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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향 가득한 숲 지나 터널로... 닿는 곳마다 포토존

[한국의 강둑길 여행] 자연과 문화를 품고 흐르는 밀양강 자전거여행

등록 2023.05.21 20:03수정 2023.05.22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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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의 자연과 문화를 품고 흐르는 밀양강 자전거여행 ⓒ 김종성


볼일이 있어 타지로 떠나게 되면 인터넷 지도를 펼쳐 목마른 사람처럼 그곳에 있는 물줄기를 찾는다. 도시를 품고 구불구불 흐르는 하천을 보게 되면 반가운 마음으로 애마 자전거를 챙긴다. 우리나라는 산이 많은 덕에 웬만한 도시엔 산자락에서 흘러 내려온 강이나 소하천이 꼭 있어 자전거 여행하기 좋다.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로 시작하는 경쾌한 밀양아리랑으로 유명한 경남 밀양에도 밀양강이 있다. 강 상류에 경부선 상동역, 중류에는 밀양역, 하류엔 삼랑진역이 자리하고 있어 접근성이 좋다. 상동역에서 중·하류를 지나 낙동강 합수부까지 약 25km로 자전거여행에 부담이 없다.


깻잎이 쑥쑥 커가는 풋풋한 시골풍경과 강변 소나무숲, 전통시장, 관광지와 유적지... 밀양의 자연과 문화유적이 모두 밀양강에 의지하고 기대어 있는 덕택에 풍성한 자전거여행을 했다. 참고로 올해는 밀양 방문의 해라고 한다. 11월까지 밀양시 곳곳에서 밀양아리랑축제가 열린다.

* 자전거 여행길 : 상동역 - 기회송림 - 월연정 - 영남루 - 아리랑시장 - 삼문동 둔치 - 트윈터널 - 밀양강·낙동강 합수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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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들이 다슬기를 채취하는 풋풋한 밀양강 상류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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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둑길에서 만난 외국인 이주 여성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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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1년 기회마을 주민들이 조성한 방수림 소나무숲 '기회송림' ⓒ 김종성


풋풋한 시골풍경, 소나무 숲이 있는 밀양강 상류

밀양강 상류에 자리한 소담한 간이역 상동역에 내리니 등허리에 내리쬐는 따가운 햇볕이 흡사 자외선 마사지를 받는듯하다. 빽빽하고 촘촘한 볕의 도시 밀양(密陽)의 이름값을 하는 햇살이다. 하지만 이런 햇살 덕에 사과, 배, 딸기 등 과수재배가 잘되기로 유명한 고장이 바로 밀양이다. 벌써 초여름 날씨지만 습도가 높지 않아 나무 그늘이나 정자에서 쉬거나, 늦은 오후가 될수록 시원해서 달릴만하다.

역 앞에 여러 '고동식당'이 여행자를 맞이한다. 물 맑은 상류에 많이 사는 다슬기 요리가 다양하다. 고동국, 고동무침, 고동덮밥, 고동수제비, 고동부침개 등 다양하기도 하다. 고동수제비로 배를 든든히 채우고 밀양강 둑길로 나섰다. 금호 제방길이라 불리는 강둑길은 밀양강을 바라보며 자전거 타고 달리는데 안성맞춤이다. 그늘이 있는 벤치도 곳곳에 만들어 놓았다. 오뉴월엔 길가에 장미꽃을 심어 놓아 예쁜 제방길이 된다.

강물이 깨끗하고 먹거리가 많아서인지 평소에 만나기 힘든 흰목물떼새, 천연기념물인 귀한 원앙들이 보여 반가웠다. 짝짓기 철이 끝났는지 원앙새 수컷은 특유의 화려한 깃털을 모두 털어버려 어색한 모습이다. 마치 연애가 끝나고 결혼한 뒤 후줄근해진 아저씨를 보는 것 같아 웃음이 났다.


