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6.05 18:21최종 업데이트 23.06.05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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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27년 간 종사한 기자생활을 끝내고 지난해 9월부터 노가다를 시작했습니다. 말로만 듣고, 눈으로만 스쳐지나가던 막노동을 하며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인생의 희로애락을 몸소 체득하고 있습니다. 몇 차례에 걸쳐 직접 겪은 땀의 현장을 전합니다.[기자말]

필자가 출근하기 전 현장 앞에서 찍은 모습. ⓒ 나재필


지난 2022년 9월 17일, 막노동을 처음 시작했을 때만 해도 며칠 하다가 그만둘 줄 알았다. 안 해본 일이거니와 체력적 한계 등을 고려하니 솔직히 자신이 없었다. 그러나 가을, 겨울이 지나고 어느덧 봄 중턱까지 왔으니 잘 견뎌왔다고 생각한다.

중간에 고비가 있었지만, 악으로 깡으로 버텼다. 몸이 아파도, 술에 찌들어도 240일, 5760시간 중 단 하루만 결근할 정도로 열심히 다녔다. 내 노동이 대단한 건 아니었다. 대한민국 모든 가장들, 청년, 아들·딸들이라면 누구나 하고 있는 밥벌이의 한 조각에 불과하다.


막노동하면서 가장 큰 변화는 막일에 대한 편견과 오해, 비뚤어진 시선을 내 스스로 고쳤다는 점이다. 내 마음에 철갑을 두르고 스스로 철창에 갇혀 바라봤던 노동자들의 힘줄을 직접 목도하면서 많이 반성했다. 그들은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술에 절어 대충 사는 막장인생이 아니라, 하루하루 피와 땀으로 미래를 다지는 불굴의 역군이라는 걸 깨달았다.

이들 노동자야말로 대한민국 성장드라이브 시대인 지난 1960년대부터 1990년 때까지 30여 년간 경제성장 핵심동력으로서 일등공신 역할을 해 오지 않았던가. 나라의 뼈대를 세우고, 부흥의 기틀을 잡은 주역이 건설노동자들이다.

생사람 잡는 악플, 실체를 알았다

사람들은 막노동판을 무시만 했지 실상은 잘 모르고 있다. 실제 그 속에서 밥벌이는 어떻게 하는지, 그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관심도 없고 알려고도 안 한다. 그저 답습처럼 폄훼하고 하대한다. 이런 일련의 학습효과가 노동의 가치를 떨어뜨리고 있다. 새벽부터 밤늦은 시간까지 그 누구보다도 더 열심히 사는 노동자들은 우리의 이웃이자 가족이다.

그동안 흰 와이셔츠를 다려 입고 폼 나게 기자로 살아왔지만, 막노동으로 산 짧은 시간이 나에겐 더 값진 흔적으로 남았다. 이건 상처가 아니라 훈장 같은 것이다. 마치 아무 쓸 짝에도 없던 중년의 남자가 취업난을 이겨내고 삶의 팽팽한 현장 속으로 뛰어 들어가 쓸모를 찾은 느낌이다. 인생의 멋진 변주다.

<오마이뉴스>와의 인연이 큰 역할을 했다. 내 소소한 일상을 들어주었고, 기꺼이 활자의 공간을 용인해 줬다. 막일, 막노동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봐 주길 고대하면서 써 내려간 일기는 생각 외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기사 조회 수가 썩 괜찮았고, 독자들의 원고료 지원도 제법 됐다. 취업을 준비 중인 어느 대학생이 보내준 2000원은 눈물로도 갚지 못할 은혜였다. 20만 원, 200만 원의 가치보다 큰 마음의 빚으로 남았다. 언젠가 우연히 그 학생을 만난다면 쓴 소주 한잔이라도 나누고픈 마음이 간절하다.

각계의 사랑도 확인했다. 기사를 보고 KBS <인간극장>에서 섭외가 왔다. 20대 청년인 작가는 "중년의 생생한 경험담이 인상 깊었다"며 장문의 메시지를 보내왔다. 하지만 반도체공장 특성상 내부 촬영이 불가하고, 현장 그림을 한 컷도 찍을 수 없다는 점을 들어 정중하게 물렸다. 

출판기획자로부터 출간제의 러브콜도 받았다. '중년 취업'에 관해 관심이 많으니 함께 기획안을 만들어보자는 제안이었다. 이 또한 한창 노동을 하고 있는 입장에서 여러 제약이 있어 선뜻 응하지 못하고 후일을 기약했다. 그리 특별하지 않은 보통의 삶을 품어주려고 했던 그들의 포용력에 감사할 따름이다.

한국기자협회서 인터뷰를 진행해 지면에 실어주기도 했다. 27년간 협회 소속으로 있었지만, 퇴직 후 모든 끈이 떨어진 상황에서 관심을 보여주자 특별한 옛정을 느꼈다. 지인과 친구들의 격려도 큰 힘이 됐다. 가끔 소주와 삼겹살을 나누며 서로의 안녕을 묻곤 했는데 '일은 할 만하냐? 건강은 괜찮냐? 언제까지 할 거냐? 중년의 이직·전직은 어떠하냐'는 등 각별한 애정을 보여줬다. 모두 현직에 대한 불안과 미래에 관한 염려가 혼재된 듯했다.

