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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 차정숙' 이런 혈육은 필요없다

[TV 리뷰] JTBC 드라마 <닥터 차정숙>

23.06.02 11:25최종업데이트23.06.02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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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 드라마 <닥터 차정숙>의 한 장면. ⓒ JTBC

 
요즘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JTBC 드라마 <닥터 차정숙> 14화를 보다, 믿을 수 없는 장면에 '멘붕'이 되었다. 입양인 외과의 로이 킴(민우혁 분)이 아버지를 만나는 장면이었다. 회한으로 가득 찬 눈물바람의 상봉을 예상했던 시청자는 크게 한 방 맞았다. '핏줄'이라는 형제들이 급성 백혈병을 앓고 있는 아버지를 위해 "단도직입적으로" 골수를 이식해 달라고 요구했기 때문이다. 게다 로이의 친부는 첫 만남에서 믿을 수 없는 망언을 쏟아낸다. "그 여자(로이의 친모) 살면서 딱 하나 잘한 것이 있는데 그게 바로 일찍 죽은 거야. 자네 에미 손에 컸으면 거지꼴 못 면했을 거네"라고 저주했다. '핏줄'들의 몰염치와 비윤리에 피가 끓어올랐다.
 
드라마에서 입양인 로이 킴이 가족(?)을 만나는 장면에 충격을 받았다면, 우리 사회가 그만큼 해외입양인에 대해 터무니없는 오해를 가지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더 정확히 말해 우리가 바라는 입양인의 표상은 프랑스에 입양되어 전직 장관을 지낸 플뢰르 펠르랭같은 이일 것이다. 가난한 나라의 아이가 잘 사는 나라의 좋은 부모에 입양되어 성공했다는 신화야말로 해외입양이 저질러온 반윤리와 불법 그리고 무책임을 완벽히 상쇄시키기 때문이다.
 
하지만 많은 입양인의 과거와 현재는 플뢰르가 얼마나 비현실적인지 적시하고 있다. 대부분의 입양인은 제대로 된 정보 없이 입양된 채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끊임없이 고뇌하느라 그다지 행복하달 수 없는 삶을 살아간다. 자신이 누구인가를 알고 캐고 싶어도, 입양 부모에 대한 죄책감 때문에 감히 친부모를 찾아 나선다는 말조차 꺼내기 힘들다. 드라마에서 로이가 오랜 고민 끝에 친부모를 찾아 나선 것도 같은 이유일 것이다.
 
그렇다고 모든 입양인이 불행하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자신이 누구에게서, 어디서 태어나, 어떻게 입양되었는지를 알 수 없는 거의 모든 입양인의 심리는 자주 '납치당한 감정'에 휩싸인다. 현재 큰 문제 없이 살고 있어도 이런 불안한 심리에서 자유롭기 힘들다. 문득 길을 걷다가도 '대체 나는 왜 여기 있는 거지'라고 되묻게 된다. 책 <그 여자는 화가 난다>에서 덴마크 입양인 마야 리 랑그바드가 증언한 분열하는 감정들이다.
 
마야가 입양된 가정은 나쁜 곳은 아니었다. 부모는 자칭 진보라 자칭하는 부류였고, 마야를 입양한 것이 못 사는 나라의 곤경에 처한 여자를 구제한 용기 있는 행동이라 믿는 사람들이다. 실상은 아이까지 갖춘 정상 가족을 만들기 위해 마야가 필요했지만, 자신들의 필요를 이타성으로 포장했다. 백인인 부모는 마야를 철저히 백인으로 키우며 그의 태생을 지우려 했다. 그런다고 '나는 누구인가'를 찾는 마야의 근원 캐기를 막지는 못했다. 그는 마침내 한국에 왔고 부모를 찾았다. 입양인 중 친부모를 찾는 경우가 고작 2.7%임을 생각할 때, 마야나 로이가 부모를 찾은 것은 극히 드문 행운이다.
 
그렇다면 이 드문 행운은 행복으로 이어질까? 가족을 찾았어도 마야의 소외는 쉽게 해결되지 않았다. 오래 헤어져있던 시공간의 간극이 메워지기 어려웠고, 무엇보다 서로 가닿지 못하는 언어의 장애는 관계를 회복하는 데 큰 걸림돌이 되었다. 드라마에서 로이는 한국어를 유창하게 하지만 실상 매우 드문 경우다.
 
