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하나 수리한 구옥에서 와인 한 잔, 동인천을 추억하는 법

김도희 로컬렉트 대표 "로컬의 힘은 시간의 축적에 있다"

등록 2023.05.25 15:02수정 2023.05.25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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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희 대표 ⓒ 정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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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컬의 특별함은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에서 나온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가늠할 수 없는 아주 긴 시간 동안 축적한 일상 문화가 로컬의 가치를 만드는 거죠. '로컬렉트'는 익숙해서 잊고 있는, 또는 낯설지만 경험해 보고 싶은 로컬의 일상 문화 가치를 전달하는 공간이에요."


'로컬을 컬렉트해서 큐레이션하다'라는 의미의 '로컬렉트'는 인천 동인천 자유공원에 위치한 카페 겸 그로서리 바틀샵이다.

지난 3월에 오픈한 이 곳은 감각적인 설계와 감도 높은 로컬 큐레이션으로 주목받고 있다. 일상의 가치와 여행의 감정을 연결하는 김도희(36) 대표와 그의 남편의 돋보이는 기획력 덕분이다.

"남편과 저는 '머무는 여행'을 선호해요. 한곳에 머물며 현지 사람들과 만나고, 여행지의 매력을 충분히 경험하다 보니, 그 지역의 일상이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로컬이라는 게 그곳에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늘 같은 일상이지만, 타지 사람이 보기엔 특별해 보일 때가 있잖아요. 이 관점을 토대로 '로컬렉트'라는 콘셉트를 만들고 오랜 시간 준비해 왔어요."

두 사람은 50년 이상 된 구옥을 한 땀 한 땀 수리해, 지금의 로컬렉트 공간을 완성했다. 건축설계사무소를 운영하는 김도희 대표의 주도 아래, 공간 너머의 동인천을 경험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기존에 출입문이었던 자리는 도로부터 테라스까지 관통하는 큰 창으로 변경했다. 산책길에 마주한 로컬렉트를 통해 동인천 도시 전경을 볼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보름달을 선명하게 볼 수 있도록 옥상으로 가는 계단도 새로 만들었다. 이와 함께 두 사람이 큐레이션 한 와인, 스낵, 도서 등 다양한 카테고리의 로컬 상품을 채워 넣었다.


동인천의 시간은 여전히 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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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 쪽에 위치한 큰 창의 모습과, 로컬렉트에서 볼 수 있는 동인천 도시 전경 모습. ⓒ 정시원


공들여 준비한 로컬렉트를 동인천에서 시작하게 된 건, 김도희 대표에게 편안함을 주는 동네여서다. 동인천에서 자란 그에게 자유공원은 추억이 가득한 장소다. 무엇보다 로컬렉트가 위치한 공간은, 조각가인 그의 아버지가 작업실로 사용하던 곳이었다.

"제 아버지도 직접 벽돌을 쌓고, 손을 보면서 이 공간을 사용하셨어요. 그래서 특별하기도 했지만, 오래된 건물이 여러 세대에 걸쳐 재사용되는 게 동인천의 매력이라 느껴지더라고요. 워낙 변화와 역사를 거듭한 지역이라, 연령대마다 기억하는 '예전의 동인천'이 다르잖아요. 그러면서 오래된 건물과 인프라를 통해 공통적으로 공유하는 기억들도 있고요.

제 과거 기억 속에 동인천은 번화가였어요. 지금은 그때와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지만, 구옥을 재사용한 공간을 통해 동인천만의 문화가 계속 쌓이고 있다는 점이 좋더라고요."
 

실제 로컬렉트도 공간의 이전 모습을 추억하며 방문하는 동네 어르신이 많다. 어르신들은 발코니에서 동인천 도시 전경을 한참 바라보다가, 큐레이션 상품을 구경하기도 한다. 익숙한 공간에서 새로운 문화를 자연스럽게 접하는 것이다. 동인천의 또 다른 일상 문화가 로컬렉트를 통해 형성되고 있다.

시간의 축적, 로컬의 힘

이처럼 김도희 대표는 로컬의 가치가 '시간의 축적'에서 나온다고 전했다. 벼락같은 아이디어와 자본만으로, 로컬의 의미를 담기 어렵다는 뜻이다.