악플과 선플이라는 강력한 피드백도 기억에 남는다. 중년의 나이에 막일을 도전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응원의 답글을 많이 주셨다. 그럴 때마다 다시 한번 힘을 낼 수 있었다. 다만 악플도 종종 보였다. 내 생각과 다른 것은 이해가 갔지만 내 생각이 틀리단 의견에는 살짝 기분이 상했다. '다름'과 '틀림'의 간극이 이토록 커다란 것인지도 깨달았다. 처음엔 일일이 답글을 적어 반응했으나 어느 순간부터 댓글을 의도적으로 보지 않았다. 왜 악플이 생사람을 잡게 되는지 그 느낌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특히 대기업 반도체공장 증설현장(평택·청주·아산 탕정·이천·용인·파주 등)과 일반 공사현장(전국 아파트, 건물 신·증축, 주택상가 리모델링 등) 사이의 오해가 많았다.

보통 흔히들 보는 막노동 현장 얘기인 줄 알고 "요즘 현실을 모른다. 소설을 쓰고 있다. 기레기 아니냐. 막일에 대해 왜 폄훼하냐. 현장에서 일하는 것 같지 않다"는 등등의 비난을 받기도 했다. 이런 반응을 보고 가슴이 울컥했다.

반도체공장 공사는 여러모로 다르다. 시리즈에서 밝혔듯 출퇴근하는 방식, 밥 먹고 쉬는 방식, 화장실 이용하는 방식, 일당 계산하는 방식, 심지어 일하는 방식이 일반현장과 판이하다. 공사가 조금 늦어지더라도 사람이 우선이기에 작업계획서, 안전점검일지, 인력운용계획서, 운반계획서 등 서류가 한 보따리다.

이런 현장의 차이점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기사를 오독할 수밖에 없다. 나는 휴식 중에 스마트폰 노트에 열심히 메모하면서 현장을 채록했고, 이를 휴일에 정리해서 기사로 송고했다. 팩트가 아닌 것은 없었다.

현직에 있을 때, 퇴직 후를 고민해야 한다
 

필자가 일한 SK하이닉스 반도체공장 증설현장 원경. ⓒ 나재필

 
세월은 가고 시간은 늙는다. 누구도 예외는 없다. 그런데 천천히 가지 않는다. 뒤돌아보면 어느새 이만큼 와있고, 저만치 떨어져 있던 나이가 숨 가쁘게 차오른다. 멈춰 설 줄 모르고 쉼 없이 그냥 간다. 지금이 가장 편한 시기일 수도 있는데도 절박하게 간다. 현재는 과거의 초상이고, 미래의 거울이다. 나중을 생각한다면 지금 이 순간, 내일을 준비해야 한다.

특히 나와 같은 50대 중년들은 현직에 있을 때 퇴직 후를 고민하라고 권하고 싶다. 세상 물정 모르고 아무 준비 없이 소일했다간 아름다운 황혼을 맞이할 수 없다. 인생은 내 생각과 다른 방향으로 간다.

직장생활에 목매는 사람들은 회사에 의존하고 회사에 종속돼 살다가 회사와 연이 끝나는 날에야 후회한다. 회사는 나를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회사 문을 나서는 순간 곧 잊힌다. 퇴직 후 30~40년은 결코 짧지 않다. 돈을 번 기간보다 길다. 퇴직하는 게 아니라 평생 현역으로 남을 명분을 찾아야 하는 이유다. 조연이 아니라 주연으로써의 가치 말이다. 나는 앞으로도 내가 아직 가보지 않은 일들에 대해 망설이지 않고, 도망치지 않고 도전해 볼 생각이다.

덧붙이는 말) 지금까지 시리즈에 관심과 응원을 보내준 독자 여러분께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더불어 저의 노동에 큰 힘이 되어준 동료들, 이 땅의 경제동력이 되고 있는 노동자님들에게도 경의를 표합니다. 내 삶의 소고(小考)를 대변하는 듯한 나딘 스테어의 명시 '만일 내가 다시 인생을 다시 산다면'을 옮기며 작별을 고합니다.

"만일 내가 인생을 다시 산다면
이번에는 더 많은 실수를 저지르리라.
긴장을 풀고 몸을 부드럽게 하리라.
그리고 좀 더 바보가 되리라.
매사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으며
보다 많은 기회를 붙잡으리라.
여행을 더 많이 다니고 석양을 더 자주 구경하리라.
산에도 더욱 자주 가고 강물에서 수영도 많이 하리라.
아이스크림도 많이 먹고 콩요리는 덜 먹으리라.
실제 고통은 많이 겪어도, 고통을 상상하지 않으리라.
인생을 다시 시작한다면 의미 없는 시간들을 갖지 않도록 애쓰리라.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대신
이 순간에 집중하면서 살아가리라.
초봄부터 신발을 벗어던지고 늦가을까지 맨발로 지내고
춤추는 장소에도 자주 나가리라.
회전목마도 자주 타고, 데이지 꽃도 많이 꺾으리라.
만일 내가 인생을 다시 산다면."

 

시간 날 때마다 사색을 위해 산책을 하고 있는 집 근처 유원지. ⓒ 나재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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