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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과 소통하니, 시장이 보이더라"

[서울인쇄센터 일지] 이든프린팅 최수동 대표 인터뷰

등록 2023.05.28 16:14수정 2023.06.01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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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기획을 했던 사람이 '인쇄인들을 위하고 시민들에게 인쇄문화를 알리기 위한' 서울인쇄센터를 운영하게 되었습니다. 용역으로 공공 기관을 운영하면서 공간을 꾸리는 일, 시민들을 대하는 순간들을 소소하게 일지 형식으로 담아내고자 합니다. [편집자말]
디지털 전환기의 딜레마

디지털 인쇄가 보급되면서 가장 큰 변화가 있다면 단연, '소량 인쇄'가 가능해졌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오프셋 인쇄는 인쇄판을 따로 만든다던가 인쇄기에 들어가는 종이의 크기 때문에 적어도 500부 이상 돼야 인쇄를 맡길 수가 있었지만, 디지털 인쇄에서는 마치 사무실의 복합기처럼 몇 장 단위까지 인쇄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인쇄물의 완성도를 더하는 후가공은 '소량 인쇄'에 적응하는 데 시간이 더 필요해 보인다. 이는 충무로 인쇄 단지의 특징에 기인한 것으로, 충무로에서 인쇄하기 위해선 각기 다른 공정들을 전문으로 하는 업체들을 거쳐야 하나의 인쇄물이 만들어진다. 이른바 충무로 인쇄 단지의 '네트워크형 생산 시스템'은 대량 인쇄 시스템에 최적화돼 있어 고도로 분업화·전문화돼도 충분히 수익을 낼 수 있었던 반면, 디지털 인쇄로 촉발된 '소량 인쇄'로는 수익이 나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에 디지털 인쇄의 딜레마가 생긴다. 디지털 인쇄로 많은 디자이너와 창작자들이 저렴하고 빠르게 다양한 인쇄물을 실험할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정작 이를 완성하는 금박, 실 제본, 양장 제본, 코팅 등을 하려면 억지로 대량 인쇄를 해야 하거나 비싼 단가를 지불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고품질 소량 인쇄의 새 시장을 열다

당연히 이런 딜레마를 알 길 없는 소비자들의 요구는 대량 인쇄나 소량 인쇄를 가리지 않는다. 소량 인쇄를 하면서도 다양한 후가공을 적용하고 싶어 하는 소비자들은 예상치를 뛰어넘는 단가에 놀라거나, 아예 특수 후가공이 포함된 소량 인쇄는 안 된다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마치 '고품질의 소량 인쇄'란 양립할 수 없는 형용모순처럼 인식되던 시장에 돌파구를 마련한 것은 이든프린팅(iiden.co.kr)의 최수동 대표였다.

최수동 대표는 소량을 인쇄하면서도 고객이 원하는 후가공을 저렴하게 구현하기 위해서 자사 내 후가공 생산 설비를 구축하는 방법을 택했다. 중구 필동에 있는 이든프린팅 본사 1층과 2층에는 인디고와 토너 방식의 디지털 인쇄기를 중심으로 박 공정, 양장, 실 제본, PUR(Poly Urethane Reactive) 제본기들이 구색을 갖추고 있다.

사무실 한쪽 벽면에는 고객들의 까다로운 요구사항에 따라 다양한 후가공이 적용된 책들이 한가득이다. 최수동 대표는 "책 한 권, 한 권 모두 사연이 제각각"이라고 했다. 그의 말처럼 같은 책이라곤 찾아볼 수가 없었다. 내용은 물론이고 구현된 기술도 제나름의 고유한 개성을 지니고 있었다.

여행 후 지인들과 감회를 나누기 위해 제작한 사진집은 특수지를 이용해 운치를 더했고, 어느 패션 디자이너의 포트폴리오 북은 작가가 요구한 천을 입혀 양장을 만들었다. 독립출판에 나선 어느 작가의 소설 전집은 색색의 양장에 케이스를 만들어 가치를 더했다. 졸업생이 30명 밖에 되지 않아 소량 생산을 해야 했다는 어느 고등학교의 앨범을 보면서 이런 수요는 끝이 없겠다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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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든프린팅이 제작한 다양한 책들 누드 책등에 글자를 새긴 디자인이나 책 옆면에 도안이 연출되는 등, 고객과 머리를 맞대고 실험한 디자인이 돋보였다. ⓒ 최대혁

 
20년을 이은 실험

설비를 투자했다는 인쇄인들이 한목소리로 얘기하는 것이지만, 이런 투자는 상당한 리스크가 따르는 일이다. 이미 사용하고 있는 기존 설비의 투자금을 회수하는 기간도 상당할뿐더러 새로운 설비에 따르는 인력의 고용과 숙련 기간 등을 고려할 때 기업으로서는 큰 모험인 셈이다.

