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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톡, 폰뱅킹 하는 엄마도 이건 어렵다고 하네요

디지털 약자를 위한 효율적인 시스템 개선 필요

등록 2023.05.26 16:17수정 2023.05.26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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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모임에서 만나 시민기자가 된 그룹. 70년대생 동년배들이 고민하는 이야기를 씁니다.[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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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오스크 ⓒ kaymayer


이용객이 북적이는 주말의 대형마트. 식사 때가 지나 조금 출출한 기분이 들어 장을 보고 푸드코트로 향했다. 코로나19로 거리두기가 한창일 때를 제외하고는 이곳의 푸드코트엔 늘 사람이 많다. 주문을 위해 무인 단말기(키오스크) 앞에 줄을 섰다. 조금씩 줄이 줄어들다가 바로 내 앞에서 멈춰버렸다.

어깨 너머로 보니 내 앞에 아주머니는 결제 화면을 앞에 두고 당황하고 계셨다. 이것도 저것도 눌러보지만 원하는 화면이 나오질 않는 것 같았고 어느새 내 뒤 어디에선가 볼멘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나는 언제까지 젊지 않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아주머니는 뒤를 돌아 나를 보시고는 "미안한데 나 좀 도와 줄래요?"라고 물으셨고 나는 흔쾌히 그분의 화면을 함께 보았다. 화면은 포인트 카드 적립을 위한 번호를 입력하라고 재촉하고 있었고, 포인트 카드가 없다는 아주머니를 도와 결제를 마쳤다. 단말기에 카드를 꽂는 아주머니의 손이 떨리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내 순서가 되어 포장해 갈 음식을 선택하고 있을 때 내 등 뒤로 "주문 다 하고 나도 좀 도와줘요"라는 낮은 소리가 들렸다.

이렇듯 무인 단말기인 키오스크 앞에서 당황하는 분들을 적잖이 볼 수 있다. 그것은 비단 고령층이 아니어도 그렇다. 나 역시 이따금 낯선 키오스크 앞에선 당황하는 순간들이 있다. 더구나 무언가 옵션을 선택해야 할 때면 더더욱. 이를 테면, 극장에 영화를 보러 갔을 때 팝콘을 먹으려는데 맛은 반반을 선택하고 제로 콜라를 선택할 때다.

세트 메뉴를 선택한 후 팝콘 맛을 선택하고 음료도 옵션을 변경해야 한다. 이후 사이즈 변경을 원하지 않는다는 선택까지 해야 결제 화면으로 넘어갈 수 있고, 포인트 카드 여부를 지나야 최종결제를 마칠 수 있다. '반반 콤보 OO맛/OO맛으로 하고, 음료는 제로 콜라로 해주세요'라는 짧은 몇 마디로 끝날 문제가 아니다.


지금이야 그걸 몇 번 해봤다고 익숙해져서 주문하는 데 문제는 없지만, 처음 키오스크를 마주했을 때의 당황스러움을 아직 기억한다. 그리고 아마도, 다른 종류의 키오스크 앞에선 처음의 그때처럼 당황하는 순간이 생기지 않을까.

디지털 약자는 보통 55세 이상의 인터넷 취약계층을 말하지만, 세상은 계속해서 빠르게 변화하고 있고 나는 항상 젊을 수가 없다. 키오스크 결제 화면 앞에서 당황하던 아주머니의 모습은 지금 현재 내 부모님의 모습이며, 머지않아 바로 내 차례가 될 수 있다는 얘기이다.

실제로 내 어머니는 카카오톡이나 유튜브, 폰뱅킹도 하시지만 키오스크 앞에서는 철저한 약자가 된다.

새로운 사회적 장벽이 된 키오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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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 단말기(키오스크) ⓒ introspectivedsgn


서울시민 디지털 역량 실태조사 주요결과(서울디지털재단, 2021)에 따르면 55세 미만 94.1%가 키오스크 이용 경험이 있는 반면, 55세 이상 고령층은 45.7%만이 키오스크 이용 경험이 있고, 고령층에서도 55~64세 68.9%, 65~74세 29.4%. 75세 이상 13.8%로 키오스크 이용 경험에 차이를 보이고 있다.

