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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직 PA입니다, '불법의료 간호사' 이런 일까지 합니다

전공의 부족한 과에서 수술 등 보조, 환자 상처 소독도 불법...업무 적시한 간호법 필요

등록 2023.05.23 04:42수정 2023.05.23 0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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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일 윤석열 대통령이 간호법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하면서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대한간호협회가 PA 간호사 준법투쟁과 면허증 반납 등 단체행동에 나서겠다고 밝혔습니다. <오마이뉴스>는  현직 PA 간호사가 대형병원의 현재 상황과 PA 간호사들의 업무환경 등을 담아 쓴 글을 '보건의료노조'로부터 받아 익명으로 게재합니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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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인력부족으로 PA들은 현장에 투입 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 elements.envato

 
불법의료와 현장 의료의 현실적 요구 사이에 있는 PA 간호사(진료보조·Physician Assistant, 아래 PA)는 여전히 현장에서 혼란을 겪고 있다. 몇 년 전부터 불법의료의 프레임에 갇혀있는 PA가 현장에서 없어서는 안 될 존재인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여전히 의사는 부족하고, 특히 비인기과에는 전공의가 없어 수술 및 환자진료 과정에 많은 인력이 필요하다. 전공의가 있다 해도, 전공의 혼자 모든 환자를 볼 수 없기 때문에 의사인력부족으로 PA들은 현장에 투입 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관련기사 : 나는 의사 가운 입은 반쪽짜리 간호사입니다 https://omn.kr/1uhzd).

의사들은 환자의 진단부터 치료까지 많은 업무를 해야한다. 환자의 진단을 위해 검사가 필요한 과에서는 대부분 관련 업무를 PA들이 진행하고 있으며, 진단을 받고 수술을 해야 하는 환자 역시 수술실에서 PA의 지원이 필요하다. 환자의 진단과 치료 모든 영역에 있어 전공의가 필요하며, 전공의 인력부족으로 그 자리는 여전히 PA들의 몫이다.

수술에 전공의가 들어간다면 진단을 위한 초음파는 누가 찍을 것인가? 일부 과에선 여전히 PA들이 이를 맡아 하고 있다. 그렇다면, 전공의가 초음파를 찍고 있다면 수술방엔 누가 들어가서 어시스트(assist)를 할 것인가? 이런 상황이 발생하면, 역시 PA가 들어가 수술을 돕고 있다.

환자 상처부위 소독도 불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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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뉴스로 거짓 선동한 국민의힘과 보건복지부 규탄 - 간호법 제정 거부권 행사 규탄 총궐기대회'가 19일 오후 서울 광화문네거리 부근 세종대로에서 대한간호협회 주최로 열렸다. ⓒ 권우성

 
무리 없이 이 모든 치료를 진행하기엔 현재 의사 인력이 충분하지 않다. 의료 인력이 부족한 종합병원에서 PA들을 공공연하게 쓸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 현실을 언제까지 PA들이 감당해야 할까? 여전히 PA들은 서류작성, 상처소독, 약처방 등 많은 불법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전공의가 수술방에 들어가 있는 동안 PA들은 부서에서 요구하는 콜을 받고 처방을 해준다.

만약 퇴원을 앞둔 환자가 갑자기 추가약을 요구하는 일이 발생했다고 치자. 전공의가 수술을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 처방을 받고, 약을 조제하고 퇴원 수속을 밟으면, 환자는 오후에 집에 가게 된다. 피해는 고스란히 환자에게 돌아가기 때문에, PA는 처방권이 없어도 어쩔 수 없이 처방을 해주어야만 한다. 그래야 환자 퇴원이 무리없이 진행되는 것이다.


수술 후 소독 부위에 분비물이 많이 생겨 주변 거즈가 젖어 상처부위가 축축해지는 경우가 있다. 수술 부위 습한 환경은 감염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위험해질 수 있다. 대다수 전공의는 심폐소생술이나 급한 업무가 아니면 금방 내려와서 보지 않고, 다른 업무를 수행하느라 잊어버리기 일쑤다.

하지만 환자에게는 그 어떤 것보다 불편한 상황이기도 하고 감염 예방을 위해 필요한 치료이기도 하다. 상처소독을 하는 건 불법이라 하지만, 당장 환자가 겪는 불편감을 덜어주려면 PA 간호사는 어쩔 수 없이 소독을 해야만 한다. 의사 인력 부족으로 환자들이 만족할 수 없는 치료가 이어지고 결국 누군가는 환자의 요구를 들어주어야 한다.

PA는 의대 졸업생들이 기피하는 과의 전공의 부족을 메워주는 위험한 줄타기를 하는 자리여만 하는 것일까? 업무를 할 때마다 늘 걱정을 이고 지는 상황을 언제까지 감당해야 하는 것일까? PA들은 점점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 

업무 명확화를 위해 꼭 필요한 간호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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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인력부족으로 PA들은 현장에 투입 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 elements.envato

 
이런 상황에 대한 근본적 해결책은 의대 정원 확대지만, 이는 의사들의 반발로 당장 이뤄내기 어려운 일이다. 이외의 대안을 생각해보면, PA들이 법적 장치 안에서 안전하게 일을 할 수 있도록 업무 범위를 명확하게 해주는 것을 꼽을 수 있겠다. 

내가 해야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정확하게 구분해 놓는다면 법까지 어겨가며 일하는, 또는 일하고 싶어 하는 간호사는 없을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간호법 제정은 업무의 명확화를 위해 꼭 필요하다. 간호사의 업무범위를 명확하게 정하고 안전한 법적 테두리 안에서 일을 한다면, PA 간호사의 업무도 안정돼 열악한 근무환경을 개선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의료문화에선 의료사고가 생겼을 때 간호사들에게 많은 책임을 전가한다. 이 때문에 PA 간호사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위험성을 가지고 일을 한다. PA 간호사가 마음 놓고 일하기 위해선, 법적 보호가 반드시 필요하다. 

부디 간호법이 제정돼 '불법의료하는 간호사'라는 프레임에 벗어나, 의료인으로 자긍심을 갖고 안전하게 환자를 돌볼 수 있는 환경에서 일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는 현직 PA 간호사입니다.
#간호법 #PA간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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