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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제국 몰락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 해야"

[인터뷰] 러시아 원주민 고고학자 마리아 오치르( Maria Ochir)

등록 2023.06.02 14:07수정 2023.06.02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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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 오치르 박사. 현재 베를린에 거주하며 ‘러시아의 탈제국주의-탈식민지운동’을 적극적으로 하고 있는 마리아 오치르 박사. 그는 오이라트 칼미크 공화국 출신의 고고학자로 반전집회및 소셜미디어 활동을 적극적으로 해오고있다. copyrights at Voices of nations held captive by Moscow ⓒ Voices of nations

 
"'여기에 서 있는 저는 (양심과) 달리 행동할 수 없습니다.' 천주교 종교개혁의 창시자 마틴 루터가 한 말입니다. 우리 역시 달리 행동할 수 없기 때문에 여기 서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오늘 수많은 이들이 우리 옆에 서서 러시아 제국주의에 노(NO)라고 말하고 싶어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간 러시아 제국은 너무 많은 이들에게 너무 많은 고통을 가져왔습니다. 그러나 제국의 무기 중 하나는 두려움입니다. 러시아 제국은 투옥, 고문, 독살, 살인으로 우리들을 위협해왔습니다. 그래서 아직 동참하는 이들이 많지는 않지만, 매번 참여자가 더 늘고 있습니다. 서로를 환영하고 우리와 함께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환영합시다."

'모스크바에 포로로 잡힌 민족들의 목소리 (Voices of nations held captive by Moscow)'라는 단체가 지난 5월 28일 주최한 베를린 집회에서 러시아 원주민이자 고고학자인 마리아 오치르(Maria Ochir) 박사는 이렇게 환영연설을 시작했다. 같은 날 스페인 바르셀로나와 뉴욕에서도 '러시아 탈제국주의'라는 동일한 주제의 집회가 열렸다.

국제사회는 흔히 러시아인이라면 정교회를 믿는 창백한 피부의 백인만을 연상하지만, 실제로 러시아에는 190개 이상의 많은 민족이 살고 있다. 21개 연방자치공화국과 4개 자치구에는 약 4천만명에 달하는 소수민족들이 거주하고 있고 불교, 무슬림, 기독교 신자들이 공존하며 언어 또한  튀르크 어족, 몽골 어족, 핀·우그리아 어파, 카프카스 제어로 다양하다.
  
그러나 러시아의 분쟁지역 모니터링 전문기구인 '분쟁정보팀(CIT: Conflict Intelligence Team)'의 우크라이나 전쟁 동원률 통계에 따르면 러시아내 소수 민족은 러시아 주류 민족(russki)보다 최대 70배 더 많이 동원되고 있다.

모스크바에서는 동원률이 0.2%에 불과한 반면, 공화국들의 경우는 한티 만시 14%, 아디게야 5.3%, 사하 4.7%, 아스트라한 4%, 부랴트 3,7%, 칼미크 2,2%, 다게스탄 2.6%, 투바 1.2%에 달한다. 푸틴 정권의 명백한 인종 차별은 소수민족 공동체의 분노를 불러 일으켰고, 전 세계적으로 반전 및 탈식민지화및 탈제국주의 운동을 촉발시켰다. 

예술을 활용한 원주민들의 저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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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배리아인들을 향한 제노사이드를 멈춰라” 최근 베를린에서 열렸던 러시아 원주민들의 반전집회. 한 시민이 “시배리아인들을 향한 제노사이드를 멈춰라”는 현수막을 들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 동원률 통계에 따르면 러시아내 소수 민족은 러시아 주류 백인보다 최대 70배 더 많이 동원되고 있다.?copyright @Voices of nations held captive by Moscow ⓒ Voices of nations

 
   
한편 예술을 활용한 원주민들의 저항도 존재한다. 부랴트 공화국 출신의 일러스트레이터인 세세그 직지토바(Seseg Jigjitova)는 지난달 독일 비스바덴에서 동유럽 및 중유럽 시네마를 집중 조명하는 '고이스트 영화제(GoEast)'에서 '일러스트레이터 네이티브 (Illustrators Native)'라는 전시회를 기획하기도 했다.

그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전면화되자 러시아 역사에 대한 관점이 바뀌었다고 필자에게 전했다. 그녀는 "(전후) 시베리아 원주민들에게 일어나는 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서, 러시아의 식민지배와 러시아화로 인한 원주민들의 트라우마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며 "이 전쟁 중 소수 민족에 대한 비대한 동원으로 드러난 국가 차원의 대규모 인종차별은 그간 치유되지 않았던 우리의 오래된 트라우마를 드러냈다. 지금 당장 전체 시스템을 바꿀 수는 없지만,  우리 스스로 식민지적 시선에서 벗어나기 위해 커뮤니티 내부에서부터 변화를 모색할 수는 있다고 본다"며 전시회 기획 동기를 피력했다.  

