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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지 없는 '칼퇴근'은 법으로도 줄 수 없다

새 임원·매니저 온 뒤 바뀐 캐나다 직장 퇴근시간 분위기... '의지'의 중요성을 깨닫다

등록 2023.05.23 10:07수정 2023.05.23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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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지 없는 '칼퇴근'은 법으로도 줄 수 없다. ⓒ 픽사베이

 
캐나다에서 직장생활을 하면서 느끼는 퇴근의 순간은 언제나 특별하다. 어느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으며 당당하게 나서는 '칼퇴근'의 뿌듯함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캐내디언 동료들은 알 수 없는, 그러니까 한국에서 직장생활 경험이 있는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짜릿함이다.

미국 또는 여느 서구 유럽 국가와 마찬가지로 캐나다에서도 근무시간 준수는 법으로서 뿐만 아니라 사회구성원 모두가 공유하는 일종의 '국룰'이다. 고용주 혹은 관리자는 법률과 계약에 따라 정해진 주 40시간의 근무시간 외 추가 업무를 강요할 수도 없고, 부득이하게 추가 근무가 발생할 경우에는 통상적으로 시급의 150%를 추가 수당으로 지급해야 한다.

그러니 혹여 잔업의 필요성이 있다고 하더라도 잔업을 할 것인지 아닌지를 선택하고 결정하는 것은 당사자의 몫이다. 잔업이 싫으면 퇴근하면 되고, 남아서 일을 더 하면 보다 많은 보수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딱히 불만은 없다. 게다가 잔업하지 않는다고 불성실하다는 평을 받거나 해고당하는 경우는 보지 못했을뿐더러, 10년 동안 단 한 번도 야근이나 오버타임을 한 적이 없는 젊은이, 라이언도 성실성을 인정받으며 잘 다니고 있기 때문이다.

캐나다 생활의 보람이었던 '칼퇴근'

캐나다에 와서 처음 공장에서 일할 때였다. 매니저(공장장)는 점심 식사 후 사람들을 모아놓고 이러저러한 납품건이 긴박하니 잔업이 필요하다는 고지를 했다. 당연히 야근을 각오하고 있었는데, 막상 퇴근시간이 되니 약 30명의 직원 중에 남은 사람은 나를 비롯해 4명뿐이었다.

물론 이것은 시간제 급여를 받는 임금노동자 경우에 해당한다. 그렇다고 샐러리(연봉제) 직원이라고 해서 예외가 되는 것은 아니다. 소위 화이트 칼라 업무는 대부분 연봉제이지만 시간제와 마찬가지로 계약에 명시된 근무시간을 초과하는 연장근무는 노사 간 상호 지양된다. 하지만 시급제와 달리 연봉제 근로자에게는 계약 조건의 특성상 초과수당과 같은 특별한 장치가 없다는 한계는 있다. 따라서 법으로는 규정되어 있지만 종종 그 규정의 테두리를 넘어서 이용되기도 하는데 이러한 예외는 특히 한국, 중국 등 이민자 사회에서 많이 발생한다.

일반적으로 캐나다 사회의 고용주는 직원의 근무 시간에 대해 철저한 이행을 보장하는 반면에, 그만큼 임직원의 업무강도는 강한 편이다. 노동자는 법과 제도의 테두리 안에서 상호 간의 적절한 선과 의무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고용문화는 콘크리트보다 더 강력하고 단단한 제도처럼 보였다. 그래서 이것은 틀어질 수도 없고 의심조차 할 수 없는 부동률이자 철옹성처럼 여겨졌다. 한국에서 퇴근시간이 일정치 않아  괴로웠던 만큼 이것만으로도 캐나다 생활에 보람을 느낄 수 있었다. 


임원과 매니저의 교체가 가져온 변화

그런데 지난해 담당 임원이 새로 오고, 올해 초 매니저가 바뀌면서 급속도로 이상한 기운이 퍼지기 시작했다. 새로운 임원은 부서 장악과 실적을 통해 자신이 능력 있는 인물이라는 것을 증명하려는 듯했고, 이 임원보다 늦게 합류한 매니저 역시 그러한 임원 밑에서 업무 성과를 보여야 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특히 브라질 출신의 매니저는 한국적인 업무 스타일이 장착된 듯 누구보다 늦게 퇴근하며 열성적으로 업무에 임했다.

