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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름'에 집중한 여행, 이번엔 달랐다

[키르기스스탄] 우리, 같은 아시아인

등록 2023.05.25 11:47수정 2023.05.25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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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자흐스탄 알마티와 키르기스스탄 비슈케크는 가까운 거리에 있습니다. 중앙아시아는 땅은 넓지만, 도시는 대부분 가까운 곳에 모여 있지요. 아래로는 파미르 고원이, 위로는 황량한 초원이 펼쳐진 지형의 영향일 것입니다.

덕분에 알마티에서 비슈케크까지, 국경을 넘는 시간을 포함해 세 시간 정도 만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환전을 마치고 곧바로 숙소로 향했습니다. 호스텔은 생각과 달리 꽤 큰 규모였습니다. 호스텔 직원이 시설을 하나하나 영어로 설명해 주더군요. 그러다가 어느 단어가 생각나지 않았는지, 한참을 말을 고릅니다. 그러더니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라서 그렇다"며 웃더군요.


저 역시 물론 영어가 능숙하지 않습니다. "나도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니 괜찮다"고 말하고 함께 웃었습니다. 직원은 말합니다. "그래, 우리 둘 다 같은 아시아인이잖아." 같은 아시아인이 미숙한 영어로 소통하는 모습. 왠지 재밌기도, 이상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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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 앞은 기찻길이었다. ⓒ Widerstand


다음날, 비슈케크 시내를 구경하러 나섰습니다. 전승 기념탑에도 잠시 들렀죠. 키르기스 국기를 형상화한 기념탑의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덕분에 사진을 여러 장 찍고 있었는데, 옆에서 누군가 말을 걸어옵니다.

돌아보니 키르기스인 학생들과 선생님입니다. 함께 체험 학습이라도 온 것일까요. 역시 부족한 영어로 몇 마디 대화를 나눴습니다. 학생들은 구글 번역기를 동원해 이것저것 물어보기도 합니다. 함께 사진을 찍고, 아이폰 에어드랍으로 사진을 공유했습니다. 서로의 인스타그램 아이디를 나눈 뒤 헤어졌습니다. 같은 아시아인. 즐거운 대화를 나누고 학생들과 헤어지며, 저는 그 말이 몇 번이고 맴돌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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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승기념탑 앞의 학생들이 말을 걸었다. ⓒ Widerstand


여행을 떠난 뒤 지금까지 아시아를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4개월이 넘게 아시아 각지를 여행했습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우리가 '같은 아시아인'이라는 느낌은 어느새 흐려져 있었습니다.

여행지에서는 '같음'보다는 '다름'에 집중하는 법이니까요. 국경을 옮겨 다니면서도, 나와 무엇이 다른지를 관찰하곤 했습니다. 나와 무엇이 비슷한지는 그리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호스텔의 직원에게 들었던 말 때문일까요. 키르기스스탄에서는 다름보다는 같음이 더 눈에 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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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승기념탑 위의 조형물. 키르기즈스탄 국기에서도 같은 형태를 볼 수 있다. ⓒ Widerstand


키르기스스탄의 현대사는 독특합니다. 중앙아시아에서는 특이하게도 몇 번이나 시민 혁명을 거친 나라니까요. 1990년, 2005년, 2010년, 그리고 2020년까지 시민 혁명이 벌어졌습니다. 여전히 독재정이 들어서 있거나, 서서히 민주정을 받아들이고 있는 주변국과는 대조를 이룹니다.

키르기스스탄은 중앙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소련 해체 이전에 공산당 지배를 종식시킨 나라입니다. 1990년 고르바초프가 이끌던 소련은 각 지방에서 직접 지방정부 수반을 선출할 수 있도록 허가했습니다.

키르기스스탄은 공산당을 누르고 무소속 후보인 아스카르 아카예프(Askar Akayev)를 선택했죠. 물론 그 배경에는 이미 수 개월 동안 이어지고 있던 키르기스스탄의 민주화 운동이 있었습니다.


물론 소련은 곧 붕괴했고, 아카예프는 독립한 키르기스스탄의 대통령이 됩니다. 그 역시 다른 중앙아시아의 지도자들과 같은 길을 가고자 했죠. 대통령의 권한을 강화했고, 야당 인사를 탄압했습니다. 키르기스스탄은 다시 권위주의 국가로 추락하는 듯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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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르기스스탄의 정부청사 ⓒ Widerstand


하지만 2005년, 권력 세습을 시도하는 아카예프에 대항해 반정부 운동이 폭발합니다. 정부는 시위대를 강경히 진압하고자 했죠. 하지만 시민 1만 5천명이 곧 정부 청사를 포위합니다. 아카예프는 러시아로 망명했고, 독재정권은 붕괴했죠. 소위 '튤립 혁명'이라 불리는 사건입니다.

이후에도 키르기스스탄은 중앙아시아 정치에서 쉽게 보기 힘든 정치적 격변을 두 차례나 더 경험했습니다. 2010년에는 바키예프 정권을 몰아냈죠. 2020년에는 부정선거 문제로 젠베코프 대통령이 물러났습니다.

