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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기다리다가 백제 나루터를 어렴풋이 상상하다

구드레 나루터에서 황포돛배를 타고 고란사로

등록 2023.05.28 11:13수정 2023.05.28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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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 고란사에 연등이 걸려 있다. 부처님 오신 날을 맞이하여 고란사에 연등이 걸려 있다. ⓒ 김은진

 
'백마강'은 금강의 다른 이름이다. 


백제의 수도였던 부여 지역에서 '큰 강'이라는 의미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금강은 충청남도와 전라북도의 도계를 이루면서 군산에서 서해바다로 흘러간다.

초록빛 푸르름으로 짙어지는 지난 26일 부여 고란사로 향했다. 고란사에 가려면 부소산성에서 걸어가는 길과 구드레 나루터에서 배를 타고 가는 길이 있다. 강물을 가르는 황포돛배를 타고 싶어 구드레 나루터로 향했다. 구드레 나루터는 백제의 왕이 왕흥사로 예불을 드리러 가는 길에 나루터가 추울까 봐 신하들이 '구들돌에 불을 때어 따뜻하게 했다'는 데서 유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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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포돛배 구드레 나루터에서 고란사로 들어가기 위해 황포돛배를 이용하였다. ⓒ 김은진

 
지난 겨울에 버스정류장 의자에 불이 들어와 따뜻하게 기다렸던 기억을 하며 백제의 임금도 그런 기분이었겠다는 생각을 했다. 추운 날 따뜻한 의자처럼 기분 좋게 하는 건 없으니 말이다. 중앙시장에서 만두를 포장하고 버스정류장 의자에 앉아 있는데 어떤 젊은 여성이 물었다.

"이렇게 맛있는 냄새가 어디서 나는 거예요?"
"시장 끝에 만두가게에서 포장해 온 거예요."
"아, 이게 만두냄새구나."


한껏 미소를 지으며 물어보는 젊은 여성에게 만두가게 위치를 잘 알려줬다. 버스정류장의 의자가 따뜻하니 사람들이 기분이 좋아지고 굳었던 입속의 혀도 풀리는지 서로 이런저런 얘기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어깨가 아파서 도통 일을 못하겠다는 분에게는 OO병원 가서 물리치료 한번 받아보라고 알려주는 아주머니도 계셨고, 고추씨는 버리지 말고 찌개에 넣으면 칼칼해져 더 맛있다는 얘기까지 버스정류장이 동네 소식통이 됐다. 오가는 배를 기다리며 백제시대의 구드레 나루터의 모습도 이러지 않았을까. 

선착장에서 배를 기다리고 있으니 파란 하늘에 두둥실 떠오른 조각구름이 다가와 강물에 빼꼼히 모습을 비췄다. 잠시 후 배가 도착하고 안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운항을 시작하자 강바람이 얼굴에 부딪쳐 시원했다. 황포돛배는 부여의 궁인들이 백제가 멸망할 때 몸을 던졌다는 낙화암을 돌고 고란사 선착장에 닿았다.


부소산의 가파른 절벽과 울창한 느티나무와 소나무들이 관광객을 맞았다. 자연석으로 널찍하게 만들어진 계단은 그리 가파르지 않아 수월하게 오를 수 있었다. 입구에 부여의 옛모습이 사진으로 전시돼 있어 오랜 관광지임을 알 수 있었다.

고란사는 고려시대 현종이 지었고 절 뒤에 바위틈에 고란초가 나온다고 해 붙여진 이름이란다.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색색의 연등이 켜지고 사찰을 오가는 시민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고란사에서는 방문객도 타종을 할 수 있었다. 나도 마음속으로 한 가지 소원을 빌고 타종을 하여 보았다. 웅장하게 울리는 종소리가 마음속의 조바심을 걸러내서 일까 발걸음이 한층 가벼워졌다.

고란사 뒤편에서 한 번 마시면 3년은 젊어진다는 고란약수를 마시고 낙화암 위에 있는 '백화정'으로 향했다. 절벽에 세워진 정자라 그런지 계단이 매우 가팔랐고 정자의 규모는 작았다. 아무리 꽃이라고 불린다 해도 떨어지긴 절대 싫은 나는 난간을 꽉 붙들고 올라가 보았다.

산길을 올라오느라 조금 힘들었는데 백화정에서 앉아서 쉬니 좋았다. 정자 주변으로 드리워진 소나무들이 강바람을 타고 향기를 날리고 있어서 숨을 들으킬 때마다 편안해지고 머리도 맑아졌다.     

다시 구드레 나루터로 향하며 나루터에서 오갔을 이야기를 상상해 보았다. '소금은 요즘 얼마나 하나요?' '우리 남편이 아파서 인삼 좀 구해서 싶은데 어디로 가면 좋을까요?' 황토돛배는 사람들의 물음에 답을 달고 백마강 위를 운항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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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란사 전경 연등과 소원지가 걸려있는 고란사 전경 ⓒ 김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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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문화제 수륙제 사진 1965년 백제 문화제 수륙제에 관한 사진이 전시되어있다. 오래전 많은 인파가 몰렸던 곳임을 알 수 있었다. ⓒ 김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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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화암 위에 위치한 백화정 낙화암에 위치한 백화정의 모습이다. 백제의 삼천궁녀가 떨어졌다는 기록이 삼국유사에 있다. ⓒ 김은진

 
#부처님 오신 날 #고란사 #부여 #황포돛배 #백마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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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아름답고 재미난 이야기를 모으고 있습니다. 오고가며 마주치는 풍경들을 사진에 담으며 꽃화분처럼 바라보는 작가이자 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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