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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때 화엄사를 지킨 경찰... 이 역사를 아시나요

한국전쟁 당시 경찰과 학도병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호남호국기념관

등록 2023.06.06 11:53수정 2023.06.06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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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호국기념관 1층에서 만나는 '호국보훈의 빛' 조형물. 한국전쟁 참전유공자를 추모하고 기억하는 상징 조형물이다. ⓒ 이돈삼

 
나라를 위해 목숨 바친 영령들의 충정을 기리는 호국보훈의 달이다. 6월 호국보훈의 달은 1일 의병의 날을 시작으로 현충일, 민주항쟁 기념일, 한국전쟁 발발일로 이어진다. 밭작물 수확과 모내기로 분주한 농번기이지만, 호국영령들의 희생을 잊지 않고 기억해야 할 때다.

지금의 대한민국을 만든 영령들을 기리는 호남호국기념관이 있다. 전라남도 순천시 연향동 팔마체육관 옆 부지 9500여㎡에 연면적 4900여㎡ 규모로 국가보훈처가 짓고, 2020년 11월 문을 열었다. 나라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 호남인들의 자랑스런 역사와 정신을 기억하는 보훈 문화공간이다. 입장료나 관람료도 따로 없다. 주차장도 넓다. 지난 3일 이곳을 방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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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호국기념관 전경. 순천 팔마체육관 옆에 들어서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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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층에서 내려다 본 호남호국기념관 1층 모습. '호국보훈의 빛' 조형물이 가운데에 자리하고 있다. ⓒ 이돈삼

 
호남호국기념관은 지상 3층으로 이뤄져 있다. 1층에 한국전쟁 참전유공자를 추모하고 기억하는 상징조형물인 '호국보훈의 빛'이 세워져 있다. 파노라마 영상관에서는 호남평야를 무대로 펼쳐진 항일 의병과 한국전쟁 관련 영상을 보여준다.


2층에선 항일 의병과 한국전쟁 등에서 호남을 지킨 사람과 이야기를 전시하고 있다. 3층은 관람객 체험과 휴식공간으로 이용되고 있다. 기념관은 호남의 지리적 특성을 감안, 학도병과 경찰 이야기가 중심을 이루고 있다.

한국전쟁 때 호남지역 학도병에는 여수중학교, 순천매산중학교, 여수수산중학교를 비롯 벌교상업중학교, 여수공업중학교 학생들이 많이 참여했다. 사망자도 700명이 넘었다. 전사자는 여수공업중고등학교, 광주서중고등학교, 순천매산중고등학교, 여수중고등학교 학생들이 많았다.

'천년고찰' 지리산 화엄사를 지켜낸 경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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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호국기념관의 전시물. 한국전쟁 당시 학도병과 경찰, 군인의 모습을 형상화하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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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도병의 다짐이 담긴 태극기. 호남호국기념관에 전시돼 있다. ⓒ 이돈삼

 
'천년고찰' 지리산 화엄사를 지켜낸 경찰 차일혁 총경의 이야기도 흥미롭다. '절을 태우는 데는 한나절이면 족하지만, 절을 세우는 데는 천 년 이상의 세월로도 부족하다'는 말로 유명한 경찰이다.

'빨치산의 은신처가 될 수 있는 사찰을 모두 불태우라'는 상부의 명령을 받은 차 총경은 화엄사의 문짝 몇 개만 태우는 기지를 발휘해 절집을 지켰다. 화엄사뿐 아니라 천은사, 쌍계사 등 지리산 일대의 절집도 지켜냈다.

강원도 영월의 화력발전소가 북한군의 수중에 들어가고, 남한의 유일한 수력발전소로 남은 정읍 칠보발전소(현 섬진강수력발전소)를 지켜내기도 했다. 경찰 가운데 처음으로 2013년 '전쟁영웅', 2014년에 '호국인물'로 선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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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호국기념관 전시공간. 전쟁 중에 천년고찰을 지켜낸 차일혁 총경의 이야기를 보여주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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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화엄사의 대웅전과 각황전. 한국전쟁 때 차일혁 총경의 기지로 지켜낸 사찰이다. ⓒ 이돈삼

 
한국전쟁 중 호남지역에서 경찰전투도 있었다. 곡성 태안사 전투가 첫손가락에 꼽힌다. 한국전쟁이 일어나고 한 달도 안 돼 남쪽이 북한군에 넘어갔다. 광주와 순천·광양까지 함락되면서 곡성경찰서에도 영남지방으로 퇴각하라는 명령이 떨어진다.