러시아의 원주민들은 러시아 당국의 잔인한 식민지배와 제국주의에 대한 자신들의 분노는 수백 년에 걸친 억압의 역사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말한다. 러시아 당국은 원주민의 천연자원 착취, 정치적 억압 이외에도, 민족언어 교육금지, 인종차별 등을 저질러왔다. 또한 주류언론이 소수민족들을 "이국적"이라며 타자화하고, "야만적인 관습"에서 벗어나 문명화되어야 하는 열등한 문화로 종종 묘사해온 것도 과도한 문화적 편견이라 비판한다.


필자는 이들의 목소리에 더 듣고 싶어 현재 베를린에 거주하며 집회와 소셜미디어 활동을 통해 '러시아의 탈제국주의-탈식민지운동'을 하고 있는 마리아 오치르 박사를 최근 서면으로 인터뷰했다. 그는 오이라트 칼미크 공화국(Oirat-Kalmykia) 출신의 고고학자로 스키타이 고고학 논문 4편의 저자이기도 하다. 아래는 관련 주제에 대한 인터뷰를 일문일답으로 요약한 내용이다.

- '러시아의 탈제국주의·탈식민지운동'을 하게된 동기가 궁금하다. 

"무엇보다도 이 끔찍한 전쟁이 발발하도록 방치한 것에 대해 제가 우크라이나 국민들 앞에서 느끼는 큰 죄책감과 수치심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지금이 수세기 동안 유라시아 대륙의 북쪽을 지배해온 러시아 제국을 종식시키고 식민지배를 받았던 이들이 해방될 수 있는 역사적인 기회라고 본다. 전쟁이 시작되었을 때, 우크라이나가 침략자를 물리치고 러시아 제국을 몰락시키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야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 러시아 제국은 초기에 어떤 과정을 겪으며 시작되었나?

"1547년까지 모스크바는 모스크바 대공국이라고 불렸는데 영토도 작고 정치적인 영향력도 미약했다. 1478년 노브고로드 공화국과 북쪽 지역을 강제합병한 후 러시아 차르국으로 이름을 바꿨고,1721년 러시아제국으로 개칭했다. 1552년 이반 뇌제(Ivan the Terrible)의 군대가 카잔 칸국의 수도를 점령했고, 4년 후 아스트라한 칸국이 정복되었다. 러시아 제국은 현재 볼가강으로 불리는 이델 강까지 동쪽으로 영토를 확장한 셈이다. 강 유역에는 추바시, 마리 엘, 타타르, 우드무르트, 바쉬키르, 칼미크, 카자흐를 포함하는 7개 공화국의 주민들이 살고 있지만, 여전히 '위대한 러시아 강'이라고 불리고 있다.

17~19세기를 거치며 시베리아, 극동, 북코카서스, 중앙아시아가 정복되었다. 수세기 역사를 통틀어 러시아 제국은 불과 칼로 정복을 이어갔고 정복지의 사람들을 노예로 삼았다. 침략을 당한 이들은 필사적으로 저항했다. 예를 들어, 러시아-부랴트 전쟁은 137년 동안 지속되었고 바쉬키르족은 수세기 동안 수많은 반란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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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랴트족 신화에 나오는 현명한 할머니의 전형적인 모습 러시아 원주민 부랴트족 신화에 나오는 현명한 할머니의 전형적인 모습. 세세그 직지토바 (Seseg Jigjitova) 일러스트레이터 작품 독일 GoEast영화제 '일러스트레이터 네이티브 (Illustrators Native)' 전시회 ⓒ Instagram @seseg_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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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랴트족의 토템동물인 민물고기 모캐 부랴트 공화국 출신의 일러스트레이터 세세그 직지토바가 부랴트 몽골 신화에서 영감을 받아 창작한 그래픽 디자인. 민물고기 모캐는 부랴트족의 토템 동물 중 하나로 바이칼 호수의 깊은 바다에 서식한다. 세세그 작가는 러시아화되가고 있는 원주민 젊은층에게 잊혀진 브랴트족의 전통문화를 일께우고 소수민족으로서의 자긍심을 고취시키기위해 인스타등 소셜미디어를 통해 대중과 소통하고 있다. 부랴트족은 샤머니즘과 티벳불교를 동시에 수용하고 있다. 독일 GoEast영화제 '일러스트레이터 네이티브 (Illustrators Native)' 전시회 ⓒ Instagram @seseg_j

 
- 오늘날 러시아 제국과 원주민과의 관계는 어떤가?

"식민지 정책은 소비에트 연방과 오늘날의 러시아에서도 계속되고있다. 연방자치공화국은 사실상 식민지나 다름없다. 공화국과 자치구의 영토는 러시아 제국 전체 면적의 75%를 차지하는데, 여기서 천연자원의 80% 이상이 채굴되고있다. (이 지역 이외의) 러시아산 석유, 가스, 다이아몬드, 금과 은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 모든 부는 사하, 야쿠트, 부랴트, 한티 만시 공화국에서 채굴되고 있다.

대규모의 산업 개발 프로젝트는 공화국 이외의 지역에서만 건설되어왔다. 이런 배경으로인해 자격을 갖춘 전문가들은 지역을 떠나고, 공화국은 산업적으로 낙후되고 경제적으로 침체되며 현지인들에게 그 모든 부담이 떠넘겨지고 있다. 모스크바는 식민지로부터 혜택을 받지만 식민지는 모스크바로부터 혜택을 받냐고 묻고싶다. 

