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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앞에서 똑같은 농성 20차례, 갑자기 불법이라는 경찰"

[스팟 인터뷰] 차헌호 아사히글라스 비정규직 지회장 "기업엔 관대, 노동자엔 강경... 기 막혀"

등록 2023.05.26 17:24수정 2023.05.26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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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속노조와 비정규직 노동단체 '비정규직 이제그만 공동투쟁'(이하 공동투쟁)이 25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열려던 야간 문화제를 경찰이 원천봉쇄하고 있다. 경찰은 지난 16∼17일 민주노총 건설노조의 1박2일 노숙 집회 이후 도로와 인도 등지에서 노숙하는 행위와 야간 문화제를 내세운 변칙적 집회를 허용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 연합뉴스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야간 문화제를 진행하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지난 25일 오후 9시께 하나, 둘 경찰 병력들에 들려 나왔다. 불법파견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2021년부터 진행해 온 대법원 앞 문화제 및 1박2일 농성. 기존에 해오던 방식과 크게 달라진 것은 없었다. 바뀐 것은 경찰의 대응이었다. 

늘 큰 충돌 없이 마무리 돼왔던 행사가 강제해산 됐고, 기존에 사용해 왔던 방송 차량이 견인됐으며, 이를 저지하던 일부 참가자들이 연행까지 됐다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3일 건설노조 1박 농성 집회를 언급하며 공권력 발동의 중요성을 강조한 지 이틀 만의 일이었다. 

대법원 앞 1박 농성을 이어왔던 차헌호 아사히글라스 비정규직 지회장은 26일 <오마이뉴스>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가장 가까이는 올해 3월에 진행했고, 지난해에는 매달 1회씩 진행했다. 대법원 앞에서만 20여 차례다"라면서 "이전까지는 경찰이 나와 인도에 (띠로 된) 펜스를 쳐 지나갈 수 있도록 하고, 야간에는 텐트를 쳐 농성하도록 보장했는데 어제부터 갑자기 불법집회로 규정해 버렸다"고 말했다. 

그는 "대통령 말 한마디에 어떻게 이렇게 달라지느냐"고도 했다. 거주밀집 지역이나 좁은 골목이 아닌, 반포대로 8차선 옆의 폭이 넓은 공간에서 진행해 온 터라 경찰과 큰 마찰 없이 농성을 이어왔다는 설명이다. 차 지회장은 "(이번에는) 경찰이 (철제) 펜스를 인도에 절반을 쳐 놔서 (인도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이미 만들어 놓고, 아무도 다니지 못하는 길을 만들었다"면서 "대법원을 둘러싸고 수백 명의 경찰이 바깥에 배치돼 있고, 우리는 채 100명이 안 되는 인원이 갔는데 그럼 누가 시민들의 통행에 불편을 끼친 건가"라고 토로했다. 

차 지회장은 무엇보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왜 매번 대법원을 찾을 수밖에 없는지 그 이유를 주목해달라고 했다. 불법파견 사건, 부당노동행위 소송까지... 대법원에서 수년째 쌓여 있는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사건은 노동자 개개인의 불안정한 삶을 지속시키고 있는 상황이다. 심지어 포스코의 사내하청 불법파견 사건의 경우, 근로자지위 확인 소송을 낸 지 무려 11년 만에 대법원 확정 판결이 나온 바 있다. 이들 노동자 중 일부는 확정 판결 전 정년을 맞아 승소 판결을 적용받지 못했다.

지난 2015년 노조를 만든 직후 해고돼 복직 투쟁을 이어오고 있는 차 지회장 또한 같은 고통을 겪고 있는 상황이다. 그는 "아사히글라스 부당노동행위 재판의 경우 대법원에 5년째 계류 중이다"라면서 "사법부가 피해자들을 구제하는 역할을 해야 하는데, 도리어 몇 년씩 계류시키면서 결국 퇴직하게 되는 경우까지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차 지회장은 "기업의 위법 행위에는 솜방망이 처벌을 하고, 억울한 노동자들이 목소리 내는 것은 불법 행위라고 강경 대응을 하니 기가 막히다"고 말했다. 아래는 그와 나눈 대화를 일문일답으로 정리한 것이다. 

