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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많이 해주세요" 이 부부는 왜 혼인신고를 독려했을까

[인터뷰] 대전 서구청에 최초로 혼인신고서 제출한 동성 부부 밍-감자씨

등록 2023.06.06 18:31수정 2023.06.07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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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15일 낮 12시, 대전 서구청 민원실에 혼인신고 한 건이 접수됐다. 연인 사이인 1996년생 감자(활동명)씨와 1993년 밍(활동명)씨는 가정을 이루고자 했다. 지인과 친구 10여 명은 민원실까지 찾아와 꽃을 선물하며 두 사람을 축하하고 축복했다.

혼인신고서 양식 빈칸을 채워 넣기가 쉽지는 않았다. 처음 작성해 보는 서류에 잘못 기입한 부분을 여러 번 고쳐야 했다. 인터넷에 검색해 가며 신고서를 작성해 제출했다.

어렵사리 신고서를 작성해 접수했지만, 웬일인지 신고서를 접수받은 공무원도 처리하기 어려워했다. 공무원은 가정법원에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한 후 매뉴얼을 뒤져보기도 했다. 처리가 끝나는 대로 두 사람에게 전화를 드리겠다는 말을 남겼다. 공무원이 건 전화를 받고 두 사람이 서구청을 다시 찾았을 때, 그들에게 주어진 것은 '혼인관계증명서'가 아니었다.

두 사람에게 건네진 건 다름 아닌 '혼인신고 불수리' 통지서. 감자씨와 밍씨는 동성 커플이다.

2023년 5월 15일은 대전 서구청에 동성커플이 제출한 혼인신고서가 최초로 접수된 날이었다. 같은 달 31일 두 사람을 직접 만났다. 부부는 연애부터 혼인신고까지 그리고 앞으로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특별한 연애는 오해, 오히려 평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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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활동명)씨와 밍(활동명)씨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결혼을 결심하기까지 모든 과정이 여느 다른 커플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 감자


감자씨와 밍씨가 연애를 시작한 건 2년 3개월 전이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사랑에 빠지고, 연애를 하고, 결혼을 결심하기까지 모든 과정이 여느 다른 커플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감자 : "데이트 앱에서 알게 됐어요. 가까운 거리에 살아 처음에는 친구 보는 느낌으로 보다가 제가 먼저 들이댔어요. 성별만 동성커플이지, 다른 이성애자 친구들의 연애과정과 별반 다를 게 없어요."


: "퀴어의 연애라고 해서 이성애자 분들의 연애랑 다를 게 없어서요. 저희를 더 특별하게 생각하시는 그런 환상이 있을 수도 있는데, 그런 거 하나도 없어요. 오히려 평범해요."


두 사람의 연애 과정은 흔한 20~30대 청년의 그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만나고, 이야기 나누고, 데이트하고, 추억을 쌓았다. 두 사람을 힘들게 한 요인은 오히려 외부에 있었다.

: "요즘에는 확실히 10년 전보다 퀴어에 대한 인식이 많이 좋아졌어요. 드라마나 여러 콘텐츠에 소재로 많이 나오기도 하고요. 그래서 젊은 층에는 인식이 많이 생겨 커밍아웃을 해도 놀라는 반응은 별로 없어요.

오히려 저는 가장 가까운 부모님께 커밍아웃할 때 제일 힘들었어요. 친구 사이라면 최악의 경우 다시 안 만나면 되는데 부모님은 그게 아니잖아요. 부모님은 저희와 세대가 다르니까요. 아무래도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을 것이라는 압박감이 컸어요. 부모님을 안 보고 살 수는 없잖아요.

20대에 부모님께 커밍아웃해야겠다고 다짐했었는데 하지 못했어요. 그런데 서른 살도 지나고 옆에 친구들이 다 결혼할 나이잖아요. 저도 결혼을 하고 싶은데 할 수가 없으니 어머니가 사정을 알고는 있어야 될 것 아니에요. 그래서 감자님과 사귈 때 커밍아웃하게 됐어요. 다행히 저희 어머니는 '네가 행복하면 됐다'는 쪽이어서 그나마 금방 받아들여 주셨어요."


대전시는 지난해 11월 대전시인권센터 수탁기관으로 한국정직운동본부(이사장 박경배 송촌장로교회 목사)를 선정하고, 인권센터장으로 김영길(송촌장로교회 부목사) 바른군인권연구소장을 임명했다. 한국정직운동본부는 차별금지법 제정에 반대하고 반동성애 활동을 해왔고, 김영길 대전인권센터 센터장은 저서에서 '동성애 행위는 분명 멀리하고 죄악으로 구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금도 대전 시내 곳곳에 여러 단체가 내건 반동성애 현수막을 심심찮게 찾을 수 있다.

