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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교실에 '깍두기 김치교실' 만드니 인기 만점, 상도 받았어요

문 닫은 학교가 마을 사랑방으로... 페교 활용 모범사례로 꼽히는 울산 울주 '땡땡마을'

등록 2023.06.04 19:53수정 2023.06.04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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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울주 땡땡마을 ⓒ 월간 옥이네

 
마을에서 학교는 단순히 학생만을 위한 장소가 아니었다. 마을 사람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으고, 손수 벽돌과 흙을 나르며 건물을 세우는 데 힘을 보탠 역사가 학교의 반석이 됐다. 마을 축제가 있을 때면 학교 역시 시끌벅적하게 울렸고, 운동장과 체육관은 달밤의 운동 공간으로 톡톡히 활약했다. 교육 공간을 넘어 마을 공동체의 구심이던 학교는, 그러나 이제 텅 빈 채로 남겨졌다.

대청댐 건설로 인한 수몰과 이촌향도 바람을 타고 충북 옥천 군내 학교도 여럿 문을 닫았다. 1982년도 이후 문을 닫은 학교는 모두 17곳으로 전체 학교수(39개교)의 절반에 가깝다. 오늘날 옥천의 학교 수는 22개교로 10년 전과 동일하나, 학생 수는 2014년 5117명에서 현재 3716명으로 줄었다. 무려 30%에 가까운 감소 폭을 고려한다면 마을에 생긴 빈자리는 단순히 절반의 학교가 사라진 것 그 이상이다.

폐교는 옥천만의 문제가 아니다. 교육부에 따르면 2018년부터 2022년까지, 4년간 전국 144교가 문을 닫았다. 그중 전라남도가 가장 많이 폐교(23개교)했고, 그 뒤를 이어 경상북도(21개교), 충청북도와 경상남도가 나란히 18개교를 기록했다(2022년 3월 기준). 

과거 학교 공간 건립에 마을 공동체 역량이 집중돼온 만큼 학교는 지역사회에서 중요한 공공자원 중 하나이다. 공간 건립을 넘어 마을의 대소사가 학교 담장을 넘나들던 때, 자연스레 학교는 마을의 구심이었고 마을의 보물이었다.

이러한 맥락을 가진 학교가 문을 닫은 다음, 마을의 쇠락과 함께 '남은 공간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대부분의 지역사회가 품은 공통의 과제가 되고 있다. 농촌학교 통폐합 정책이 실행된 이후, 1990년대부터 시작된 폐교 활용방안 논의가 30년이 흐른 오늘날까지도 여전하다는 사실은 이것이 얼마나 어려운 과제인지를 짐작하게 한다.

이런 열악한 상황에서도 폐교를 다시 마을 공동체의 중심으로 불러온 사례가 눈길을 끈다. 울산광역시 울주군 상북면에 위치한 울산 교육공동체거점센터, 통칭 '울주 땡땡(00)마을(이하 땡땡마을)'이다.

울산시교육청이 마을교육공동체 활성화를 목표로 건립한 '울산마을교육공동체거점센터 - 땡땡마을'은 주민들의 역량을 모아낸 지역 어린이, 청소년을 위한 교육·생활공동체 활동의 선진 사례일뿐 아니라 폐교 활용의 모범 예시로 꼽힌다. 2021년에는 국무조정실이 주관한 '생활SOC 공모전'에서 폐교를 활용한 교육·생활공동체 공간으로 국무총리상(대상)을 수상한 바 있다.


자연스럽게, 시골스럽게 하는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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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광역시 울주군 상북면 궁근정리에 위치한 궁근정초등학교는 2016년 85년의 역사를 뒤로하고 문을 닫았다. 그로부터 3년 뒤, 오랜 시간 상북면을 지켜온 궁근정초등학교는 '땡땡마을'이라는 새 이름을 입고 다시 태어났다. ⓒ 월간 옥이네

 
마을 뒤편 가지산의 쌀바위 전설, 짚으로 새끼를 꼬고 줄넘기를 하는 방법... 이런 이야기를 요즘 어디서 들을 수 있을까? 바로 땡땡마을 '할배쌤'들이 진행하는 '옛날옛적애(愛)' 교실에서다.

