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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장드라마 소재? 나쁜 제도?... 입양 편견 균열 낸 그녀

1세대 공개입양인으로 성장한 정수아씨... 입양은 가정을 이루는 하나의 방법일 뿐

등록 2023.05.31 19:21수정 2023.05.31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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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에 '공개입양'이란 단어가 처음 언급된 해는 1999년이었다. 그 주인공은 미국 해외입양인 스티브 모리슨(남, 64)이었다. 그전까지 한국의 입양문화는 음지에 숨어 있었다. 입양은 입밖으로 꺼내선 안될 금기어였다. 

입양은 감추고 숨겨져야 했다. 결코 드러내선 안될 비밀이었다. 당사자에게는 물론이었다. 비밀입양 문화는 당시에는 너무나 당연한 입양의 속성이었다. 공개입양이란 단어조차 존재하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이로 인한 가장 큰 피해자는 입양인 당사자였다. 

출생의 비밀이 탄로나지 않은 채 평생을 지켜질 수 있는가도 문제였지만 그 비밀을 지키기 위해 노심초사하며 살아야 했던, 가족이나 친척들의 당사자를 사이에 둔 은밀한 시간들도 사실은 불편하고 부당한 것이었다. 

강원도 묵호에서 태어나 생부의 폭력으로 가정이 해체돼 시설에 들어갔다가 열네 살에 미국으로 입양된 스티브 모리슨. 그는 어떤 이유든 부모없이 자라야 할 처지의 아이에게 가장 최상의 선택인 입양이 모국 한국에선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고 음지에 숨어지내는 처지가 안타까웠다. 더 안타까운 사실은 비밀입양 문화가 입양이 필요한 아이들의 입양을 가로막고 있는 사회 현실이었다. 

우주공학자로 살면서 한국을 방문한 그는 1999년 입양기관을 통해 입양가족을 만나게 됐고, 그들에게 공개입양을 소개했다. 이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입양부모들이 2000년 1월 '한국입양홍보회'라는 단체를 만들어 공개입양운동을 시작했다. 

그해 텔레비전 방송에 처음으로 입양가정의 일상이 소개되면서 한국 사회에 신선한 파장을 일으켰다. 비밀입양 일색이었던 입양문화에 공개입양이 자리를 차지하면서 숨어있던 입양가족들이 한국입양홍보회를 중심으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공개입양 문화의 본격적인 시작이었다. 

그로부터 24년이 지났다. 이제 굳이 묻지 않아도 공개입양이 당연시 됐고, 비밀입양이란 단어는 과거 유물이 돼가고 있다. 그렇지만 워낙 뿌리 깊은 혈연중심의 가족문화가 굳건한 현실에서 입양은 여전히 사회적 편견을 채 걷어내지 못한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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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개입양인 정수아씨 ⓒ 김지영

 
올해 나이 21세. 이른바 공개입양 1세대로 자란 정수아씨를 지난 11일 경기도 광주 초월읍의 양지바른 카페에서 만났다. 한국입양홍보회 회원, 입양가족 자조모임인 홀트한사랑회 회원으로 수아씨를 입양한 직후부터 활동을 멈추지 않은 부모님 밑에서 자란 덕에 수아씨는 공개입양의 수혜를 톡톡히 받았다.


그녀의 지나온 삶이 우리나라 공개입양가족의 전형이었다. 입양을 모르는 사람들은 굳이 입양 사실을 공개할 필요가 있냐는 질문을 한다. 기왕에 할거면 사춘기가 지나고 말이 좀 통하는 시점에 하라는 조언도 한다. 편견 어린 생각 속에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질문과 조언이다. 

공개입양을 해야 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가 사실은 이런 질문과 조언 때문이다. 공개입양으로 성장한 정수아씨의 삶 안에 해답이 들어 있었다. 나는 질문했고 그녀가 대답했다. 

"저는 2003년생 21살이에요. 강남대학교에 다니고 있어요. 아빠 엄마는 회사원으로 맞벌이고요. 제 밑에 3살 터울로 쌍둥이 여동생이 있어요. 제가 입양된 건 생 후 9일 때였다고 해요. 춘천에서 태어나서 바로 입양된 것 같아요. 출생정보에 대해서는 제가 아는 게 없어요. 아마 태어나자마자 바로 시설로 보내진 것 같아요. 그리고 며칠 뒤에 엄마아빠가 저를 입양한 거죠."

"자연스럽게 입양 사실이 스며들었어요"

- 부모님은 왜 입양하셨나요?