감자 : "그분들(반동성애 활동을 하는 사람들 - 편집자 말)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들어요. '도대체 저 불신 지옥 같은 생각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이 사람들은 도대체 뭘 믿고 저러는 걸까.' 성경에 동성애를 금한 구절이 있다는데요. 원뜻이 왜곡됐다는 생각도 들어요. 저 사람은 뭐가 저렇게 잘나서 그토록 확신에 차 있을까하고 생각하죠."

: "대전시청이나 갤러리아 백화점 앞에서 동성애 반대 혹은 동성 결혼 법제화 반대 피켓을 들고 서 계시거든요. 더운 여름에 들고 있는 모습을 보면 그냥 '고생하시네'라고 생각해요. 제가 그분들에게 강요할 생각은 없으니까 그분들도 하고 싶은 대로 사시는 거죠. '저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구나' 그 정도죠.

대신 저희의 의사 표현을 막지는 말아주셨으면 해요. 제가 퀴어 퍼레이드를 갔을 때예요. 지하철역을 나와 행사장으로 가야 하는데 그분들이 길을 다 막고 계시더라고요. 몸으로 막고 어깨로 치고. 저희가 뭐 잘못한 건 아니잖아요? 그냥 옆에 서 계시는 건 괜찮은데 왜 길을 다 막고 계시는지. 그건 아닌 거 같아요."

     
최근 국회에서는 의미 있는 법안 발의가 있었다. 4월 26일 생활동반관계에 관한 법률이 발의됐다. 혼인이나 혈연으로 맺어진 가족 외에 다양한 형태의 가족 공동체를 법으로 보호한다는 취지다. 생활동반자가 연금과 보험, 의료과정 보호자 등 여러 정책에서 권리를 갖도록 했다. 5월 31일에는 가족구성권 3법이 발의됐다. 동성 결혼을 법제화하는 민법 개정안이 포함됐다.

현재 법률은 동성혼을 인정하지 않는다. 서로 사랑하고, 같은 곳에 함께 살며, 서로를 아끼고 보살피는 관계임에도 불구하고, 동성혼 부부는 각종 차별을 겪는다. 동성혼 부부라면 전혀 상상치도 못할 상황을 직면하기도 한다.

: "제가 되게 많을 걸 바라는 게 아니에요. 감자님이 가끔 되게 많이 아플 때가 있어요. 그런데 같이 응급실에 가면 제가 등록을 할 수가 없어요. 엄청 위급한 상황에도 제가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아무런 권한이 없어요.

혈연적 가족이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그 가족이 아니면 안 된대요. 무조건 불러오라고 하죠. 그런데 제가 가족이잖아요. 바로 옆에 있고, 상태를 가장 잘 아는 가족. 그런데 응급실에서 결정 하나 못 할 때 되게 무력감을 느껴요.

아픈 것도 아픈 건데 만약에 나중에 저희가 죽어서 장례를 치를 때 혈연적 가족이 아무도 없으면 무연고자 처리가 돼요. 동성애자 중 원가족과 연을 끊고 사는 분이 있을 수 있거든요. 남긴 재산이 있다면 실제 배우자에게 가지도 않아요. 다 혈연적 가족에게 가요. 이런 게 바뀌었으면 하는 건데, 제가 바라는 게 그렇게 많은 걸 바라는 건가 싶어요.

집을 사거나 할 때도 문제가 생겨요. 부부 공동 소유를 할 수가 없죠. 같이 돈을 모아서 사는 건데도 말이에요. 요즘은 신혼부부 대출이 오히려 불리해서 일부러 혼인신고를 하지 않는 커플도 있지만, 결혼을 하고 싶은데도 못 하는 거랑 안 하고 싶어서 안 하는 건 다르다고 봐요."

감자 : "요즘 많은 청년이 결혼을 비선호하는 시대예요. 제 생각에 결혼을 적극적으로 하고 싶어 하는 건 퀴어밖에 없는 거 같아요. 저희는 결혼할 수 없어서 후견인 지정 등 편법을 찾기도 해요. 서로 반려인이 되고자 하는 건데, 후견인이나 자식이 되지 않고서는 제도의 보호를 받을 수 없어요.

아니면 공동으로 회사를 차려서 재산을 공유해야 해요. 그런데 그런 사업을 하는 것도 아주 특수한 경우죠. 보통 재산을 분할하게 되면 결국 우선권은 혈연적 가족에게 있거든요. 지금 법제도 하에서 저희가 공동체를 만들려면 다른 방법은 없어요."


혼인신고는 존재 알리기 위한 일종의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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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15일 대전 서구청에 혼인신고서를 제출한 감자(활동명)씨와 밍(활동명)씨 혼인신고는 수리되지 못하고 두 사람은 '불수리통지서'를 받아야 했다. ⓒ 감자

  
최근 들어 동성 연인 간 혼인신고가 가능은 하게 됐다. 다만 신고가 수리되지는 않는다. 그동안 국내에서 여러 동성 연인이 혼인신고를 접수해 왔다. 혹자는 동성커플이 벌이는 이벤트 정도로 생각했고, 쓸데없는 행정력 낭비라고 비난하는 목소리도 있다.

