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K-콘텐츠'를 탄생시킬 건가

[주장] 호주 언론은 'kwarosa'라고도 했다

등록 2023.05.22 12:03수정 2023.05.22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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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4일, 고용노동부 장관 간담회에 앞서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개최한 기자회견 ⓒ 청년유니온

 
국제노동기구(ILO)는 1919년 1호 협약으로 공업부문 사업장에서 노동시간을 하루 8시간, 1주 최대 48시간으로 제한하는 협약을 제정했고, 100여 년이 지난 현재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노동시간을 줄이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현재 52개 국가가 1호 협약을 비준하고 있는 상태지만, 한국 사회는 여전히 비준하고 있지 못한 상황이다. 이런 와중에 윤석열 정부가 추진하고자 하는 노동개혁의 핵심은 바로 '노동시간 유연화'다.

정부는 한국의 연간 평균 노동시간이 여전히 장시간이라는 것을 간과하고 있다. 2022년 한국의 평균 노동시간은 1908시간이다. 주 52시간제 도입으로 OECD에서 1위를 다투던 과거보다는 나아졌으나, 여전히 2022년 기준 38개 회원국 중 5위를 기록하며, 사실상 장시간 노동을 밥 먹듯이 해 여전히 오명을 떨쳐 내지 못하고 있다.

정부의 노동시간 개편 관련 입법예고가 발표되자 호주 ABC방송사에서 한국이 장시간 노동으로의 회기를 준비하고 있다며, '한국적 현상'으로 'kwarosa'라는 단어를 소개했다. 과로사를 영어 발음 그대로 표현한 것이다. 새로운 K-콘텐츠의 탄생을 지켜보며 안타까운 마음을 지울 수 없다.

주69시간 노동으로의 회기

전임 정부는 노동시간 단축을 위해 주 최대 노동시간을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단축하고 '노동시간 특례업종'을 축소하는 내용으로 근로기준법을 개정했다. 사업장 규모에 따라 주 52시간제를 도입해 30인 미만 사업장의 경우 계도 기간을 보내고 있으나, 2021년 7월, 5~49인 사업장까지 적용한지 1년이 채 되지 않았다.

법이 개정돼 현장에 적용되기까지도 많은 시간이 필요하며, 현장 노동자들은 주52시간제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고 아우성이다. 윤석열 정부는 이러한 정책 결정이 "경직된 노동시간 제도"라고 말하며 연장근무 관리 단위를 확대하겠다고 한다. 그리고 해외에서는 다들 그렇게하고 있다며 심지어 청년들이 환영하는 개편안이라고 당당히 이야기한다.

고용노동부가 '근로시간 제도 개편방안'에서 언급한 "총량 준수 방식"을 운영하는 독일, 영국, 일본 모두 연평균 노동시간이 독일 1349시간, 영국 1487시간, 일본 1633시간으로 한국보다 이미 300~500시간 적은 국가다. 결코 동일한 정책 여건에 있다고 볼 수 없다.


이 자리에서 말하지 않아도 대통령 본인도 60시간 이상 일하는 것은 무리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노동시간 이슈가 한창일 때 윤석열 정부에 대한 20~30대 지지율이 15%p가량 빠진 것만 봐도 더 설명이 필요 없는 부분인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전임 정부의 정책 결정이 잘못되었다고 판단하더라도 아무런 사회적 논의 없이 노동시간을 규정하는 법을 고무줄처럼 재개정하는 것이 과연 국정 운영에 대한 책임감이 있는 것인지 물음이 들지 않을 수 없다.

길게 일하고 길게 쉬라고?

2020년 고용노동부 실태조사 결과 10인 이상 사업장 2522곳 중 포괄임금제 시행 사업장이 37.7%에 육박한다. 포괄임금제가 '공짜 야근'을 유발하는 '인간 자유 이용권'으로 오남용되고 있어 2018년에 고용노동부가 이에대한 '포괄임금제 가이드라인'을 통해 규제하겠다고 밝혔으나 아직도 도입되지 않고 있다. 또한 근로기준법이 보장하는 연차 유급휴가조차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노동자가 다수인 상황에서 장기휴가 사용은 요원한 것이 현실이다.

