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5.25 10:29최종 업데이트 23.05.25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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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당 당원들이 23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후쿠시마 오염수 해양투기 저지 피켓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 이희훈

 
2008년 4월 18일 이명박 정부는 광우병 우려에 수입이 중단되었던 미국산 소고기에 대해 수입 재개를 발표했다. 30개월 미만 소에 대해서는 뼈를 포함할 수 있도록 하고, 차후 30개월 이상 소고기도 수입할 수 있게 하겠다는 내용을 담았다. 국민들의 불안감은 대규모 시위로 변했고 취임 초기부터 이명박 정부는 큰 위기를 맞았다.

15년이 지난 지금, 그때 광우병 사태를 두고 여전히 평가가 갈린다. 보수 언론이나 보수 논객들은 가짜 뉴스를 만들어 체제 전복을 꾀한 것에 불과하며 괴담을 만든 진보 단체나 MBC 등 일부 언론에 가장 큰 책임이 있다고 말한다. 또 광우병 괴담처럼 방사능 괴담을 만들어 윤석열 정부를 흔들려는 음모가 있다는 주장도 심심찮게 한다.

또다시 정권을 흔들려는 음모?

되돌아보면 당시 국민의 불안을 키운 건 이명박 정부였다. 세계보건기구(WHO)가 2000년 말 광우병이 전 세계로 확산할 우려를 경고했는데도 과학적 의혹 해소보다는 정부에 대한 막연한 믿음을 요구했다.

당시 한승수 국무총리는 용인시 소고기 검역 시행장을 방문해 미국산 냉동 소고기 냄새를 맡고는 '안심하고 정부를 믿어달라'고 말해 냄새로 광우병을 찾아내느냐는 조롱을 자처했다. 여당인 한나라당은 국회에서 '광우병은 정치 선동!'이란 현수막을 걸어 놓고 미국산 등심 스테이크 시식회를 열었다. 
 

한승수 총리가 6월 27일 오전 경기도 용인시의 미 쇠고기 검역시행장을 방문해 냉동 쇠고기의 냄새를 맡고 있다. ⓒ 국무총리실

 

미국산 쇠고기 시식하는 한나라당 의원들 김형오 국회의장 내정자와 한나라당 의원들이 2008년 7월 8일 의원회관내 의원식당에서 미국산 쇠고기 스테이크를 점심으로 먹고 있다. ⓒ 연합뉴스 김병만

 
한덕수 국무총리는 시료 채취조차 할 수 없는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오염수 시찰단에 대해 전문가들이니까 믿어달라고 했다. 국민의힘 '우리바다 지키기 검증 TF' 위원장인 성일종 의원은 제2의 광우병 사태를 만들지 말라며 야당의 공세를 괴담 퍼트리기로 규정했다. 과학의 영역을 정치로 오염시킨다고 야당을 나무라지만 정작 과학적 검증을 막고 국민들에게 미신 같은 정권의 믿음을 강요하는 건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이다.

냉동 소고기에 코를 대 냄새를 맡으며 정부를 믿어 달라던 한승수 국무총리와 세부 일정이나 명단조차 함구한 채 떠나는 시찰단을 믿으라는 한덕수 국무총리, 미국산 소고기 스테이크를 시식하며 한우보다 맛있다며 우려를 괴담으로 몰아갔던 한나라당과 원전 오염수의 위험성을 화장실 물의 불결함으로 희석해 가며 방류 반대 주장을 괴담이라고 낙인찍는 국민의힘. 닮아도 많이 닮았다.


국민의힘 우리바다 지키기 검증 TF팀은 말 한마디 한마디 일본을 편들고 국민 우려를 괴담처럼 취급하면서 우리바다를 지키고 검증하겠다는 이름을 달았다. 국민의힘이 지키려는 바다는 어디인가.

시찰단이란 용어도 그렇다. '두루 돌아다니며 실지의 사정을 살핌' 시찰의 사전적 의미다. '가설이나 사실, 이론 등을 검사하여 참인지 거짓인지 증명함'이란 뜻의 검증과는 분명히 거리가 있다.

시찰단 파견을 앞두고 일본은 일찌감치 '한국시찰단이 오염수의 안전성을 평가하거나 확인하지 않을 것'이라며 검증에 선을 그었다. 그런데도 협상 테이블에 앉은 우리 대표들은 일본에 이렇다 할 태도 변화나 검증 요구를 하지 않았다.

오히려 태도 변화를 보인 건 우리측이었다. 지난 5월 1일 외교부 질의에서 야당 의원들이 검증인가 아닌가 질의하자 외교부 1차관은 '실제 검증에 가까운 활동을 할 것'이라는 답변을 내놓았다. 다그침이 계속되자 '주권 국가가 하는 일을 다른 주권 국가가 들어가서 검증한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얼굴이 화끈거리는 굴욕적 모습이다. 우리 바다에 막대한 영향이 불가피한 원전 오염수 방류 안전성 검증 요구에 대해 일본에 대한 주권 침해 소지가 있다고 말하다니, 이런 관료들이 대한민국 국민에게 위임받은 주권을 지켜낼 수 있을지 회의가 든다.