1990년대 중반 마스터 인쇄기로 제안서를 위주로 작업했던 최수동 대표는 2006년 인디고 인쇄기를 들여놓으며 디지털 인쇄로 들어섰다. 인디고의 품질은 놀라웠지만, 고객이 원하는 제본을 하기 위해서는 투자가 필요했다.
 
(인디고) 인쇄의 퀄리티는 마음에 드는데 이걸 제본하려니까, 책이 두꺼워지면 부러지고. 이걸 해결하기 위해 무선 제본기를 5번 바꿔보고 풀이라는 풀은 다 섞어서 해보고. (그래도 안 돼서) 이제 시도하게 된 게 PUR 제본이죠. 그다음에 실 제본이 멋있는데 왜 우리는 안될까, 해서.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새 공정을 구축하는 과정은 시행착오의 연속이었다. 저가의 설비를 구축하고 생산라인에 안착시키고 나면 단가를 낮추기 위해 대량 생산 설비로 교체를 해야 했다. 해결해야 할 문제가 생기면 '맞춤한' 장비를 얻기까지 품을 아끼지 않았다. 그만큼 비용을 감수해야 했던 시간이었다.
 
PUR 제본기 사고 '휘청' 실 제본기 하나 사고 '휘청'. 그러고도 고객의 눈높이에 맞춰 금액이나 품질, 수량을 따라갈 수가 없으니 양산용 기계로 들여놓게 되었죠. 이거 풀어내는 데 20년이 걸렸어요.

20년이 걸렸다는 말에 멀미를 느꼈다. 그가 1990년대 중반에 인쇄일을 시작했으니, 그의 30년 인쇄 인생 중 3분의 2를 이런 실험과 투자를 이어왔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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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한 책을 소개하는 최수동 대표 그간 제작한 책이 사무실 한쪽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사진은 고객의 요구에 양쪽으로 펼쳐지는 책을 제작했다며 소개하는 최수동 대표. ⓒ 최대혁

 

고객과 소통하다 보니 길이 보였다

"고객의 니즈를 맞추기 위해서..."는 최수동 대표가 인터뷰 내내 사용한 말이다. 보유한 장비들을 소개할 때마다 이유는 분명했다. '고객이 원해서.' 결국 상당한 부담을 안고도 이런 투자와 실험에 나서게 된 것은 결국 고객의 요구를 적정한 가격 안에서 충족시키기 위해서였다.
 
시장은 처음부터 가격을 제가 정하는 게 아니고, 시장은 결국은 소비자가 만드는 거잖아요. 원하는 금액과 원하는 품질과 원하는 걸 해줘야 그 시장이 만들어지는 거잖아요.

지난 30년간 고객과의 소통으로 변화의 동인과 경로를 만들어왔던 만큼, 이든프린팅은 지금도 고객과의 소통을 중시하고 있다. 이든프린팅의 홈페이지를 보면 자사의 상품과 생산 라인 소개 못지않게 고객들에게 인쇄와 관련된 정보를 꼼꼼하게 제시하면서 잠재적인 소비자들을 인쇄업계로 끌어들이기 위한 배려가 돋보인다.
 
시장이 저희만 있어도 되는 게 아니고 소비자도 있어야 하고, 같은 눈높이를 보면서 그들이 만들고 싶은 책, 저희가 만들 수 있는 책 이게 같이 이게 소통이 돼야 이런 결과물들이 나오는 거죠.

최수동 대표는 20년의 실험을 거친 지금에야 비로소 '길이 보인다'라고 했다. 20년간 흔들렸으나 방향은 틀리지 않았다, 제대로 가고 있다는 자신감을 읽을 수 있었다.
 
이 시장이 폭발적이었죠. 왜냐하면 누구나 (책을) 만들어 보고 싶어 하시는데, 처음에는 두려운 거죠. 내가 출판사도 아닌데 3천 권, 5천 권을 쌓아두고 판매를 하는 건 아니죠. 필요한 만큼 만들어서 독자의 반응을 보고 나중에 더할 수도 있고. 이런 시장이 점점 커지고 있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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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든프린팅에서 제작한 견본책과 홈페이지 일부 고객과 소통하려는 노력은 곳곳에서 보인다. 종이에 따라 출력 결과물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견본책으로 제작하는가 하면(왼쪽), 홈페이지에는 인쇄를 모르는 이들을 위한 정보가 가득했다. ⓒ 최대혁

 
완전한 소량 생산 체제로의 전환

유난히 장비 구매가 잦은 덕에 최수동 대표는 인쇄계의 '얼리어답터'라는 별명이 붙었다. 칭찬보다는 주변의 우려 섞인 시선들을 많이 뒤따랐지만, 지금은 주변의 반응도 긍정적으로 바뀌었다.
 
