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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 특권 내려놓는 게 그렇게 힘든가요?

스웨덴 국회, 5~6평 쪽방에서도 정책 생산성은 최고

등록 2023.06.04 20:57수정 2023.06.04 2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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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액의 가상자산 보유·거래 논란으로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한 김남국 의원이 5월 3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사무실을 나서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오월 마지막 날, 국회의사당 일대는 '주황 물결'로 뒤덮였다. 집회 참가자들은 극우성향 태극기부대도, '깨시민'을 자칭하는 '개딸'도 아니었다. 국회의원과 고위 공직자 특권폐지에 공감하는 시민들이었다. 참가자들은 주황색 플래카드를 들고 "특권 없는 세상"을 외쳤다.

'특권폐지 국민운동본부'는 애초 3000명으로 인간 띠를 만들어 국회의사당(2.5km)을 에워쌀 계획이었다. 법원이 불허하면서 무산됐지만 행사장 주변은 분노한 시민들로 가득했다.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전 대표 돈 봉투 전당대회 의혹에 이은 김남국 의원 코인 거래로 이어지는 정치 불신에서 비롯한 분노가 특권폐지로 불 붙은 현장이었다.

국회의원 특권은 다양하다. 터무니없이 높은 연봉 수준이 첫째다. 국회의원은 명절 휴가비와 차량 유지비를 포함해 연간 1억 5500만원을 받는다. 유급 보좌관은 9명(인턴 1명 포함)까지 둘 수 있다. 보좌관 급여는 연간 5억 2000만 원 수준이다. 국회의원 1인당 의정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매년 국민 세금 7억 700만 원이 투입되는 셈이다. 전체 국회의원 300명으로 계산하면 연간 2121억 원에 달한다.

보좌관 임면권한도 국회의원에게 있다. 여기에 우리나라에만 있는 면책특권과 불체포 특권이 더해진다. 면책특권은 국회에서 한 말과 투표에 대해서는 책임지지 않고, 또 불체포 특권은 회기 중에는 국회동의 없이 체포되지 않는 특권이다.

불체포 특권 아래서 국회의원들은 범죄 혐의가 있어도 체포되지 않을 특수한(?) 권리를 누린다. 1987년 개헌 이후 국회에 올라온 체포동의안 57건, 이 가운데 가결은 10건에 그쳤다. 10건 중 다수당 소속 의원 체포동의안 가결은 3차례에 불과했다. 소속 정당 의석수가 불체포 판단을 가르는 기준선이다.

21대 국회에서도 민주당은 이재명 대표와 노웅래 의원 체포동의안을 다수 의석으로 부결시켰다. 또 일하지 않아도 의원들은 급여를 꼬박꼬박 챙긴다. 지난해 여름 국회는 50일 이상 파행했지만 의원 300명은 단 하루만 출석하고도 월급 1,285만 원씩 받았다. 배임·횡령 혐의로 구속된 이상직 의원은 옥중에서도 수당 2,000만 원을 챙겨 국민감정에 불을 질렀다.

국회의원 특권폐지를 주장하는 목소리는 새삼스럽지 않다. 그런데도 권한을 쥔 국회의원 스스로 특권을 내려놓을 생각이 없으니 매번 무위에 그쳤다. 하지만 최근 정치 불신이 누적되면서 국민 눈높이에도 변화가 왔다. 사실 우리나라 국회의원 세비는 국제 수준에 비춰도 지나치다.


이탄희 민주당 의원은 국회의원 세비를 절반으로 줄이자고 주장했다. 이 의원은 "가구당 국민 평균소득은 6,415만원, 국회의원 세비는 1억 5500만 원으로 두 배 이상이다. 세계적으로도 과하다. 국회의원 세비가 국민 1인당 GDP의 세 배를 넘는 나라는 드물다"면서 절반으로 낮출 것을 제안했다.