밀양은 경지 면적이 경상남도에서 가장 넓다더니 강가에 드넓은 비닐하우스가 펼쳐져 있다. 이곳에서 자란 깻잎이 전국의 70%를 넘는단다. 비닐하우스에 가까이 다가가보니 정말 깻잎들이 튼실하다. 둑길 벤치에 앉아 물을 마시다가 밀양 깻잎을 키우고 따는 외국인 여성 이주민들을 만났다. 손을 살짝 흔들며 '안녕하세요!' 외치니 같이 '안뇽하세요~' 하며 까무잡잡한 얼굴에 환한 미소로 답한다. 요즘 많이 피어나는 금계국 꽃처럼 친근하고 예쁜 미소였다.

밀양강 제일의 자연명소라면 단연 '기회송림'이라는 울창한 소나무 숲이다. 강변을 따라 길게 이어지는 소나무 숲을 바라보며 잔뜩 기대하고 갔는데 폐쇄됐다는 안내판을 마주했다. 기회송림 위탁 관리를 맡은 업체에서 유원지, 캠핑장을 운영하면서 강물을 오염시켰단다. 다리에 힘이 쭉 빠졌지만 다행히 밀양강 중류에서 '삼문송림'이 나타나 위로를 해주었다.

밀양 사람들은 기회송림을 '긴 늪'으로 불러 흥미롭다. 버스정류장 이름도 '긴 늪'이다. 과거 큰 비가 올 때마다 밀양강이 범람해 기회마을 논밭이 침수되면서 긴 늪이 생길 정도로 황폐해진데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 피해를 막기 위해 1881년 마을 주민들이 함께 수천 그루의 소나무와 밤나무, 버드나무를 심었다. 소나무를 방수림으로 심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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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배경으로 나올만한 용평터널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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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질서한 듯 멋스럽게 지은 월연정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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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강 최고의 전망공간 영남루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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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양·가격 모두 만족한 40년 업력의 밀양아리랑시장 보리비빔밥. ⓒ 김종성


밀양강 최고의 누정, 월연정과 영남루

밀양강 상류에서 가장 인상에 남는 곳 가운데 하나는 강변길을 달리다 마주친 '용평터널'이다. 1905년 1월 1일 개통된 경부선 단선철도 터널이었는데 폐선되면서 차들이 오가는 드라이브 명소가 되었다. 터널 중간구역이 트인 독특한 형태에 일정 간격으로 비치된 조명이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내 영화, 드라마 촬영지로도 인기가 많다. 차량 1대가 지나갈 좁은 터널을 천천히 달려 지나가는데 산허리를 뚫은 동굴이라 공기가 서늘해 등허리에 맺힌 땀이 다 식었다.

용평터널을 나오면 수고했다는 듯, 조선시대 낙향한 선비가 지은 월연정이 나와 쉬어가게 된다. 이름은 정자지만 담양 소쇄원처럼 여러 건물이 들어서 있는 특별한 정자다. 옛 선인들의 조경문화답게 자연환경을 최대한 살려 지은 것이 그대로 눈에 보인다. 작은 돌들을 모아 가지런하게 쌓은 석축과 토담, 그 위에 자연스럽게 놓인 건물들이 무질서한 듯 멋스럽다.

밀양시내를 품은 밀양강 중류로 들어서면 밀양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유적지이자 관광지 '영남루'가 여행자를 반긴다. 진주 촉석루, 평양 부벽루와 함께 우리나라 3대 누각으로 보물 제147호다. 밀양강 최고의 전망대이기도 해서 마루에 눕다시피 앉아 '물멍'하게 된다. 내부의 고색창연한 단청과 다양한 문양조각도 볼거리다. 영남루 앞 뜰은 주말·휴일마다 무형문화재 상설공연이 열리는 공연장이기도 하다.