로컬렉트가 오픈과 동시에 선정한 큐레이션 도시만 봐도 로컬에 대한 그의 가치관을 엿볼 수 있다. 대항해의 시대는 끝났지만, 그 영광의 흔적을 경험할 수 있는 '리스본'. 고대와 중세의 번영과 근현대의 시련이 혼잡된 문화의 '시칠리아'. 와인의 발생지로서 유구한 역사와 전장으로 인한 복합적 문화를 가지고 있는 '트빌리시'. 세 도시 모두 과거의 영광을 전달하는 매개체가 남아 있으면서, 여전히 작동하는 올드타운이 있다.

세 도시는 김도희 대표가 가장 좋았던 여행지로 꼽는 곳이다. 그는 동인천과 닮은 점이 있고, 동인천만큼 자신이 잘 아는 도시를 첫 큐레이션 도시로 선정했다. 그리고 세 도시와 관련된 와인과 스낵, 도서 등에 '로컬을 소유(컬렉트)하고 싶은 마음'을 담았다.

"보통 여행지에 가면, 떠나기 아쉬운 마음에 기념품을 구매하잖아요. 기억하고 추억하기 위해서요. 하지만 나중에 어디다 뒀는지 모르게 방치되곤 하죠. (웃음) 로컬렉트는 그 마음을 대변하면서도, 여행에서의 기억을 읽고, 먹고, 마시는 일상적인 행위로 가져오고 싶었어요. 잊히거나 방치되는 것이 아닌, 개개인의 일상을 더 풍부하게 만드는 로컬 큐레이션을 만들어 가는 게 목표거든요."

로컬렉트에서 판매하는 커피와 디저트, 와인과 스낵, 치즈와 책등 다양한 메뉴와 상품 중 시그니처는 따로 없다. 손님이 각자 취향에 맞게 고른 메뉴와 상품이, 자신만의 시그니처가 된다.

"오픈하고 며칠 안 됐을 때, 연로하신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함께 오셔서 포르투갈 와인 추천을 부탁하셨어요. 그날 추천해 드린 와인 한 병을 구매해 가셨죠. 또, 어떤 날은 추천해 드린 와인을 마시며 동인천 풍경을 한참 즐기다 간 손님도 계셨고요. 그 모습을 보면서 이 동네에, 여행의 낭만을 일상에 들일 줄 아는 멋있는 분들이 많다는 생각이 들어 기뻤어요."

김도희 대표 부부는 앞으로도 로컬렉트의 방문자들이, 각자만의 방법으로 로컬을 즐겨주길 바란다.

"국내외 어디든, 다른 지역이라고 해서 그들의 문화가 어렵거나 먼발치에서만 바라보는 존재가 아니에요. 누군가에게는 일상이잖아요. 저는 로컬렉트에 오시는 분들이, 누군가의 일상을 통해 본인만의 로컬을 가슴속에 품고 가셨으면 좋겠어요. 그러다 보면, 내가 항상 살아와서 잊고 있었던 나의 로컬에 대해 다시 떠올릴 수 있을 거예요."

김도희 대표 역시 성인이 된 후, 서울로 독립해 사는 동안 동인천의 매력과 가치에 대해 다시 떠올리게 됐다. 이에 대해 특히 그가 재밌게 생각하는 건, 자신처럼 타지로 떠났다가 동인천에 돌아온 이들이 많았다는 점이다.

한 발짝 떨어져 바라보면, 보이는 것들이 있다. 지금 내가 머무는 로컬의 일상이 답답하게 느껴진다면, 로컬렉트를 통해 다른 일상을 경험해 보자. 그러면 잊고 있던 혹은 내가 놓치고 있었던 일상 문화의 가치를 되찾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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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컬 큐레이션 상품을 살피는 김도희 대표의 모습. 그는 로컬렉트 방문자들이 큐레이션 도시를 자연스럽게 알아갈 수 있도록, 소개 글을 붙여 놓았다. 그의 친절함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 정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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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렉트 유어 로컬’은 로컬렉트의 슬로건이다. 오른쪽은 로컬렉트의 PB상품으로, 가벼운 마음으로 구매할 수 있는 기념품 개념의 연필이다. ⓒ 정시원

 
■ 로컬렉트
○ 인스타그램 : https://www.instagram.com/locallect.kr
○ 위 치 : 인천 중구 송학로 46 로컬렉트

글·사진 정시원 i-View 객원기자, tomatohee87@naver.com
 
#로컬렉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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