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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가사노동자는 부유한 가구만... 저출생 해결? 비현실적"

[인터뷰] 싱가포르 이주노동자 지원 비정부기구 TWC2 알렉스 아우 부회장

등록 2023.05.20 11:42수정 2023.05.20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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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27일 오후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2023 코베 베이비페어'에서 참관객들이 유모차 등을 살펴보고 있다. ⓒ 연합뉴스

 
윤석열 정부와 오세훈 서울시는 한국의 미래를 싱가포르에서 찾는 걸까? 고용노동부와 서울시가 올해 하반기 100가구를 대상으로 가사·돌봄 등에 대한 외국인 가사도우미(가사노동자) 사업 시범 도입 검토 의사를 밝히면서 싱가포르가 회자된다. 

가사·돌봄노동을 외국인 가사노동자에 맡겨 저출생 문제의 돌파구를 찾으려는 모양새다. 가사·돌봄 영역에 외국인 고용을 허가하는 방안(고용허가제 개편)으로 사업을 추진한다. 2023년 5월 현재 세부적인 내용은 확정되지 않았지만, 정부는 "고용노동부가 인증한 '가사서비스 제공기관'이 가사근로자를 고용해 노무관리,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식을 검토중"이다. 임금은 최저임금 수준(월 200만 원가량)일 것으로 알려졌다.

싱가포르는 일찍이 1980년대부터 이주 가사노동자(Migrant Domestic Workers, MDWs) 제도를 도입했다. 정부는 선행 국가의 사례를 우리 상황에 맞게 적용하겠다는 것. 그러나 싱가포르의 제도는 한국의 시범사업과 다소 차이가 있다. 법적으로 가사노동자는 반드시 고용주와 함께 살아야 하며, 고용주는 공간·식사 등을 제공해야 한다. 또 싱가포르 이주 가사노동자는 고용법(우리의 근로기준법)을 적용받지 않아 최저임금 등을 보장받지 못한다.

외국인 가사노동자 제도는 한국에 정착할 수 있을까? 싱가포르 내 이주노동자를 지원하는 비정부기구 TWC2(Transient Workers Count Too)의 알렉스 아우(Alex Au) 부회장은 16일 <오마이뉴스>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이 제도가 시행될 경우 "▲저임금에 따른 재정적 문제 ▲노동자의 이동 제한 문제 ▲노동자 보호를 위한 사법·제도가 공정·강력·신속해야 한다"면서 "좋은 이주노동자 제도는 이와 같은 나쁜 요소를 제거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아래는 알렉스 부회장과의 일문일답.

"싱가포르 가구 중 20% 가사노동자 고용... 출생률 제고 효과 입증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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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 이주노동자 지원단체 TWC2의 알렉스 아우(Alex Au) 부회장. ⓒ TWC2 제공

 
- 싱가포르의 이주 가사노동자 제도는 어떤 배경으로 탄생하게 됐나?

"1980년대 싱가포르는 경제 성장을 위해 더 많은 여성이 경제활동을 하길 원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이주 가사노동자 제도를 도입했다. 그러나 모든 가구에 동등하게 이 제도의 혜택이 돌아가는 건 아니었다. 높은 급여를 받는 고학력 여성이 있는 부유한 가정이 이주 가사노동자를 고용했다. 현재도 싱가포르 전체 가구의 약 20%만이 이주 가사노동자를 고용하고 있다.


정부는 이런 왜곡된 효과를 개의치 않았다. 1980년대 당시 리콴유 총리는 '우생학 사상'을 가진 것으로도 유명했는데, 그는 똑똑하고 교육을 많이 받은(부유한) 여성이 더 똑똑한 아이를 낳으면 싱가포르가 더 똑똑한 사람들로부터 혜택을 볼 수 있다고 믿었다. 다시 말해 덜 똑똑한(즉 덜 부유한) 여성은 덜 똑똑한 자녀를 낳고, 이는 싱가포르의 미래에 좋지 않다고 여겼다."

