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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서 쓰고 수천만원 강제금까지... 그래도 개 300마리 거두는 까닭

[인터뷰] "버릴 거면 키우질 말아야죠"... 사설유기견보호소 '시온쉼터' 오은숙 소장

등록 2023.05.31 13:23수정 2023.05.31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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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온쉼터의 오은숙 소장 사설 유기견 보호소 소장이 된 지 어느덧 8년 째를 맞았다. ⓒ 시온쉼터

 
'시온쉼터'를 찾아가기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대전시 유성구의 끝자락, 계룡시와 경계에서도 산을 향해 꽤 들어간 곳에 시온쉼터가 있었다. 이곳에 오은숙 소장과 300여 마리의 유기견이 모여 산다. 시온쉼터는 8년 전 오 소장이 시작한 사설 유기견 보호소다.

8년 전까지만 해도 오은숙씨는 유기견 보호소 소장이 아니었다. 20년간 종교인으로 활동하다가 요양 차 고향에 내려온 게 이야기의 시작이었다. 고향집에서 키우던 세 마리 강아지의 사료를 사기 위해, 동물 약품 가게에 나갔다가 어느 개 농장주를 만났다. 자신도 개를 많이 키운다던 농장주가 명함을 내밀었다. '육견' 두 글자가 선명했다.

오 소장은 그 길로 바로 농장주를 따라갔다. 22마리의 믹스견이 뜬장에서 음식물 쓰레기를 먹고 있었다. 죽음의 갈림길에 선 개들의 눈망울을 오 소장은 피할 수 없었다. 두 달 동안 농장주를 설득한 끝에 값을 치르고 22마리의 개들을 구했다. 그렇게 사설보호소 소장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시온쉼터의 '소장'이 돼 지금에 이르게 된다. 그녀와 지난 23일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 개들을 데려와서 땅을 밟게 했어요. 개들이 땅을 밟는 데, 너무너무 좋아하는 거야. 뜬장에서 생활하다가 땅을 밟으니 말이에요. 너무 너무 좋아해서 지금도 구조한 첫날하고 똑같아요. 제가 견사에 들어가면 막 좋아서 비벼대요. 애들이 다 알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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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온쉼터의 유기견 시온쉼터에서 구조한 유기견들 ⓒ 시온쉼터

 
아버지가 농사 짓던 땅이 있었다. 아버지를 설득해 그곳에서 구조견과 유기견들을 모아 보호하고, 치료하고, 입양 보내기 시작했다. 보호소의 이름은 천국을 상징하는 '시온'으로 붙였다. 이곳에 들어온 유기견들이 신나고, 기쁘고, 재미나고, 즐겁게 보내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지금 쉼터의 유기견들은 적어도 죽음의 공포 앞에 놓여있진 않다. 하지만 300마리 생명을 책임진 오 소장은 지난 8년 간 이루 말 못 할 온갖 어려움을 헤쳐 나가야 했다.

"아침에 견사 청소를 깨끗하게 하고, 밥 주고 물 주고 케어해야 하는데 밥만 주기도 급해요. 벌써 300마리에요. 그런데 모든 일을 저 혼자 해요. 밥하고 물을 새벽 3시까지 줘요. 제가 혼자 3시, 4시, 5시까지. 그때가 되면 요즘엔 먼동이 트고 있어요. 몸이 너무 힘든데 들어갈 수가 없어요. 밥을 주다보면 견사에서 기다리는 애들이 자기 차례를 기대하며 빠끔히 쳐다봐요. 그걸 보고 들어가서 쉴 수가 없어요.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눈비를 맞아가며 8년을 했어요.

여기는 시민의 자발적인 후원과 봉사로 운영하고 있어요. 시민들이 무슨 죄를 지었길래 맨날 가슴앓이 해가면서, 학대당하고 방치되고 식용으로 팔려가는 개들을 사재를 털어 구조하는지 모르겠어요.

사설보호소 소장들은요. 개들이 아프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요. 병원에 가면 기본적으로 몇백(만 원)이 깨지니까요. 저도 동물병원에 지불 각서 쓰고 다녀요. 대전 주변에 동물병원들에 다 외상이 깔려 있어서, 이제는 갈 수 있는 병원도 별로 없어요. 제가 빚을 내서 개들을 치료해주고 있어요. 개들을 보살피기 위해서 식당일도 하고요. 통신 사업자를 내서 감자·고구마도 파는데 장사 잘 되지도 않아요. 요즘 너무 힘들어요."