"100명 농성에 수백 명 경찰... 시민 불편, 누가 초래했나"


- 25일 대법원 앞에서 장기간 계류 중인 불법파견 재판들의 조속한 결정을 요구하며 1박 농성을 진행했다. 대법원에서 같은 방식의 농성을 진행한 적이 있는가.

"그렇다. 가장 가까이는 올해 3월에 진행했다. 지난해에도 매달 1회씩 진행했고. 대법원 앞에서만 20여 차례다."

- 그전에는 이번처럼 강제 해산된 적이 없었는데. 이전 사례와 비교했을 때 경찰 측 대응 중 달라진 점은 무엇인가. 

"이전까지는 경찰 측이 문화제를 진행하도록 보장해 줬다. 경찰이 나와서 인도에 (띠로 된) 펜스를 쳐서 지나갈 수 있도록 해주고, 야간에는 텐트를 쳐서 농성도 할 수 있도록 보장했다. 그런데 어제부터 갑자기 불법 집회라고 규정해버렸다."

- 당시 상황은 어땠나.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한 후) 행진해서 도착하니까 인도 자체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경찰들이 수백 명이 인도를 둘러쌌다. 예전에 문화제를 진행했던 인도의 절반에  (철제) 펜스를 쳐서 아예 들어갈 수 없도록 막은 거다. 몇 년째 문화제를 해왔던 장소를 원천 봉쇄한 것이다." 

- 집시법상 문화제는 집회 신고 대상이 아닌데. 

"그래서 경찰이 지금까지 보장해 준 것이다.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갑자기 불법 행위가 된 거다. 어떻게 법을 그렇게 마음대로 바꾸나. 그전에는 그럼 경찰이 불법을 눈감아 준 거고, 어제부터 불법행위이가 되는 건가. 그럼 기존에 해왔던 법 해석은 어떡할 건가."

- 그렇게 항변했더니 반응이 어땠나. 

"(경찰 측은) 무조건 불법 집회를 원천 차단한다는 거다. 언론에 나오듯이 야간 집회는 시민들에게 불편을 끼치니 차단한다는 건데, 어제 상황을 보면 경찰이 펜스를 (인도에) 절반을 쳐 놔서 (인도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이미 만들어 놓고 아무도 다니지 못하는 길을 만들었다. 대법원을 둘러싸고 수백 명의 경찰이 바깥에 배치되어있는 거다. 우리는 채 100명이 안 되는 인원이 갔는데... 그럼 누가 시민들의 통행에 불편을 끼친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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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진행했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대법원 앞 1박 농성 현장. ⓒ 비정규직이제그만공동투쟁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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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진행했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대법원 앞 1박 농성 현장. ⓒ 비정규직이제그만공동투쟁 제공

 
- 달라진 경찰 측 대응에 어떤 생각이 들었나.

"경찰관 직무집행법이 있는 이유는 경찰이 조금이라도 위법한 행위를 하면 그 당사자들이 굉장히 큰 피해를 입기 때문이다. 국가 폭력이 될 수 있기에 법률에 따라 (직무를) 집행하게 돼 있는데, 대통령 말 한마디에 어떻게 이렇게 달라질 수 있는지... 심각한 문제다. 제대로 된 근거 제시나 설명도 없이 해오던 걸 갑자기 불법이라고 하면 불법이 되나."