친부의 '망언'과 핏줄들의 몰염치
 

JTBC 드라마 <닥터 차정숙>의 한 장면. ⓒ JTBC

 
조금 더 불행했던 입양인의 예를 소개하자면, 영화 <푸른 호수>(이 영화는 당사자의 동의 없이 만들어진 영화라고 문제가 제기된 바 있다)의 실제 인물인 아담 크랩서다. 그는 미국으로 입양되었지만 입양부모가 그의 시민권 획득 절차를 방기하는 바람에 무국적자가 되어 한국으로 추방됐다. 이 믿기지 않는 현실이 해외입양인들이 처한 취약함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그는 미국에 아내와 아이가 있지만 2016년 강제 추방 당한 뒤 한국에 거주하고 있다. 그는 자신이 당한 곤경이 자신만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한국 정부와 홀트아동복지회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그의 소송에 대해 5월 16일 서울중앙지법은 홀트아동복지회가 미성년자인 국외입양인들의 보호를 제대로 하지 못한 책임을 인정해 1억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입양을 알선한 홀트아동복지회의 책임을 인정했다는 면에서 의미 있는 판결이지만, 수십 년간 이어져온 세계 1위 해외입양 국가라는 부끄러운 역사의 책임에서 국가를 비껴낸 것은 부정의하다.
 
해외입양인이 겪는 폭력과 피해 호소가 줄곧 이어졌지만 사회는 무관심했다. 왜일까. 로이의 가족 관계에서도 볼 수 있듯이, 미혼모의 혼외자에게 우리 사회는 매우 냉혹하다. 해외입양을 무조건 나쁘달 수는 없지만, 반인권적으로 행해진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해외입양인은 자신이 누구인가를 알기 위해 "작은 쪽지라도" 찾기를 원하지만, 많은 입양 기록이 조작되어 있어 진실의 한 조각을 찾는 일조차 불가능하다. 형편이 어려워 아이를 잠시 보육원에 맡긴 뒤 찾으러 간 부모는 아이가 동의 없이 입양 보내졌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들어야 했다. 아이를 입양 보내며 받는 수수료가 쏠쏠했기 때문에 이 같은 불법이 버젓이 자행되었다. 드라마에서 로이가 자신의 근원을 찾기 위해 보육원을 헤매지만 어떤 단서도 찾을 수 없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해외입양인들의 들끓는 호소가 이어지다 마침내,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가 '해외입양 과정 인권침해 사건' 조사에 나서기로 했다. 진실이 밝혀져 해외입양인이 겪는 고통이 되풀이되지 않아야 할 것이다.
 

JTBC 드라마 <닥터 차정숙>의 한 장면. ⓒ JTBC

 
로이의 망할 '핏줄' 얘기로 다시 돌아가 보자. 로이가 좋은 부모의 지원 아래 잘 성장했음은 그의 됨됨이에서 알 수 있다. 하지만 그의 좋은 인성과 성공한 커리어가 그가 빼앗긴 뿌리에 대한 대가가 될 수는 없다. 해서 로이의 친부가 그에게 "잘 컸다"며 흡족해하는 자기 기만은 끝까지 다하지 못한 양육에 대한 책임을 면피하려는 것으로 로이를 모욕하는 언사다.
 
"잘 큰" 것은 저절로 그리된 것이 아니라 로이가 낯선 곳에서 힘겹게 이룬 성취다. 친부는 로이의 죽은 엄마를 저주함으로써 자신이 정자를 제공한 일 외 로이의 태어남과 "잘 큰" 일에 어떠한 지분이 없음을 증명했다. 이는 로이로 하여금 그의 입양이 버려진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었던 사정으로 이루어졌을지도 모른다는 일말의 기대를 깡그리 무너뜨리며 그의 존엄을 훼손했다. 골수이식을 요구하는 그들의 인면수심의 극치를 보다 문득 정용준의 소설 <우리는 혈육이 아니냐>가 떠올랐다.
 
엄마를 살해한 아버지는 장기수로 감옥에 있다 신장병을 얻어 가석방된다. 아버지는 참으로 뻔뻔하게도 아들이 근무하는 병원에서 투석을 받기 시작한다. 아버지라는 것을 알게 된 후 아들은 일대 혼란을 겪지만, 아버지는 천연덕스레 "우리는 혈육이 아니냐"고 호소한다. 그러니 어쩌라는 것인가.
 
아들은 아버지를 끝까지 아버지라 부르지 않음으로써, 아버지를 타인으로 대함으로써, 아버지가 물고 늘어진 '혈육'의 끈을 잘라냈다. 그렇다면 우리의 로이는 친부가 불의하게 던진 "우리는 혈육이 아니냐"는 자기 편의적인 요구에 어떻게 응하게 될까. 드라마가 로이의 선택을 골수 증여로 이끈다면, 그의 인간적인 고뇌를 이해할 수는 있지만, '혈육'이란 가족주의에 무릎 꿇었다고 밖에 판단할 수 없다. 무엇보다 이는 한 인간이 고독과 분열과 아픔을 딛고 지켜낸 삶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나는 무례에 반대한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개인 블로그에도 게시됩니다.
<닥터 차정숙> 해외입양 해외입양인 혈육 해외입양 과정 인권침해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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