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산이 꿈꾸던 이상세계, '3대 정원' 세연정에 펼쳐지다

지친 몸 쉬려고 치밀하게 계획... 도교와 유교사상 결합하여 전통 함축

등록 2023.06.02 10:40수정 2023.06.02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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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완도신문


차경은 자연의 경치를 빌려온 것을 말한다. 흔히 조선시대의 풍류를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고 거론한다. 이것은 한국정원의 최고조를 표현함에 마땅하다. 조선시대의 정원문화를 우리가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원형이 그대로 보전되었기 때문이다. 보길도 세연정은 한국정원의 원형이 잘 나타나 있고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3대 정원 중 하나로 꼽힌다.

삼국시대부터 전해왔다는 정원문화의 바탕은 도교의 영향이 가장 크다. 이것은 한국 중국 일본 3국이 비슷하다. 세 나라의 정원은 사람을 자연의 한 부분으로 생각하여 그 속에 몰입했다. 이 문화는 한국의 정원에도 그대로 반영되어 대자연 속에서 소요유하는 사람이 자연에 대한 경험을 정원 속에 형성하는 것에 중점을 두었다고 한다.
  
정원문화를 집대성한 중국 서적인 <원야>에서도 "비록 사람이 만들었기는 하나, 마치 하늘이 자연적으로 내놓은 것같이 느끼게 한다(雖由人作 宛自天開)"며 정원의 구성 원리를 밝혔다. 인은 지세와 지형에 맞추어 정원을 꾸며 잘 활용하는 것이고, 차경은 건축물간의 적당한 배치와 자연 경관과의 조화, 그리고 주위의 것과 잘 어울리게 하여 건축물과 정원 모두가 자연의 일부분처럼 보이게 하는 것이다.

근원은 삼국이 비슷하나, 세부적으로는 양식이 조금씩 다르다. 중국은 정원 속에 대자연을 모방하여 만든다. 마치 자연의 축소판처럼 하고 기암괴석을 늘어놓는 등 많은 변화를 주어 현란하게 꾸민다. 

일본은 제약과 규칙을 두어 인공적인 형태를 유지한다. 그러나 한국은 자연 그대로를 활용하여 사람이나 건축물 모두가 자연의 일부가 되도록 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정원의 역사는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삼국시대로 보는 주장이 압도적이다. 삼국사기 기록을 토대로 연구한 자료에서는 고구려 시조인 동명성왕 6년, 신령스러운 공작이 궁궐 뜰에 모여들었다는 기록이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 장수왕 2년에 기이한 새가 왕궁에 모였다는 기록도 있다. 유리왕 3년에는 별궁을 지었다. 

이런 상황으로 볼 때 고구려는 초기부터 정원문화가 발달했고, 왕궁 건축에 이미 정원이 조성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근래에 발굴한 안학궁지(安鶴宮址)는 고구려 정원의 원형을 잘 나타내며 왕궁에는 정원을 관리하는 벼슬까지 있었다고 한다.

삼국사기 백제본기 무왕조에는 "삼월 궁궐 남쪽에 연못을 파서 이십여 리 에서 물을 끌어들여 사방에 버드나무를 심고 방장선산(方丈仙山)을 모방하여 연못 가운데에 섬을 만들었다."는 내용은 부여의 궁남지를 만든 것으로 짐작된다. 네 곳의 가장자리를 설명한 것은 연못 모양이 사각형이며 도가의 신선사상이 포함되었음을 전한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시조 박혁거세 서간조에서는 서기전 32년, 금성에 궁실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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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해이사금조에는 252년 4월, 용이 궁궐 동쪽 못에 나타나 금성 남쪽에 누워 있던 버드나무가 저절로 일어났다는 기록으로 연못의 존재를 알린다. 문무왕 14년 2월, "궁내에 연못을 파고 산을 만들고 다양한 화초를 심고 진귀한 새와 기이한 짐승을 키웠다"는 기록이 있고, 경덕왕 19년 2월, 궁중에 큰 못을 파고 궁궐 남쪽에 월정교와 춘양교 두 개의 다리를 만들었다. 

연못 가운데에 선산을 만드는 것이 두드러진 신라정원의 양식이었다.

경주의 고지도에는 황룡사와 안압지를 지나 계림을 통하여 북천에서 남천으로 흐르는 개천이 있다. 그리고 통일신라 때 포석정은 전복 모양으로 물 흐르는 도랑을 만들어 술잔을 띄워 시를 짓고 즐기던 특수한 정원이다. 중국의 유상곡지연에서 연유한 것이라고도 하고 혹자는 장보고 상단의 유통경로 영향이라고도 말한다. 

한국의 정원에서 중요한 구성 요소의 하나 중 빼 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연못이다. 일반적으로 연못을 파고 정자를 지어 연꽃을 심는다. 연못을 형성할 수 없는 지형에는 정자를 짓고 연못 대신 석지(石池)를 늘어놓아 연꽃을 키운다. 시냇물이 흐르면 적당한 곳에 정자를 지어 선조들은 '물멍'을 즐겼다. 있는 그대로를 가꾸며 억지로 꾸미지 않았다. 

모두가 자연의 순리에 순응하고 자연그대로의 삶을 살고자 하는 것에서 우리 정원의 구성 원리가 있는 것이다.

한국의 대표정원 보길도 세연정은 도교와 유교사상이 결합하여 우리네 전통을 다분히 함축하고 있다. 당쟁의 모진풍파 겪은 고산 윤선도가 지친 몸 쉬려고 치밀하게 계획한 보길도 원림에 서면 조선의 사대부가 꿈꾸던 이상세계가 끝없이 펼쳐진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완도신문에도 실렸습니다. 글쓴이는 문화예술활동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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