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5.25 20:21최종 업데이트 23.05.25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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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는 사람의 기록을 담은 책을 소개한다. 송곳이 되어 준 작가의 경험과 필자의 지금을 들여다보아 변방에서 안방으로 자리를 넓혀 먹고사는 오늘의 온도를 1℃ 올리고자 한다. [기자말]
노트북을 켜고 이 글을 쓰려고 준비하는 동안만 오토바이 소리를 스무 번가량 들었다. 스무 명의 사람이 지나갔다. 그중 몇 명이 점심을 먹고 일하고 있을까. 끼니를 거른 사람은 몇 명일까. 그가 서투르게 헬멧을 쓰고 처음 오토바이에 올랐을 때 무슨 기분이었을까. 배달 라이더를 '소음'이 아닌 '근로자'로 바라본 건 얼마 지나지 않은 일이다.
 

책 <플랫폼은 안전을 배달하지 않는다> ⓒ 한겨레출판


한국형 배달 플랫폼의 현실을 고발하는 <배달의 민족은 배달하지 않는다>(2020)를 읽고 뒤늦게 깨달았다. 폭풍우 치는 날에 앱으로 주문 버튼을 누르는 일이 라이더의 목숨을 위태롭게 하는 일이라는 걸(외국에선 우천시 날에 배달 주문을 하는 경우가 매우 드물다). 그 책을 통해 도로 위에 쓰러진 라이더보다 음식의 안위를 걱정하는 겉만 번지르르한 배달 플랫폼 기업의 민낯과 시스템을 만났다.

이후 팬데믹이 온 동네를 휩쓸었다. 잘만 하면 라이더 수입이 '꽤 짭짤할 수 있다'는 풍문이 돌았고, 산처럼 쌓여가는 플라스틱을 보듯 골목을 떠도는 오토바이 위 생명을 무감하게 바라봤다. 어느 퇴근길, 큰 사거리 한가운데 납작하게 누운 사람을 버스 차창 안에서 마주했다. 그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한 시민이 한 손으론 긴급전화를 한 손으론 라이더를 흔들었다. 내가 탄 버스는 다음 정거장으로 내달렸고 두 사람은 멀어져갔다. 누운 사람의 몸 위로 밤하늘이 까마득하게 지나갔다. 저녁 시간, 빈속으로 응급실로 실려 가는 사람의 얼굴을 왜 구체적으로 상상할 수 없었을까. 지독하게 뇌리에 남은 검은 헬멧을 한동안 생각했다.

인도 위를 달리는 라이더를 다그치는 '그림자'가 있다

사고를 목격한 시기는 모두가 긴장의 날들을 보내던 코로나19의 한가운데였다. 인도 위를 아슬아슬하게 내질러 보행자를 지나가는 라이더, 신호를 위반하고 빠른 속도로 페달을 밟는 라이더를 불안의 시선으로 보는 시민이 많은 시기였다. 대놓고 욕하는 지인도 있었다. '속도전'을 밀어붙이는 배달대행사와 플랫폼 기업에게 근본적인 문제가 있는 거라고 반박했지만, 나 역시 생각했다. '속도가 좀 지나친데.'

2021~2022년은 모닝 알람보다 배달하는 소리가 더 익숙했던 시기였다. 쌓이는 팬데믹 스트레스만큼 사람들도 극도로 예민해져갔다. 그 스트레스는 종종 길 위에 선 근로자들에게 쏟아졌다. '딸배(라이더를 비하하는 말)' 등 욕설이 난무했다. 하지만 대다수는 알았다. 알고도 손쉬운 착각의 인과관계 앞에서 진실을 덮었을 뿐.

신호를 지키고 달리는 라이더에게도 사고는 빈번하게 닥쳤다. 2023년 1월 새벽, "완벽하게 정지선을 지키고, 안전 장비까지 갖추고" 있었던 30대 배달노동자가 음주 운전자의 폭주로 목숨을 잃었다. 길 위의 폭음은 "배달노동자 개인이 최선을 다해 안전 수칙을 지킨다고 해결된 문제"가 아니었다.
 

ⓒ 고정미


'속도가 좀 지나친데.' 생각했던 나의 오해를 바로잡아 준 건 <플랫폼은 안전을 배달하지 않는다>(2023)를 읽고 나서였다. 7년 차 라이더이자 배달노동자들의 노동조합 라이더유니온의 초대 위원장인 박정훈이 쓴 이 책에는 2022년 기준 국내 산재 신청 기업 1, 2위를 달리는 배민과 쿠팡 등 배달 플랫폼이 AI 배차를 핑계로 라이더를 착취한 과정이 낱낱이 드러난다.