여러 가지 평가가 있지만 보통, 소량에서 이런 퀄리티를 낼 수 있다는 것 자체에 대해서 많은 분들이 상당히 놀라고, 동종 업체 대표님들도 이렇게 만들어 드린 거 보면 이게 가능하냐고. (하십니다.)

이든프린팅의 성과를 보면서 설비에 투자를 하는 인쇄인들도 많이 늘었다고 한다. 마침 환경도 가파르게 변하고 있다. 이전 대량 생산에 초점을 맞춘 장비들을 생산하던 업체들도 달라진 시장에 맞춰 장비의 스펙트럼을 넓히고 있다고 한다.
 
저희가 보유한 장비를 보면 이전에 대량 생산용을 만들었던 메이커예요. 이들이 계속 시장을 보면서 소량 시장에 맞는 기계를 만들고 있어요. 이제 그런 도구 중에서 저희가 적합한 장비를 선택하게 되는 거죠.

최수동 대표가 힘겹게 개척한 '고품질 소량 생산' 시장은 이제 거스를 수 없는 흐름으로 보인다. 적어도 그가 운영하는 이든프린팅의 경우는 완전히 '소량 인쇄'로 전환하는 데 성공했다. 납기일 맞추기에 급급한 정부나 기업들의 보고서보다는 '작가들과 소통하고, 작가들이 만족스러워하는 작업'에 몰두하게 돼 기쁘다고 했다. 작가들과 함께 작업한 책을 소개하며 즐거워하는 그를 보면서 이 얘기가 충분히 이해되었다.

10년 후에도 고객과 소통하는 이든프린팅을 그리며

인터뷰를 정리하며 두 가지를 물었다. 먼저 20년의 실험으로 '이만하면 됐다'라고 생각하는지 물었다. 최수동 대표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죠. 이제 미래가 약간 보이기는 하는데, 여전히 젊은 친구들이 이쪽 시장 유입하기가 힘들잖아요. 우리가 10년을 더 간다고 하면 (청년이 들어올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 좀 더 완성도를 높이고 생산성을 높여야죠.

인쇄계의 미래를 위해서는 청년이 인쇄 업계로 들어와야 하고, 청년을 유입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눈높이에 맞는 급여와 근무 여건을 조성해야 하는데, 그 역시 제품의 완성도와 생산성을 높이는 일에 달려 있다는 얘기다.

소비자 측면에서는 이든프린팅이 고품질 소량 인쇄가 가능한 곳으로 이미 정평이 나 있지만, 여전히 대량 인쇄에 비해 비싸다는 평도 많이 듣기에 아직 풀어야 할 숙제가 많다고 했다.

그렇다면 10년 후의 이든프린팅은 어떤 곳이 돼 있을까? 최수동 대표가 그리는 이든프린팅의 미래에 대해 물었다.
 
좀 더 소통하고 좀 더 배우고 더 다양한 (제작) 방법으로 고객과 소통하지 않을까요?

인쇄 경력 30년인 지금도 여전히 "시장을 배우고, 제품을 배우기 위해 고객과 소통한다"라는 최수동 대표는 10년 후에도 여전한 모습을 그리고 있었다.

인터뷰에 들어가면서 회사명의 '이든'이 인쇄에 관한 무엇'이든' 자사 내에서 하겠다는 취지인가를 물었을 때, 최수동 대표는 '이든'은 순우리말로 '어질고 착하다'는 뜻이라고 했다. 고객과 소통하며 그들의 요구에 이토록 진심으로 대응할 수 있으려면 이 정도 '마음가짐'은 필요하지 않을까 싶었다.

그러고 보면 단지 지난 20년간 이든프린팅의 행보에서 설비 확장만을 본다면 그건 겉만 훑은 것이다. 본질은 고객과의 소통이었고, 설비는 이를 구현하기 위한 수단이었음을 이해하게 된다.
덧붙이는 글 개인 브런치에 같은 글을 올리고 있습니다.
#서울인쇄센터 #이든프린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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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네트워크(사) 대표. 문화 기획을 하고 있습니다. 2012년부터 지역 현장에 들어가 지역 이름을 걸고 시민대학을 만드는 'OO(땡땡)은대학' 프로그램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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