누각 곁에 천년고찰 무봉사와 밀양읍성이 이어져 있어 산책하기도 좋다. 영남루 뒤에 있는 밀양아리랑시장에서 점심으로 밀양돼지국밥을 맛보아도 좋겠다. 나는 시장상인들을 대상으로 시작했던 40년 업력의 보리밥집을 택했다. 기다란 의자에 나란히 앉아 옆 사람과 눈인사하며 먹는 보리밥. 뷔페식으로 나오는 푸짐하고 신선한 야채 반찬에 흰 새알심을 넣은 미역국이 나와 이채롭다. 맛과 양, 6천원 가격까지 모두 만족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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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문동 밀양강 둔치에 조성한 삼문송림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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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길에서 환상적인 테마파크로 변신한 트윈터널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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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강을 향해 유유히 흘러가는 밀양강 하류 ⓒ 김종성


자전거도로가 멀끔하게 깔린, 실컷 달리기 좋은 밀양강 하류

영남루에서 바라보이는 동네는 삼문동(三門洞)으로 지도를 보면 밀양강이 휘돌아가면서 만든 큰 하중도(河中島)다. 이런 동네를 물돌이 마을이라고 하는데, 낙동강 하회마을이나 내성천 무섬마을 등이 있다. 삼문동은 밀양시의 도심지역으로 전국의 물돌이 마을 가운데 가장 큰 섬이지 싶다. 삼문동 둔치를 따라 가면 강변 소나무숲 '삼문송림'을 만난다.

수령이 100년은 넘을 듯한 굵은 소나무 650여 그루가 울창하다. 강변 솔숲이라 그런지 솔향이 짙고 그윽했다. 그런데 많은 소나무 밑동에 큰 흉터가 있었다. 일제 강점 말기 태평양 전쟁을 치르느라 물자가 부족했던 일본이 전쟁 물자로 쓰기 위해 송진을 채취했던 자국이라고 한다. 전쟁은 사람뿐만 아니라 죄 없는 나무들까지 희생 당하는구나 싶다.

물돌이 마을 삼문동을 지나면 자전거도로가 깔린 강변길이 낙동강까지 쭉 이어져 신나게 달리기 좋다. 하류로 갈수록 강폭이 넓어지고 강변 둔치엔 말을 타고 승마연습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밀양강물을 받아쓰는 비닐하우스 단지가 은빛 파도처럼 멀리까지 출렁거린다. 강 하류엔 '트윈터널'(밀양시 삼랑진읍)이라는 특별한 관광지가 있어 들를만하다. 옛 경부선이 이어진 무월산 기차터널을 활용한 테마파크다.

기차가 드나들던 어두컴컴한 터널이 반짝이는 빛의 터널로 거듭났다. 상행 457m, 하행 443m 터널을 이은 형태도 독특하다. 두 터널의 쌍둥이 같은 모습에 트윈터널이란 이름이 붙었다. 밖은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송골송골 맺히지만, 터널 안에 들어서면 언제 그랬냐는 듯 더위가 싹 사라진다.

터널 안 벽면과 천장을 가득 메운 형형색색 전구들이 밤하늘을 수놓은 별처럼 반짝반짝 빛난다. 마치 별빛이 흐르는 은하수를 건너는 기분이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탄성을 지르며 빛의 황홀경에 빠져든다. 발걸음이 닿는 곳마다 포토존이다.

밀양강이 마침내 낙동강과 만나는 동네 삼랑진은 만조 때 바닷물까지 역류해 세 갈래(三) 물결(浪)이 일렁이는 나루(津)라는 의미에서 붙여졌다고 전해진다. 삼랑진에서 이어지는 낙동강 자전거 길을 달리면 곧 부산이다. 자전거여행자를 유혹하듯 낙동강 하구길이 강변을 따라 이어진다.
덧붙이는 글 기자의 블로그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밀양강자전거여행 #밀양강 #밀양여행 #영남루 #트윈터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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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야 금속말을 타고 다니는 도시의 유목민. 매일이 여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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