저자는 기업의 착취를 증명하는 실험 결과를 알려줌으로써 유연화한 플랫폼노동으로 책임을 회피해온 기업의 민낯을 다시 한번 보여 준다. 그 꼼수란 무엇일까. 한 가지 실험 결과를 보자.

노동의 최대치를 뽑아먹는, 책임은 지지 않는 'AI 사장님'
 
"(배달 플랫폼 AI가 제공하는) 배차 100퍼센트 수락: 자율적으로 선택하는 것에 비해 주행 거리는 증가, 시간당 배달 건수는 감소, 수익은 감소했다. 노동강도와 피로도가 증가해 검증에 참가한 라이더들은 AI알고리즘을 '족쇄'라고 불렀다.

신호 데이(교통신호를 모두 지키며 배달): 근무시간 중 배달 수행 건수가 급격하게 줄었고, 소득 역시 급격히 하락한 반면, 배달 1대가 1건을 완료하는 데 약 30분이 걸렸다."

저자에 따르면, 배민, 요기요, 쿠팡 등 플랫폼 기업의 배달 시스템은 "교통법규 위반을 전제로 설계"되어 있다. 12명의 라이더들은 3사 배달앱이 주는 AI 배차의 수락 정도를 달리하며 3일간 실험한 결과, AI의 배차를 모두 수락하거나 교통신호를 완벽히 지키며 배달한 날에는 극도로 수익이 감소한 사실을 절감했다. 오토바이가 오를 수 없는 산과 계단을 고려하지 않고 일감 배차를 주는 AI 때문에 길 위에서 체력이 고갈되는 일이 다반사였다.

실험을 했던 2021년 당시, 배민 AI는 직선거리 기준으로 라이더에게 배차를 줬는데 '우리가 예찬해 마지않는' 인공지능은 도로 위 다양한 변수 사항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광안리 근처에서 배달하던 한 라이더는 다리를 건너기 위해 강을 따라 올라가고 내려가길 반복하며 울며 겨자먹기로 콜을 채웠다(라이더들 사이에선 이를 '똥콜'이라고 부른다).

교통신호를 다 지키며 배달을 하기로 약속한 날에는 장거리 배달을 수락하지 못하고 가까운 거리의 배달만 승낙해야 했다. 교통신호를 다 지키며 배달하면 자연히 배달 시간이 늦어지고, 음식이 식는 등 소비자로부터 클레임을 받는다는 걸 베테랑 라이더들은 경험으로 익숙히 알기 때문이다.

한 명의 실험 참가자는 배차를 거부한 이유로 쿠팡이츠로부터 '징역(장기간 접속 금지를 이르는 말)' 처분을 받았다. 쿠팡이츠는 배차 거절을 많이 한 라이더에게 '일주일 접속 금지'라는 문자 통보를 내리고 있다. 다시 말해, AI가 배차하는 대로 일하면 온 산과 강을 건너며 낮은 수익까지 감당해야 하는 구조다.

애초에 배달 플랫폼의 배달료와 배차 시스템은 라이더들에게 교통신호를 어기며 신속 배달을 할 것을 각종 '세련된' 규제로 종용하며 굴려왔다. 폭설이든 폭염이든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수많은 라이더를 회전하고자 기업들은 위험을 담보로 라이더들을 움직여 왔다. 특수형태근로종사자라는 조건을 내걸고 프리랜서라는 사탕발림으로 기업이 질 '책임의 자리'는 비워 두고.

도로 위의 무법자가 될 수밖에 없었던 건 라이더의 안전 불감증이 아니라, 앱에서 라이더를 캐릭터로 둔갑시켜 소비자에게 그의 행로를 추적하게 하는 감시 방식을 채택해온 기업에 있었다는 데 이제 조금은 납득할 수 있겠는가. 그렇게 소비자인 우리가 라이더에게 온갖 욕설을 쏟아냈던 시기, 간과했던 사실이 한 가지 더 있다. 수입 꽤 '짭짤할 것' 같았던 배달 호황기던 시절, 라이더들의 수익은 정말 고공행진이었을까.