그러더니 결국 새로운 임원이 부서원에게 추가 근무를 요청하기에 이르렀다. 물론 지시나 강요가 아닌 협조 요청이며, 업계의 성수기 시즌 동안 한시적으로 한 시간 정도의 연장 근무라는 단서는 있었다. 매니저는 물론이고 새로운 매니저가 오기 전까지 부서장 역할을 했던 마크도 당연히 받아들였고, 엘살바도르 출신 제이미도 툴툴거리긴 했지만 받아들였다.

알려진 바와 같이 노동유연성이 높은 캐나다와 미국은 경영상의 이유를 들어 언제든지 직원을 해고할 수 있다. 결국 생사여탈권을 지닌 직속상관의 지시에 완전히 굴복할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보니 서서히 부서원들이 눈치라는 걸 보기 시작했다. 20년 가까이 한국에서 눈치 보며 퇴근하던 사람의 눈에는 이 사람이 눈치를 보고 있는 것인지 아닌지는 훤하게 보인다.

결국 여름 성수기 시즌이 지나도 퇴근시간은 원복 되지 않았다. 언제나 56분이면 자리에서 일어서던 제이미도 30분이나 한 시간을 당연한 듯 남아서 일을 한다. 그러다 보니 항상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나서 동시에 퇴근하던 문화도 각자도생 하는 방식으로 변해갔다. 그렇게 눈치로 시작한 근태의 변화는 반년 정도 지난 지금은 으레 그래왔다는 듯 퇴근시간을 30분에서 한 시간 가까이 늦춰놨다. 

특별한 짜릿함이었던, 법과 제도로 구조화되어 바위처럼 단단해 보였던 출퇴근 문화가 한순간에 무너져 버리는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한국의 경우에 비하면 별거 아닐 수도 있는 수준의 일이지만 저녁이 있는 삶과 야근 없는 캐나다 사회라고 떠들던 한국인의 입장에서는 엄청난 충격이었다.

칼퇴근의 즐거움을 잃어버린 직장생활을 다시 목도하다

불현듯 의문이 들었다. 그동안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칼퇴근은 과연 무엇이었단 말인가? 4시 4분 전이면 항상 자리에서 일어서던 제이미의 행동과 4시 40분이 되어서야 겨우 눈치껏 짐을 챙기는 제이미의 태도 중에서 어떤 것이 그의 진짜 모습일까.

물론 이것은 캐나다 사회를 이끄는 거대한 메커니즘에서 아주 작은 하나의 파편에 불과한 사례일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일련의 에피소드, 즉 '칼퇴근'의 즐거움을 잃어버린 직장생활을 다시 목도하게 되면서 문득, 제도는 법과 제도 그 자체의 힘에 의해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이행하는 사람들에 의지에 의해 유지/존속되고 개선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일반적으로 제도라 함은 외부적 강제성을 띤 사회 구조 내의 규범과 체계라 할 수 있다. 절차적으로는 구성원의 합의에 의해 구축되지만 일단 성립되고 나면 오히려 구성원의 행동양식과 태도, 의무를 규정하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제도를 거역할 수 없고 따라야만 하는 혹은 무너지지 않는 완고한 체계로 인식할 때가 있다.

작게 보자면 출퇴근도 제도이며, 사법, 의료, 교육, 가족 등 수많은 제도 속에 갇혀 사는지도 모르겠다. 한편으로 민주주의나 자본주의 같은 정치/경제적 제도 또한 마찬가지다. 우리가 민주주의를 이루었다고 자랑하기보다는 그것을 유지 발전시키기 위한 끊임없는 의지와 노력이 동반되어야만 그나마의 자유와 평화를 누릴 수 있다는 사실을 이번 기회로 되새겨본다. 의지 없는 '칼퇴근'은 법으로도 줄 수 없다.
덧붙이는 글 브런치스토리에 중복 게재 예정입니다.
#칼퇴근 #저녁이 있는 삶 #캐나다 #고용문화 #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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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온타리오주의 작은 마을의 가구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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