- 싱가포르에 있는 이주 가사노동자 현황은?

"2022년 12월 현재 26만 8500명의 이주 가사노동자가 있다. 법에 따라 가사노동자는 모두 고용주와 함께 살아야 한다. 대부분 인도네시아, 필리핀, 미얀마 출신이며 인도와 스리랑카 출신도 일부 있다. 2022년 12월 기준으로 싱가포르의 저임금 노동자 수는 103만 3500명인데, 이중 가사노동자가 약 26%를 차지한다."

- 한국 정부는 '돌봄노동의 부담 때문에 저출생 문제가 생긴다'며 이를 해결할 방안으로 외국인 가사노동자 제도를 시범도입하려 한다. 싱가포르도 비슷한 이유에서 이주 가사노동자 제도를 도입한 것인가? 

"제도 도입의 주목적은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였지만, 저출생과 관련한 이유도 있었을 것이다. 싱가포르 출생률은 1970년대에 급격히 떨어졌다. 1972년 합계출생률은 약 3.0명이었으나 불과 5년 후인 1977년엔 2.1명 아래로 떨어졌다. 1980년대엔 저출생 문제가 우려할만한 수준이었다. 

그러나 이주 가사노동자가 출생률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고 하더라도, 현재 가사노동자가 있는 가구는 싱가포르 전체 가구의 20%에 불과하다. 때문에 그 효과는 1/5에 불과할 것이라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가사노동자 제도의 출생률 제고 효과는 아직 입증되지 않았다.

싱가포르의 2023년 예상 출생률은 1.24명이다(2022년 출생률은 1.05명). 이를 2.1명 수준으로 끌어 올리려면 평균 0.9명의 자녀를 더 낳아야 한다. 일부 사람들의 주장처럼 '집에 가사노동자가 있어 출생률을 올릴 수 있다'면, 가사노동자를 고용한 가구의 여성은 1인당 4.5명의 자녀를 더 낳아야 한다는 계산에 이른다. 완전히 비현실적인 목표다."

친구 못 만나게 하고, 가사노동 외 다른 일까지... 거절 못 하는 노동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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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C2의 활동가(가운데)가 인도네시아에서 온 이주 가사노동자들에게 그들의 권리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TWC2는 자원봉사자들과 함게 한 달에 한 번 정도 싱가포르의 여러 장소에서 이같은 행사를 진행한다. ⓒ TWC2 제공

 
- 싱가포르의 이주 가사노동자의 처우와 관련해 가장 큰 이슈는 무엇인가. 인종차별이나 인권침해 같은 문제가 발생하고 있나.

"많은 문제가 있다. 크게 두 개의 범주로 구분해 설명하겠다. 첫째는 '이주노동자 취업과 관련한 문제'로 가사노동자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이주노동자들의 문제다. 싱가포르의 이주노동자들은 높은 채용 비용(일종의 수수료)을 지불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싱가포르에서 처음으로 일을 시작하는 이주노동자의 경우 미화 3000~4000달러 정도의 채용 비용을 내기 위해 대출을 받곤 한다. 대부분의 이주노동자들은 대출금을 갚기 위해 처음 7~12개월 동안 사실상 무급으로 산다.

현재 싱가포르에선 고용주의 동의 없이 직종을 변경하거나 다른 직장에 갈 수 없다(대부분의 고용주들은 동의해주지 않는다). 본국으로 돌아간 뒤 다시 싱가포르에서 일자리를 구하려면 또다시 채용 비용을 지불해야 하기 때문에 고용주의 불합리한 요구 등을 거절하기 어렵다. 불합리한 요구라 하면 급여 삭감·지연·미지급, 노동자의 의료지원 요청 거부, 괴롭힘, 심지어 신체적 폭행까지 포함된다.