한정일 곡성경찰서장은 '주민을 버리고 퇴각할 수 없다'며 지역 사수를 결의했다. 경찰과 주민 500여 명으로 전투경찰대를 편성하고, 그 가운데 절반의 병력으로 섬진강변 압록에서 7월 29일 북한군을 크게 무찔렀다. 그날의 승리를 기념하는 승전탑이 곡성 압록에 세워져 있다.

압록유원지에서 대황강변으로 연결되는 18번국도 초입에 '전망좋은곳'이라는 안내판과 함께 경찰승전탑 팻말이 세워져 있다. 가파른 철 계단을 따라 만나는 언덕에 있는 승전탑이다. 경찰의 상징인 독수리 문양을 하고 있다. 섬진강과 보성강 일대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곳이어서 전망도 아주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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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호국기념관 내부 전시관. 한국전쟁 전후의 상황을 알려주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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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 풍경. 한국전쟁 때 곡성전투경찰대가 북한군에 맞서 싸운 곳이다. ⓒ 이돈삼

 
태안사 입구에도 경찰 충혼탑과 추모관이 있다. 압록전투를 승리로 이끈 곡성전투경찰대는 태안사에 머물렀다. 하지만 사방이 북한군의 수중에 들어가 어떠한 지원도 받을 수 없는 고립무원의 상황이었다. 8월 6일 새벽 북한군이 기습공격을 해왔고, 전투경찰대는 패한다. 경찰 47명이 죽임을 당했다.

그날의 전투로 태안사도 파괴됐다. 그날의 상처가 지금도 탄흔으로 남아 있다. 고려시대 승려 광자대사 윤다의 부도탑비에 남은 탄흔이 그것이다. 태안사 충혼탑은 그날 스러져 간 경찰 영혼들을 기리고 있다.

9·28 서울 수복 때 중앙청에 태극기를 내건 군인이 신안 출신이라는 것도 호남호국기념관에서 알 수 있다. 태극기를 게양한 두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 박정모 대령이다. 박 대령은 당시 해병대 소대장으로 인천상륙작전과 서울 탈환작전에 소대원을 이끌고 참가하고, 중앙청에 먼저 도착했다. 박 대령은 국기 게양대에 걸린 인공기를 내리고 태극기를 매달았다.

당시 사진은 없고, 교과서에 실린 건 재현행사 때 찍은 사진이라고 한다. 교과서가 사진을 조작했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신안 도초도 한발마을에 박정모공원이 만들어져 있다. 박 대령의 흉상과 함께 당시 중앙청에 태극기를 올리는 모습이 조형물로 만들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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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사의 광자대사 부도 탑비. 왼쪽 탑비에 한국전쟁 당시의 탄흔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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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안 도초도에 있는 박정모공원의 낮과 밤 풍경. 박정모 대령의 흉상과 함께 당시 중앙청에 태극기를 올리는 모습이 조형물로 만들어져 있다. ⓒ 이돈삼

 
나라를 지키기 위해... 자발적으로 나선 호남의병

호남의병 이야기도 호남호국기념관에서 만난다.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지위고하를 가리지 않고 분연히 떨쳐 일어선 백성들의 자발적인 조직이 의병이다. 고경명, 김덕령, 김천일, 최경회 등 임진의병에서부터 고광순, 기삼연, 전해산, 심남일, 양진여, 기우만, 안규홍 등 한말의병까지 다 만날 수 있다. 나라를 지킨 의병도 자랑스런 우리의 선조들임을 알려준다.

한국의병사를 얘기할 때 호남의병을 빼놓을 수 없다. 임진왜란 때 첫 의병장이 호남사람이었다. 최초로 의병이 승리한 곳도 호남이었다. 곡성 합강마을 출신 유팽로가 가장 먼저 의병을 일으켰고, 임실 갈담역 전투에서 첫 승전고를 울렸다.

이후 유팽로는 담양에서 고경명의 군대와 합세하면서 호남연합의병이 결성됐다. 광주에서는 화순 출신 최경회가 전라우의병을, 보성에서 박광전과 임계영이 전라좌의병을 일으켰다. 나주 김천일 의병부대는 임금을 지키겠다며 경기도로 갔다.

호남의병들은 각지에서 유격전술을 구사하며 일본군의 진격로와 보급로를 차단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의병과 호국영령들의 숭고한 희생을 토대로 오늘의 대한민국이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새삼 알려주는 호남호국기념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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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호국기념관의 내부 전시공간. 임진왜란부터 한말까지 떨쳐 일어난 호남의병의 이야기를 보여주고 있다. ⓒ 이돈삼

#호남호국기념관 #차일혁총경 #태안사전투 #학도병 #호남의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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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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