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5.31 04:57최종 업데이트 23.05.31 0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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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5일 영국 정계는 숫자 하나에 술렁였다. 역대 최고치를 기록한 2022년 순 인구 이동수 '60만 6000'이 논란의 숫자다. 영국 통계청이 발표한 장기 체류 유동 인구 통계 따르면, 2022년 유입 인구는 총 120만 명, 유출 인구는 55만 7000명, 그리고 이들의 차를 뜻하는 순 인구 이동수는 60만 6000이었다. 통계청 국제이주센터 제이 린도프 소장은 기록적인 인구 유입 배경으로 "직장과 학업을 위해 들어오는 비EU국적을 가진 사람들, 그리고 우크라이나와 홍콩 등 인도주의 목적으로 오는 이"를 꼽았다.

이 숫자는 영국 보수당의 이주 억제 정책이 실패했음을 보여준다. 2016년 외국인 유입 "통제권 회복"를 내세우며 EU 탈퇴를 이끌어내고 보수당 주류가 된 강경파는 2019년 총선 당시 순 인구 이동수를 22만 명까지 떨어뜨리겠다고 공약한 바 있다. 하지만 이는 신자유주의 질서 하에 외국 노동력 의존도가 높았던 현실 경제 구조와 괴리감이 컸다. 노동력 부족은 코로나와 맞물려 극대화되었고 보수당의 구호와는 정반대로 외국인 유입이 늘어났다.
 

이주문제를 담당하는 내무장관 수엘라 브래버먼은 강경책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우선 불법이주법안(Illegal Migration Bill)을 지난 4월 통과시켰다. 불법 입국이 발각될 경우 즉시 추방되는데 이 경우 영국 입국과 시민권 취득이 영구적으로 불가능해진다. ⓒ 연합뉴스

 
빗장 거는 영국... 합법 유학생도 제한

현실 노동력 문제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외국인 유입을 노동의 문제로 접근할 것인가, 아니면 문화 정체성의 문제로 풀 것인가. 선택의 기로에 놓여 있지만 노동으로 접근하기에는 보수당의 노동에 대한 고민과 이해도가 낮다. 자국 정체성의 문제로 접근할 경우, 이주자에 대한 배타적 언어의 수위를 지금보다 더 높여야 하는데 이는 극우적 방향으로 한발 더 가까이 가게 됨을 뜻한다.


리시 수낵 총리가 확실한 방향을 결정하지 못한 상황에서 실무적으로 이주문제를  담당하는 내무장관 수엘라 브래버먼은 강경책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우선 불법이주법안(Illegal Migration Bill)을 지난 4월 통과시켰다. 불법 입국이 발각될 경우 즉시 추방되는데 이 경우 영국 입국과 시민권 취득이 영구적으로 불가능해진다.  

이 법안이 실질적으로 목표로 하는 대상은 프랑스에서 출발, 작은 배로 영국해협을 건너 영국으로 들어오는 이주자들이다. <비비시>(BBC)에 따르면 2018년 당시 300여 명에 불과하던 규모가 2022년 약 4만 5000명 수준으로 늘어난 상태다. 알바니아, 아프가니스탄, 이란, 시리아 국적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한발 더 나아가 브래버먼은 합법적으로 들어오는 외국인 수까지 줄이겠다고 했다. 이 발언은 15-17일 런던에서 개최된 국가보수주의컨퍼런스에서 나왔다. 이 회의에는 제이콥 리스-모그 등 중진 보수 강경파, 40대 초반의 보수 '기대주' 미리엄 케이츠뿐 아니라 미국의 국가 보수주의자로 도널드 트럼프를 지지하는 오하이오 상원의원 J.D. 밴스도 참가했다.

이 자리에서 브래버먼은 세계화와 자유주의 실패를 선언하고 그 대안으로 공동체, 애국, 가족, 근면, 전통의 가치를 역설했다. "사회 같은 것은 없다. 개인으로서 남자와 여자가 있을 뿐"이라며 개인의 자유와 무한 자유 경쟁을 외쳤던 대처 식 보수와 결이 극명하게 다른 가치들이다. 브래버먼은 트럭 운전사, 건설 노동자, 과일 농장일 등 외국인 노동력에 의존했던 부분을 영국인으로 채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일주일이 지난 23일, 유학생 제한 정책을 발표했다. 이 안에 따르면 앞으로 유학생은 가족을 데리고  입국할 수 없게 된다(단, 박사 과정과 연구 과정은 제외).

대주교의 반박 "이게 우리가 원하는 세상인가"

이런 브래버먼의 세계관에 문제를 제기하는 대표적인 인사는 영국 국교회 수장이자 상원의원인 저스틴 웰비 대주교다. 문화 전쟁의 영역에서 선구적으로 노예제를 폐지하고 민주주의를 수호한 영국 역사에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브래버먼과 달리, 웰비 대주교는 지난 1월 영국 국교회가 과거 노예 자본과 연결되어 있음을 인정했다. 그리고 "부끄러운 과거를 수정할 행동을 취할 때"라며 9년간 1억 파운드(1500억 원)를 인종 문제 해결에 사용하겠다고 약속했다.

브래버먼의 불법이주법안을 두고도 부딪쳤다. 4월말 하원을 통과하고 상원이 첫 심사하는 5월 10일 웰비 대주교는 "고립주의" 법안이라고 공개 비판했다. 영국에서 상원의원은 임명직이자 종신직이고 하원을 통과한 법을 상원이 근본적으로 막을 수는 없지만 지연시키거나 수정을 요구할 수 있다. 
 

