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듣기

'인싸' 딸의 장례식... 친구들이 상에 올린 마라탕과 샴페인

[토요일 오후 6시 34분] 삼성전자 입사 후 '12월의 신부' 준비했던 이지현씨

등록 2023.06.10 18:34수정 2023.06.10 18:34
0
원고료로 응원
10월 29일 토요일 오후 6시 34분 경찰에 첫 신고가 들어왔다. 공권력이 제대로 대응만 했다면 159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이태원 참사의 비극을 막을 수 있었다. <오마이뉴스>는 매주 토요일 오후 6시 34분 이태원 희생자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이태원 참사를 잊지 않기 위해서다.[편집자말]
a

결혼을 앞두고 찍었던 지현씨의 웨딩 사진. 엄마는 딸의 사진에 좋아요를 눌렀다. 그리고 그 사진첩은 딸이 세상을 떠난뒤 도착했다. ⓒ 이희훈

 
"눈부신 어느 겨울날, 우리는 더 긴 약속을 하기로 했습니다. 일곱 해의 사랑이 온전히 하나가 되는 날 앞으로의 모든 삶을 응원해 주실 소중한 분들 앞에서 첫 발걸음의 자리를 축복받고 싶습니다."

2022년 10월 28일 오후 4시 29분, 엄마 정미라(46)씨와 첫째 딸 이지현(1999년생)씨가 마지막으로 주고받은 카카오톡 메시지에는 청첩장에 적을 문구가 적혀 있었다. 하루 전인 27일에는 웨딩 촬영도 마쳤다. 다가오는 12월 10일 토요일, 지현씨의 결혼식이 열릴 예정이었다.

그러나 10월 29일 밤 지현씨는 이태원에서 숨을 거뒀다. 12월의 신부가 되는 것, 뭐든 '뜻대로' 해온 지현씨가 계획대로 하지 못한 첫 번째 일이 돼버렸다.

삼성전자 입사에 결혼까지... "이제 다 이뤘는데, 누리기만 하면 되는데"
 
a

이태원참사 희생자 고 이지현씨가 생전 사용했던 중요한 물건들을 상자에 모아 두었다. ⓒ 이희훈

 
a

지현씨 이름으로 된 통장이 여러개 있다. 미래를 준비하며 만든 청약 통장도 있었고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주말 아르바이트를 통해 자신이 바라는 것을 이루기 위해 큰 돈을 모아두었다. ⓒ 이희훈

 
지현씨는 뭐든 하겠다고 마음먹으면 해내고야 말았다고 한다. 진학 문제도 그랬다. 전북 김제에서 중학교를 다니던 지현씨는 전북 익산에 있는 마이스터고를 가겠다고 했다. 담임선생님, 부모님 모두 "공부 잘하는데 일반 고등학교 가서 대학 입시 준비하자"고 했지만, 지현씨는 단호했다. "엄마, 내가 성인이 될 즈음엔 내가 가고 싶을 때 대학 갈 수 있어요, 필요해지면 그때 갈게"라며 부모님을 설득했다.

뜻대로 마이스터고를 졸업했고, 뜻대로 졸업 후 바로 취업에 성공했다. 큰 제약회사에 입사했다. 만 4년 꼬박 회사를 다니다, 이제는 대기업에 다니고 싶다고 했다. 2021년 5월, 삼성전자에 합격했다. 고등학생 때부터 쭉 함께였던 남자친구도 동시에 삼성전자에 입사했다. 양 집안의 경사였다.

갖고 싶은 게 있으면 가졌다. '사고 싶은 물건 리스트'대로 샀다. 그 돈을 마련하기 위해 퇴근 후 아르바이트, 주말 아르바이트도 마다하지 않았다. 월급은 월급대로 차곡차곡 모았다. 스무 살이 되던 해 이미 1200만 원이 통장에 모였다.

