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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농부 20년째... 저는 토종씨만 취급합니다

유형민 대표 "화학비료 사용하지 않는 전통방식 고수... 농업 가치 확산"

등록 2023.05.21 20:48수정 2023.05.21 2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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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종씨드림 회원들이 밭에서 경작활동을 벌이고 있다 ⓒ 아이-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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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근원인 씨앗, 그것도 우리나라 토종 씨앗을 채종해 보존하고 다른 이에게 나눔을 이어가는 도시농부가 있다. 토종씨드림 인천토종학교 유형민 대표다. 그는 인천 서구 경서동에 자리한 밭에 매일 오간다.

토종 씨앗을 증식하고 나누는 이유를 두고 "사람의 본능 중엔 생명을 기르고 보살펴 주려는 마음이 있다. 그 마음이 텃밭과 연결돼 농업 활동으로 이어졌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유 대표는 20년째 도시농부로서 삶을 이어오고 있다. 부평 갈산 국민체육센터 텃밭, 청천동 단체 텃밭 등을 운영했고 지금도 부영공원 텃밭에서 시민과 함께 농사를 짓는다.

동시에 그는 농업경영체 등록을 한 농업인이다. 단체와의 활동뿐만 아니라 개인 밭에서 우리나라 토종 작물 씨앗을 심어 기르고 채종한다. 그가 채종한 씨앗만 해도 250여 종이 넘는다.

시작은 지난 2015년 '토종씨드림'이라는 시민단체를 접하면서부터이다. '토종씨드림'은 전국 각지에 있는 토종 씨앗을 수집해 씨앗의 특성을 조사하고 보급하는 일을 하는 단체다. 유 대표는 토종씨드림에서 받은 씨앗과 직접 수집한 여러 종류의 씨앗을 직접 그의 밭에 심어 증식하고 채집한 후 나눔 활동도 한다. 

그는 "예전에는 농부들이 모두 씨를 받아 농사를 지었지만 산업화가 이루어지면서 종자산업법이 생겼고 농부가 종자 회사에서 씨앗을 살 수밖에 없는 구조로 바뀌었다"라며 "종자회사에서 독점적 권리를 갖다 보니 농부는 자립도 못하고 권위도 없이 자본에 종속되는 문제가 생겨버렸다"고 설명했다.


유 대표는 "토종 씨앗은 다음 해에 심어도 똑같은 결과물이 나올 만큼 형질과 영양이 변하지 않으며 5000년 전 우리 조상들이 심고 먹었던 그대로의 먹거리를 우리도 안전하게 먹을 수 있다"면서 "조상들이 맛 좋은 작물 씨앗을 선별해 심어오다 보니 맛없으면 버린다. 그래서 지금 확보된 씨앗은 혀에서 느끼는 맛과 함께 씨앗 자체에도 영양분이 풍부하다"고 말했다.

그는 "토종 씨앗은 희소성이 높아 귀한 반면, 산업자본에 의해 판매가 이루어지고 있는 씨앗은 유전자가 변형되거나 작물 종의 다양성까지 사라지게 했다"고 부연했다. 안전한 먹을거리를 위해 토종 씨앗을 증식하고 보존해야 하고, 나눔도 이어가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삽·호미·손 도구만 사용... 화학비료 사용 하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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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종씨드림 인천토종학교 유형민 대표는 생명의 근원인 씨앗, 그것도 우리나라 토종 씨앗을 채종 해 보존하고 다른 이에게 나눔을 이어가는 도시농부다 ⓒ 아이-뷰

 
서구 경서동에 자리한 그의 밭에는 다양한 씨앗들이 움터 자라고 있었다. 꽤 넓은 밭이랑엔 토종우엉, 강화도 분홍감자, 강화노랑차조, 돌율무, 강화 완두콩, 남원 무, 김해 보라시금치, 토종당근, 봉화 토종도라지, 제주 구억배추, 무주 파, 남도 참밀, 강화도 오글 아욱, 전북 산서 무 등 전국에서 채종 된 씨앗의 작물들이 가득하다.

씨앗 채집 방법은 토종씨드림에서 수집한 것을 유 대표가 받기도 하지만, 직접 농부를 만나 구하기도 한다. 씨앗의 역사가 3대 이상 이어지면 100년으로 잡아 채종 후 증식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이러한 토종씨앗을 만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농사짓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돌아가시면 씨도 함께 사라지는 거죠. 자손들은 농사를 짓지 않는 데다 만약 짓는다 해도 돈이 되는 농사를 지어야 하니 씨앗을 사서 심거든요."