불법이주법안(Illegal Migration Bill)이 실질적으로 목표로 하는 대상은 프랑스에서 출발, 작은 배로 영국해협을 건너 영국으로 들어오는 이주자들이다. <비비시>(BBC)에 따르면 2018년 당시 300여 명에 불과하던 규모가 2022년 약 4만 5000명 수준으로 늘어난 상태다. 알바니아, 아프가니스탄, 이란, 시리아 국적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 연합뉴스

 
작은 배로 영국해협을 건너는 이들을 바라보는  웰비 대주교의 시각은 브래버먼과 극명하게 대조된다. 2022년 10월 "우리 남부 해안이 침략당하고 있다"고 표현한 브래버먼은 지난 4월 26일 "이들은 범죄자"라고 발언했다. 근거는 영국법 위반이다. 반면 웰비 대주교는 인권을 가진 존재로 이해한다. 근거는 1951 난민협약이다.

1951년 난민 협약은 영국도 서명한 국제법이다. 1948년 세계 인권 선언을 기반으로 2차 대전 이후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이들의 문제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탄생했고 유엔 난민기구의 법적 기반이기도 하다. 1951년 법은 지리적으로 유럽 그리고 1951년 이전에 발생한 사건에 대해서만 적용되었기 때문에 국제 사회는 1967년 보충 협약 (the 1967 Protocol)을 통해 지리적 시간적 제약을 없앴다.

난민협약은 비차별을 원칙으로 한다. 비차별이란 국적, 인종, 성, 종교, 연령, 장애와 상관없이 난민을 평등하게 대한다는 것으로, 여기에는 불법으로 입국했어도 망명을 신청할 경우 처벌할 수 없다 까지 포함된다. 전 유엔 사무총장 코피 아난은 "가짜 망명 신청자가 범죄자는 아니다, 그리고 망명 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해서 이들이 가짜 망명 신청자인 것은 아니다"라고 말한 바 있다.   

작은 배로 영국에 입국하려는 이들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사용되는 개념은 세 가지가 있다. 일반적인 수준에서 삶의 터전을 버리고 떠나는 이들을 지칭하는 이주민 (migration)이 하나다. 두 번째는 학대와 심각한 인권 위반으로 타국으로 피해가는 망명 신청자(asylum seeker)다. 심사를 통해 인정되면 국제법으로 보호를 받는 난민이 된다. 이들을 받아들인 국가는 주택과 교육과 직업의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여기서 작은 배로 영국해협을 건넌 이들의 법적 지위가 복잡해진다. 영국 국내법에 의하면 이들은 단순 이주민으로 비자를 받지 않은 상태에서 입국하기 때문에 브래버먼의 주장대로 불법적인 존재이고 영국 정부가 처벌할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이 도착과 동시에 망명을 신청할 경우, 국제법 난민협약의 보호를 받게 되어 불법/합법 여부에 대한 판단은 망명 심사가 끝날 때까지 유예된다. 이후 망명 신청이 통과되어 난민이 되면 합법적인 존재가 된다. 따라서 이들이 불법적인 존재가 되는 경우는 망명을 신청하지 않은 경우, 그리고 신청을 했지만 거부된 경우다.

영국해협을 작은 배로 건너는 이들의 절대 다수가 영국 도착 후 망명 신청을 해서 난민의 지위를 얻고자 한다. 때문에 국내법에 의거한 브래버먼의 범죄자 주장은 난민 협약과 유럽 인권법과 충돌하게 된다. 또한 난민협약은 강제 송환 금지가 원칙이다. 지난해 영국 해협을 건넌 30여 명을 르완다로 강제 추방하는 비행기를 이륙 직전에 멈춰 세운 유럽 인권 재판소의 결정은 이 맥락에 있다.  

웰비 대주교는 "영국이 이들 모두를 받을 수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고 전제한 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국이 "장기적이고 국제적" 시각을 견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기서 장기적이란 가뭄, 폭염, 홍수 등 기후 변화로 발생할 이주자 증가 문제다. IPCC(Intergovernmental Panel of Climate Change)에 따르면 2050년까지 8억 명의 난민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영국 국교회 수장이자 상원의원인 저스틴 웰비 대주교. 브래버먼의 불법이주법안을 두고 "고립주의" 법안이라고 공개 비판했다. ⓒ 연합뉴스

 
국제적이란 영국의 이번 결정이 국제 사회에 끼칠 파장이다. 그는 "(영국의 정책이) 난민을 보호하는 국제 시스템의 몰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유엔 난민기구의 우려를 인용했다. 브래버먼의 법안을 "도덕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고 정치적으로도 비현실적이다"고 말한 웰비 대주교는 "이것이 우리가 원하는 세상인가?"라고 되물었다.

명백한 사실

이주자 논쟁에 대한 영국 사회의 선택은 내년 총선이라 미리 결론을 단정 짓기는 어렵다. 이 논의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자본, 상품, 노동의 자유로운 이동을 추구했던 신자유주의 중 노동 영역이 본격적 조정 과정에 들어갔다는 사실이다.

아직까지 분명한 입장을 보이지 않는 쪽은 영국 노동당이다. 보수당이 노동에 약하다면, 노동당은 애국, 전통, 가족주의에 취약하다. 노동당의 고민을 엿볼 수 있는 통로가 미국 바이든 대통령이다. 현재 영국 보수당과 미국 공화당이 국가 보수주의로 연결되어 있다면 노동당과 민주당은 그린 뉴딜을 공유하고 있다.

때마침 5월 11일  코로나19를 이유로 남미에서 올라오는 이들을 추방했던 트럼프 행정부의 Title 42가 종료되었다. 미국으로 망명 신청을 할 수 있다는 기대감에 텍사스 국경 주변으로 남미 사람들이 몰려 들었다. 미국 이야기는 다음 글에서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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