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듣기

자존감 바닥의 취준생에게 수영을 권합니다

옷장에서 수영 용품만 두 박스... 내 숨통을 틔어준 수영의 매력

등록 2023.05.28 18:45수정 2023.05.28 18:45
1
원고료로 응원
도서관 치유 글쓰기 프로그램에서 만나 시민기자가 된 그룹입니다. 20대(Z), 30대(M), 40대(X)까지 총 6명의 여성들로 이뤄진 그룹 'XMZ 여자들'은 세대간의 어긋남과 연결 그리고 공감을 목표로 사소하지만 멈칫하게 만드는 순간을 글로 씁니다.[편집자말]
최근 이사를 했다. 옷장에서 수영 용품만 두 박스가 나왔다. 차곡차곡 쌓인 각종 수영 용품들은 수영뿐만 아니라 물과 관련된 것이면 뭐든 좋아하는 나의 '물의 역사'에 대해 알려주는 듯했다.

실내수영복, 수모, 수경은 기본이고 스노클링 고글, 스노클링 마스크, 일주일은 돌아가면서 입어도 될 래시가드들, 각종 튜브, 방수팩과 방수 카메라까지. 몇 년 전 수영장에서 잃어버린 오리발까지 있었다면 세 박스가 될 뻔했다.


여느 평범한 어린이와 마찬가지로 초등학생 때 동네 스포츠센터 어린이 수영교실에서 수영을 배웠다. 어릴 때는 수영의 매력을 알았다기보단 친구들과 같이 물놀이를 하고 나와서 옆 매점에서 컵라면을 먹는 것을 더 좋아했다.

취준생과 수영

그렇게 어렸을 적 배워둔 수영은 의외로 10여 년이 흐른 20대 중반 취업 준비생 시절 나에게 많은 힘을 준 친구가 되었다. 매일 서류 전형에서 떨어지고, 또 새로운 '자소설'을 쓰고, 면접에서 낙방하던 질풍노도의 시기. 우울감의 상승과 자존감의 하강이 반비례 하던 그때, '뭐라도 하자' 하는 마음에 아침 수영을 등록했다.

그 시기의 아침 수영은 나에게 "일찍 일어나서 무언가 생산적인 일을 한다"라는 자긍심을 심어주었다. 머리에 흰띠라도 두르듯 비장하게 수모를 착용하고, 오늘 하루에 탈락과 낙심만 남길 수 없다는 마음으로 발버둥 같은 발장구를 쳤다. 아침 운동을 하고 개운하게 씻고 나오면 왠지 활기찬 하루를 시작하는 사회인이 된 것만 같았고.

수영을 배운다는 것은 혼자와의 싸움인지라 숨을 쉬는 것과 팔다리를 움직이는 리듬에만 집중하게 되어 잡생각이 없어진다. 최대 속력을 쏟아낸 후 레인 끝에서 숨을 몰아쉬며 뜨끈해진 등과 얼굴의 온도를 느끼면 묘한 쾌감이 차오른다.


많은 것이 불공평하다고 생각 되었던 그 시절, 누구든 물속에서는 움직이는 것이 불편해지니 공평하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오리발을 차고 접영까지 배우고 나면 돌고래처럼 물 위에서 펄떡펄떡 날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나는 수영반에서 막내였는데, 뭐든지 조급하게 느껴졌던 그때 수영반 동료들은 "어우 20대죠? 젊다~"라며 20대의 체력을 이유로 항상 1번으로 출발할 수 있게 양보(?) 해주었다. 1번으로 출발한 책임감은 더 빨리, 더 열심히 발차기를 하게 만들었고, 수영장에서만큼은 무언가를 잘 하는 사람이 될 수 있었다. 그 당시 나에게 물 밖 세상은 답답했고 물속에서만큼은 숨통이 트였다.

