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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트 의무휴업 폐지, 그냥 '못 쉬는' 문제가 아닙니다

[마트노동자 문학 공모전 - 수상작 기고 ④] 마트노동자가 의무휴업 폐지에 반대하는 이유

등록 2023.06.08 09:59수정 2023.06.08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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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의 달인 5월이지만, 마트노동자들은 가족과 함께 하는 한 달 두 번의 소중한 일요일을 강탈당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떨고 있습니다. 일요일 의무휴업이 없어지고 나면, 대형마트는 연중무휴 24시간 영업하던 과거의 시절로 돌아가게 될지도 모릅니다. 가정의 달인 5월, 가족과 함께 하는 일요일을 잃지 않으려는 마트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마트노조가 지난 3~4월 진행한 '2023년 마트노동자 문학 공모전' 수상작을 소개합니다.[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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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마트노동자 문학공모 ⓒ 마트산업노동조합


"엄마, 언제 쉬어?"

주말이 다가오면 항상 아이들이 꺼내던 말입니다. 다 컸다고 생각했는데 아이들은 아직 엄마가 필요한가 봅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도 형편은 녹록지 않았던 터라 목욕탕이며 횟집, 식당 등 안 해본 일들이 없습니다. 성장기의 아이들인데 부족하지 않게 키우기 위해 여러 곳을 전전했습니다.

가난은 무섭더군요. 가족과의 시간을 뺏어가고, 일찍 철이 들어버린 아이들의 해맑음을 뺏어가고, 돈과 빚으로 웃음을 뺏어갔습니다. 아, 가난이 가져다준 건 하나 있네요. 바로 슬픔 말입니다. 돈이 뭘까요? 돈 때문에 아이들 몰래 방 한켠에서 울부짖으면, 아이들은 귀신같이 저를 찾아서 되려 위로를 해주었습니다. 

그 당시 큰애가 고작 초등학교 1학년, 8살입니다. 아이들은 부모의 슬픔을 오래 기억한답니다. 이런 아이들이 부족하지 않게 성장하기를 바랐는데 언제나 제게 아이들과의 시간은 사치였습니다. 참 모순적이죠. 아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부모였는데 말입니다.

지금은 아이를 키우는 50대가 되어버렸지만 저에게도 부모의 사랑을 필요로 하던 어린 시절이 있었습니다.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신 탓에, 저는 50대인 지금도 부모님의 사랑이 고픕니다. 얼굴도 가물가물하고, 목소리도 희미한 그분들이 왜 이렇게 그리운지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세월이 야속하기만 합니다. 가끔은 꿈에라도 좋으니 나타나서 함께 시간을 보내보자고 빌었습니다.

제가 그랬던 것처럼, 아이들도 가족과의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끼지 않았으면 했습니다. 고정적인 스케줄이 존재하지 않는 마트 캐셔이자 아이들의 엄마인 제게 한 달 2번 있는 마트 의무휴업일은 이런 부족함을 채워주는 원동력이 되어주었습니다. 아이들에게도 저에게도 희망 같은 날이었습니다. 

"한 달 2번은 온전히 너희들에게 쓴다고 약속할게."


하지만 최근 마트 의무휴업 폐지에 대한 논의가 들려옵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지, 이대로 아이들과 저의 약속이 가볍게 여겨질까 두렵습니다. 아이들에게 '우리와의 약속은 개의치 않는 그저 그런 엄마'가 되고 싶진 않습니다. 

우리 인생에서 거스를 수 없는 것이 시간 아니던가요. "시간은 금이다"라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저도 나이를 먹으니 세월이 흐를수록 시간은 소중해져 간다는 걸 삶 속에서 느끼고 있습니다.

새끼손가락 걸기를 넘어선 약속과 이 시간들이 인생의 소중한 한 페이지로 남을 수 있었으면 했는데... 부모의 사랑에 대한 저의 결핍이 아이들에게는 이어지지 않길 바랍니다. 저와의 시간이 오래도록 기억되었으면 합니다.

'대형마트 의무휴업'을 결코 쉽게 생각해선 안 됩니다

논의되고 있는 대형마트 의무휴업 폐지가 저희 가족에게만 비극은 아니더군요. 전통시장을 비롯한 소상공인 분들에게는 경제적인 타격이 존재합니다.

애초에 의무휴업은 소상공인과 그들의 경제적인 이익을 조금이라도 보호해주기 위한 취지로 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제도를 시작한 지 10년여 만에 이러한 취지는 잊히고, 대형마트의 경제적 손실에 대한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대형마트의 경제적 손실을 따질 때 누군가는 파리 날리는 가게에서 천 원이라도 팔 수 있길 바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대형마트에 비하면 규모가 한참 작은 업장을 운영하는 소상공인들이, 이들과 경쟁하며 손님을 유치한다는 것이 과연 쉬운 일일까요? 그렇기에 '대형마트 의무휴업'을 결코 쉽게 생각해선 안 됩니다. 

흔히들 경제가 순환되어야 국가가 발전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과연 의무휴업 폐지가 국민 다수를 만족시킬만한 안건인지, 국가의 경제발전을 위한 것인지 의문이 듭니다.

누군가는 이렇게들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본인들 쉬고 싶어서 그러는 거네'.

사람들은 겪어보지 못한 타인의 일에 대해서 인색합니다. 한 달 2번이라는 의무휴업이 저희에게는 얼마나 소중한지 겪어보지 않으면 모르실 일입니다. 저희들은 허리고, 다리고 뼈가 으스러져라 일에 몰두합니다. 온몸이 성한 곳이 없습니다.

마트의 경제적 이득을 따질 때 노동자들의 땀방울도 생각해 주실 수 있는 대한민국이 되었으면 합니다. 현재 저희가 마주한 문제가 결코 개인의 차원에서 그치지 않는다는 점을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저희를 기억해 주세요. 한낱 소모품에 불과한 노동자가 아닌, 의미 있는 시간들을 보내고자 하는 인간으로서 말입니다. 저희도 눈에 넣어도 안 아플 가족들이 있고, 그런 가족과의 시간이 소중한 하나의 인간이라는 점을. 경제활동을 통해서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할 만한 자격이 있는 인간이라는 점을.

TO. 제 글을 읽어 주신 모든 독자분들에게

10여 년 동안 보장받았던 의무휴업을
앞으로도 적용받을 수 있는 미래를 그리고자 합니다.
경제활동을 할 자격이 주어진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기본적인 의무휴업을 보장받을 수 있는 노동자로서,
아이들과의 시간이 소중한 엄마로서, 염원합니다.
현재 당면한 문제들에 대해서 저희들의 피, 땀, 눈물을 바라봐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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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페인> 유통노동자에게 일요일을 민주노총 서비스연맹에서는 '업계특성'이란 이유로 제대로된 주말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유통노동자의 주말휴식권 쟁취를 위한 온·오프라인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 마트산업노동조합

덧붙이는 글 이 글은 마트노조가 개최한 '2023년 마트노동자 문학공모전' <우수> 이태옥(울산, 홈플러스 근무) 님의 글입니다.
#마트노조 #문학공모전 #의무휴업 #일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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