둘째는 이주 가사노동자들이 고용주와 함께 살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다. 싱가포르의 이주 가사노동자는 고용법 적용 대상이 아니다. 따라서 가사노동자는 초과근무 수당, 연차 등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한다. 가사노동자들은 통상 하루에 10~16시간 정도 일을 하는데, 아기나 나이 든 가족구성원을 돌보기 위해 한밤중에도 일을 하는 사례도 있다. 근무와 휴식의 경계가 불분명하다.

괴롭힘, 적절한 식사 미제공, 외부 출입 및 소통 제한, 위험 물질 취급, 종교 차이로 인한 갈등 등의 문제가 있다. 사생활을 보호받지 못하는 문제도 있다. 가사 외 노동을 요구하는 사례도 있다. '친척 집에 가서 청소·요리·빨래·아이돌봄을 하라' '가족의 가게에 가서 일하라' 등 요구를 받는 경우도 있다. 거의 모든 가사노동자들은 이게 규칙 위반이란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고용 유지 때문에 불합리한 요구를 거절하는 게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저임금과 권리침해 등 나쁜 요소 없애야 좋은 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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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12월 '국제 이주민의 날'을 기념하기 위해 TWC2가 주최한 행사 모습. 코로나 팬데믹 기간을 제외하고 매년 이 행사를 열었는데, 약 200명의 이주노동자들과 자원봉사자를 초청해 점심식사, 문화행사 등을 진행한다. ⓒ TWC2 제공

 
- 한국은 '출퇴근'하는 가사노동자 제도를 시범도입 계획 중이다. 싱가포르에도 이같은 형태의 제도가 있나.

"2021년 기업이 청소노동자를 고용해 가정에 파견하는 '가사 서비스 계획'을 시작했다. TWC2는 이들을 '가사 서비스 직원'이라고 부른다.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수천 명이 이 일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 제도는 5년간 시범적으로 운영되는데, 올해 정부가 가사 서비스 직원이 어린이·노인 돌봄까지 할 수 있게 규칙을 수정했다. 이들은 회사 소속이라 고용법의 적용을 받는다.

우려 사항이 하나 있다면, 가사 서비스 직원의 교통비와 통근 시간 문제다. 가사 서비스 회사와 가정간 시간제 계약이 이뤄졌을 경우, 가사 서비스 직원이 하루에 여러 군데에 이동해 가야 하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 싱가포르 정부는 기존 가사노동자가 가사 서비스 직원이 되는 걸 허용하지 않는다."

- 한국이 외국인 가사노동자를 도입함에 있어 제도적으로 신경써야 할 부분이 뭐라고 생각하나. 

"한국에서 도입하려는 제도의 세부 사항은 잘 알지 못한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 가사노동자가 고용주 집에 사는 형태가 아니니 동거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는 피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저임금 등 재정적 문제와 이동 제한 등 권리 침해 문제는 남는다.

저임금 노동자는 돈이 없어서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다. 싱가포르에선 '고용주가 이주노동자에게 병원에 자비로 다녀오면 나중에 그 비용을 지불하겠다고 했지만, 노동자가 막상 병원에 갈 돈이 없어서 치료를 받지 못한 사례'도 있다.

이동 제한엔 크게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가사노동자가 집을 떠나거나 친구와 연락하는 것을 금지하는 것 같은 물리적 제한이다. 다른 하나는 새로운 직장(직종)으로의 이동 제한이다. 모두 개인 권리를 심각하게 박탈하는 것이다.

좋은 이주노동자 제도는 이런 나쁜 요소를 제거해야 한다. 노동자는 채용 관련 비용 때문에 고통을 겪지 않아야 하며, 공정하고 정당한 임금을 받아야 한다. 또한 큰 돈을 쓰지 않고도 나쁜 일자리와 나쁜 처우에서 벗어날 수 있는 자유를 가져야 한다. 마지막으로 이주노동자 관련 사법 제도가 공정하고 강력하고 신속해야 한다."
#외국인가사노동자 #외국인이모님 #가사도우미 #싱가포르 #이주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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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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