모든 것이 안정되자 결혼 날짜를 잡았다. 스물 셋, 다소 이른 나이였지만 이번에도 뜻대로였다. 엄마와 아빠의 화목한 결혼 생활이 지현씨 선택에 영향을 줬다. 엄마 역시 아빠를 고등학생 때 만났다. 일찍 결혼해 스물셋에 지현씨를 낳았다. 네 남매 중 첫째가 지현씨였다. 엄마·아빠는 넷을 데리고 부지런히 추억을 쌓았다. 전국 방방곡곡을 다녔다. 다복한 집에서 자란 지현씨는 "엄마 아빠처럼 살고 싶다, 아이도 많이 낳고 좋은 엄마가 되고 싶다"고 했다.


그렇게 딸은 자신만의 가정을 꾸릴 준비를 마쳤다. 회사 근처 평택에 신혼집을 마련했고 살림도 채워 넣었다. 혼인신고도 했다. 2022년 7월부터 딱 3개월, 지현씨는 그 집에서 살았다. 그렇게 사고 싶다던 침대에서 잠든 게 채 100일이 되지 않았다.

"이제 다 이뤘는데, 누리기만 하면 되는데. 우리 지현이가 얼마나 억울할까요."

이태원 참사로 딸을 보내고, 엄마는 겨울에 눈이 오는 것만 봐도 봄바람이 불어와도 비가 와도 햇살이 뜨거워져도 가슴이 아리다고 했다.

"지난 겨울 유난히 눈이 많이 내렸는데, 지현이가 눈으로 오는 것 같더라고요. 봄바람에도 지현이 냄새가 나는 거 같고요. 초저녁에는 서쪽 하늘에 작은 샛별이 집 쪽으로 반짝 떠요. 그것만 봐도 우리 지현이 같아서 멍하니 바라봐요. 화려한 가을이 오면 이제는 더 우울할 거 같네요..."

10월도 12월도 3월도, 어느 달도 가슴 아프지 않은 달이 없었다.

딸의 친구들이 따로 차려준 제사상
 
a

이태원참사 희생자 고 이지현씨의 엄마 정미라씨 ⓒ 이희훈

 
a

지현씨의 카카오톡 선물함에 보관 되어있던 선물을 찾아와 지현씨의 사진 앞에 올려 뒀다. ⓒ 이희훈

 
매일 오후 6시만 되면 엄마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상태가 되고 만다고 했다. 매일같이 지현씨와 안부 전화를 하던 시간이다. 고등학교를 타지로 간 이후 7년여를 이어온 둘만의 습관이었다. 대신 엄마는 지현씨 사진에 대고 말을 건네 본다. "엄마 일 잘하고 왔어, 그곳에서 잘 지내지?" 묻는다. 엄마는 지현씨가 마치 "나 여기서 잘 지내니까 엄마도 잘 살아~"라고 해주는 것만 같다고 했다. 그래서 지현씨가 어느 외딴곳, 숲속의 공주처럼 나온 사진을 부러 부엌에 진열해뒀다.

오전 9시 역시 견디기 힘든 시간이다. 지현씨가 영안실에 있다는 전화를 받은 게 그때였다. 가게를 하는 엄마·아빠는 오픈 준비가 한창이었다. 사위에게서 전화가 왔다. 지현이가 강북삼성병원에 있다고.

"토요일에 마감하고 저녁을 먹는데, 이상하게 아빠랑 저랑 모두 체했어요. 소화가 안 되고 숨도 안 쉬어지더라고요. 뉴스에서는 이미 난리가 난 상태라 딸 둘한테 전화를 해봤죠. 지현이는 거기 갔을 거라 생각도 못해서 전화도 안 해봤어요. 전날 웨딩 촬영하고 토요일 오전에 회사 가야 한다고 해서, 오후에는 쉬고 있겠거니 했죠. 왜 전화를 안 했을까 자책했어요. 이태원 간다고 했으면 가지 말라고 했을 텐데, 제가 가지 말라고 했으면 절대 안 갔을 텐데..."
 

