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듣기

기후변화 소식 말이야, 좀 덜 무섭게 전할 순 없을까?

대규모의 장기적인 기후 변화에만 집중하면 오히려 관심 떨어져... '내 주변의 현안' 전해야

등록 2023.06.06 16:04수정 2023.06.06 16:04
0
원고료로 응원
a

기후위기 보도, 좀 다를 순 없을까. ⓒ pixabay


며칠 전 한 뉴스레터 편집자로부터 질문을 받았다. 요즘 MZ세대가 기후에 대해 갖고 있는 고민을 토로하는 듯해 마음이 무거웠다. 답하기도 쉽지 않았다. 질문의 내용은 이러했다.

"이상기온으로 태풍, 폭염, 산불 피해 기사를 보면 무력감이 느껴지기도 해요. 심지어 2027년 1.5도가 올라갈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하는데 피디님은 앞으로 지구의 미래를 희망적으로 보는지 궁금합니다."

나는 지구의 미래를 논할만큼 내공 갖춘 사람이 아니다. 다만 조금 오래 언론 밥을 먹어오면서 우리의 언론이, 방송이, 기후위기에 대해 어떤 식으로 접근해야 할지에 대해 정리해 말씀드렸다.

기후위기 보도가 '회피'를 부추긴다고?

올해 4월 스위스 로잔대 연구팀이 <지구 환경 변화(Global Environmental Change)>라는 국제학술지에 언론의 기후 관련 보도의 문제점에 대한 논문을 발표했다. 연구팀은 지난 2020년에 국제학술지에 발표된 전 세계 기후관련 논문 5만여편을 일일이 다 분석해 이 논문들 중 어떤 논문이 어떤 식으로 주요 언론에 보도되었는지를 살폈다. 그랬더니 이런 결론이 나왔다고 한다.

"기후위기에 대응하려면 사람들의 실천을 이끌어내는 언론보도가 중요한데, 현재의 언론보도 행태는 문제의 해결보다는 오히려 기후위기에 대한 부정과 회피를 촉발할 우려가 크다."

많은 언론들은 빙하가 녹고 북극곰이 사라지는 등 기후변화로 인한 광범위한 장기 전망과 좁은 범위의 위협에 초점을 맞추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먼 미래에 일어날 대규모 기후 변화 예측에 지나치게 집중하고 있다는 것이다.


당장 지금 우리가 접하고 있는 기후 관련 매체들만 봐도 이런 경향이 강하다. 유튜브 채널에서 '기후'라는 키워드를 넣고 검색해봤다. 맨 위에서부터 이런 제목의 영상들이 뜬다.

파멸에 이르고 있는 '지구촌 이상기후'
중국 폭우 아님 폭염... 이상 기후로 곳곳에 홍수·흉작
1.5도 마지노선이 뚫리면 "이러다 다 죽어!"
사상 유례없는 지구촌 '이상 기후'… 올여름 제대로 비 폭탄?


물론 이상기후가 곳곳에서 일어나는 것은 맞지만 이러한 보도들은 대부분 1.5도 이상 온도 상승에 따른 세기말적 재앙을 경고한 과학자들의 장기분석 자료에 근거하고 있다. 스위스 연구진은 이런 식의 장기분석 자료의 반복과 특정 지역 피해에 집중하는 경향은 오히려 사람들이 기후위기를 회피하고 피상적으로 넘기는 등 거리두기에 들어가게 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런 접근 방식은 기후변화에 대한 대중의 거리두기 반응을 촉발할 수 있다. 이런 보도에 노출된 사람들은 직접적으로 우려를 느끼지 않고 그 정보를 피상적으로 넘겨버리기 쉽다." (파브지이오 부테라 스위스 로잔대 교수의 AFP 통신 인터뷰, 연합뉴스 보도, 2023년 4월24일)

"기후변화 연구 내용을 보도하는 목적이 이를 통해 사회적 영향을 미치는 것이라면, 우리는 효과가 없는 버튼을 계속 누르고 있는 것 같다." (마리-엘로디 페르가 스위스 로잔대 교수, 2023년 4월24일)


기후와 거리를 두게 만드는 부정과 회피 반응... 물론 기후위기 현실의 심각성을 제대로 보도하고 이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심각성을 느끼게 하는 점은 우리 언론의 순기능이라 할 수 있다. 두려움은 행동의 변화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행동의 변화는 해결책을 함께 제시할 경우에 가능하다. 과연 5월에 나타나 괌을 초토화시킨 슈퍼태풍을 전하면서, 올 여름부터 출현한다는 슈퍼 엘리뇨 현상을 전하면서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을까? 그 거대한 자연의 변화 앞에?

