리핀 민중의 고난 등이 언급되지 않은 점을 지적한다. 즉, 특공대 문제, 개전과 항복에 이르는 국내적 책임에 대한 성찰이 이루어지는 가운데, 정작 일본의 침략으로 피해를 입은 외국민중의 존재는 생략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상기한 무라야마 담화가 1995년에 발표되었음을 감안하면, 전쟁책임에 대한 사회적 반성이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외국민중의 피해가 논의의 장으로 떠오른 것은 비교적 멀지 않은 과거의 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일본 대중에게 있어 전쟁당사국은 미국과 영국 등 서구열강에 한정되는 경향이 강했다. 1945년 12월 말레이 침공과 진주만 공습이 이루어지고 '대동아전쟁'이 선포되기 이전, 중일전쟁은 '전쟁'이 아닌 '사변'으로 불렸다. 일본 정부는 '중화민국'의 존재 자체를 부정했으므로, 공식적으로 중국은 일본에게 전쟁당사국 취급도 받지 못한 셈이다. 전쟁당사국 문제에서조차 이러했으니, 식민지였던 조선과 타이완, 점령지였던 동남아시아 각국의 현안들은 더더욱 둔감했다. 조선인 강제동원은, 전시 일본본토에서 이루어진 동원과 마찬가지로 같은 총력전 체제 내의 동원으로 이해되었다. 조선은 제국의 울타리 안에 있었고, 조선인의 국적은 일본인이었으므로, 조선인 동원은 일본인 동원의 맥락에서 이해되었다.
물론 상술한 내용에서 알 수 있듯, 당시 총력전 체제의 폭력성에 대해서는 패전 후 줄기차게 비판이 제기되는 만큼 일본 시민사회가 조선인 동원을 긍정적인 사건으로 평가할 리는 만무하다. 조그마한 종이쪼가리를 영장이랍시고 받아들고 대륙과 태평양의 오지로 끌려가서 기아와 질병에 시달리며 끔찍하게 죽어갔던 것은 오늘을 사는 일본 시민들의 조부모(혹은 본인) 세대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방한한 기시다 총리가 징용 피해자들에 대해 '가슴 아프게 생각한다'고 발언한 것은 허언이 아니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다큐멘터리 영화 타리나이(タリナイ)의 한장면(2018) 태평양전쟁 당시 2만 여 일본군이 마셜 제도에서 사망했는데 그중 다수는 아사였다. 아버지의 유골을 찾기 위해 마셜 제도를 방문한 사토 씨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영화에서는, 누군가의 아들이자 아버지, 남편이었던 이들을 헛되이 희생시킨 국가의 책임과 더불어, 마셜 제도 주민들에 대한 일본군의 폭력 문제까지 다며 전쟁책임 문제를 다방면으로 확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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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들은 '직접적인 사죄가 명시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상술한 기시다 총리 발언을 폄하하기도 하지만, 필자는 이 지점이야 말로 앞으로의 과제와 가능성을 동시에 보여주는 중요한 국면이라고 생각한다. 전쟁피해의 문제는 단순히 국적과 민족으로 흑백이 나뉘는 문제가 아니라, 포화 속에 놓이는 민중 전체가 겪는 폭력과 부조리의 문제이다. 즉, 타자이해의 가능성은, 우리가 국가의 울타리를 넘어 인류의 보편적 견지에서 서로의 고통을 들여다보고 공감하며 연대할 수 있는 여지를 시사하는 것이다.
어느 쪽이 이기고 어느 쪽이 패배하는 차원의 문제로 접근하는 한 과거사 문제의 해결은 그 실마리를 잡을 수 없을 것이다. 한국 시민 사회는 '반성하지 않는 일본'의 이미지에 묶여있을 것이 아니라, 반성이 국경 밖으로 확장될 수 있게 끊임없이 대화하고 힘을 모아야 한다. 무책임한 국가지도부에게 동원되어 허망하게 죽어간 일본의 어린 청년들의 고뇌와 슬픔에 공감할 수 있다면, 그 무책임한 국가지도부가 식민지 조선에서 자행한 폭력에 대해서도 보다 더 쉽게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 옛 제국의 체제를 성토하고 반성하는 것과 현대 일본인들에 대한 공격이 전혀 다른 문제라는 것을 자각할 수 있다면, 화해라는 것은 결코 불가능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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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사 문제 해결의 실마리 잡기, 이렇게 생각해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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