"결혼하고 8년 동안 아이가 안 생겼다고 해요. 하지만 아빠가 청년 시절에 우연히 입양가족을 만났는데 그때 무척 큰 감동을 받았다고 해요. 그래서 나중에 결혼하면 아이를 하나 낳고 그다음에 입양을 하겠다고 마음을 먹었다는데, 아이가 안 생기니까 엄마하고 상의해서 그럼 순서를 바꿔서 입양부터 한거라고 해요. 저 입양하고 3년 뒤에 쌍둥이로 딸 둘을 낳으셨어요." 

- 본인이 입양 사실을 안 건 언제부터였어요? 

"아주 어렸을 때부터 계속 들은 사실이라 딱 언제라는 기억은 없어요."

- 그 얘기를 들었을 때 어떤 감정이 들었는지 기억나는 게 있나요?

"특별히 기억나는 건 없어요. 그냥 상당히 좀 자연스럽게 (입양이) 스며들었다라는 말이 맞는 것 같아요."

- 동생들하고 사이는 어때요? 

"좋아요. 크게 싸운 적도 없어요. 나이 차이도 약간 있고 몸집이 작은 동생들하고 체격 차이도 있어서 힘으로도 어림없지요(하하). 어릴 때부터 사이가 좋았어요."

- 입양이 무엇인지를 스스로 깨달았을 때가 언제였어요?

"초등학교 1학년때요. 가족들과 함께 입양의날 행사(2007년 기념일 지정되고 2008년 첫 기념식이 열림)에 갔는데 정말 많은 입양가족들이 왔어요. 거기에 입양친구들이 엄청 많은 걸 보고 입양을 다시 생각한 것 같아요. '나만 입양된게 아니구나' 정도요. 

입양의 날 행사를 빠짐없이 참석했어요. 그런 날은 학교를 빠지게 되니까 다음 날 친구들이 물어봐요. 왜 안 왔냐고. 입양의날 행사 때문이라고 하면 아이들이 다시 물어보죠. 입양이 뭐냐고. 일찍부터 엄마아빠한테 들은 말이 있어서 엄마아빠가 낳지 않았어도 가족이 되는 한 방법이라고 얘기해줬어요."

입양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 그러면 친구들이 뭐라고 해요? 

"9살 때였던 것 같은데요. 그때는 드라마에서 입양을 되게 안 좋게 말하던 때였어요. 결정적인 순간에 출생의 비밀이 등장하고 그것 때문에 말도 안되는 일들이 벌어지는 막장드라마가 유행하던 때였던 것 같아요. 한 친구가 '그거 버려진 애 데리고 와서 키우는 거잖아.' 그러는 거에요."

- 그래서 어떻게 했어요?

"입양은 그런게 아니라고 나를 낳아준 분이 형편이 안 돼서 그런 결정을 한 거고, 입양을 통해 나는 지금 엄마아빠와 가족이 된거라고 설명해줬어요. 어렸을 때라 친구는 그렇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 친구 앞에서는 당당했는데 돌아서서는 울면서 집으로 갔어요. 어린 마음에 그게 상처였던 거죠. 집에 와서 엄마아빠한테 다 이야기했죠. '우리 수아가 말을 잘해줬네' 그러면서 저를 달래줬지만 엄마아빠도 많이 속상했을거에요.

그리고 4, 5학년 때인 것 같은데 가족의 형태를 알아보는 수업이 있었어요. 거기에 입양이 나와요. 그때 제가 입양가족이라고 얘기 했던 기억이 있어요. 선생님은 학부모 상담을 통해 제 입양을 알았었는데 친구들은 몰랐어요. 하지만 그땐 정규 수업시간에 가정의 한 형태 중에 입양을 배운 뒤라 아이들이 잘 이해했던 것 같아요. 지금 생각해보면 교육이 그래서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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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 무렵 ⓒ 정수아 제공

 
- 부모님이 학기 초가 되면 선생님한테 입양가정이라고 말했나봐요?

"선생님들도 입양에 대해서는 잘 이해하지 못하는 분들이 있으니까요. 혹시 수업시간이나 학교 생활하는 중에 제가 상처 받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있으신 거죠. 저한테 선생님한테 말해도 되는지 물어보시고 괜찮다고 하면 미리 말씀을 해주셨어요. 그것도 제가 좀 자란 후에는 저한테 맡기졌지만요."

- 부모님이 수아씨 어릴 때부터 입양모임을 활발하게 하셨잖아요. 그때부터 만나는 입양친구들 있어요? 그 친구들과 다른 친구들과 느낌이 어때요?