농림축산식품부 발표에 따르면 2022년 우리나라 반려동물 양육가구 비율은 25.4%로 추정된다. 이를 인구수로 환산하면 우리나라 반려동물 양육 인구는 602만 가구에 1306만 명이다. 동물을 기르는 인구가 늘어나면서 증가한 통계 수치가 또 하나 있다. 바로 유기동물 숫자. 사전 뜻 그대로 '주인이 돌보지 않고 내다 버린 동물'의 숫자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동물자유연대가 발표한 바에 따르면 2022년 11만2226 마리가 버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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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온쉼터의 유기견 사람들은 저마다 다양한 이유로 동물을 버리고 간다. ⓒ 시온쉼터

 
사람들은 다양한 이유로 동물을 버린다. 농림축산식품부가 발표한 '2021 동물보호에 대한 국민의식 조사'에 따르면 '짖음 등 동물의 행동 문제' 27.8%, '예상보다 지출이 많음' 22.2%, '동물의 질병 또는 사고' 18.9%, '이사 취업 등 여건 변화' 17.8% 등이다. 쉽게 말해 사람들은 동물이 가진 특성을 미리 알지 못해서, 돈이 많이 들어서, 동물이 병 들어서, 이사를 가야 해서 동물을 버린다.

"사람들이 여기도 몰래 와서 많이 버리고 갔어요. 처음 작을 때는 이쁘고 귀여워서 데려가서 키운단 말이에요. 그런데 덩치가 커지고 늙고 병들어서 짐스러운 존재가 되면 버린다? 또 살다가 어떤 사정이 생긴단 말이에요? 결혼, 유학, 이사가게 되면 그냥 버리고 가는 거예요. 휴가철에 빈집에 버리고 가고, 작고 예쁜 애들도 병 들면 버려요.

그거 안 되는 거지. 그렇게 버리고 갈 거면 애초에 키우지 말았어야죠. 한 생명을 끝까지 책임질 수 없다면 키우지 말아야지. 시작을 하지 말아야지. 너무 이기적인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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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온쉼터의 유기견 다치고 병든 유기견을 구조하여 치료하는 것도 오은숙 소장의 몫이다. ⓒ 시온쉼터

 
이렇게 버려지는 동물을 국가와 정부가 모두 수용할 수 없다. 2020년 기준 지자체가 관리하는 동물보호센터는 전국에 280개다. 이중 민간 위탁이 228개소다. 전체 중 81%를 동물병원이나 동물보호협회가 위탁을 받아 운영한다.

그런데도 미처 다 수용할 수 없는 동물을 위해 시온쉼터와 같은 사설 유기동물 보호소가 있다. 2022년 정부가 파악한 사설보호소는 전국에 136개다. 국가와 정부의 손길이 닿지 않는 영역에서 오 소장과 같은 이들이 '뼈를 갈아' 동물을 보호한다. 정부가 책임지지 못한 영역에 민간 보호소가 생겨나는 구조다.

"가장 소외되고 가장 힘이 없고 스스로 어떻게 할 수 없는 동물들을 사람이 돌봐야 해요. 그런데 그 일을 개인이 감당할 수 있나요? 우리나라 한 해 동물 유기가 14만 건 발생돼요. 그걸 어떻게 감당해요? 시 보호소에 들어가면 일정기간 공고를 하고, 입양이 안 되면 안락사 시켜요. 안락사가 너무 쉬운 거예요. AI나 구제역이 발생하면 그냥 살처분으로 땅 파고 묻잖아요. 그걸 아무렇지 않게 인간을 바라봐요. 이건 잘못된 거예요.

동물들이 버려지고 죽어가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 정부, 지자체, 시민단체 그리고 개인들이 모여야 해요. 동물과 공존할 수 있는 제도적 방안이 모색돼야 하고요. 지금 사설 보호소들에 대해 법의 테두리 안에서 관리감독 규제를 하든 아니면 지원을 하든 길이 열려야 해요. 사설 보호소들이 제도권 안으로 들어갈 수 있게 돼야 합니다.