울산광역시 울주군 상북면 궁근정리에 위치한 궁근정초등학교는 2016년 85년의 역사를 뒤로하고 문을 닫았다. 그로부터 3년 뒤, 오랜 시간 상북면을 지켜온 궁근정초등학교는 '땡땡마을'이라는 새 이름을 입고 다시 태어났다.

할배쌤이 들려주는 '옛날옛적애 교실'이나 할매쌤과 함께하는 '깍두기 김치교실', 의식주에 관한 마을의 지혜를 배우는 '마을살이 학교' 등. 조금은 낯선 주제에 머뭇거리던 수강생들도 막상 수업이 시작되면 활동에 푹 빠지고 만다.

이렇게 다채로운 교실 운영이 가능했던 데에는 적극적인 지역민의 참여가 있었다. 땡땡마을 김미진 운영실장도 그런 주민 가운데 하나. 마을에서 교육공동체 활동을 하던 활동가이자 상북면의 20년 차 주민이다.

"올해 활동하는 '마을 교사' 34명 중 반 이상이 지역 주민이에요. 상북면(땡땡마을 소재지)에서 18명, 언양읍(상북면 인근 지역)에서 6명이 참여하고 계시죠. 특히 청소년자치배움터에서 지역 청소년들과 관계 맺으며 자치활동을 돕고, 정기 수업을 진행하는 마을 교사인 '길벗 교사' 다섯 분은 모두 상북의 청년들이고요."

마을 교사 외에도 지역민의 참여로 만들어지는 교실들이 있다. 특히 '누구나00(땡땡)교실'에서는 특별한 강의 경험이 없는 지역민도 작은 재능 하나만으로 선생님이 될 수 있다. 누군가 뜨개질을 잘 한다는 소문이 들려오면 직접 연락해 강사 제안을 하기도, 수업을 받으러 온 주민이 '나도 이런 거 할 줄 아는데'라며 배움의 장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이어진다. 

"물론 수업의 전문성과 체계성에서 전문가를 따라잡을 순 없겠지요. 그렇지만 마을 사람들이 마을 자원을 통해서, 마을 사람에 의해서, 그리고 결국은 자신과 마을을 위해서 서로 가르치고 배울 수 있도록 돕는 게 땡땡마을의 역할이에요." 

김미진 운영실장의 말처럼 강의 경험이 없는 주민도 자신의 지식과 재능을 나눌 수 있는 곳이 땡땡마을이다. 체계적인 수업 진행을 위해 땡땡마을 상주직원과 마을 교사들이 수업 계획을 돕는다. 이렇게 만들어진 '주민 주도' 활동은, 교실에서 또 다른 이웃을 만나며 더 나은 교실을 만들어간다. 유연한 구조와 적극적인 지원이 있기에 땡땡마을은 조금 삐걱거리더라도 '시골스럽게' 서로 배우는 경험을 쌓는 중이다.

땡땡마을의 탄생설화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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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울주 땡땡마을 내부 모습 ⓒ 월간 옥이네

 
땡땡마을이 생기기 전 궁근정 초등학교 자리에는 울산교육청이 운영하는 다담은갤러리가 운영되고 있었다. 입시교육에 시달리는 학생들을 위해 미술체험·전시활동을 제공하는 공간이었지만 프로그램이 예술 분야에 한정돼있는 데다 운영 시간 역시 제한적이라 지역 주민들이 이용하기에는 어려움이 따랐다.