고령층이 키오스크를 이용하지 않는 이유는 '사용방법을 모르거나 어려워서(33.8%)', '필요가 없어서(29.4%)', '뒷사람 눈치가 보여서(17.8%)', '새로운 것을 배우는데 거부감(12.3%)' 순이다.

디지털 기기 및 서비스를 이용하면서 어려움이나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 서울시민 8.8%는 이를 해결하지 못하고 그대로 두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이 중 82.3%는 고령층이었다. 또한 도움 서비스 제공 방식으로는 고령층일수록 대면 서비스를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목해야 할 점은 무인단말기(키오스크)를 이용하지 않는 이유가 필요가 없어서가 아니라 사용방법을 모르거나 뒷사람 눈치가 보여서라는 항목이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과 대면 서비스를 선호한다는 것이다.

서울시의 경우 '디지털 약자와의 동행'이라는 슬로건으로 키오스크뿐 아니라 각종 민원서류 출력 및 핸드폰 어플 사용 등 디지털 기기 앞에서 당황하는 일이 없도록 전반적인 도움을 주는 '디지털 안내사'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디지털 안내사란 말 그대로 디지털 약자를 도와주는 사람으로서 지하철역, 전통시장 및 대형마트 등 어르신이 많은 현장에 274개 지점 및 75개 노선을 순회하며 파견하고 있다고 한다.

문제는 디지털 안내사가 어느 한 자리에 상주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순환'하고 있다는 것이다. 서울시 공식 블로그(https://blog.naver.com/haechiseoul)에 따르면 디지털 안내사의 위치는 스마트 서울 포털(https://smart.seoul.go.kr)에서 검색하거나 콜센터(070-4640-2274)에 문의하는 방법이 있다고 한다.

공개된 방법으로 직접 확인해 봤다. 스마트 서울 포털에서 '디지털 안내사'를 검색했을 때는 활동을 시작한다는 공지사항과 언론 보도자료 정도만 확인될 뿐이었다. 공개된 콜센터로 전화하니 디지털 안내사 운영팀으로 연결되었다. 이 번호는 안내사들의 연락수단으로 활용되고 있어 실시간 위치 확인은 어려웠다. 실질적으로 도움이 필요한 순간에 적절한 안내를 받기란 어렵다는 얘기이다.

심지어 디지털 안내사는 서울시에만 한정된 얘기일 뿐이다.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디지털 안내사와는 별개로 전국적으로는 디지털 교육 및 일자리를 창출해 내는 노인 일자리 전문 기관인 한국 시니어클럽 협회(http://www.silverpower.or.kr)가 있기는 하나, 각 지역의 개별적인 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협회 차원의 실태 파악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무인 단말기(키오스크)의 도입으로 불필요한 접촉이 줄었다는 편리성은 있지만, 편의를 위해 도입된 시스템이 누군가에겐 새로운 사회적 장벽이 되어버린 것이다. 적어도 방법을 모르고 눈치가 보여서 이용의 엄두도 내지 못하는 상황은 없어야 하지 않을까.

교육을 통해 진입장벽을 낮추는 방법이 가장 좋겠지만 그것은 마라톤과도 같다. 당장의 성과를 얻어내기엔 무리가 있다는 말이다. 디지털 약자의 문제는 단순히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고령화 사회에 접어든 지금, 정작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무인 단말기의 편의성도 좋지만 대면으로 주문할 수 있는 창구를 구비한다거나 언제든 뒷사람 눈치를 보지 않고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상주 인력을 충원하는 등의 대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시대는 하루가 다르게 급격히 변화하고 있으며 나 역시 지금처럼 항상 젊을 수는 없다. 우리는 누구나 다 늙는다. 이 다음 디지털 약자는 바로 내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정은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와 브런치에 게재될 수 있습니다.
글쓰기 모임에서 만나 시민기자가 된 그룹. 70년대생 동년배들이 고민하는 이야기를 씁니다.
#디지털약자 #고령화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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