"서너 명 있어요. 다른 친구들하고 느낌이 다르죠. 입양친구들은 가족 이야기를 할 때 설명하지 않아도 되고 다 알고 있으니까 아무래도 훨씬 마음도 편하고 그래요."

- 입양이라는 사실이 친구관계에서 부담이 되긴 했네요?

"어렸을 때는 그랬던 것 같아요. 하지만 살면서 계속 그걸 생각하진 않아요.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사라지는 게 느껴져요. 저에 대한 자존감도 생기고 학교 다니고 일상을 사는 것도 바빠지고요."

- 입양된 본인하고 엄마가 낳은 동생들하고 부모님이 차별을 두진 않겠지만 혹시 본인 마음이나 느낌으로 뭔가 다르다는 생각이 들거나 하진 않나요? 

"아니요. 전혀요. 그냥 저는 동생들 언니고, 엄마아빠 딸이고, 그런 생각밖에 없어요. 저는 어릴 때부터 엄마아빠한테 입양에 대해 똑바로 배웠고 입양 관련 행사나 캠프 등을 빠지지 않고 다녔어요. 입양이 저한테는 너무 자연스러운게 됐기 때문에 어떤 다른 느낌이나 그런 건 잘 모르겠어요."

아무 생각 없이 나온 질문

- 낳아 준 분에 대한 궁금증은 없었나요?

"5학년 때인가 엄마하고 둘이 누워서 드라마를 보다가 갑자기 '내 엄마는 어디 있어?'라는 질문을 했어요. 느닷없이 그런 말을 하니까 엄마 표정이, 완전 멘탈이 무너지는 느낌을 받았어요. '내가 네 엄마인데' 하는 느낌이요. 엄마가 너무 놀라서 아빠한테 말하고 울면서 다시 아빠한테 낳아 준 엄마 보고 싶다고 했어요. 아빠가 다음 날 홀트 사무실에 문의했더니 거기 선생님이 제가 너무 어리니까 좀 더 커서 그 때 찾아도 늦지 않을 거라고 말했다고 아빠가 전해주면서 넘어갔어요."

- 왜 갑자기 그런 질문을 했어요?

"그냥 아무 생각 없었어요. 호기심에 물어본 거였어요. 저도 모르게 어떤 마음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한데 그때 이후로는 그런 마음이 한 번도 들지 않았어요. 지금도 딱히 보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진짜로요. 아무 느낌이 없어요."

- 입양 친구들은 어때요?

"친구 중에 한 명이 (낳아준 부모를) 만났다고 했어요. 한 번 만나고 그 뒤로는 안 만난 걸로 알아요. 한 번으로 끝이었던 거죠. 자세히 물어보지도 않았어요. 그 친구도 더 이상 말하지 않았고요." 

- 입양 친구 중에 입양 때문에 어려움 겪은 친구 없었어요?

"초등학교 고학년 때 입양사실을 처음 알게 된 친구가 있었어요. 그 사실을 부모님한테 직접 들은 게 아니라 우연히 다른 사람에게 들어서 너무 큰 충격을 받았다고 했어요. 부모님이 그제야 입양가족 모임에 나오기 시작하고 캠프에도 보내고 그랬던 것 같아요. 그때 그 친구를 만난 거죠. 

한동안 정말 힘들어 했어요. 엄마아빠가 미웠다고 했어요. 좀 더 빨리 직접 말해줬으면 그렇게 많이 힘들지 않았을 거라고 그랬어요. 입양모임에 꾸준히 나오면서 조금씩 좋아졌어요."

- 아동권리보장원에 입양강사 일을 한다고 들었어요. 언제부터 강사를 하셨나요?

"고등학교 1학년 때 홀트에서 예비입양부모들에게 입양인 당사자 얘기를 해달라고 해서 시작했어요. 내성적인 성격이라 망설였는데 돈을 준다길래 했어요(웃음). 물론 제 말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도 있었어요. 부모님도 권했고요."

- 어떤 이야기를 해주셨어요?

"가족소개하고 어릴 때부터 자라면서 경험했던 입양 이야기를 했어요. 또 아무래도 사춘기를 궁금해 하시니까 그것 때문에 고민하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그런데 그게 사춘기니까 힘든거지 입양 때문에 힘든건 아니거든요. 입양이 변명거리는 돼도 실제 그것 때문에 힘든 건 없다고 솔직히 이야기했죠."