배달 플랫폼이 수익을 올릴수록 위험해지는 우리의 도로

AI의 배차를 합리적인 결정이라고 선전하며 근로자들의 위험과 비용을 외주화하는 데 성공한 배달 플랫폼. 그들은 라이더들의 '수익'을 낮추는 데에도 성공한다. 2022년 11월, 국회에서 열린 알고리즘 검증 결과 발표 발표회에서 박수민 연구원은 다음과 같이 밝혔다.
 
"작년(2021년 실험)의 경우 오전 11시~저녁 8시까지 피크-비피크 시간 동안 일하며 확인한 평균 건당 요금은 5300~5600원 수준이었다. 피크 타임을 기준으로 하면 (2021년의 피크 타임 건당) 요금이 더 올라갈 것이기에 (2022년의) 건당 배달요금이 더 내려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소비자들이 부담하는 배달비가 늘어난 것과 달리, 2021년~2022년 사이, 배달노동자들이 가져가는 배달료는 줄어들었다."

저자에 따르면, 배민은 내비게이션 실거리 기준이 아닌 배민이 자체 개발한 프로그램으로 거리를 측정해 배달료를 지급한 바 있다. '도로 정보에 기반한 예상 이동 거리'를 사용할 예정임을 통보한 당시, 라이더들은 의구심을 품고 배민이 공지한 거리를 실 내비게이션 거리와 비교하여 주행했다.

그 결과, 두 거리 간에 평균 350미터의 차이가 났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라이더들은 배민이 '자체 개발한' 거리 책정 요금에 따라 기본 배달료를 2천 원가량 덜 받는 상황에 대해 항의했지만, 배민은 이후 상용 내비게이션 도입을 운운하며 사과나 보상안을 마련하지 않고 있다. "배고픈 아귀와 같이" 더 많은 라이더를 모집하는 광고를 내보낼 뿐이다.

안전한 날에는 배달비를 낮추고 비 오는 날에는 배달비를 올리는 플랫폼의 꼼수 속에서, 배달 일을 시작하는 청소년들이 있다. 한정애 의원이 고용노동부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18~24살 청년의 산재 사망 원인 1위는 '배달'. 배달로 사망한 이들 27명의 사망자 중에서 3명은 첫 출근일에, 3명은 이튿날에, 6명은 보름 안에 목숨을 잃었다.

초보 라이더이던 시절, 저자는 비 내린 주차장 바닥에서 '하늘이 뒤집혀진' 순간을 책 초반에 복기한다. 그의 사고 경험은 배달일을 할 준비가 되었는지 확인조차 하지 않고 라이더 모집에만 열을 올리는 플랫폼 기업의 안일함을 우리는 '왜 한번도 의심하지 않는가'라는 질문을 떠올리게 한다.

겨울날 차갑게 언 맨홀 뚜껑은 베테랑 라이더도 움츠리게 하는 장애물. 라이더 일을 시작하는 청소년들은 이를 알려 주는 길잡이나 어떤 대비책도 없이 도로에 투입된다. 이윽고 생사를 걸고 달리는 도로 위에서 '지워지는 데이터'로 생을 마감하는 목숨이 있다.

손에 쥔 휴대폰. 방금 주문한 배달 앱에서 우리 집까지 닿고자 달려오는 그는 음식도, 캐릭터도, 데이터도 아니다. 모든 게 키오스크화돼가는 일상에서 그의 육체는 언덕과 계단을 오르고 땀으로 젖는다. 헬맷 안에는 열기에 숨가쁜 얼굴이 있다.

라이더들이 직무 능력을 테스트받고 고용될 권리, 감정노동으로부터 보호받을 권리, 플랫폼의 편법 배달 정책으로부터 보호받을 권리를 지금보다 '예리하게' 논해야 한다. 무엇보다 AI 시스템 뒤에 숨은 기업의 행태를 의심해야 한다. 소비자의 허기를 채우기 전에, 가속을 밟을 수밖에 없는 한 사람의 허기의 원인을 파악해야 한다.

배달 라이더가 맘놓고 일할 수 있는 최소한의 안전이 확보될 때 오늘의 도로는 덜 사나워질 것이다. 보행자의 안전은 그가 오늘치의 플랫폼노동을 무사히 '로그아웃'하고 퇴근할 수 있을 때 가능할 것임을 믿는다.


플랫폼은 안전을 배달하지 않는다 - 배달 사고로 읽는 한국형 플랫폼노동

박정훈 (지은이), 한겨레출판(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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