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근본이란 무엇일까

부처님 오신 날 단상

등록 2023.05.28 14:45수정 2023.05.28 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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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진천 보탑사. ⓒ 최미란

 
계속되는 가뭄으로 논밭 곡식들이 메말라가고 농민들의 시름이 깊어 가고 있는 가운데 모처럼 반가운 단비가 내렸다.


나는 고등학교 다닐 때부터 교회에 다녔다. 결혼하고 잠시 방황하는 날들이 있었지만, 지금은 나름 신실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하지만 엄마는 우리 사남매를 낳으시기 전부터 절에 다니셨다. 딸 셋을 내리 낳으시고 시어머니 눈치를 보며 시집살이가 심해서 산후조리도 못 하셨다. 세월이 흐르면서 사지를 모두 수술하고 인공관절을 넣었는데도 보조 기구 없인 몇 발자국 걷는 것도 힘들어하신다.

딸 셋을 낳으신 뒤에는 속리산에 있는 절부터 집 근처에 있는 절까지 다니면서 기도하며 낳은 아이, 그 넷째가 아들이다. 물론 아들은 늠름한 소방관이 됐다. 그러다 보니 사월 초파일만 되면 차로 30분 거리의 절에 가셔서 가족을 위해 등을 달고 기도하신다.

사남매가 번갈아 가며 엄마가 계신 시골에 내려가 엄마와 맛있는 것도 먹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온다. 이번 '부처님 오신 날'에는 내가 남편과 함께 엄마를 모셨다. 평소 자주 가시는 보탑사란 절에 다녀왔다. 매년 많은 인파로 주차가 힘들어서 이른 아침부터 준비해 일찍 도착했다. 비가 제법 많이 내리는데도 사람들은 줄지어 계속 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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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진천 보탑사. ⓒ 최미란

  
엄마를 모시고 절 이곳저곳을 다니는데 친구에게서 잠시 전화가 왔다. 엄마 모시고 절에 왔다고 하니, 친구는 상기된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아니, 교회 열심히 다니고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절에 가면 어떻게 해? 그럼 안돼!"


친구는 이어서 계속 믿음에 대한 이야기를 했는데, 엄마 부축해 드려야 한다고 답하곤 전화를 끊어버렸다.

신을 믿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가 무엇일까? 기독교인들은 "천국에 가기 위해서"라고 가장 먼저 대답할 것이다. 나 이외에 다른 신을 믿지 말라고 말씀하셨지만 다른 신을 믿는 것이 아니다. 그냥 내가 사랑하는 사람, 내가 알고 있는 지인을 존중하고 그 사람이 살아온 삶을 인정해주는 것뿐이다.

그런 바탕이 없는 믿음은 믿음이라고 볼 수 없다는 생각이다. 80년을 넘게 사시면서 몸과 머리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사상과 습관을 바꾼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행복하고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면, 보는 나 자신도 기쁘지 않던가. 내가 교회를 다니면서도 엄마를 모시고 절에 가는 이유다. 믿음을 떠나 조용한 산사에 풍경소리가 청아하게 들려오면 마음이 편안해질 때도 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내가 믿는 신에 대해 얘기하다 보면 바뀔 수도 있고 바뀌지 않을 수도 있지만, 이 또한 안타까울지라도 인정해야 하는 부분이다.

얼마 전 TV에 신부님과 스님이 같이 나오셔서 서로의 믿음을 존중하고 인정해 주면서 강의하는 모습을 봤다. 참 따뜻했고 더 집중해서 들을 수가 있었다. 믿음의 시작은 내가 행복하고 사랑하는 가족이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에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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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진천 보탑사. ⓒ 최미란

  
"등 몇 개 다실 거예요" 안내하시는 분이 물었다. 엄마는 등을 가족별로 다 다신다고 했다. 나는 "엄마, 나는 내가 믿는 신께 매일 기도해요. 걱정 마시고, 엄마가 걱정하시는 아들 가족을 위해 달으셔요"라고 웃으며 말했다.

엄마는 막내아들 가족과 종교가 없는 둘째 딸 가족을 위해 등을 달으셨다. 그러자 옆에 있던 남편이 "어머니, 어머니는 왜 매년 어머니를 위해선 등을 달지 않으셔요. 에이, 어머니는 이 사위가 달아드릴게요" 하며 너스레를 떨며 종이에 글을 쓰고 등을 달았다.

엄마 이름 옆에는 무병 무탈, 마음 평안 자식들을 위해서는 무병 무탈, 만사형통. 손자 손녀를 위해선 무병 무탈, 지혜 총명, 시험 합격. 대부분 사람들의 기도는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서다. 그 마음으로부터 평안이 오고 그곳이 곧 천국의 시작일 것이다.
덧붙이는 글 채택이 되어 기사로 올라가면 제 블로그나 카페, 페이스북에도 올립니다.
#부처님오신날 #사월초파일 #믿음생활 #종교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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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거주, 시와 수필 등단(2017) 인터넷 수원 뉴스 시민기자로 3년 활동하면서 수필,에세이 등을 기고했고, 현재 한국문인협회수원지부,서정문학, 작가들의 숨 회원으로 시집<마음시선> <그땐 몰랐다> 출간, 문인협회, 서정문학,작가들의 숨 동인지 및 계간지 꾸준히 참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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