대한민국에 개를 키울 곳이 없습니다. 가정집에서도 개 여러 마리를 키우면 민원 들어오기 일쑤인데요. 200마리, 300마리를 데리고 어디를 가겠어요? 그러니 자꾸 산 속으로, 산 속으로, 구석으로 가는데요. 그런데는 또 다 그린벨트에요. 여기도 그린벨트입니다.

그래서 유성구청에서는 그린벨트 내 불법 건축물이 위법이라고 지금 제 앞으로 나온 이행 강제금이 6600만 원입니다. 이걸 제가 어떻게 갚겠어요. 못 내면 저 감옥 갈 지도 몰라요. 우리는 영리 목적이 아니에요. 그린벨트라고 하더라도 공익적 일에 수익 사업을 하지 않는다면 규제를 좀 풀어주면 좋겠어요."


오 소장은 건강이 좋지 않다고 말한다. 지난 8년간 본인의 안위를 뒷전으로 하고 개들을 돌봐왔기 때문이다.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식사는 하루에 한 끼로 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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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으로 입양 간 시온쉼터의 유기견 국내에서는 도저히 적당한 입양처를 찾을 수 없다. 시온쉼터의 유기견들은 주로 외국으로 입양가고 있다. ⓒ 시온쉼터

 
그럼에도 유기견들을 위해서는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했다고 말한다. 예방 접종 백신을 맞히고, 중성화하고, 백방으로 입양처를 찾았다. 하지만 입양마저 국내에서 쉽지 않았다. 시온쉼터에서 보호하는 개들은 대부분 국내 대형 믹스견들이다. 국내 주거 환경이 대형견을 키우기 적절하지 않은 데다가 버려진 강아지를 입양하고자 하는 사람들도 소형 품종견을 선호한다.

"지금은 외국으로 입양 보내요. 작년에 24마리를 보냈어요. 외국으로 비행기 태워 보내는 것도 비용이 들어요. 하지만 국내에서 감당이 안 되니 미국으로 가는 거예요.

제가 보호하는 애들 중에 성격 좋아서 입양가면 사랑받을 것 같은 아이들이 있어요. 입양 홍보를 올려도 문의가 제로예요. 또 문의가 온다고 해도 국내에서 다 큰 대형견을 데려가겠다는 사람은 의도가 불순할 때도 있어요. 잡아먹으려고 데려간다거나 밭에 묶어 놓으려는 용도 말이에요. 그래서 입양 문의가 가끔 와도 우리는 입양을 까다롭게 보내요."


시온쉼터 홈페이지에 접속하면 입양신청서를 쓸 수 있다. 하지만 질문이 많다. 무려 28가지를 꼼꼼하게 묻는다. 거주지 형태, 함께 거주하는 가족 동의 여부, 휴가 시 동물 관리 방안, 예상하는 사료 값 및 의료 비용, 동물 등록 동의 여부 등이다. 한번 버림받았던 개들이 다시는 버림받지 말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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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온쉼터의 유기견 시온쉼터의 유기견들은 좋은 입양자가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다. ⓒ 시온쉼터

 
한편 최근 일부 사설 보호소가 여러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사람들로부터 후원을 가로채 동물 보호는커녕 학대를 일삼은 사례다. 오 소장은 여러 가지 불미스러운 일 때문에 사람들의 시선이 차갑게 식을까봐 걱정이 많다고 한다.

"정말 동물 사랑하고 동물만을 위해 희생하는 사설 보호소 소장들이 대부분이지만, 간혹 동물을 이용해서 사리사욕을 채운 사람도 있어요. 후원금을 받아서 강아지들을 위해 쓰지 않아서 문제가 되죠.

그래서 사회적인 문제가 되고 일부 불신의 대상이 되기도 했어요. 사람들이 '저 보호소는 믿을만한 곳인가?' 하고 색안경을 끼고 봐요. 그런데 그중엔 정말 진실된 소장들이 자신을 희생하며 운영하는 보호소가 있어요. 후원자분들이 똑똑하게 잘 분별하고 판단해서 그런 곳에 후원을 해주셨으면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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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온쉼터의 오은숙 소장 오은숙 소장의 하루는 쉴 틈이 없다. ⓒ 시온쉼터

 
이렇게까지 스스로를 희생해 가며 유기견을 돌보는 이유가 궁금했다. 남들이 보는 시선에 대해 개의치 않는지도 궁금했다. 두려움은 없었는지 물었다.

