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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빛의 끈질김과 긴장이 묘미, 현대음악

[리뷰] 김은영 작곡 발표회 - A Day in the Light

23.06.01 17:14최종업데이트23.06.01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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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후 7중주 연주자에게 박수치고 있는 김은영 작곡가 ⓒ 박순영

 
지난 5월 30일 저녁 7시 30분, 서울 한남동 일신홀에서 열린 < 김은영 작곡 발표회 - A Day in the Light >는 그림과 조각에서 인상을 받아 만든 음악작품들이었다.

그래서인지 작곡가 김은영의 투명한 빛깔의 작품을 들으며 정신이 더 맑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마치 그림을 보는 느낌이랄까. 프로그램지 곡설명 옆에 그림들에 보이는 이미지와 악기로부터 매작품 들려오는 소리가 드라마를 가지고 청자의 감상을 이끌어가고 있었다.

NDR 북독일 방송교향악단 관현악곡 위촉, Die Welt, Die Deutsche Buhne Opernwelt 등 다수의 유력일간지와 비평지에 그녀의 인터뷰와 비평이 게재된 것과 더불어 그녀의 경력 중에 2012년에 세계 최대규모의 현대오페라 페스티발 뮌헨비엔날레에서 65분 길이의 오페라 'Mama Dolorosa'를 단독으로, 'hin und weg'를 공동발표하는 등 오페라 경력도 눈에 띈다.

이것은 그녀의 음악에 스토리텔링이 중요한 요소라는 것을 말한다. 이번 작품발표회에서도 그런 경향이 일관되었다. 회화와 조각작품에서의 빛을 공연의 주제로 하면서, 시간이 멈춰 있는 것 같은 미술작품은 음악 안으로 녹아들며 사건과 동작을 만든다.

첫 곡이었던 <황금섬>(2023)은 세계초연 작품으로 프랑스 작가 앙리 에드몽 크로스가 이에르(Hyere)섬을 그린 동명의 작품 '황금섬'을 소재로 한 클라리넷, 바이올린, 피아노의 작품이다. 다음 <먹빛 풍경 소리>(2022)는 소산 박대성 화백의 '천제연 폭포'의 장대한 산과 시원한 폭포의 물줄기, 그 앞의 꼿꼿한 작은 새의 모습을 더블 베이스(조정민)와 거문고(문숙)의 닮은 듯 다른 목질의 음색과 피치카토, 거문고 술대로 뜯거나 뉘여 문지르기도 하고, 거문고 현을 느릭 트레몰로로 긁기 등의 주법으로 표현해 여백의 미를 주었다.

<화우(花雨)>(2020) 역시 박대성 화백의 '화우'에서 영감을 받았는데, 벚꽃이 개화하고 떨어지는 모습을 가야금(이슬기)의 반복음과 플루트(승경훈)의 플라터텅잉과 빠른 아르페지오, 그 사이를 누비는 비올라(변정인)의 도약음 등으로 멋스럽게 표현했다. 세 악기가 동서양 악기 구분없이 하나의 지향이라 이질감이 없었으며, 피치카토와 글리산도 하모닉스가 투명하게 서로를 닮았다.

다음으로 <벌새: 펼쳐 놓은 움직임>(2020)을 듣고 있노라니 내가 벌새가 되어볼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날 주로 하모닉스, 글리산도, 피치카토 등 보통의 현대음악 기법이어도 그 사용은 미니멀리즘과 스펙트럴 뮤직의 중간 어디쯤으로 그 음결은 모든 작품에서 투명하였다. 작곡가가 2019년에 내셔널지오그래픽 사진전에서 보았던 풀마갈매기의 비행패턴을, 1초에 80번 넘는 날개짓과 정지비행, 후진비행으로 만들어내는 동선, 섬세하게 떨리는 깃털을 높은 D음으로 시작하는 현악사중주(박신혜, 김유경, 변정인, 윤석우)끼리의 쥬테, 고음 글리산도 하모닉스의 기법으로 펼치니 벌새의 모습과 백퍼센트 싱크로율이었다. 

만약 곡 설명을 안 보고 작품을 소리로만 들었다면 과연 '벌새'를 상상할 수 있었을까. 위 작품을 '고공비행'이라 여겼을 수도 있고, 현악기의 높은 음 때문에 '금속의 부서짐'으로 생각했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현대미술 또한 작가의 함수식으로 변환되는 결과이지 Y를 보고서 X를 맞추라고 관객에게 강요하지는 않는다. Y가 옳은가에 대해 예술이 따지는 것 또한 아니다. 