불체포 특권과 면책특권을 계속 유지해야 하는지도 의문이다. <스웨덴 패러독스>를 쓴 최연혁 교수는 "한국의 민주화 지수는 세계적 수준이다. 조사기관에 따라서는 완전한 민주국가로 평가한 곳도 있다. 불체포 특권과 면책특권은 독재정권 아래서 소신 있게 의정활동을 하라고 국민들이 부여한 특권이다. 이제는 그럴 이유가 없다. 무엇이 두려워 불체포 특권과 면책특권을 고집하느냐"고 반문했다. 그럼에도 우리 국회 경쟁력은 최하위다. 2019년 OECD 회원국 의회 경쟁력 조사에서 노르웨이와 스웨덴, 스위스는 1~3위를 차지했다. 반면 한국 국회는 27개 회원국 중 26위로 사실상 꼴찌였다.

스웨덴 국회의 까다로운 잣대

<스웨덴 패러독스>는 특권 없는 스웨덴 국회 실상을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스웨덴 정치인들이 스캔들로 낙마하는 경우는 부패범죄가 아니다. 지나칠 정도로 까다로운 윤리적 잣대 때문이다. 몇 가지 사례만 보자.

1995년 사민당 소속 모나 살린 부총리는 총리 지명을 앞두고 물러났다. 법인카드와 자녀 탁아소 비용 연체가 이유였다. 2006년에는 마리아 보레우스 산업부 장관과 세실리아 실로 통상부 장관이 TV시청료를 납부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사퇴했다. 또 2006년 호칸 유홀트 사민당 대표는 의원 거주지원금을 허위 신고했다며 언론에서 문제를 제기하자 자진 사퇴했다.

이들이 물러난 건 부정부패와 비리 때문이 아니다. 특권을 인정하지 않는 국민정서를 넘지 못한 것이다. 예를 들어 스웨덴 국회는 교통수단까지 꼼꼼하게 규정하고 있다. 가장 저렴한 교통수단, 친환경 교통수단, 신속성, 안전성 순이다. 이에 따라 스톡홀름에 사는 의원들은 가장 저렴하고 친환경적인 자전거나 도보가 이동수단이다.

약 1시간 이상 떨어진 곳이라면 비행기 대신 친환경 교통인 전철을 이용해야 한다. 개인 보좌관도 없다. 보좌관 1명이 의원 3~4명을 보좌한다. 개인 보좌관이 없고 출퇴근 차량도 지원되지 않기에 전화 받는 것부터 일정 챙기기, 손님맞이, 안내까지 모든 게 의원 몫이다. 법인 카드를 잘못 사용하거나 TV 시청료 미납, 주차위반, 주택지원금을 과다 수령해 물러난 건 모두 일상생활과 관련된 사안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앞서 언급한 모나 살린 부총리가 주차위반이 잦은 이유는 자기 차로 자녀를 탁아소에 데려다 주고 출근하느라 제때 시간을 맞추지 못한 때문이다. 또 의원사무실 면적은 5~6평에 불과하다. 여의도 국회 45평에 비하면 쪽방 수준이다. 그런데도 스웨덴 의원들은 연간 평균 9.3개 법안을 제출하며 정책 생산성은 최고 수준이다.

최연혁 교수는 "특권이 아니라 가정과 자신을 희생하면서 좋은 법을 만들어 자신이 꿈꾸는 더 좋은 세상을 만들겠다는 정치인이 많은 나라일수록 경쟁력 있다"며 특권폐지 필요성을 강조했다. 일하는 국회, 존경받는 정치는 특권에 있는 게 아니라 자기희생에 있음을 스웨덴 국회에서 배운다.
 
덧붙이는 글 임병식 기자는 서울시립대학교 초빙교수(전 국회 부대변인)입니다. 이 글은 한스경제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국회특권 폐지 #불체포 특권 #스웨덴 패러독스 #특권폐지 국민운동본부 #국회의원 세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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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인문, 여행, 한일 근대사, 중남미, 중동문제에 관심이 많습니다. 중남미를 여러차례 다녀왔고 관련 서적도 꾸준히 읽고 있습니다. 미국과 이스라엘 중심의 편향된 중동 문제에는 하고 싶은 말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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