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담회 중 최경아 님(최보람 님의 고모)이 발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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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중 앞에 선 최경아씨는 참사 당일부터 직후에 어떻게 지내셨냐는 물음에 "나도 아연실색할 줄 알았다"며 차분하게 서두를 뗐다. 최경아씨는 "이태원 참사 이후 유가족들이 참사의 실상을 알리기 위해 진실버스를 타고 전국을 순회했다"며 "뉴스를 통해 전해지지 않는 부분들을 유가족들의 목소리로 직접 알리기 위해 기획한 것"이라고 전했다.
담담하게 참사 직후를 이야기해나가던 최경아씨는 희생된 최보람씨가 어떤 분이었는지 조심스럽게 묻는 말에 테이블 아래로 떨리는 손을 조용히 숨겼다. 잠시 마음을 추스른 후, 최경아씨는 "보람이는 외로운 사람이었을 것 같다"고 나직하게 말을 이었다.
최경아씨의 움직임은 부드럽고 조심스러웠으나 최보람씨를 묘사하는 목소리에서는 숨길 수 없는 여러 감정이 가득했다. "어린 시절부터 고모인 내가 보람이를 돌봐줬다"고, "그래서 외로웠을 텐데 티를 내지 않았을 것"이라고. 최보람씨를 보듬듯 천천히 말을 꺼내던 최경아씨는 최보람씨의 자취방을 정리하다 조카가 자신에게 쓴 편지를 발견했다고 말할 때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아꼈다.
10.29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과 피해자 권리 보장, 재발방지대책 마련을 위한 특별법(아래 '이태원 참사 특별법')의 제안 이유에선 10.29 이태원 참사를 '다중의 인파가 밀집할 것이 예측되는 상황에서 재난관리책임기관들이 예방, 참사 대응 및 수습 등 전방위적 관리 및 대처를 하지 못해 발생한 사회적 재난'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참사 이후 정부는 유가족의 연락처를 알려주지 않고 장례비용 지원을 느닷없이 발표하는 등 진정성 없는 태도로 일관했다. 핵심적인 고위 책임자들은 기소하지 않고 국정조사 중에는 '경찰 수사 중'을 이유로 자료를 비공개하는 등의 행위로 꼬리 자르기식 수사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이날 간담회에서 최경아씨는 "행정 각료라는 자리는 책임의 엄중함을 느껴야 하는 자리인데 참사 대응을 할 때 그것을 고려하지 않은 것 같았다"고 심정을 밝혔다. 이정민씨는 "장례를 치르고 정신이 없던 와중 뉴스로 국가 애도기간을 접했다"며 "가슴 깊이 공감하고 조심스레 다가가는 게 애도인데, 정부의 애도는 배려가 부족했다"라고 지적했다.
간담회를 진행하며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유가족들의 연대였다. 최경아씨는 국회에서 열렸던 세월호 참사 유가족 합창단의 공연을 보며 "잘못된 것들이 바뀌겠구나" 생각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유가족들이 맞이한 것은 여전히 차가운 현실과 정부의 외면이었다. 최경아씨는 "정부가 못하는 것은 국회가 해야 한다"며 "그래서 국회에서 이태원 참사 100일 추모제를 진행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 조사와 국정조사에서 유가족들은 이태원 참사 특별법의 필요성을 느꼈다. 이태원 특별법의 핵심은 이태원 참사 피해자 정의 범위 확대(희생자·유가족 외 생존자·구조자·상인 등까지, 특별법안 2조의 3), 희생자들을 기릴 수 있는 공식적인 추모 공간, 이태원 참사 특별조사위원회의 설립 촉구 등이다. 간담회 당시 유가족들은 특히 '피해자 정의 범위 확대'와 '추모 공간 마련'을 강조했다.
