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도 인사하러 헬스장에 갑니다

등록 2023.06.09 08:48수정 2023.06.09 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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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따라 주민센터 헬스장에서 운동한 지도 6년이 흘렀다. 운동한 만큼 체력이 늘지 않았지만 그새 불어난 나이를 감안해 더 이상의 욕심은 부리지 않기로 했다. 이제 헬스장은 운동효과를 떠나 매일 들르는 곳이다. 누구 말대로 '아프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라 아프더라도 가는 곳'이 됐다.


우리 부부는 특별히 바쁜 일이 없으면 보통 저녁 6시 전후 운동을 하고 있다. 대략 10여 명 정도가 헬스장에 오는데 마침 그 시간이 가장 한가하다. 일정한 시간에 가다 보니 운동하는 사람의 면면도 대충 알고 있다. 하지만 인사하고 지내는 사람은 두세 명에 불과하다. 그나마 통성명하는 사람은 트레이너뿐이다.

그런데 달포 전 50대로 보이는 여성이 운동하다 뜬금없이 내게 정중히 인사를 하는 것이 아닌가? 같은 시간에 운동하는 사람이라는 정도는 알지만 서로 인사를 주고받은 적이 없어 갑작스러운 인사에 적잖이 당황했다. 엉거주춤 나도 목례를 했지만 어딘가 어색한 인사였다.

다음 날에도 그는 내게 다가와 인사를 했다. 이쯤에 그가 인사하는 연유가 새삼스레 궁금했다. 운동하면서 이런 적은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바같에서 언제 그 사람을 본 적이 있나 기억을 더듬기도 했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그는 아내로부터 우리가 부부라는 것을 전해 듣고 내게도 인사를 건넨 것이다. 그렇더라도 내게 찾아와 인사를 깍듯이 하는 건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었다.

더욱 놀란 것은 그녀의 인사가 대충 하는 것이 아니었다. 우리가 책에서 배운 그야말로 '공손한' 인사법이다. 인사받는 사람이 무안할 정도였다. 하지만 오랜만에 인사다운 인사를 접했다.

뜻하지 않은 '황송한 인사'를 받고 보니 멋쩍고 왠지 부끄러웠다. 헬스장에서 그동안 몇 년을 함께 운동하면서도 모르는 사람에게 인사하지 않고 너무 이기적으로 행동했나 반성도 했다. 변명 같지만 운동에만 집중하는 것도 힘들고 다른 사람에게 신경 쓰는 것도 조심스러웠다.


헬스장 인사법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는 운동하기 전에 서로 웃고 인사부터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내게 강조하는 것만 같았다. 이후 우리는 만날 때마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인사를 주고받고 있다. 인사가 사소할지 몰라도 자신의 얼굴이자 품격이라는 사실을 나는 잠시 잊고 지냈다.

사실 나는 어릴 적 인사하는 법을 어른들에게 배웠다. 인사하면서 상대의 이름도 정확히 묻고 기억하는 것도 그때 배웠다. 지금도 나이 드신 어르신들과 스스럼없이 교류하는 것도 어릴 때 배운 환경 덕분이다.

하지만 제법 인사성 밝다는 내가 헬스장에서 진짜 고수를 만난 것이다. 그는 상대방으로부터 '존경받는 인사법'을 제대로 하고 있었다. 나름 '헬스장 인사법'이라 부르고 싶다. 그를 통해 그동안 내가 무표정에다 남에게 무거운 인상을 주고 있다는 사실도 새삼 깨달았다.

얼마 전부터 나는 헬스장에서 남에게 인사하는 습관을 새로 배우고 있다. 헬스장 사람들에게 내가 먼저 다가가 친절히 인사하고 있다. 그랬더니 몸과 마음은 물론 헬스장 분위기도 한층 밝아지는 기분이다. 내가 변하니 헬스장이 달리 보이다니 엄청난 변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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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과 인사해요" 캠페인 스티커 ⓒ 이혁진


뒤늦게 주민자치회를 통해 알았지만 오래전에 동네에서 이웃과 서로 인사하기 캠페인을 벌였단다. 내 인사습관에 주민자치회 한 간부는 "그 캠페인이 이제 헬스장으로 점차 확대되고 있는 것 같다"며 반겼다.

아직은 내가 먼저 다가가 인사하는 것이 쑥스럽다. 그런데 구순을 바라보는 한 어르신이 한마디 거드신다. "헬스장에 오면 모두에게 인사부터 크게 하는 것이 제일 먼저 하는 운동입니다."

이제는 나도 늦었지만 인사 잘하는 사람들따라 헬스장에서 운동하면서 운동도 좋지만 주변에 있는 사람에 대한 배려와 인사부터 챙기려고 노력 중이다.

인사만 잘해도 성공한다는 말이 있다. 자신을 지켜보고 응원하는 누군가 곁에 있으면 운동효과가 몇 배 더 높아진다는 연구결과를 본 적이 있다. 내 경험에 비추어도 일리 있는 지적이다.

"안녕하세요!" "어서 오십시오" "내일 뵙겠습니다" 여기저기 서로 인사를 건네는 반가운 소리가 헬스장에 가득하다. 나도 오늘 인사하러 헬스장으로 향한다.
덧붙이는 글 브런치스토리에도 게재할 예정입니다.
#헬스장 #주민센터 #인사법 #인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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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을 메모와 기록으로 남기고 있습니다. 기존 언론과 다른 오마이뉴스를 통해 새로운 시각과 영감을 얻고 있습니다. 주요 관심사는 남북한 이산가족과 탈북민 등 사회적 약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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