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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급 39인과 '대한독립선언서' 발표

[김삼웅의 인물열전 - 암흑기의 선각 석주 이상룡 평전 25] 일제의 혹독한 탄압으로 큰 시련을 겪어야 했다

등록 2023.06.06 13:52수정 2023.06.06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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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독립선언서 만주에서 발표된 대한독립선언서. 독립군의 궐기를 촉구하고 있다. ⓒ 독립기념관

 
경술국치로 나라가 망하고 국내에서는 활동이 어렵게 되자 우국지사들은 국외로 빠져나갔다. 여전히 국내에 남아 항일운동을 벌인 분들도 있었으나 1911년 1월 신민회사건(105인 사건)을 필두로 일제의 혹독한 탄압으로 큰 시련을 겪어야 했다. 

일제는 1912년 3월 조선민사령·형사령·태행령·감옥령을 잇따라 공포하면서 민족주의운동을 짓밟았다. 임병찬·이세영 등의 독립의군부, 채기중 등의 광복단, 윤상태 등의 조선국권회복단, 채응언 등의 대한광복회가 힘겹게 투쟁하다가 대부분 붙잡혀 사형당하였다.

지사들이 해외에서 독립운동의 둥지를 튼 것은 대개 4개 지역이 중심을 이루었다.

"연해주의 성명회(聲明會)와 그 이념을 계승한 권업회(勸業會), 북간도의 간민교육회(墾民敎育會)와 그를 발전시킨 간민회(墾民會), 서간도의 경학사와 그를 이은 부민회, 그 밖의 북만주의 신한국민회 등은 그러한 결사 가운데 유명한 것이었다. 또한 하와이와 미주의 한인사회를 기반으로 성립된 공립협회(公立協會)와 대동보국회(大同保國會) 및 그 양자를 발전시키고  대한인국민회(大韓人國民會) 등도 중요한 것들이었다." (주석 1)

이들 그룹과는 달리 일찍부터 국제정치학적 또는 지정학적 중요성을 간파하고 중국 상하이를 거점으로 삼은 그룹이 있었다. 당시 상하이는 최신 사조를 접할 수 있는 국제도시이고, 신해혁명이 중심지였으며 서구 열강의 조차지가 있어서 정치활동이 비교적 자유로웠다. 식민지에서 고통 받는 조선청년들에게 학문과 독립운동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동경의 대상이었다. 

김규식·박은식·신채호·홍명희·문일평·조소앙 등이 동제사와 박달학원을 차리고 독립운동의 기지를 닦았다.

국제정세는 크게 요동치고 있었다. 1914년 7월 28일 시작된 제1차 세계대전이 1918년 11월 11일 종전되면서 전승국과 패전국 사이에 강화회의가 열리게 되었다. 일본은 중국에 있어 이권 확대를 노리고 영일동맹을 내세워 독일에 선전포고를 하고, 연합국이 승리하면서 중국 산동성의 독일 이권을 그대로 물려받고 남양제도의 위임통치령을 얻었다. 


한편 러시아에서는 1917년 10월 혁명으로 레닌을 수반으로 하는 소비에트사회주의 정권이 수립되었다. 소비에트정부는 지주의 소유지를 국유화하고 은행·산업의 노동자 관리에 착수했으며 독일과의 단독강화에 의해 평화체제를 갖추었다. 러시아 신정부는 권내의 다민족을 포용한 채로 자결권을 승인하고, 민족자결 원칙을 제시하면서 식민지 국가의 민족해방 투쟁을 지원한다고 발표하였다.

미국 대통령 윌슨은 1918년 1월 의회에서 <14개조 평화원칙>을 공표했다. 그 내용은 ① 강화조약의 공개와 비밀외교의 폐지 ② 공해(公海)의 자유 ③ 공정한 국제통상의 확립 ④ 군비축소 ⑤ 식민지 문제의 공정한 해결 ⑥ 프로이선으로부터의 철군과 러시아의 정치변화에 대한 불간섭 ⑦ 벨기에의 주권회복 ⑧ 알자스 로렌의 프랑스 반환 ⑨ 이탈리아 국경의 민족문제 자결 ⑩ 오스트리아 - 헝가리 제국 내의 여러 민족의 자결 ⑪ 발칸제국의 민족적 독립보장 ⑫ 터키제국 지배하의 여러 민족의 자치 ⑬ 폴란드의 재건 ⑭ 국제연맹의 창설 등이다. 

각 민족은 그 정치적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권리를 가져야 하며 외부로부터 간섭을 허용하지 않는다고 하는 민족자결주의는 19세기 내셔널리즘의 고양과 함께 약소민족의 자주독립사상으로 널리 인식되었다.

제1차대전 결과 독일·터키·오스트리아 제국이 붕괴되고, 그 판도에 있었던 종속민족들의 처리문제가 시급한 국제사회의 현안으로 떠올랐다. 윌슨의 '14개조 원칙'은 이같은 상황에서 제기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노령과 만주지방의 독립운동이 러시아, 중국 정부의 강압으로 봉쇄되었다. 이에 따라 권업회, 대한광복군정부, 간민회 등이 해체되고, 심지어 노령의 독립운동 지도자들이 감금되거나 축출되기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노령에 있던 이상설은 중국으로 건너와 신규식·박은식 등과 1915년에 신한혁명당을 결성하는 등 독립운동의 새로운 길을 모색하였다. 

국제적으로는 러시아에서 2월혁명이 일어나고, 핀란드와 폴란드가 독립을 선언하며 임시정부를 수립하고 있어 같은 처지의 약소민족을 고무하였다. 제1차 세계대전은 미국의 참전으로 일본을 포함한 연합군이 우세해지고, 중국도 연합국에 기울어져갔다. 독립운동도 전환되어야 할 처지가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신해혁명에 참가했던 신규식을 중심으로 <대동단결선언>이 나오게 되고, 조소앙이 역사적 문건을 집필하였다.


주석
1> 윤병석, <독립군사>, 32쪽, 지식산업사, 1990.
덧붙이는 글 [김삼웅의 인물열전 - 암흑기의 선각 석주 이상룡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이상룡 #석주이상룡평전 #이상룡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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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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