어쩌면 무력감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저 높은 하늘 아래 우리는 보이지도 않는 점같은 존재이니까. 하늘만 쳐다보거나 혹은 뜨거워지는 바다만 보다보면 '과연 내가 할 수 있는 게 뭔가' '이대로 죽어야 하나' 등 무력감과 우울감만 높아지지 않을까?

기후위기가 불러온 일상의 변화를 둘러보는 보도 

그래서 새로운 방식의 기후보도를 제안해본다. 이러면 어떨까, 하늘만 쳐다보지 말고 옆을 보자고. 기후가 뜻밖의 많은 사람들의 일상을 바꿔놓고 있다. 그 소소한 일상은 누군가에게는 생업이고 미래 비전이다. 그러한 변화로 인해 피해를 입고 있는 사람들, 해결책을 찾기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주목해보자.

지난달 우리는 기후 라디오 방송을 통해 봄철 꽃가루 발생량이 평년보다 3~4배 많아져 시중 알레르기 처방약이 늘었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그랬더니 꽃가루 알레르기에 관한 다양한 체험담이 담긴 생방송 문자들이 왔다.

야간 경기가 열리는 잠실구장을 눈처럼 하얗게 뒤덮은 하루살이 떼의 정체에 대해 다뤘더니 지구온난화와 살충제 중심 처방의 문제점이 자연스럽게 거론됐다. 기후는 지역경제의 현안이기도 하다.

경기 지역을 중심으로 건설되고 있는 반도체 밸리. 전력공급이 원활하지 않을 전망인데다 재생에너지 100%를 요구하는 RE100 등 에너지 전환에 대한 무역장벽이 높아지고 있기에 경기도지사는 임기 내 9기가 와트 규모의 신재생 시설을 만들겠다는 경기도 RE100 선언을 하기에 이렀고, 우리 프로그램은 재생에너지 현장전문가를 모셔 그 실현 가능성과 실천과제를 짚었다.

기후는 민생문제이기도 하다. 주민 자치를 통해 아파트 태양광 시설을 설치해 지난해 난방대란 때 공용 전기료 마이너스 8000원이 찍힌 아파트 관리비를 들고 안산 보네르빌 관리과장을 모셔 인터뷰를 나눴다. 추가로 음식물 쓰레기 봉투를 없앤 음식물 쓰레기 저감 시스템의 성과에 대해서도 청취자들의 뜨거운 반응 속에 진행됐다.

꿀벌 실종 사건, 동남아의 이른 폭염부터 5월의 슈퍼태풍, 그리고 올 여름 이른바 '노아의 홍수' 설에 대한 팩트체크 등 모두 기후위기가 초래한 일상의 변화들이지만 우리는 부풀리지도 않고 축소하지도 않고 차분한 톤으로 근거를 제시하며 문제점을 정확히 파악하려 애쓰고 그 과정에서 실천적 대안을 제시하려 노력하고 있다.

기후변화에 대한 언론보도는 너무 적어도 문제이지만 너무 과하거나 자극적으로 가도 부작용이 있다. 마치 오늘의 날씨를 매일 전하는 자세로 오늘의 기후 현안을 차분한 톤으로 꼼꼼하게 전하되 함께 실천할 수 있도록 '답을 찾는 방송'을 만들어가면 어떨까.

"친환경적 행동을 유도하기 위해서는 언론이 환경 문제를 '해결책 지향적'으로 다루고 기후변화가 삶의 방식과 주변 환경, 재정문제 등에 즉각적이고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마리-엘로디 페르가 스위스 로잔대 교수의 AFP 통신 인터뷰, 연합뉴스보도, 2023년 4월24일)

[참고자료]
- 이주영, <"현 기후위기 보도행태, 문제 해결보다 부정·회피 유발 우려">, (연합뉴스, 2023년 4월24일)
덧붙이는 글 이 내용은 FM 99.9 OBS 라디오의 <기후만민공동회 오늘의 기후> (매일 오전 11시~12시)를 통해 방송됐으며 방송 내용 다시보기는 OBS 라디오의 공식 유튜브 채널을 통해 보실 수 있습니다.
#기후변화 #언론보도 #두려움 #무기력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FM 99.9 OBS 라디오에서 기후 프로그램 만들고 있습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천연영양제 벌꿀, 이렇게 먹으면 아무 소용 없어요
  2. 2 61세, 평생 일만 한 그가 퇴직 후 곧바로 가입한 곳
  3. 3 버스 앞자리 할머니가 뒤돌아 나에게 건넨 말
  4. 4 "김건희 여사 라인, '박영선·양정철' 검토"...특정 비서관은 누구?
  5. 5 죽어라 택시 운전해서 월 780만원... 엄청난 반전이 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