윤석열 정부가 국민의 생명, 우리의 바다, 어민의 생계보다 일본의 이익을 우선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건 이것만이 아니다. 바다에 방류되는 물의 경우 오염수가 아닌 처리수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게 적절하다는 여당의 주장에 오염수라는 공식 용어를 처리수로 바꾸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화답하는 윤석열 정부. 그래서 국민은 일본의 원전 오염수 방류 계획보다 제대로 대응조차 못 하는 윤석열 정부에 더 화가 나는 것이다. 
  

도쿄전력 관계자들이 지난 2일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에서 외신 기자들에게 오염수 저장탱크를 설명하고 있다. 2023.2.6 ⓒ 연합뉴스

 
원전 오염수 검증이 일본 주권 침해라니

일본의 원전 오염수 방류는 올여름에 이뤄지리라는 것이 대체적인 관측이다. 오염수를 흘려보낼 해저 관로 공사도 마무리 단계고 방류 계획도 일본 정부가 승인한 상태다. 그러나 그건 일본의 시간표일 뿐 중국, 러시아 등 주변국의 반발은 여전히 크다. 당연하다. 방사능 위험의 자료는 오랫동안 축적되어 있지만 원전 오염수 방류가 안전하다는 과학적 근거는 여전히 부족하기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국제 원자력기구(IAEA)가 오염수 방류를 인정하지 않았냐고 반문한다. 그러나 IAEA가 검증하는 건 오염수 방출 계획과 그 이행 과정이 IAEA 국제기준에 부합하는지이지, 원전에서 배출되는 오염수와 관련된 모든 위험과 안전성을 판단하지 않는다. 또 IAEA에 일본이 분담금을 3번째로 많이 낸다는 정치적 관계를 배제하더라도 IAEA 판단이 최종적이고 완벽하다고 볼 수도 없다.

IAEA는 2021년 7월 일본의 요청에 따라 오염수 방류의 안전성을 검토하기 위한 국제 태스크포스(TF)를 구성했다. 지난 4월 5일 TF의 네 번째 보고서가 나왔는데 표지 뒷장에 이렇게 적혀 있다.
 
이 보고서에 포함된 정보의 정확성을 유지하기 위해 많은 주의를 기울였지만 IAEA와 그 회원국은 이 보고서의 사용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결과에 대해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습니다.
- <시사인> 4.26, 일본 오염수 방출, IAEA를 믿어도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

결국 일본 원전 오염수 방류가 우리 바다에 미칠 생태적 영향과 어민의 피해, 국민의 불안은 우리 정부가 검증하고 우리 국민이 판단해야 하는 일이다. 

벌써 일본 원전 오염수 방류 계획은 공포다. 어민들의 집단 반발이 이어지고 있고 불안감 때문에 수산시장 손님이 끊겼다는 소식도 들린다. 시찰단이 어떤 결과물을 들고 올지 모르겠지만 검증이 아닌 시찰인 데다가 일본에서 제공하는 자료와 보여주는 시설물만으로는 국민의 불안감을 해소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웨이드 앨리슨 영국 옥스퍼드대 명예교수가 1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민의힘 '우리바다 지키기 검증 태스크포스(TF)' 초청 간담회에 참석해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를 옹호하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40년 이상 방사선 분야를 연구하고 가르쳐온 앨리슨 교수는 “나는 지금 내 앞에 희석되지 않은 후쿠시마 물 1리터가 있다면 바로 마실 수 있다. 만약 그 물을 마셨다고 계산해 보면 자연적인 수준의 80% 수준밖에 방사선 수치가 오르지 않는다”고 말해 논란을 일으켰다. 왼쪽은 국민의힘 '우리바다 지키기 검증 태스크포스(TF)' 위원장인 성일종 의원. ⓒ 남소연

 
제대로 검증할 수 없다면 일본의 오염수 방류 계획을 보류하라거나 철회하라고 요구하는 게 맞다. 원전 오염수는 화장실 변기 물과는 다르다. 오염수 10리터도 마실 수 있다는 편향적인 전문가를 불러 국민을 안심시킨다? 얼토당토않은 일이다. 

2008년 미국 소고기 수입 발표에 국민들이 분노했던 건 굴욕적인 협상 태도와 국민 건강을 내팽개치는 정치의 안일함 때문이었다. 국민들은 광우병 괴담에 속아서 거리로 뛰쳐나올 만큼 우매하지 않았다. 우매하고 어리석었던 사람은 얕은수로 국민에게 안전과 믿음을 강요한 위정자들이었다.

생명과 생존을 두고 정권과 국민이 대척점에 서는 일은 정권에도 국민에게도 좋을 리 없다. 2008년 광우병 사태가 두렵다면 피할 방법을 찾아야 할 건 윤석열 정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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