"두려움. 그게 뭐가 중요해요? 얘네들은 살아 숨 쉬는 생명이고요. 나는 보호자로서 얘네들을 지키고, 얘네들의 행복을 위해 살고 있어요. 아마 저더러 뭐라고 할 사람들은 뭐라 할테고, 훌륭하다고 할 사람들은 훌륭하다고 하겠지요. 저보고 훌륭하다고 해서 제가 목에 힘 줄 것도 아니고, 저보고 이상하다고 한들 상처받을 것도 없어요.

20년 동안 다른 일을 하던 사람이 어느 날부터 인생의 길이 완전히 바뀌었으니까요. 온 지극정성을 개에게 쏟으니 부모님은 걱정하시죠. 하지만 처음으로 개들을 구조한 그날 개장수를 만났던 것이 단순한 우연은 아닌 것 같아요. 남들이 보기에 특이한 삶이라고 할지라도, 저는 나름의 소명 의식을 가지고 있어요.

지금 세태는 부모나 형제의 인륜도 무너진 지가 옛날인 것 같아요. 사람도 죽어나가는 판에 '무슨 개를 이렇게 신경 쓰냐?' 할지도 모르죠. 하지만 본질로 들어가 보면 '생명 존중'이 있다고 봐요. '생명 존중'으로 접근을 해야 돼요.

이 나라가 좀 행복하게 잘 사는 선진국으로 들어가려면, 생명 존중 사회로 가야해요. 동물도 생명으로서 고통을 느끼고, 배고프고 힘든 걸 알아요. 생명 존중의 사회로 가면 사람의 생명을 더 귀중하게 여기게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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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온쉼터의 자원봉사자들 시온쉼터에는 일거리가 넘친다. 자원봉사자들의 십시일반으로 헤쳐나가고 있다. ⓒ 시온쉼터

 
한 해 10만 마리가 넘는 동물을 길에 내다 버리는 건 사람이다. 그리고 버려진 동물을 구조해서 정성을 다해 보살피는 것 역시 사람이다. 지난 8년간 시온쉼터는 여러 사람들의 십시일반으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한다. 운동선수, 기업인, 연예인을 비롯해 소셜미디어의 여러 인플루언서들까지 발 벗고 나섰다.

"시민들의 자발적인 후원과 봉사가 필요해요. 혼자 감내할 수 있는 일이 아니예요. 올해 유성구청에서 중성화 지원이 되어 6월 쯤 80마리가 중성화 수술을 합니다. 한때는 제가 수의사 협회에 6개월 간 통사정해서, 그분들이 와서 중성화 수술해준 적도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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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온쉼터의 자원봉사자 시온쉼터에는 항상 일손이 필요하다. ⓒ 시온쉼터

 
"지금도 항상 재원이 부족하고, 사람이 부족합니다. 사료는 늘 부족하죠. 병원비도 밀렸고요. 입양 보내는 것도 돈이죠. 그래서 누구든 시민분들이 함께해주시기를 바라고 있어요. 시민들의 커피 한 잔 값이 결코 적은 돈이 아닙니다. 1만2000원이면 사료 한 포대를 살 수 있어요. 저희는 홈페이지에 후원금 내역을 통장 그대로 투명하게 공개합니다."

오 소장은 끝으로 이번 인터뷰를 통해 유기견 문제를 널리 알리고 싶다는 말을 남겼다. 더 이상 이 문제를 방치할 수 없고, 다 함께 고민해야 한다는 말이다. 1시간가량 인터뷰를 마친 오 소장은 다시 견사로 묵묵하게 들어갔다. 시온 쉼터를 향해 산 속으로 들어가는 길 찾기가 쉬운 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오 소장과 300마리 개들을 뒤로하고 돌아서는 일은 더욱 어려운 일이었다.
#시온쉼터 #유기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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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의 시민활동가입니다. 우리 지역 현장 곳곳을 다니며,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있습니다. 마이크가 필요한 분에게 마이크 드리는 것이 제 역할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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