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작은 사업장에, 이주노동자가 일한다

[지역 노동안전 내비게이션] 20년째 이주노동자무료진료소 운영... 아프기 전 건강 보호 대책 필요

등록 2023.05.25 11:14수정 2023.05.25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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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측의 해고에 맞서 투쟁을 선택한 이주노동자가 있었다. 한국 나이로 57세였는데 부당한 해고에 맞서 그냥 나갈 수 없다며 노동조합에 가입했고 10건이 넘는 고소·고발을 당하 면서도 끝내 복직을 이뤘고 단체협약까지 체결했다.

바로 옆 공장은 그나마 규모가 있는 회사였는데, 사업주는 '우리 회사는 노조가 만들어질 수 없는 구조다. 왜냐하면 이주노동자, 정년이 넘은 고령노동자, 특례병, 현장실습생만 있는데 누가 노조를 만들 수 있겠냐'라는 태도를 보였다. 그래서인지 우리가 아무리 선전물을 배포하고 집회를 해도 그 사람에게는 별로 두려워하거나 피하는 기색이 없었다. 한국 사업주들에게 이주노동자란 노동조합 결성도 어려운 힘없는 존재들이고, 그만큼 이주노동자들의 노동 현실은 열악하기만 하다.

성서산업단지관리공단의 통계자료를 보면 2002년 1328개 사업장, 4만2천여 명이었던 노동자수는 2022년 3271개 사업장, 4만 9천여 명이 됐다. 노동자수가 15% 늘어난 것에 비해 사업장수는 145% 가까이 늘어났다. 사업장 규모가 점점 작아지고 있다는 것은 노동자들이 그만큼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일하고 있음을 짐작케 한다.

작은 공장이 늘어나고 그에 따라 작은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늘어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최저임금, 질 낮은 식사, 열악한 노동현장, 그리고 근로기준법을 비롯한 각종 노동법 사각지대를 떠오르게 한다. 사업장의 영세함은 노조 가입조차 어렵게 만들고 정당한 권리조차 요구하지 못하게 한다.

성서공단노동조합은 지난 20년 동안 작은 공장 노동자의 기본권리를 요구하며 싸워왔다. 노동조합에 가입하지 않았더라도 노동자로서 당연히 보장 받아야하는 기본적인 권리를 보편적인 것으로 만들고자 했다. 그러나 시시각각 닥쳐오는 정세에 대응하고, 법 위반에 맞서 투쟁해왔다. 사실, 아쉽게도 노동안전에 대한 기본적인 사업들은 늘 고민에 그쳐 왔다. <일터>의 글 제안으로 노조의 사업을 펼쳐놓고 바라보게 되는 계기가 되어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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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공단지회 김희정 지회장이 동료들과 함께 이주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선전전을 진행하고 있다. ⓒ 김희정

 
어려움 속에 실시한 이주노동자 건강권 사업

먼저 2003년 1월, 아파도 병원에 가지 못하는 미등록이주노동자의 건강권 문제를 고민하며 대구경북 인도주의의사실천협의회와 함께 매주 1회 이주노동자무료진료소를 운영해왔다. 이를 통해 노동자가 무엇을 생산하는지, 어떤 일을 하는지, 노동시간은 어떠한지, 지금 아픈 곳은 이러한 작업환경과 어떤 관련이 있는 것인지 등을 따져, 현장 대응으로 이어가는 활동을 전개하였다.

진료소 20년을 통계 냈더니 총 5167건의 진료가 있었다. 그중 가장 많은 질환은 근골격계, 호흡기, 순환기, 피부질환 순이었다. 대부분 반복 작업과 유해물질, 주·야간 노동으로 인한 것이 분명한 질환이다. 최근 이것을 어떻게 예방하고 발생한 질환을 어떻게 산업재해로 인정받을 것인가에 있어 지역의 뜻 있는 직업환경의학 전문의들과 함께 노동자 산재보호 프로그램을 추진하고 있다. 산재 가능성이 높은 노동자가 확인되면 노동조합과 직업환경의학 전문의가 속한 병·의원이 함께 산업재해 대응력을 높이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기로 한 것이다.