폐교가 좀 더 많은 사람을 품을 순 없을까. 이런 고민은 당시 상북면에서 교육공동체 활동을 하던 '상북면교육공동체 판'을 주축으로 깊어졌고, 이들은 마을 어린이와 청소년, 주민이 함께할 수 있는 교육공동체거점센터 건립을 교육청에 제안하게 된다. 당시 교육감으로 있던 고 노옥희 교육감도 마을교육공동체 활성화를 위해 폐교를 활용한 교육공동체센터 건립을 주요한 정책사업으로 계획하고 있었다. 결국 마을과 교육청의 의지가 만나 땡땡마을의 탄생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물론 설립 과정이 원활했던 것만은 아니다. 시설 구축을 위해 요청한 예산이 시의회를 통과하는 데 진통을 겪어야 했다. 당시 시의회는 청소년은 물론이고 전체 인구가 적은 울주군, 상북면에 많은 예산을 투입해 새 기관을 설립하는 것이 적절치 않다는 입장이었는데, 지역주민들이 의회에 인구가 적다는 이유로 교육 인프라에 대한 투자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결국 다시 인구가 감소하는 악순환이 이어진다며 땡땡마을 설립에 대한 적극적인 의지를 표현했다. 

땡땡마을 설립 논의부터 함께 한 김미진 운영실장은 "지역을 살리기 위해서는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내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상북면 주민들의 서명을 모으고, 자본과 효율의 관점에서 벗어나 지역균형개발에 더 마음을 써달라고 의회를 설득해 땡땡마을 예산을 얻어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어 김미진 운영실장은 폐교 활용이 어느 한 축의 의지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음을 강조했다. 지역민이 원해도 교육청과 지자체가 수용하지 않으면 실행할 수 없으며, 교육청 또는 지자체가 원해도 지역민이 적극적이지 않으면 유명무실한 공간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 결국 폐교가 마을 공동체로 재편입되기 위해서는 지역민과 교육청, 그리고 지자체 간의 협력이 필수다.

여전히 남아있는 과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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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울주 땡땡마을 활동 모습 ⓒ 월간 옥이네

 
땡땡마을은 울산시교육청이 운영·지원하는 곳으로 상북면 주민만을 위한 공간은 아니다. 그렇다 보니, 초기 땡땡마을에 대한 상북면 주민들의 부정적인 시선도 존재했다. '우리' 학교를 빼앗겼다는 서운함이 주민들 사이에 흘렀던 것이다. 

땡땡마을은 이런 주민들의 마음까지 품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가고 있다. 가령 마을에 잔치가 있는 날은 땡땡마을 요리실을 마을 공유 부엌으로 개방해 사용할 수 있도록 한다거나, 상북면 주민들만의 전용공간인 '마을자치실'을 만들고, 수업이 없는 시간대에 탁구 연습실 등을 개방해 주민들이 언제든 드나들며 활용할 수 있게끔 하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주민들과의 접점을 만들어 가고 있다.

연령과 세대를 넘어 모든 지역 주민을 위한 공간이라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지금은 상당수 주민들이 땡땡마을의 존재를 반긴다. 교육공동체가 어린이 교육에도, 성인 주민들의 여가생활에도 도움이 된다는 이해가 높아진 덕분이다.

인구 감소와 지역 소멸 등으로 마을의 지속가능성이 의심받는 이때, 교육공동체로 다시 태어난 폐교는 마을의 새로운 가능성을 도모한다. 교육 때문에 지역을 떠나는 현 상황을 넋 놓고 바라만 보고 있을 수만은 없는 법. 지역의 특성을 살려 지역을 다시 교육 문화의 중심으로 만든다는 새로운 상상의 그림을 그릴 때다.

김미진 운영실장은 "공교육을 담당하는 학교는 문을 닫았지만, 마을의 품속으로 더 크게, 더 깊게 들어가는 학교가 된다면 좋겠다"며 "땡땡마을은 어린이부터 어르신까지 다양한 연령대가 함께하고, 더 다양하고 폭넓게 공간을 활용하고, 학생들이 학교를 마치고 지역민들이 생업을 마친 저녁과 주말에도 이용할 수 있도록 더 긴 시간 동안 개방되어 있는, '학교보다 더 큰 학교'로서의 역할을 그리고 있다"고 전했다.

[다음기사]
공간 리모델링, VR 서비스... 폐교 활용 나선 지역들 https://omn.kr/2454z


월간옥이네 통권 71호(2023년 5월호)
글 이혜빈‧사진 박누리, 땡땡마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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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교 #월간 옥이네 #땡땡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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