이태원에는 남편과 함께 친구를 만나러 갔다고 했다. 지현씨 남편도 함께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가 누군가에 의해 끌어올려졌고, 옆에 쓰러져 있던 지현씨에게 CPR을 했지만 지현씨는 돌아오지 못했다고 했다. 119 구급대원은 쓰러진 지현씨를 구급차에 실어 데려갔고, 남편임을 밝혔지만 동행을 거부당했다. 그 새벽, 남편은 지현씨를 찾아 온 병원을 헤매야 했다. 

전화를 받고 달려간 서울. 차가운 병원에 눕혀두고 싶지 않아 김제로 지현씨를 데리고 왔다. 30일 자정께 장례식장에 도착했는데, 이미 선배·후배·친구들로 가득했다. 초·중·고 선생님에 회사 분들까지, 장례를 치르는 내내 지현씨 마지막을 함께 해주려는 사람들이 줄을 이었다.

"저희 엄마가 '지현이가 결혼식으로는 부족했나 보다'라고 하시더라고요. '결혼식은 일 바쁘면 봉투만 하기도 하는데 장례식은 그게 아니지 않냐'고. '가면서까지 저렇게 사람을 끌어모은다'고요. 장례식장 생긴 이래 가장 많은 사람이 조문객으로 왔대요. 제가 죽었어도 이렇게 사람이 안 올 텐데 스물 몇 해 살고 어찌 그랬을까요."

발인 전날, 지현씨 선·후배, 친구들이 제사상을 따로 차렸다. "장례식장 밥은 지현이가 안 좋아하는 것들만 있어서 좋아하는 것을 올려주고 싶다"고 했다. 치킨, 피자, 국밥, 마라탕, 튀김에 소주, 맥주, 샴페인까지. 지현씨가 좋아하던 음식과 술로만 채웠다. 2시간 내내 50여 명이 줄을 서서 술을 올리고 절을 했다고 했다.

"사랑 많이 받은 지현이, 그 에너지 다 나눠주고 갔네요"
 
a

함께 찍은 사진이 많이 없어 아쉽다고 한 아빠 이동규씨는 사진속 딸의 사진을 한참 어루만졌다. ⓒ 이희훈

 
a

앨범에서 꺼낸 딸과 함께 찍은 사진을 한참 어루만지던 아빠 동규씨는 가장 눈에 잘 보이는 액자틈 사이로 사진을 옮겼다. ⓒ 이희훈

 
쾌할하고 명랑해 '인싸 중의 인싸'였다는 지현씨. 딸이 살면서 주변사람들에게 어떻게 해 왔는지, 엄마·아빠는 딸이 가고 난 후에 전해 들었다. 지현씨 장례식장에는 지현씨에게 받은 걸 갚을 길이 없어 하염없이 울던 후배들도 왔었다고 한다.

"문 앞에서 하도 서럽게 울던 애들 두 명이 있어서, 저희 어머니가 '무슨 사이냐'고 물어보셨대요. 그랬더니 누나한테 밥 얻어먹은 것만 해도 너무 많은데, 이제 그 빚을 갚아야 하는데 누나가 없어졌다면서 그렇게 울더래요. 그 후배들이 한 달 후에 집에 찾아왔어요. 고등학교 후배래요. 객지 나와 생활해서 외로울 때 지현이가 연락해서 '혼자 나와 있으니 힘들지, 누나도 처음 혼자 사니까 힘들었어, 밥 혼자 먹을 때 누나한테 연락해' 하면서 후배들 불러다가 밥을 해 먹였대요. 그렇게 '안산 식구들 모임'이 있었다네요."

첫 회사가 있던 안산에서 자취하던 지현씨는 안산에 온 지역 후배들을 모아 살뜰히 챙겨왔다고 한다. 제육볶음, 고등어조림, 김치찜. 못하는 음식이 없었고 아낌없이 베풀었다. 그렇게 함께 했던 선·후배, 친구들이 이제는 부모님 댁으로 주말마다 찾아온다. 
 