이정민씨는 "추모 공간은 유가족들에게 연대의 자리를 만들어 준다"며 "분향소에서 유가족들이 많은 위안과 위로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그는 녹사평역에서 시청으로 분향소를 옮길 때의 이야기를 공유했다. "녹사평역 분향소에 있을 때는 춥고 힘든 하루를 보냈"으며, "유족들이 행진하는 것을 막는다고 경찰이 세종문화회관부터 시청까지 그 일대를 전부 에워싸고 있었다"며 당시를 기억했다. 그래도 행진의 기억이 마냥 힘든 것은 아니었다고 했다. 시청 앞 진입을 막는 경찰과 대신 맞부딪혀 준 시민들 덕분에 유족들이 분향소를 설치할 수 있었다고, 그래서 힘들지 않았다고 이야기하며 이정민씨는 유가족을 지탱하는 것은 시민들의 연대라고 강조했다.
이어, 이태원 참사 특별법을 발의하게 된 배경에 대해서도 들을 수 있었다. 이정민씨는 "특별법 제정으로 보다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들고 싶다"며 "다시는 이런 참사가 발생하지 않기 위해 특별법은 꼭 필요한 절차"라고 대답했다.
특히 특별법은 일반법으로는 효력이 미치지 않는 피해자에 대한 권리 구제를 할 수 있게 규정한다. 지난 4월 20일에 발의된 이태원 참사 특별법은 참사의 진상규명을 비롯해 이태원 참사의 피해자의 권리를 보장하고 다른 참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재발방지책을 마련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간담회 중 이정민 님(이주영 님의 아버지)이 발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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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은 추모공간을 마련하고 정부에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는 등 참사에 대한 모든 사후 대처를 오롯이 직접 이끌어나가고 있다. 간담회를 준비하며 만난 유가족들은 공통적으로 국가가 져야 할 책임이 유가족에게로 이전됐다고 말했다. 이정민씨는 "대구 지하철 참사 유가족이 세월호 참사 유가족에게, 세월호 참사 유가족이 이태원 참사 유가족에게 '죄송하다'고 한다"며 "사과해야 할 것은 정부"라고 정리했다.
유가족들은 희생자들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고 도시 한복판에서 쓸쓸하게 별이 된 분들을 기억하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기억되고' 싶어 했다. 유가족의 의문을 풀기 위해 경찰 조사와 국정조사가 이뤄졌지만 지켜보는 국민에게도, 유가족에게도 만족스러운 대답을 내놓지 못했다. 간담회를 진행하며, 유족들과 대화를 나누며, 그리고 희생자들을 기억하는 기사를 읽으며 참사의 실체는 유가족들에게 '159명 사망'이라는 객관적인 지표로 나타낼 수 없는 상처가 된다는 것을 체감했다.
유가족의 "뉴스로는 가닿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 간담회에서 나눈 대화를 통해 조금은 알 수 있었다.
최경아씨와 이정민씨는 간담회 동안 '기억과 책임'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정민씨는 "미래의 대한민국을 이끌어가는 건 청년이고, 그렇기에 이태원 참사를 기억해야 한다"고, 청년들에게 "이태원 참사의 진상을 파악할 때까지 곁에서 응원과 지지를 해줬으면 한다"고 부탁했다.
사회적 참사를 기억하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렇지만 많은 시민의 기억이 중요한 이유는 기억하는 일에 수반되는 사명감뿐만 아니라, 사회적 참사는 희생자가 그 누구라도 될 수 있다는 점, 즉 근본적인 '사회 안전'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은 아직도 안전을 보장받지 못했던 피해자들을 위해, 잃어버린 시간의 실상을 알기 위해 앞장서고 있다.
이태원 특별법 제정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태원 참사 특별조사위원회가 설립되고 제대로 된 진상규명이 완수될 때까지 우리는 관심의 불씨를 꺼트려서는 안 된다. 이정민씨의 말씀대로 '더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서는 퍼즐이 맞춰질 때까지 함께 연대하고 기억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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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시간'을 찾는 사람들... "참사를 기억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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