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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 역행하는 윤 정부의 가치 외교, 위험하다

[진단] '디리스킹' 강조한 G7과 다른 길... 북·중·러 적으로 돌리는 이분법 벗어나야

등록 2023.06.01 13:24수정 2023.06.02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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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 리시 수낙 영국 총리, 우르줄라 폰 데어 라이엔 유럽연합 집행위원회 위원장, 샤를 미셸 유럽 이사회 의장, 조르지아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 저스틴 트뤼도 캐나다 총리,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5월 19일 일본 히로시마에서 열린 G7 정상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 AP=연합뉴스

 
최근 일본 히로시마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5월 19일~21일)에서 가장 눈길을 사로잡은 단어는 뭐니 뭐니 해도 '디-리스킹(de-risking, 위험 감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어로 40페이지나 되는 긴 공동성명의 전문엔 7개국이 취할 여섯 가지 조치가 차례로 적혀 있습니다. 그중 세 번째가 대중국 정책과 관련한 내용인데, 다음과 같습니다.
 
"디커플링이 아니라, 다양화, 파트너십의 심화 및 디리스킹에 기초한 경제적 회복력 및 경제 안보에 대한 우리의 접근에 관해 협조한다." (coordinate our approach to resilience and economic security that is based on diversifying and deepening partnerships and de-risking, not de-coupling.)
 
디커플링에서 디리스킹, 전면 차단에서 사안별 대응

이 표현은 서방 국가의 대중국정책 기조가 이 회의를 계기로 디-커플링(관계 단절)에서 디-리스킹으로 조정될 것임을 의미합니다. 쉽게 말해, 그들이 중국과 경제 관계를 완전하게 단절하기 어려운 현실을 인정한 것입니다. 전면적인 차단에서 '사안별 차등'으로 자세를 바꾸겠다고 선언한 것이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이런 기조의 변화를 주도한 것은 유럽연합이지만, 미국도 히로시마 정상회의 전부터 디-커플링 대신 디-리스킹이라는 말을 쓰면서 새 흐름에 올라탔습니다.

마침 히로시마 정상회의 전후로 미국과 중국의 고위 관리 접촉도 활발해지고 있습니다. 정상회의 직전인 5월 10일~11일엔 두 나라의 외교 최고 책임자인 제이크 설리반 국가안보보좌관과 왕이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중앙 외사판공실 주임)이 오스트리아 빈에서 만나 전략적 소통을 유지하기로 합의했습니다.

정상회의 이후에는 왕원타오 중국 상무부장이 5월 25일 미국을 방문해 지나 러몬드 상무장관과 회담했습니다. 용어의 변경과 몇 번의 회담으로 지난 2월 중국의 정찰 풍선 사건 이후 꽁꽁 얼어붙었던 미·중 관계가 완전히 풀리기는 쉽지 않겠지만, 뭔가 해빙 쪽으로 움직이고 있는 걸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이에 반해 윤석열 정권의 외교는, 북한과 중국, 러시아를 적 또는 악의 세력으로 대하는 선악 이분법의 '가치 외교' '이념 외교'의 틀에 굳게 갇혀 있습니다. '한미일 안보동맹의 강화'가 윤 정권 1년의 최대 치적이라는 김대기 대통령 비서실장의 공언에서 그런 모습을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러시아 제재, 아시아 나라는 한국·일본·대만·싱가포르 4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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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5월 29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한-태평양도서국 정상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 대통령실 제공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관련한 세계 각국의 대응도 두부모를 칼로 베듯 명쾌하게 나눠지지 않습니다. 지난해 10월 유엔총회에서 실시된 러시아 비난 결의안 표결에서 193개 유엔 전 회원국의 3/4 정도인 143개국이 찬성표를 던졌습니다. 이 통계만 보면 전 세계 국가가 단일대오를 이뤄 러시아의 응징에 나선 듯합니다.


하지만 표결에 찬성하고 제재에는 동참하지 않고 있는 나라가 훨씬 많습니다. 결의안에 찬성한 나라의 1/3가량인 40개국 정도만 제재에 가담하고 있습니다. 최근 <삼프로TV>의 '신의 대화'에 출연한 이문영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러시아 제재에 가담하고 있는 나라는 나토 회원국에 호주·뉴질랜드를 포함한 몇 나라를 더한 정도입니다.

아시아에서는 우리나라와 일본, 대만, 싱가포르 네 나라뿐입니다. '글로벌 사우스'로 불리는 아시아, 중동, 남미, 아프리카의 대다수 국가는 제재에 동참하지 않고 있습니다. 쿼드(Quad) 참가국 인도, 미국과 동맹인 필리핀, 심지어 나토 회원국인 튀르키예와 헝가리도 발을 빼고 있습니다.