"걔들도 직장 생활하니까 토요일에 와요. 오면 밥 먹이고, 술도 먹이고 다음 날 점심까지 먹여 보내죠. 사람들이 무슨 정신으로 사냐고 하는데, 애들 온다고 장 보고 음식 해놓고... 그렇게 뭐라도 하고 있어야 좀 나아요."


전국 각지로 나가있는 지현씨 친구들은 김제에 내려오는 날이면 막내아들을 불러내 함께 볼링을 치고, 저녁을 먹었다. 누나들밖에 없던 막내 동생에게 많은 형들이 생겼다.
 
a

지현씨의 가족사진 ⓒ 이희훈

 
a

지현씨 자매들과 엄마가 함께 찍은 사진 ⓒ 이희훈

 
"저도 집안 큰 딸이고, 아빠도 큰 아들이에요. 양쪽 집안 첫 손녀라 양가의 사랑을 정말 많이 받고 컸어요. 그런데 그 에너지를 다 나눠줬었네요."

주변 사람 챙기듯 가족도 살뜰히 챙겼다. 양가 할머니께 음식 레시피를 물어본다는 핑계로 안부 전화를 했다. 고등학생 시절, 익산 고모 집에서 지내며 신세 진 걸 잊지 않고는 고모부 생일 선물까지 챙겼다.

지현씨는 크고 작은 이벤트로 가족을 웃게 했다. 엄마·아빠 결혼기념일에는 "좋은 날 맛있는 거 사드시라"며 두둑한 봉투를 내밀었다. 동생들과 함께 레터링 케이크를 주문했고, 눈에 안대를 하고 용돈 퍼가기 이벤트를 벌였다. 결혼 전에는 '웃음 꽃 피자'라며 피자 박스에 5만 원짜리를 가득 채워 아빠 양복 사 입으시라며 용돈을 건넸다. 이렇게 가족의 구심점이 돼주던 지현씨가 가고 몇 달, 가족들은 저마다 힘든 시간을 보냈다.

"탄탄하게 돌집을 짓고 산다고 생각했어요. 근데 아니었나봐요. 지현이가 없으니까 집 테두리가 싹 무너진 기분이 들더라고요."

엄마는 대전에 있는 둘째 딸, 안산에 있는 막내 딸이 전화 한 통을 못 받았을 뿐인데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고 했다. 가족 모두 어찌할 바 모르게 슬픔에 잠겼다.

"주말마다 딸들이 왔어요. 우리 어떻게 될까봐... 막내 딸이 얼마 전에 그러더라고요. '우리는 자식 아니냐'고요. '본가 오는 게 너무 힘들었는데 행여 엄마·아빠 어떻게 될까봐 불안한 마음에 주말마다 버스 타고 왔다'고요. 그 말을 듣는데 정신이 번쩍 들더라고요."

막내 딸의 말이 엄마를 붙들었다. 지현씨 사진을 출력해 집안 곳곳에 둔 것도 얼마 전의 일이다. 지현씨 짐 정리를 하다 사진을 보고는, 덩그마니 혼자 있는 게 미안해 안방에 가져다 둔 게 한 달 전쯤이었다. 며칠 뒤 사진에 입술 자국이 얼핏 보였다. 다음 날 그 옆에 입술 자국이 또 찍혀 있었다. 막내 아들이 한 일이었다. 

"딸과 찍은 사진이 많이 없다"며 못내 아쉬워하던 아빠(이동규씨, 48)는 인터뷰 도중 옛 앨범에서 둘이 찍은 사진을 발견하고는, 한참 동안 사진 속 지현씨를 어루만졌다. 그러고는 잘 보이는 거실 액자에 끼워 두었다. 가족들 모두 그리움을 삭이며 지현씨가 없는 시간 속을 서성이고 있었다.