감자와 밍 두 사람 역시 현행법상 혼인신고가 수리되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들의 혼인신고는 단순한 이벤트도 행정력 낭비도 아니었다. 혼인신고를 결심한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

: "혼인신고를 하겠다고 늘 생각은 하고 있었어요. '우리들의 발자취'를 남기기 위해서. 정치하는 사람들이나 공무원들은 서류로 남아있어야 신경을 쓰잖아요. 보통 동성 커플은 해외에서 혼인신고를 많이 하는데 외국으로 이민 가는 게 아니면, 한국에 서류를 좀 많이 남겨주셨으면 좋겠어요.

불수리될지언정 혼인 신고서를 받아는 줘요. 우리가 계속 신고서를 제출하면 언젠가 동성혼이 법제화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그렇기에 우리들의 신고가 통계에 잡히고 건수가 계속 쌓여야 해요."

감자 : "답답한 게 많지만 한편으로 이해는 되요. 정치인들은 표가 중요하니까 그러는 거잖아요. 뭔가 동성애를 혐오하는 단체들이 더 눈에 띄게 활동하는 느낌이고, 표를 많이 가지고 있으니까요.

다수가 무조건 선도 아니고, 소수자도 선은 아니죠. 하지만 이 사회가 더 나아가기 위해서는 소수의 말을 들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소수를 위하는 일로 시작했지만 결국에는 모두가 좋아지는 쪽으로 될 겁니다.

결국 차별금지법 같은 경우에도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성별이든 나이를 떠나서 차별받지 말자는 거잖아요. 우리 사회가 특정 집단을 차별하고자 한다면 끝이 없을 거로 생각해요."


두 사람이 받은 '불수리 통지서'는 지금 같이 사는 집 냉장고에 붙어있다. 언젠가 이곳에 '혼인관계증명서'까지 붙이겠다는 이야기를 남겼다.

이성 부부에게 혼인신고는 결혼에 따라오는 약간 성가신 행정절차일 뿐이다. 하지만 이들에게 혼인신고는 존재를 알리고 자취를 남기기 위한 일종의 투쟁이었다.

: "인식이 바뀌어 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는 어렸을 때 한부모 가정에서 자랐어요. 제가 자랄 당시 한부모 가정에 대한 인식이 엄청 안 좋았는데, 지금은 그렇게까지 안 좋진 않잖아요. 엄마, 아빠, 자식으로 구성된 가족이 정상이고 마냥 행복할 거다? 그렇지 않거든요. 정상가족이라는 개념을 포괄적으로 넓혔으면 좋겠어요."

감자 : "성소수자가 비정상이라고들 하는데요. 그럼 과연 정상은 뭘까? 그런 생각부터 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결국에는 그냥 다 다른 거예요. 왜 틀리다고 받아들일까요? 세상은 흑백이 아니라 무지개예요."


마지막으로 두 사람은 아직 혼인신고를 주저하고 있는 다른 연인들에게 할 말이 있다고 했다.

감자 : "저희로 인해 생각만 하고 있었을 다른 커플들이 조금이나마 용기를 가졌으면 해요. 아직 망설이고 있는 분들이 있다면 혼인신고에 용기를 내줬으면 해요. 선례를 만들어 놨으니 다음 분들은 쉬울 수도 있어요. 저희가 해보니까요. 별거 아니에요."

: "저희가 대전 서구청에서 한 번 했으니 다른 분들이 찾아가면 해당 공무원분이 딱딱 처리해 주실 거예요. 여기저기 알아보지도 않을 거고요. 저희 다음 타자도 많이 지원해 주셨으면 해요. 생각보다 통계가 중요하니까요. 이게 무슨 소용이 있나 싶겠지만, 공무원은 서류가 중요합니다. 소용이 많이 있어요. 통계를 근거로 제도를 마련하니까요."

감자 : "요새 티끌 모아 티끌이라는 말도 있지만, 이런 티끌들이 모이면 좀 더 나은 세상이 오지 않을까요.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고 싶다면 어쨌든 한 번쯤 제출해 보는 게 낫지 않을까 생각해요.

언제 될지는 모르겠어요. 하지만 동성혼이 가능한 시대가 오고, 점점 더 인식도 나아지고, 애인을 만난다고 하면 굳이 성별을 물어보지도 않고, 애인의 성별이 같거나 다르거나 아무 상관 없이 다 똑같아지는 시대가 오지 않을까요. 그런데 그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어요."
#동성애 #혼인신고 #대전 #서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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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의 시민활동가입니다. 우리 지역 현장 곳곳을 다니며,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있습니다. 마이크가 필요한 분에게 마이크 드리는 것이 제 역할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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