이런 국제사회 분위기와 달리, 윤 정권은 이념과 가치를 앞세운 채 어느 나라보다 강하게 러시아 제재와 비난에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대다수 나라가 실리외교를 펴고 있는 속에서 유별난 행보입니다. 그래도 뒷감당할 수 있다면 다행이지만, 너무 버거운 상대에 객기를 부리는 것 같아 걱정이 큽니다.

더구나 세계정세는 윤 정권이 생각하듯 미국 중심의 서방 세계와 중국-러시아 중심의 양극 체제, 즉 신냉전의 방향으로 전개되지 않을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글로벌 사우스의 태도에서 볼 수 있듯이 다수 나라가 이념보다 실리를 추구하는 다극화 경향이 세를 얻고 있습니다. 시대 흐름에 역류하는 윤 정권의 가치 외교가 시련에 부딪힐 확률도 그만큼 높다는 얘기입니다.

4년 5개월 최장기 남북대화 중단... 북일 접촉 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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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5월 31일 오전 6시29분께 평안북도 동창리 일대에서 남쪽 방향으로 북한이 주장하는 우주발사체를 발사했다고 합동참모본부가 밝혔다. 이날 오전 서울역 대합실에 시민들이 발사 소식을 전하는 뉴스를 시청하고 있다 ⓒ 연합뉴스

 
그래도 중국-러시아는 안보의 긴급성 면에서 북한보다는 뒷순위입니다. 한반도에서 무력 충돌이 일어난다면, 어떤 경우든 남북이 먼저 부딪힐 수밖에 없는 구조에 있습니다. 북한의 도발 억제와 함께 북한과 평화롭게 지내기가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이유입니다.

그러나 윤 정권은, 전임 문재인 정권의 대북정책이 북한에 굴종적으로 끌려다닌 '가짜 평화' 정책이라고 비난하며 대화 없는 대결·억지 정책으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평화를 어떻게 가짜와 진짜로 나눌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확실한 것은 윤 정권이 추구하는 '진짜 평화' 정책의 결과가 더욱 불안하고 위험한 한반도로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단적인 예로, 1971년 남북대화가 시작된 이래 최장기 대화 부재 상태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제까지는 전두환 정권 시절인 1980년부터 1984년 4월까지 3년 8개월이 남북대화 최장기 단절 기록이었습니다. 심지어 이때는 1983년 10월 9일 아웅산 사건이 일어났는데도 6개월 뒤 남북대화가 이뤄졌었습니다.

지금은 2018년 12월 14일 남북 체육회담 이후 무려 4년 5개월 이상 대화 중단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4월 7일부터는 최소한의 소통 창구 노릇을 하던 남북통신연락선마저 끊겼습니다. 북한이 윤 정권 1년 동안 쏜 탄도 미사일(총 30회 74발)이, 문 정부 5년 동안(총 43회, 63발)보다 많다는 사실도, 윤 정권 이후 더욱 위험해진 남북 관계의 단면을 잘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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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운데)가 5월 31일 수요일 북한의 발사 보고를 받은 후 도쿄의 집무실에 도착하고 있다. ⓒ 교도통신=연합뉴스

  
남북 사이의 대화 단절 속에서, 최근 북한과 일본이 급속히 접근하는 심상치 않은 움직임이 일고 있습니다. 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5월 27일 북일 정상회담 조기 실현을 위한 고위급 회담 추진 의사를 밝히자, 북한의 박상길 외무성 부장이 5월 29일 '마다할 이유가 없다'는 화답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그리고 당일 새벽에는 우리나라를 건너뛴 채 일본에 인공위성 발사계획을 통고해줬습니다. 강경 외골수로만 나가다가 북한과 대화에서도 지붕만 쳐다보는 꼴이 될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외교의 궁극적 목적은 국민이 편안한 삶을 살도록 평화롭고 안정된 외부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과연 윤 정권의 외교 1년은 이런 목적을 얼마나 달성했을까요.

많은 사람이 1년 전보다 더욱 위험과 불안을 느끼고 있다면, 윤 정권의 외교 당국자들이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입니다. 이제라도 머뭇거릴 것 없이 세상의 흐름에 역행하지 않으면서 국리민복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외교정책을 바꿔야 한다고 봅니다. 때를 놓치면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합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시민언론 민들레>에도 실립니다.
#윤석열 외교 #다극화 #디리스킹 #대러시아제재 #남북대화 최장기 단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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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논설위원실장과 오사카총영사를 지낸 '기자 출신 외교관' '외교관 경험의 저널리스트'로 외교 및 국제 문제 평론가, 미디어 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한일관계를 비롯한 국제 이슈와 미디어 분야 외에도 정치, 사회, 문화, 스포츠 등 다방면에 관심이 많다. 1인 독립 저널리스트를 자임하며 온라인 공간에 활발하게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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