삶을 더 다채롭게 만드는 운동

수영은 자전거나 운전과 같이 한번 배워두면 몸이 기억하는 신기한 운동이다. 힘든 시기를 극복하기 위해 선택한 수영은 사회인이 된 후에 내 삶을 더 다채롭게 만들어주었다. 수영을 할 줄 알면 선택할 수 있는 액티비티와 스포츠의 폭도 넓어진다. 휴가지를 선택할 때도 수영장과 바다의 유무는 큰 부분을 차지했다.
 
a

세부 스노클링 중 만난 물고기 친구들 ⓒ 이수현

 
하와이 하나우마베이와 괌의 리티디안 해변에서 스노클링을 하며 본 태평양의 산호초와 물고기떼는 눈앞에서 펼쳐지는 다큐멘터리 같았다. 세부에서 친구들과 했던 씨워크와 호핑투어는 아직도 즐거운 추억으로 남아있고, 방콕의 호텔 수영장 베드에서 여유롭게 책을 읽는 기분은 또 어땠던가.  

올해 초 양가 부모님과 다녀온 베트남 푸꾸옥에서는 인피니티 풀에서 다 같이 수영을 하며 가장 아름다운 석양을 봤다. 신혼여행지였던 몰디브에서 매일 아침 일과처럼 물 속에 뛰어들어 봤던 푸른빛의 벅참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a

몰디브 바닷속 잊을 수 없는 몰디브의 푸른빛 벅참 ⓒ 이수현

 
a

인피니티 풀에서 본 푸꾸옥의 석양 ⓒ 이수현

 
최근엔 양양에서 첫 서핑에 도전했다. 바다의 온도는 지상의 계절보다 한 걸음 느려서, 봄의 바다가 가장 춥다고 한다. 발이 꽁꽁 얼 정도로 차가운 봄 바다였지만 파도에 리듬을 맞추어 몸을 일으켜 테이크오프를 하고, 그 파도가 나를 한 번에 바다에서 모래까지 데려다주는 경험은 짜릿했다. 물론 수영을 하지 못해도 스노클링이나 서핑은 할 수 있지만, 수영을 할 줄 알기 때문에 더 마음 편히 접할 수 있는 경험들임은 확실하다.

올해는 남편과 주말에 시간이 날 때마다 자유수영을 하고 있다. 수영 후 우리끼리의 뒤풀이는 또 얼마나 꿀맛 같은지. 수영은 시간 대비 칼로리를 많이 태우는 운동으로 유명하지만 꼭 칼로리를 채워주고 있어 다이어트 효과는 없다. 덜 마른 머리끝에 물방울을 달고, 한 손엔 핑크색 수영가방을 덜렁덜렁 들고, 동네 맛집을 설렁설렁 돌아다니는 주말엔 별 탈 없는 하루의 감사함과 안온함을 느낀다.

유사시 수영을 할 줄 알면 살 확률이 높아진다는데, 수영은 울적했던 시절 나를 숨쉬게 했고, 이후 삶을 훨씬 더 다채롭고 건강하게 만들어 주었다. 앞으로도 수영이 준 힘으로 인생을 힘차게 유영하며 나아가는 물개가 되고 싶다.
그룹 'XMZ 여자들'은 세대간의 어긋남과 연결 그리고 공감을 목표로 사소하지만 멈칫하게 만드는 순간을 글로 씁니다.
#나의취미 #XMZ여자들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매일의 기쁨을 더 자주 기록하고 싶은 취미부자 직딩입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검찰 급했나...'휴대폰 통째 저장', 엉터리 보도자료 배포
  2. 2 재판부 질문에 당황한 군인...해병대 수사외압 사건의 퍼즐
  3. 3 "명품백 가짜" "파 뿌리 875원" 이수정님 왜 이러세요
  4. 4 '휴대폰 통째 저장' 논란... 2시간도 못간 검찰 해명
  5. 5 김종인 "윤 대통령 경제에 문외한...민생 파탄나면 정권은 붕괴"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