"입양사실은 최대한 빠르게 말해주는 것이 좋아요"

- 사춘기를 잘 넘겼나봐요?

"아니요. 저도 힘들었어요. 엄마랑 핸드폰 사용 문제로 싸우고, 화장 한다고 싸우고, 공부 안 한다고 싸우고 뭐 다른 아이들하고 똑 같은 문제로 힘든 거죠. 입양 때문에 힘든 건 정말 하나도 없었고요. 

한 번은 엄청 화가 나서 가출하겠다고 마음 먹고 집에 밤늦게까지 안 들어갔는데 갈 데가 없는거예요. 도서관 가서 책 읽다가 밤 10시가 되니까 무서워져서 집에 들어갔어요. 부모님은 아무 생각없이 저를 찾지도 않았대요. 아무튼 그 뒤로는 무서워서 가출 생각은 한 번도 안했어요."

- 강의를 하면서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은 무엇인가요?

"가족 안에서 낳은 동생들과 차별 받지 않는지를 가장 궁금해하세요. 입양 사실을 언제 말해주는 게 좋은지도 많이 물어보세요. 저는 최대한 빨리 해주는 게 좋다고 말해요. 저처럼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스며드는게 중요한 것 같아요. 입양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입양을 특별하지 않게 생각하게 되거든요."

- 수아씨한테 엄마아빠는 어떤 사람일까요?

"엄마와는 서로 무척 의지를 많이 하는 사이에요. 엄마도 장녀고 저도 장녀잖아요. 엄마가 저한테 고민 얘기하고 저도 힘들면 쪼르르 엄마한테 달려가서 바로 얘기해요. 그냥 친구 같아요. 아빠는 나무 같은 사람이에요. 그냥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마음이 든든해지는 그런 사람요."

- 결혼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저는 무조건 할 거예요. 엄마아빠를 보면서 컸고 부모님 사이가 무척 좋으시고 결혼하면 행복할 거라는 확신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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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했던 어린시절 ⓒ 정수아 제공

 
- 아이도 낳을 거예요?

"아이를 낳는 건 모르겠는데 입양은 무조건 한 명은 하고 싶어요. 제가 경험한 입양은 한 아이의 인생을 완전 바꿔주는 거라고 저는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제가 받은 것처럼 진짜 안정적인 사랑을 받게 해주고 싶어요."

- 입양을 망설이는 부모님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까요?

"입양을 조금이라도 고민하셨다면 그 마음만도 소중하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한 아이를 사랑 할 수 있는 마음과 그 아이를 양육하고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다른 고민 할 것 없이 입양하셨으면 좋겠어요. 입양을 하면 저절로 가족이 되기 때문에 입양 후를 두려워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사회가 입양을 소비하는 방식, 이젠 바뀌어야

24년 전 시작된 공개입양운동이 입양계 안에서 보편적 문화로 자리잡은 건 사실이다. 이젠 법적으로도 비밀입양은 가능하지 않다. 가족관계증명서에는 '친양자'라는 단어가 선명해서 더 이상 당사자에게만큼은 입양사실을 숨길 수 없다. 

하지만 입양가정 밖은 여전히 만만치 않다. 막장드라마의 단골 소재는 아직도 출생의 비밀이고, 입양이 여성으로부터 아이를 빼앗는 나쁜 제도라는 말을 정의롭게 하는 부류도 있다. 어릴 때부터 괜히 입양사실을 공개해서 아이에게 상처를 주느냐는 매서운 충고를 비입양부모로부터 들어야 하고, 검은머리 짐승은 거두는 게 아니라는 댓글도 잊을만 하면 달린다. 

아직 우리 사회가 입양을 소비하는 방식은 동정과 상실이 콜라보된 비극적 서사와 눈물어린 신파다. 

공개입양의 시작부터 지금까지의 역사를 살아 온 정수아씨의 고백 속에 사실은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입양가족들의 슬기로운 입양생활을 위한 가장 바람직한 모습이 담겨져 있다. 

가정 밖 세상이 무엇이든 가정 안에서의 서로에 대한 깊은 사랑과 신뢰가 꿋꿋하다면 모든 것을 이겨낼 수 있다는, 그래서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 주변을 둘러싼 모든 것도 사랑할 수 있게 된다는 진부하지만 마땅한 진리. 입양은 가정을 이루는 하나의 방법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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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사진 ⓒ 정수아 제공

 
#입양 #공개입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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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유목생활을 청산하고 고향을 거쳤다가 서울에 다시 정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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