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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 가고 싶다"는 어르신 말, 진심 아닙니다

사회복지사로 매일 만나는 어르신들의 속마음

등록 2023.05.26 11:13수정 2023.05.26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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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부터 사회복지 관련 분야에 관심이 많았고, 아버지가 치매로 고생하시다 돌아가시고 난 뒤에는 더욱 결심이 서서 현재 사회복지사로 재가센터에 근무하고 있다.


요양보호사가 근무하는 어르신 댁에 한 달에 한두 번 방문을 하여 계획서에 따라 급여 제공을 잘 하고 있는지, 어르신의 건강 상태가 호전되었는지 악화되었는지 확인하고 조치 사항을 알려는 일을 하고 있다.

정해진 절차에 의해 의료보험공단에 가족이나 센터에서 등급 신청을 하고, 지정병원에서 의사 소견서까지 접수하면 일정 기간이 지나 장기요양보험 인정을 받아 등급 판정을 받는다.

등급이 나오면 센터를 통해 요양보호사가 어르신 댁으로 방문하여 가사 일상생활이나 신체활동, 정서활동을 도와드리는데 등급이 나와도 어르신들이 멈칫하는 일이 생긴다.

누가 집에 오는 게 싫어서라고 말씀을 하시지만, 그 안을 깊숙이 들여다보면, 소득도 없고 몸도 불편하시기 때문에 노인장기요양보험에서 85% 이상 지원을 받아도 본인부담금 6%~15%을 내는 것이 부담일 수밖에 없다.

자녀가 알아서 해주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어르신들은 그 금액조차도 부담스러울 때가 많기 때문이다. 정말 안타까운 현실이다.


"내 몸이 힘드니까 집사람에게 화를 내게 돼, 아내도 힘든 걸 아는데, 환자라는
걸 알면서도 자주 잊게 되고 집사람만큼 편안한 사람도 없어. 애들은 내가 먹이고 키웠어도 어려워, 그만 가고 싶어..."


지난주에 만난 어르신이 하신 말씀이다. 아내분은 일상생활이 잘 되지 않아 등급을 받으시고 본인은 암으로 투병하고 계신 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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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양보호사가 가고 난 뒤에 홀로 계셔야만 되는 어르신들은 정서적 외로움 그리고 쓸쓸함과 마주한다. ⓒ elements.envato

 
만나는 어르신마다 대부분 공통적으로 나오는 말은 "그만 가고 싶어! 그만두고 싶어..."였다. 진실이면서도 진실이 아닌 말, 고통스럽고 힘든 나날들 속에 우울감과 미안함으로 인해 나온 말이다.

스스로도 어떻게 할 수 없는 현실과 마주하며, 포기하면서도 포기할 수 없고, 서운하면서도 미안한 마음, 그 속에서 능동이 아닌 수동적으로 삶의 줄을 잡고 겨우겨우 버텨내면서 내뱉은 말이다.

그나마 요양보호사가 근무하는 3~4시간 정도는 가사 및 일상생활이나 불편하신 부분에 도움을 드린다. 그리고 같이 대화를 나누며 정서 활동을 하고 그림 그리기나 퍼즐 맞추기 등 여러 가지 활동을 한다.

그러면 미소도 지으시고 편안해 하지만, 요양보호사가 가고 난 뒤에 홀로 계셔야만 되는 어르신들은 정서적 외로움 그리고 쓸쓸함과 마주한다. 형편이 괜찮으신 어르신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 경제적으로 힘들고 육체적으로도 아프고 힘들어 일을 할 수 없는, 전적으로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되는 경우에는 더욱더 그러하다.

실내에서도 휠체어에 의지해 혼자 계셔야 되는 어르신도, 본인도 제대로 걷지도 못하면서도 치매를 앓고 계시는 배우자를 돌봐야 하는 어르신도, 오랜 시간 누워 있는 아내를 돌보다 아내보다 어르신이 먼저 돌아가시는 경우 등 모든 상황에서도 어르신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공통적인 말이 있다.

"자녀분들은 자주 오나요? 힘들지 않으세요?"
"애들은 너무 바빠, 회사에 다니는데 일이 많아..."
"지들 살기도 힘든데 어떻게 오라고 해, 보태준 것도 없는데 잘 살아주면 고마운 거지."
"내가 더 아플까 봐 걱정이야, 지금도 애들한테 짐이 되는 거 같아 미안한데..."


아무리 힘들어도 자식 탓을 하지 않고 불효 자식도 감싼다. 필자도 자녀지만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시골에 계신 엄마께 잘 내려가지 못한다. 올라오셔서 같이 살자고 말씀드려도 본인이 싫어하신다.

자식에게 불편을 준다는 생각과 60년 이상 살았던 곳을 떠난다는 것은 엄마께는 또 하나의 두려움이고 불편함일 것이다. 그러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엄마 혼자 사시는 상황이 되었다. 아마 다른 가정의 상황도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어르신과 상담을 하고 나올 때면 마음이 무거울 때가 많다. 지난달 만나고 온 어르신이 돌아가셨다는 말을 들을 때는 가슴이 답답하고 무거워 며칠 동안 멍 때리는 시간도 길었다. 그래도 감사한 것은 한 달에 한두 번 방문하는 데도 어르신들은 사회복지사를 기다리신다.

방문할 때마다 같은 이야기를 외울 정도로 반복하시지만, 새로운 이야기인 듯 재미있게 들어주다 보면 어르신은 아이처럼 기분이 좋아지시고 눈에는 생기가 돈다.

"그만 가고 싶어..."라는 짧은 말에는 너무나도 많은 말들이 숨어 있다. 어쩌다 한번 부모님 댁을 방문하더라도 짧은 말속에 숨어 있는 마음을 제대로 파악하고 풀어드렸으면 한다. 그래서 한 마디라도 더 마음을 이야기할 수 있어 삶의 소소한 즐거움과 기쁨을 드렸으면 좋겠다.

그것이 쉬우면서도 자식이 할 수 있는 가장 진심어린 효도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오늘도 사회복지사란 이름으로 어르신의 또 다른 자녀가 되어 함께 웃어본다.
#재가센터 #어르신 #요양 #사회복지사 #요양보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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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거주, 시와 수필 등단(2017) 인터넷 수원 뉴스 시민기자로 3년 활동하면서 수필,에세이 등을 기고했고, 현재 한국문인협회수원지부,서정문학, 작가들의 숨 회원으로 시집<마음시선> <그땐 몰랐다> 출간, 문인협회, 서정문학,작가들의 숨 동인지 및 계간지 꾸준히 참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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