X, Y 얘기가 나왔으니, 예술에서 Y는 그 자체로 완결성, 완벽성, 매력을 가질수록 점수를 더 받는다. 그런데 그마저도 그 척도를 알지 못하는 자는 점수를 매길 수가 없으니, 현대음악 감상이 분명 누군가에게는 어려울 텐데. 이런 생각을 하면서 후반부의 첫번째 < Solitude >(2020) 비올라(변정인) 독주 작품을 감상했다. 필자도 본 적 있는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 공원에 있는 캐나다 조각가 Timothy P.Schmalz의 조각품 '노숙자 예수(Homeless Jesus)'를 소재로 했는데, 바이올린보다 저음이라 사람의 외침표현에 적합한 비올라가 피치카토 두드림 후에 더블스탑으로 강렬히 노래하는 등의 분주한 움직임에서 예수님의 고통과 소망을 느낄 수 있었다.

산조가야금 독주를 위한 <송(松)>(2022)은 박대성 화백의 작품 '송'을 인사아트센터에서 감상하고 만든 작품이라고 한다. 뿌리쪽으로 몸통이 큰 소나무를 밑에서 올려다 본 시점의 그림인데, 이를 산조가야금(이슬기)의 담대한 움직임으로 표현했다. 그 청아하면서도 힘있고, 같은 음의 반복 후에 방향성 있는 이동과 클러스터 음의 마무리와 중간의 농현이 어우러지는데, 앞 곡들에서도 느낀 바, 김은영 작곡가의 음악에는 반복 횟수나 음정관계가 정확하기에 작품전체의 주제를 향해 음악의 통일성이 있어서 이것이 힘이구나를 굉장히 느낄 수 있었다. 

<두 개의 길쌈노래>(2022)는 조선시대 화가 김홍도의 풍속도 '베짜기'와 '자리짜기'를 모티브로 했다. 1곡 '완주물레타령'에서는 저음 플루트(승경훈)의 플라터 텅잉이 효과적이며, "물레야~" 가사(소프라노 장지애)와 피아노(이은지) 반주부의 움직임이 투명하다. 쇤베르크의 '달에 홀린 삐에로' 같은 분위기도 나며, 물레같은 흥겨운 리듬이 계속된다. 2곡 '베틀노래'는 1곡보다 강렬하며, 중간에 플루트의 강한 텅잉 느낌이 좋았다. 가사에 "-쩌욱 -쩌욱 우리부모 드리겠네" 하는 성악의 가사가 와 닿았으며 클라이막스의 강조는 마치 실로 천을 직조하는 느낌이 들었다. 

이날의 대미를 장식한 < Hinterland > (2023)는 영국화가 James Abbott McNeill Whistler가 그린 녹턴 연작 중 하나인 'Nocturne in Black and Gold: The Falling Rocket'에서 자극을 받아 작곡했다. 세계초연의 7중주(플룻 승경훈, 베이스 클라리넷 정성윤, 피아노 이은지, 바이올린 박신혜, 비올라 변정인, 첼로 윤석우, 더블 베이스 조정민)로 그림의 검푸른 어둑한 수풀의 분위기가 베이스 클라리넷의에서 피아노의 저음으로 연결되는 발걸음 같은 움직임, 현악기의 고음 하모닉스의 빠른 글리산도, 플루트의 플러터 텅잉으로 음산하고 투명하게 표현된다. 곡 전체에 글리산도의 폭발이 멋지다.

공연 후 작곡가 인사와 작곡가 커튼콜을 다시 할 정도로 김은영의 작품은 현대음악인데도 충분히 감흥을 자아내고 있었다. 일신홀을 채운 관객수도 많았지만, 음으로 개념을 표현하는 어려운 일에 여러 빛깔, 빛깔의 방향과 시시각각의 움직임이 끈질김을 가지고 시간을 긴장감 있는 묘미로 가득 채울 수 있음을 작곡가 김은영은 관객에게 자신의 현대음악 작품을 통해 말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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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을 전공하고 작곡과 사운드아트 미디어 아트 분야에서 대학강의 및 작품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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