- 현재 당정이 추진 중인 야간집회 금지 법안의 주요 이유는 심야시간대 집회는 교통, 소음 등 시민 불편을 초래한다는 명분이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예를 들어 우리가 진행해 온 대법원 앞 공간이 아니라, 생활 공간인 아파트 단지나 좁은 골목에서 100명이 모여 문화제를 했다면 그런 판단을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여기는 주거지도 아니고, 인도 자체도 굉장히 넓다. 소음 데시벨도 문제가 없었다. 그래서 여태까지 진행해 온 것이다. 전혀 맞지 않는 이유로 도리어 전체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차단하는 방식으로 노동 기본권을 막고 있는 것이다." 

- 당정의 야간 집회 금지 기조로 앞으로도 계속 같은 상황에 봉착할 가능성이 높다. 

"저희는 다음 달에도 똑같이 대법원 앞에서 (문화제를) 진행할 예정이다. 경찰이, 그리고 대통령이 불법이라고 한다고 정당한 기본권이 불법이 되지 않는다. 다음 달에도 경찰이 문화제를 차단하더라도 대법원 앞에 와서 똑같이 진행할 예정이다. 

중요한 것은 해고 노동자들이 도대체 몇 년째 대법원 앞을 왜 오느냐에 있다. 아사히글라스의 부당노동행위 재판은 대법원에 5년째 계류 중이다. 3년째 계류 중인 한국지엠 사건 등 불법 파견 재판들도 마찬가지다. 대법원이 몇 년째 판결을 내리지 않으니, 올 수밖에 없다. 대법원 판결을 촉구하는 투쟁은 계속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판결만 내리면 끝나는 문제, 9년째 해고자 생활하고 있다"

- 대법원 재판 지연의 피해를 호소하기 위해 농성을 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사법부가 피해자들의 피해를 회복시키는 역할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1심, 2심 다 이겨서 대법원에 올라왔다. 빨리 법리를 판단해서 신속하고 공정하게 판결하라는 게 우리 법으로도 규정되어 있다. 그런데 도리어 대법원이 몇 년씩 계류시키면서 결국 (복직되지 못하고) 퇴직하게 되는 경우까지 발생한다. 전체 재판이 12년이 걸려 정년이 도래한 경우도 있다. 대법원에서 (수년의 시간 후) 승소했지만, 피해를 회복하지 못하고 결국 공장으로 돌아가지 못한 노동자가 있는 것이다."

- 복직 투쟁을 하고 있는 해고 노동자 입장에서 재판 지연으로 인한 피해도 상당할 것 같다.

"결국 이익을 보는 건 재벌 대기업이고, 노동자들은 하염없이 계속 피해를 보는 상황이다. 기업의 위법 행위에는 솜방망이 처벌을 하고 억울한 노동자들이 목소리 내는 것은 불법행위라고 강경 대응을 하니 기가 막힌 것이다. 저는 9년째 해고자이다. 불법 파견 재판을 1심과 2심 다 이겼는데, 부당 노동행위 사건에만 대법원에서 5년째 계류 중이다. 판결만 내려 주면 끝나는 문제인데 (장기 재판 지연으로) 계속 해고자 생활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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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이제그만 공동투쟁과 금속노조 관계자들이 26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전날 이들이 진행한 야간문화제와 노숙농성을 금지 통보한 경찰을 규탄하고 있다. 경찰은 전날 대법원 동문 앞에 철제 펜스를 치고 접근을 막는 등 야간문화제와 노숙 농성을 원천 봉쇄했다. 대치 과정에서 참가자 3명이 공무집행방해 혐의 현행범으로 체포됐다. ⓒ 연합뉴스

 
[관련 기사]

- "검사와 판사 노동 너무 몰라, 불법파견 때문에 전과 13범 됐다" https://omn.kr/20org

- 김앤장·포스코와 싸워 이긴 30년 하청노동자의 눈물
https://omn.kr/20ccw

- "불법의 피해자인데 목에 밧줄 감았다, 비정규직이라서"
https://omn.kr/21p0p
#비정규직 #기본권 #집회시위에관한법률 #노동조합 #재판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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