또한 유엔 헌장에 따르면 식민지 주민들은 자결권이 주어진다. 우리 공화국들의 국경도 법적으로는 인정받지만 지속적으로 조정되어왔고 최고의 땅은 빼앗기곤했다. 러시아 당국의 인구 혼합 정책으로인해 원주민들은 자신의 공화국에서조차도 우세한 인구가 되지 못하고 있다.

아울러 우리의 전통적인 이름은 러시아식 성에 의해 왜곡되었다. 2017년 학교 교육과정에서도 토착민 민족 언어 교육이 배제되었다. 타타르 공화국은 이 결정에 반대했고, (2019년) 우드무르트 공화국에서는 교사  알베르트 라진 (Albert Razin)이 항의차원의 분신을 감행해 사망했다. 러시아 제국의 소수 민족 언어와 문화에 대한 차별은 계속되고있다. 1991년 소비에트 연방의 15개 공화국이 주권 국가가 된 것은 제국 붕괴의 시작이었는데, 제국 붕괴의 끝은 아마도 21개 연방자치공화국이 주권을 행사할 때 올 것이다."

- 푸틴 정권이 연방자치공화국의 독립성을 어떻게 악화시켰나?

"1991년 소련 해체 후 러시아 연방이라는 새로운 국가가 형성되었고 1993년 민주적이라고 여겨졌던 새로운 헌법도 채택되었다. 그러나 헌법의 조항은 결코 이행되지 않았고 이미 1994년 당시 독립했던 체첸 공화국 침공이 시작되었다. 푸틴의 통치 기간인 2005년 헌법이 개정된 이후, 각 공화국의 지도자들은 더 이상 선거에 의해 선출되지 않고, 푸틴이 직접 임명하고 있다." 
  
-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침공은 주권 국가인 우크라이나를 러시아의 식민지로 만들기 위한 제국주의 성격의 전쟁이다. 아직도 러시아 제국의 식민지에 사는 우리 이치케리야, 인구시, 오이라트 칼미크, 사하 야쿠트, 바슈키르, 부랴트, 타타르 공화국 국민들은 우크라이나인들의 영웅적인 저항이 러시아 제국으로부터의 자유, 모스크바의 명령에 따르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대로 살고자 하는 권리를 위한 투쟁이라는 것을 이해한다.

2022년 2월 24일 이후 민간인과 군인 등 무고한 우크라이나인들이 너무 많이 죽었고 많은 도시와 마을이 파괴되었다. 이 모든 것이 러시아 제국이 우크라이나를 점령하고 순종적인 식민지로 바꾸고 싶어했기 때문이다. 우리의 공동 목표는 우크라이나의 완전한 승리, 모든 영토의 반환, 배상금 부과로 침략국가 처벌, 전범 인도다."

- 러시아 제국의 붕괴가 국제사회에 도움이 된다고 보는 이유는 무엇인가?

"1991년 15개 구소련 연방 공화국이 평화로운 방식으로 주권 국가가 되면서 러시아제국의 붕괴가 시작되자 이는 서방 민주국가들에게 이익이 되었다. 소련과의 군비 경쟁은 마침내 소련이 사라졌기 때문에 끝났다. 지난 30년 동안 (대소련) 군사비 지출을 줄인 서방은 그 절감분을 평화적 목적과 시민 복지를 위해 사용할 수 있었다. (1994년 부다페스트 의정서에 따라)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카자흐스탄은 세계를 더 안전하게 만들기 위해 자발적으로 자국 영토의 핵무기 배치를 포기했다.

러시아의 연방자치공화국들이 독립하면 경제적 잠재력을 갖춘 작은 신생국이 될 것이다. 이들은 러시아처럼 핵무기로 전 세계에 군사적 위협을 가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조지아, 몰도바,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몽골과 같은 많은 주권 국가들이 마침내 강대국 이웃의 그늘에서 벗어나 탈식민화의 두 번째 단계를 달성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결국 이들 국가들이 외교 및 국내 정책에서 모스크바의 지시를 강요받지 않고 자국의 이익대로 선택할 때가 올 것이다. 유라시아 대륙은 마침내 자유롭게 숨을 쉴 것이다. 민주국가의 숫자가 전세계적으로 늘어날 것이다. 하지만 한동안 그들은 러시아의 군사적 침략의 위협과 하이브리드전쟁 속에서 그렇게 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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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군에 의해 강제로 징집되는 젋은 부랴트족 남성 우크라이나 전쟁 최전선에 총알받이로 보내지기위해 러시아 군에 의해 강제로 징집되는 젋은 부랴트족 남성을 묘사한 이미지. 러시아어로 “우리는 고기가 더 필요하다”고 씌여졌는데 여기서 고기는 총알받이의 뜻. 세세그 직지토바 (Seseg Jigjitova) 일러스트레이터 작품 ⓒ Instagram @seseg_j

 

 
#우크라이나전쟁 #러시아제국주의 #SESEGJIGJITOVA #MARIAOCHIR #마리아오치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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