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시간은 빠르게 지나갈까

시간의 흐름을 담는 법, 지금 이순간을 기록하라

등록 2023.06.09 08:58수정 2023.06.09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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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때 일이다. 친구들과 대학로에서 만나기로 한 그때, 조금은 늦었던 기억이다. 누군가를 기다리게 하는 것도, 내가 기다리는 것도 싫어했던 탓에 신호등이 초록불로 바뀌자마자 대학로에서 가장 커다란 횡단보도를 성큼성큼 뛰어갔다.

KFC앞 대학로 횡단보도는 수많은 인파를 고려해 기존 횡단보도의 2배 정도이며 폭이 넓다. 수많은 사람들이 통행하기로 유명한 곳이다. 약속에 늦었다는 생각에 마구 뛰어갔을 때, 갑자기 앞이 보이지 않았다. 


철퍼덕!

너무 서두른 나머지 내가 내 신발끈이 걸려 넘어졌던 것이다. 그 순간은 정말 시간이 천천히 흘러갔다. 신호등이 바뀌자마자 뛰어가는 내 모습부터 내 신발에 걸려 넘어지는 그 찰나. 그리고 벌떡 일어나 반대편으로 절뚝거리며 뛰어가던 그 순간까지. 모든 게 슬로모션처럼 말이다.

너무나도 창피했다. 창피해서 아픈 줄도 몰랐으며 나중에 무릎을 보니 시퍼렇게 멍들어있었다.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조롱당하던 그런 두려운 순간이 바로 나에게 연출되다니. 그때 그 사건 때에는 시간이 나에게만 아주 천천히 주관적으로 느리게 흘러가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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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왜 이렇게 빨리 지나가지? ⓒ Nathan Dumlao


왜 행복할 때만 시간이 너무 빨리 가는 것일까?

어떨 때는 시간이 참 늦게 흐른다. 애달프게 누군가를 기다릴 때, 기다리던 합격발표 소식이 지연됐을 때, 소중한 생명이 태어날 때 등 시간은 참으로 더디게 흐른다. 10대 때는 10km, 20대 때는 20km, 50대 때는 50km, 70대 때는 세월이 70km로 흐른다는 말이 있듯이 시간은 개인적으로 또 주관적으로 흐르는 걸까?

사고를 당했을 때는 정말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걸까? 할 일이 많을 때 바쁘게 움직여도 왜 아무것도 한 게 없다는 느낌이 들까? 우리 몸안에도 컴퓨터에 내장된 시계처럼 초와 시간, 날을 재는 시계가 있을까?


시간에 관한 거의 모든 과학적 탐구와 최신정보를 담은 책 <시간은 왜 흘러가는가>에 따르면 우리는 시간에 관해 끊임없이 생각한다고 한다. 지속시간을 계산하고 어제와 내일에 대해 숙고하고 이전, 이후를 비교하는 것이다. 시간 안과 시간 위에 머물면서, 시간의 흐름을 예측하고, 평가하고 또 기억한다.

이런 것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의식적인 행동이며 또 고유한 것이다. 무의식의 차원에서 24시간 생체주기(circadian cycle) 즉, 날들을 재는 시간이 존재한다. 시간 주기는 거의 40억 년 전부터 지구상 모든 생명체에 스며들었다 한다. 생물학적이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기계적으로 작동하는 시계만큼 신뢰할만한 시간이 바로 생체주기에 있다.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거나 황홀한 경험을 하면 시간은 빨리 흐르고, 지루한 연설이나 강연을 들을 때면 시간이 천천히 흐른다고 느낀다. 시간이 지나서야 시간이 실제로 빨리 지나갔는지 아닌지를 인식하므로 지금보다는 '나중'이 되어야 그 시간이 어떤 시간이었는지 파악할 수 있다.

이제는 시간의 주인이 되어보자

시간의 흐름을 느끼는 감각은 뇌의 한 영역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기억과 집중, 감정, 뇌의 여러 곳에서 일어나는 다른 활동이 모두 결합한 결과가 만들어진다. 뇌 안의 시간과 뇌 밖의 시간의 집합활동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뇌 안의 어딘가에서 시간에 관한 감각이 만들어진다고 상상한다.
 
우리의 신체기관과 세포들에는 많은 시계들이 퍼져 있으며, 그 시계들은 서로서로 커뮤니케이션하면서 보조를 맞춘다.  - <시간은 왜 흘러가는가> 중에서

20대 때 대학로에서 넘어진 그 순간이 가장 쪽팔린 순간이었다면 지금 상황에서는 아마 시간이 더 빨리 흐르기 때문에 덜 쪽팔릴 수도 있을 것이다. 무엇이든 새로운 세상에 놀라며 '우와~'를 연발하던 조카가 이제 10대가 되니 신기한 것이 적어졌다. 10대가 된 소녀의 시간은 더 빨리 흘러가는 것일까?

흘러가는 시간을 부여잡는 방법은 뭐가 있을까? 답은 기록에 있다. 기록하기 시작하면 소비하던 삶에서 벗어나 나의 이야기를 하나둘 적어나가기에 그 순간만은 뇌 안의 시간과 뇌 밖의 시간을 모두 천천히 흐르게 하는 새로운 타임머신이 발생한다. 그리고 나의 경험, 정보가 가득 담긴 기록이 축적됐을 때 발휘하는 영향력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강력하다. 시간을 느리게 흐르게 하는 방법, 지금 이 순간을 차곡차곡 기록해 보자.
덧붙이는 글 브런치에도 올립니다.

시간은 왜 흘러가는가 - 시간에 관한 거의 모든 과학적 탐구와 최신 정보

앨런 버딕 (지은이), 이영기 (옮긴이),
엑스오북스, 2017


#시간 #타이밍 #힐링에세이 #기록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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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재다능한 외유내강인 여행작가. 낯선 도시를 탐닉하는 것이 취미이자 일인 사람. 스무 살 때부터 지금까지 30여 개국을 여행 다니며 글과 사진으로 기록하는 대학 교직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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