밭이랑에선 인천 강화군이나 옹진군 등에서 수집해 심은 작물도 여럿 보였다. 자리한 작물마다 물병 이름표가 앞에 꽂혀 있다.

"강화나 옹진 쪽에서는 조상들의 씨를 받아 지금까지도 농사짓고, 채종해 사용하는 씨앗들이 간혹 있어요. 강화도 뿔시금치나 분홍감자, 콩 종류 등이 그렇죠. 대를 이어온 씨앗이라 정말 귀하죠."

소중하고 귀한 만큼 토종 씨앗은 개량 씨앗과 농사법부터 다르다. 자연농 방식으로 자연과 유사한 환경을 만들어 가꾸어야 하기에 기계와 화학비료는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 오로지 삽과 호미, 손 도구만이 이용된다.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고 전통방식을 고수해서인지 사람들이 이곳에 오면 밭에서 달콤한 향이 퍼져 나온다고 해요. 흙 자체도 밟으면 엄청 푹신푹신하죠."

순계를 지키기 위해 종류가 다른 씨앗도 함께 심지 않는다. 온도와 풍속, 습도에 맞춰 씨앗마다 기르는 방법이 모두 다르다.

"실제로 강원도에서 가져온 씨앗을 인천에 심으니 기후가 달라 농사가 잘 안되더라고요. 이곳 환경에 적응시키는데 5년 정도 걸린 것 같습니다."

그는 한겨울을 빼곤 거의 매일 채종밭에 머문다. 씨앗을 잘 지켜내기 위한 의지 때문이다.

"시간과 공을 들여야 하는 일이지만 토종 씨앗이 귀하고 누군가는 꼭 지켜야 하잖아요. 경제적으로 수입은 일으키지 못해도 이 밭에 머물면 매우 행복합니다. 의미와 가치를 지켜나간다는 점에서도 매우 만족해요."

더불어 그가 밭에서 오랜 시간 머물 수 있는 이유는 휴식과 위안을 얻기 때문이다.

"결국, 씨앗은 생명의 본질이거든요. 우주의 근간이기도 하고요. 손으로 만지고 가꾸면서 성장 과정도 지켜봐요. 이러한 과정들이 우리가 살아가는 이치와 다르지 않아요. 농사짓다 보면 어떤 깨달음 같은 게 있는데 돈으로는 산정할 수 없는 기쁨이죠."

후배 농사꾼 키우는 인천토종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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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종씨드림 인천토종학교 회원들이 모여 식사를 하고 있다. 먹거리는 회원들이 직접 농사지은 것들이다 ⓒ 아이-뷰


유 대표는 지난 2021년부터 계양구 상야동에서 토종씨드림 인천토종학교를 운영한다. 인천토종학교는 1년 과정으로 이론과 직접 농사가 함께 이루어진다. 이곳 역시 자연농법으로 농사가 진행된다. 입소문을 타고 서울, 김포 등 각지에서 도시농부들의 발길도 이어지고 있다.

인천토종학교의 모토 중 하나가 '농사 활동을 통해 자신을 변화시킨다.'이다. 그래서 가족 단위 참가자가 많다. 함께 어울리고 소통하며 자연의 이치도 깨닫고, 책에서 배울 수 없는 것들을 선배 농사꾼이 후배 농사꾼에게 가르쳐 준다. 소비만 하는 농사가 아니라 자립하고 수확하며 맛있게 먹는 법도 함께 배운다.

농사가 마무리되면 텃밭에서 수확한 농작물로 함께 음식도 만들어 나누어 먹고 씨앗도 나눈다. 씨앗 분류 작업을 거쳐 토종 씨앗을 원하는 사람들에게는 씨앗 편지도 발송하고 있다.

그는 "도시농업의 내재적 가치를 확산시켜 삶의 질을 변화시키고 싶다"며 "교육 활동을 통해 시민들에게 되돌려주는 활동을 계속해서 이어나가고 싶다"는 마음을 밝혔다.

■ 토종씨드림 인천토종학교
○ 교육장소 : 인천 계양구 상야동 376-4
○ 수업시간 : 매주 토요일 오전 11시~오후 2시(개인 경작은 편한 시간에 스스로 할 수 있음)
○ 문의 : 010-2413-8719(유형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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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 분홍감자 ⓒ 아이-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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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 무 ⓒ 아이-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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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종씨드림 학생들 ⓒ 아이-뷰

 
김지숙 i-View 객원기자, jisukk@hanmail.net
 
#강화 #토종씨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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