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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첫 판결, '부재중 전화'도 불안·공포 느꼈다면 스토킹

"전화 통화 당시 아무 말 하지 않은 경우도 스토킹 여지"

등록 2023.05.29 09:00수정 2023.05.29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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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 ⓒ 연합뉴스


지속적으로 걸려 온 '부재중 전화'만으로도 불안감, 공포심을 느꼈다면 스토킹 범죄에 해당한다는 대법원판결이 처음 나왔다. 그동안 하급심에서는 상대방의 의사에 반해 지속적으로 걸어온 전화를 받지 않아서 '부재중 전화' 표시가 되도록 한 행위가 스토킹에 해당하는지를 두고 법원마다 유·무죄가 엇갈려 논란이 되었다. (관련 기사 : 한밤중 30회 전화 건 스토커...안 받았더니 황당한 일이https://omn.kr/242mq)

50대 남성 A씨는 평소 알고 지내던 여성 B씨와 금전 문제로 관계가 나빠졌다. A씨는 휴대전화로 B씨에게 협박성 문자와 B씨 가족의 집이 나오는 사진 등을 보냈다. B씨가 자신의 번호를 차단한 사실을 알게 된 A씨는 타인의 전화를 이용, B씨에게 수차례 협박 문자를 보냈고, 자정 무렵 6차례를 비롯하여 약 30차례 통화를 시도했다. B씨의 휴대전화엔 부재중 전화 표시가 남아 있었다.

스토킹 범죄 처벌법은 '스토킹 행위'에 대해 "상대방의 의사에 반하여 정당한 이유 없이 상대방에게 불안감 또는 공포심을 일으키는 것"으로 규정한다. 법이 예시로 든 스토킹 행위는 '접근하거나 따라다니거나 진로를 막아서는 행위' 등을 포함하여 5가지 유형이 있다. 이 중에서 '우편, 전화, 팩스, 정보통신망을 이용, 물건이나 글·말·부호·음향·그림·영상·화상 등을 도달하게 하는 행위'에 부재중 전화 표시가 해당하는지가 관건이 되었다.

1심(부산지법 동부지원)은 스토킹처벌법 위반 혐의 등을 모두 유죄로 인정, A씨에 대해 징역 4월형을 선고했다. 이에 A씨는 부당하다며 항소했다. 2심인 부산지법은 전반적으로 A씨의 범죄사실은 인정하면서도, 부재중 전화 부분에 대해서는 무죄로 판단했다.

2심은 "스토킹 행위가 인정되려면 전화 또는 정보통신망을 이용하여 글·말·부호·음향·그림·영상·화상 등이 도달하게 해야 한다"면서 "A씨가 B씨에게 전화를 걸었다는 것만으로 정보통신망을 통해 '음향'을 보냈다고 할 수 없고, 상대방의 전화에 부재중 전화가 표시되었더라도 이는 전화기 자체의 기능에서 나오는 표시에 불과하여 '글'이나 '부호'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전화 수신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스토킹 배제는 부당"

사건은 대법원으로 올라갔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2심이 무죄로 판단한 부분을 파기하고, 사건을 다시 2심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A씨가 전화를 걸어 B씨의 휴대전화에 벨소리가 울리게 하거나 부재중 전화 문구 등이 표시되도록 하여 상대방에게 불안감이나 공포심을 일으키는 행위는 실제 전화통화가 이루어졌는지 여부와 상관없이 스토킹행위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은 "A씨가 (전화를 걸어서) B씨와 전화통화를 원한다(또는 원하였다)는 내용의 정보가 벨소리, 발신번호 표시, 부재중 전화 문구 표시로 변형되어 B씨의 휴대전화에 나타났다면 음향, 글을 '도달'하게 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또한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여 정당한 이유 없이 반복적으로 전화를 거는 경우 불안감 또는 공포심은 일상생활에 지장을 줄 정도로 심각하고 피해자가 전화를 수신하지 않았더라도 마찬가지"라고 보았다. 따라서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여 반복적으로 전화를 시도하는 행위로부터 피해자를 신속하고 두텁게 보호할 필요성도 크다"고 대법원은 판시했다.

대법원은 "불안감 또는 공포심이 증폭된 피해자일수록 전화를 수신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면서 "피해자가 전화를 수신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스토킹행위에서 배제하는 것은 우연한 사정에 의하여 처벌 여부가 좌우되도록 하고 처벌 범위도 지나치게 축소시켜 부당하다"고 지적했다. 대법원은 A씨의 부재중 전화를 무죄를 판단한 2심 판결에 '법리오해'가 있다며 사건을 다시 재판하도록 2심(부산지법)으로 돌려보냈다(파기환송).

"피해자가 공포심 느꼈다면 스토킹 인정 가능"

대법원은 아울러, 스토킹 관련 사건에서 가해자가 피해자 의사에 반하여 전화 통화를 한 사실이 인정된다면 ① 통화 내용이 밝혀지지 않은 경우나 ② 아무런 말을 하지 않은 경우에도 스토킹 행위에 해당할 여지가 있다고 판시했다.

①의 경우 전화 통화 내용과 관계없이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 지위, 성향, 행위 전후의 여러 사정을 종합하여 전화 통화 행위가 피해자의 불안감 또는 공포심을 일으키는 것으로 평가되면" 스토킹 행위에 포함된다는 것이다.

②의 경우처럼 아무 말을 하지 않더라도 벨소리가 울리게 하거나 발신자 번호가 표시되도록 한 것까지 포함하여 불안감 또는 공포심을 야기했다면 스토킹 범죄가 성립할 수 있다고 대법원은 밝혔다. 
#스토킹 #대법원 #부재중 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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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으로 세상과 소통하려는 법원공무원(각종 강의, 출간, 기고) 책<생활법률상식사전> <판결 vs 판결> 등/ 강의(인권위, 도서관, 구청, 도청, 대학에서 생활법률 정보인권 강의) / 방송 (KBS 라디오 경제로통일로 고정출연 등) /2009년, 2011년 올해의 뉴스게릴라. jundorap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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