두 번째로 대구지역 공공병원인 '대구의료원'과 MOU를 체결하여 한국으로 일을 하러 왔거나 현재 일을 하고 있는 미등록이주노동자의 진료지원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 역시 약 20년 가까이 진행해 온 사업이다. 한편, 고용허가제를 통해 16개국의 이주노동자들이 들어오고 있는데 아쉽게도 진료통역시스템이 아직 갖춰져 있지 않는 것은 보완이 필요한 문제다. 오랜 기간 이에 대한 해결을 요구하고 있으나 오히려 해당 예산이 삭감되고 있다.

노동자들이 일을 하면서 생긴 것이든 일을 하기 위해 준비하며 생긴 질환이나 질병이든, 그것이 눈에 보이는 것이든 보이지 않는 것이든 이에 대한 치료는 국가가 당연히 부담해야 할 공공의료 영역이다. 더불어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의 건강보험 가입과 이에 따른 건강보험 적용이야 말로 아픈 뒤 치료가 아닌 아프기 전에 건강을 보호할 수 있는 실질적인 대책이 될 것이기 때문에 도입이 절실하다.

마지막으로 매주 평일 저녁 열리는 무료진료소나 대구의료원조차 이용할 수 없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을 위해 지난해 '이주민건강권실현을 위한 동행'이라는 의료공제회를 설립했다. 현재 300여명의 회원이 가입한 상태다. 여기에는 지역의 뜻있는 의료인들과 이주 단체, 노동조합이 함께 하고 있는데, 누구에게나 평등한 건강권 실현이라는 고민과 토론에서 출발한 사업이라 더욱 의미가 있다. 설립을 준비하며 실시한 실태조사에서, 64%의 이주노동자가 일하는 현장에서 위험을 감지하고 있었지만 59%의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은 다쳤을 때 산재 신청이 가능하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한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그 오랜 기간 선전전을 하고 노동자들을 만나왔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많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이주노동자에게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다

2021년 기준 현장에서 사고로 숨진 노동자는 828명, 이 가운데 12%가 이주노동자다. 이주노동자들이 받는 안전보건교육이라고는 입국할 때 4시간가량 받는 산업안전보건교육이 전부이고, 입국 후에도 제대로 된 교육도 없다. 사업장 평균 15명의 노동자가 일하는 성서공단의 노동자들에게 꼭 필요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유예기간 때문에 아직도 적용되지 않고 있다.

올해 노조 핵심 사업 중 하나로 '성서공단 작업복 세탁소'를 계획하고 있다. 유해물질을 안고 집으로 가는 노동자들이 없게 할 생각이다. 또 누구에게나 보편적이고 기본적인 권리가 있고, 이를 요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리려고 한다. 그냥 주어질 때보다 나서서 싸워 쟁취했을 때 인정받고 존중받을 수 있다는 것도 경험할 수 있어야 한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를 계기로 작은 공장 노동자들의 건강권을 고민하고 실천하는 제단체들의 연대체가 다시 활성화 되도록 해 나가는 것이다.

어느 일요일이었는데 손가락이 잘린 이주노동자가, 그것도 3명이 같이 상담을 하러 온 적이 있었다. 누구는 한마디, 또 누구는 네 손가락이 잘린 채였다. 흩어져 있어 제대로 대응할 수 없고, 노동조합이라는 울타리조차 없는 노동자들에게 가해지는 폭력을 떠올린다. 너무 많이 봐서 무뎌진 마음을 다시 다잡는다. 더 긴장하고 더 절박해지자고.
덧붙이는 글 이 글을 쓴 김희정 님은 금속노조 성서공단지회 지회장이자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후원회원입니다. 이 글은 한노보연 월간지 일터 5월호에도 실립니다.
#이주노동자_위험노동 #소규모사업장_위험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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