주당 노동시간을 69시간까지 가능하게 만드는 정부 기조에 원칙적으로 동의할 수 없다. 또한, 노동시간 선택권 확대를 뒷받침하기 위해 근로자대표 제도 개선을 이야기했으나 사실상 제도에 대한 세부규정이 없는 상황에서 노동자들의 실질적 '선택권'이 확보될지 의문이다.

중소기업·무노조 사업장 노동자들일수록 정부가 주장하는 의도와는 다르게 그 부작용과 피해가 막심할 것이다. 모든 노동자의 교섭할 권리를 실현하는 선제적 노력을 통해 노동시간 유연화에 따른 각종 부작용을 예방해 나가야만 한다.

시간 주권이 없는 이들에게 이번 개편안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최근 급증한 초단시간 노동자, 프리랜서와 같은 사각지대 노동의 노동시간 제도에 대한 논의는 부재하다. 2021년 기준 프리랜서, 특수고용 노동자를 포함하는 비임금 노동자는 787만여 명이며 이중 20대와 30대가 335만여 명에 육박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또한, 15시간 미만 노동을 함으로써 기존 노동관계법으로부터 소외돼 있는 초단시간 노동자도 2021년 기준 185만 명에 육박해 10년 전보다 2.8배 폭증했다.

초단시간 노동자의 경우 주휴일 미적용, 퇴직금 미적용 등 노동시간에 따른 근로기준법 사각지대에 놓여있으며, 프리랜서의 경우 노동시간 규율 및 휴식권 보장 제도가 전혀 없어 새로운 노동시간 제도 개편을 위한 논의가 필요하지만 이에 대한 논의는 전혀 이뤄지고 있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전체 임금 노동자 중 86%를 차지하는 1800만여 명에 이르는 노동자들은 300명 미만 사업장에 종사하고 있다, 300명 미만 기업 노동조합 조직률은 1.67%에 불과하며 나머지 99%의 노동조합이 없는 사업장에서 실질적으로 근로자대표에 의한 노동시간에 관한 각종 서면 합의 악용 가능성이 존재한다.

그러나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대표 제도는 선출 절차, 임기, 근로자의 범위 등 근로자대표의 민주성과 정통성을 담보하기 위한 입법이 공백 상태로 방치되어 있어 현장에서 운용상 사용자에 의한 악용 여지가 매우 높아 보완 입법 필요성이 제기됐으나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

정부의 노동시간 제도 개편안은 연장 근로 단위를 주에서 월/분기/반기/연 단위로 확대하면서 단위 기간 총 노동시간은 비례 단축하는 것으로 하고 있으나 이는 '이론적 감축'에 불과하다. 실제로 사업장 운용 시 총량 감축을 하지 않아도 되는 월 단위 노동시간 제도 운영이 폭증하여 실노동시간은 증가할 수밖에 없다. 또한, 소규모 사업장에 대한 특별연장근로, 각종 유연근무제와 결합하여 현행 장시간 노동체제를 강화 유발한다.

그렇기에 주 40시간제(연장근로 12시간) 전면적용을 노동시간 제도 개편의 우선 원칙으로 확립해야 한다. 30인 미만 사업장의 8시간 특별연장근로 계도 기간도 즉각 종료해야 한다. 또한, 연장근로 단위를 확대한다고 하더라도 평균 노동시간 기준은 주 40시간을 초과하지 않도록 제한하고 특정 주 최대 노동시간 52시간을 초과하지 않도록 제한해 실질적인 노동시간을 단축해야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김설 청년유니온 위원장이 쓴 글이다. 한국비정규동센터에서 발행하는 격월간 <비정규노동> 5,6월호 'YOUTHTORY' 꼭지에도 실렸다.
#청년 #청년유니온 #노동시간 #초단시간 #고용노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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