개 안고 TV 나온 윤석열 대통령에 분노 "너무너무 화가나요"

서로에게 기대며 겨우 버티고 있는 가족들을 분노하게 한 일이 최근 있었다. 우연히 튼 TV에 윤석열 대통령이 나와 개들과 시간을 보내는 모습이 나왔다. 대통령 내외가 지난 5월 28일 SBS <동물농장>에 출연한 것이었다(관련 기사 : 윤석열·김건희, '동물농장' 출연... "이럴 거면 폐지하라").

"TV에서 우연히 봤는데 너무너무 화가 나는 거예요. 개 안고 TV에 나올 게 아니라 살아 있는 애들을 잘 지켰어야죠. 윤 대통령이 용산으로 이사만 안 갔어도 이런 일 절대 안 일어났어요. 경찰 병력이 다 용산에 배치됐던 거잖아요. 정말 예쁘게 단란하게 잘 사는 가정에 돌 던져놓고 나몰라라 하는 이 정부, 너무 보기 힘드네요."
 
 
a

이태원참사 희생자 고 이지현씨 아빠 이동규씨와 엄마 정미라씨가 딸의 어릴적 사진이 담긴 앨범을 넘겨 보고 있다. ⓒ 이희훈

 
a

딸이 지현씨가 엄마에게 선물해준 스카프는 특별한 날 쓰려고 아껴뒀다. 그런데 이 스카프를 처음 메고 간 날이 지현씨가 세상을 떠난 뒤 만나러 가는 날이었다. 그날 엄마의 눈에는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 이희훈

 
엄마·아빠는 유가족협의회 활동도 적극적으로 하지 못했다. '10.29 이태원 참사 희생자 전주합동분향소'에 처음 간 것도 지난 4월의 일이다. 분향소만 가도 또 장례를 치르는 느낌이 몰려들어 쉽게 찾아가지 못했다. 그런데 자꾸 화가 났다. 

"화가 계속 올라오더라고요. 어느 날 애 아빠 일할 때 택시 타고 무작정 전주에 갔어요. 지현이 영정 사진 보니까 너무 미안하더라고요. 한참을 울었어요. 분향소에 있던 언니들이 '지현아 두 달은 울어야 해' 그러시더라고요. 특별한 말을 안 해도 같이 있는 것만으로 힘이 되더라고요." 

2일 <오마이뉴스>와 인터뷰를 진행한 것도 큰마음을 먹고 한 일이었다. 엄마는 "지현이가 '엄마, 내가 이렇게 사람을 좋아하는데 내 얘기 안 하고 뭐 해~' 하는 거 같더라"고 했다. 

"지현이 억울하지 않게 풀어줘야죠. 한이 되지 않게, 부모니까요." 

한평생 평범히 살던 엄마·아빠들은 자식을 잃고 어느새 투사가 돼가고 있었다.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은 7일 오전부터 국회의사당 앞에서 농성을 시작했다. '이태원 참사 특별법을 제정하라'는, 지난 2월부터 요구해온 외침을 또다시 외치기 위해서다. 엄마는 말했다. 

"이태원 참사 특별법, 6월이 굉장히 중요한 시기래요. 그래서 저희도 12일, 13일, 15일, 16일 국회 앞으로 가요. 힘을 보태야죠. 참사가 왜 일어났는지, 누구 책임인지 조사는 정확히 이뤄져야 하잖아요. 그러니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려고요."
#이태원 참사 희생자 #이지현씨 #이태원 #유족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이 기사는 연재 이태원 압사 참사 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캐나다서 본 한국어 마스크 봉투... "수치스럽다"
  2. 2 황석영 작가 "윤 대통령, 차라리 빨리 하야해야"
  3. 3 100만 해병전우회 "군 통수권" 언급하며 윤 대통령 압박
  4. 4 300만명이 매달 '월급 20만원'을 도둑맞고 있습니다
  5. 5 두 번의 기회 날린 윤 대통령, 독일 총리는 정반대로 했다

해당 기사는 댓글 서비스를 지원하지 않습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