그 사이 키르기스스탄은 여러 변화를 겪었습니다. 중앙아시아 유일의 의원내각제 국가가 되기도 했고, 곧 이원집정부제 국가가 되었죠. 로자 오툰바예바(Roza Otunbayeva)라는 중앙아시아 최초의 여성 대통령을 선출하기도 했습니다. 개방적이고 자유주의적인 정책으로, '중앙아시아 민주주의의 오아시스'라는 별명도 얻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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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 토 광장의 분수대 ⓒ Widerstand


물론 정치적 격변은 다른 말로 하면 혼란입니다. 수 차례의 혁명과 정치 위기는 한편으로 정치와 경제의 불안정을 가져오기도 했습니다. 몇 차례 이어진 정권 교체가 북부와 남부 사이의 신경전에 불과하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경제적인 문제도 여전합니다. 키르기스스탄은 특별한 지하 자원이 없고, 고원이 많아 농업에도 불리합니다. 그나마 쿰토르 광산에서 나오는 금이 GDP의 10%를 차지하고 있죠. 자유주의와 친서방 정책으로 시장경제의 정착에는 성공했지만, 충분한 산업 동력을 만들어내지 못한 상황입니다.

그렇게 보자면, 키르기스스탄은 주변국에 비해 썩 매력적인 사례는 아닐 수도 있습니다. 지하자원과 독재로 쌓아올린 부와 안정이, 키르기스스탄의 자유보다 우월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분명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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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 국방장관 미하일 프룬제의 동상. 비슈케크는 한때 그의 이름을 따 ‘프룬제’로 불렸다. ⓒ Widerstand


다만 저는, 여전히 '같은 아시아인'이라는 말을 떠올릴 뿐입니다. 우리 역시 겪어내야 했던 과정을, '같은 아시아인'인 키르기스인도 함께 겪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합니다.

'같은 아시아인'으로서, 키르기스스탄은 우리와 같은 꿈을 꾸고 있습니다. 자신의 미래를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민주와 자유를 꿈꾸고 있습니다. 그를 위해 대가를 치를 준비도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치러야 했던 것과 같은 대가를 말이죠.

그렇게 생각한다면, 키르기스인은 우리와 같은 길을 가고자 하는 누구보다 가까운 아시아의 동료 시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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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슈케크의 거리 ⓒ Widerstand


같은 아시아인이라는 정체성이, 이제는 의미 없는 세계가 되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같은' 아시아인인 키르기스의 학생들과 저는 영어로, 구글 번역기로, 아이폰으로, 인스타그램으로 소통했습니다. 어느 것 하나 '아시아적'이진 않지요.

저 역시 그런 생각에 동의합니다. 키르기스와 한국이 '아시아인'으로서 공유하는 역사적 경험이 그리 많아 보이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럴수록, 우리가 같은 꿈을 꾸고 있다는 사실이 더 소중해진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세계에서, 우리가 같은 대륙에 사는 같은 아시아인이라는 사실은 점차 희미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이런 세계이니, 우리가 같은 꿈을 꾸고 있는 아시아인이라는 사실은 더욱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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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슈케크의 도심 공원 ⓒ Widerstand


저는 물론 키르기스어를 하지 못합니다. 공용어인 러시아어도 단여 몇 개 정도나 알 뿐이죠. 하지만 그럼에도, 서로의 선의만 있다면 언어는 큰 무리가 되지 않았습니다. 영어든 번역기든 동원할 수 있는 도구는 많으니까요.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한국과 키르기스스탄은 먼 땅입니다. 물리적 거리도, 심리적 거리도 멀죠. 사람도 언어도 다른 땅입니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서로의 선의에 기댄다면 서로의 길에 충분한 위로가 되어줄 수 있을 것입니다.

먼저 얻어낸 성취를 상대방도 공유할 수 있도록. 먼저 겪었던 상처를 상대방은 피할 수 있도록. 그런 소통에 언어나 거리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같은 꿈을 꾸는 사람들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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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르기스 국립박물관 ⓒ Widerstand


'민주주의의 오아시스'라는 키르기스스탄에서, 동료 시민이 겪었을 고뇌를 생각합니다. 자유와 진보가, 부와 안정에 비해 아무 쓸모가 없다는 충고에 부딪혔을 현실을 상상합니다. 우리 역시 같은 시대를 겪어왔고, 겪어가고 있으니까요.

서로가 서로의 길에 온전한 답이 되어줄 순 없겠죠. 하지만 저는 적어도 함께 고민하는 아시아의 시민이 되고 싶습니다. 호기심에 차 이것저것을 묻던 키르기스의 학생들이 만들 미래에 함께하고 싶습니다. 같은 벽 앞에서 같은 고민을 공유하는 동료가 되고 싶습니다.

저는 그런 '같은 아시아인'이 되고 싶습니다. 아시아라는 지역을 공유하는 동료가 아니라, 같은 꿈을 공유하는 동료가 되고 싶습니다. 이것은 꼭 키르기스스탄에 대한 이야기만은 아니리라 생각합니다.
덧붙이는 글 본 기사는 개인 블로그, <기록되지 못한 이들을 위한 기억, 채널 비더슈탄트>에 동시 게재됩니다.
#세계일주 #세계여행 #키르기스스탄 #키르기스 #비슈케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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