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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년 전 민간인 학살 유족한테 증거 요구는 어불성설"

창원유족회 주최 '합동추모제' 열려... 노치수 회장 "정부가 사람 죽여놓고..."

등록 2023.06.10 13:45수정 2023.06.10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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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한국전쟁 민간인 희생자 창원유족회는 10일 오후 창원마산 가포동 창원위령탑에서 “제73주년 창원합동추모제 및 가포평화탑돌이제”를 지냈다. 사진은 아버지를 잃은 권경훈(78)씨가 휠체어를 타고 참석해 명각비에 새겨진 이름을 보고 눈물을 보이고 있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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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한국전쟁 민간인 희생자 창원유족회는 10일 오후 창원마산 가포동 창원위령탑에서 “제73주년 창원합동추모제 및 가포평화탑돌이제”를 지냈다. 사진은 아버지를 잃은 권경훈(78)씨가 휠체어를 타고 가족들과 함께 참석해 명각비에 새겨진 이름을 보고 눈물을 보이고 있다. ⓒ 윤성효

 
"무덤도 없는 영혼이여. 천년을 두고 울어주리라. 조국의 산천도 고발하고 푸른 별도 증언한다."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과 관련해 1960년대 전국유족회가 내건 표어로, (사)한국전쟁 민간인 희생자 창원유족회(회장 노치수)가 '제73주년 창원합동추모제 및 가포평화탑돌이제'를 지내면서 다시 들추어냈다.

10일 오후 1시 창원마산 가포동 소재 창원위령탑에서 합동추모제가 였렸다. 올해로 16번째다. 서봉석 가톨릭농민회 사무총장의 사회로, 김산 가수가 추모곡을 불렀고 정기정 춤꾼(창원민예총)이 진혼무를 추었다.

유족인 권택근(초헌), 이응석(아헌), 이주순(종헌), 김인규·조규판·오운갑·지점자·조정숙·이두희(첨잔), 노승용(축문), 배기현·심영보(집사) 회원은 전통제례를 지냈다.

노승용 유족은 축문을 통해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음을 당한 지 73년이 지난 오늘 유족들은 죽어서도 눈을 감지 못하고 창원의 어느 산골에서, 차가운 괭이바다에서, 저 높은 푸른 하늘 아래서 떠돌았던 영령들을 한 자리에 모신 이곳 위령탑 앞에 모여 무릎 꿇고 엎드려 맑은 술 올리며 추모제를 지냅니다"라고 했다.

"원통하고 애통하게 죽음을 당하신 영령들이시여"라고 한 그는 "세월은 강물처럼 흐르고 흘러 73년이 지나갔습니다만 이념의 올가미에 씌워져 마산형무소에서, 산골에서, 바다에서 죽음을 당할 그 때의 처절하고 애절한 절규가 아직 이곳 위령탑 하늘 아래에 맴도는 것 같습니다"고 했다.

그는 "후손들은 님들의 억울한 죽음을 규명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만 극히 일부만 진실규명이 되었고, 아직도 완전한 진실규명과 해원을 다하지 못하고 이렇게 합동추모제를 올리는 것을 용서하여 주옵소서"라며 "동족상잔의 아픔 속에 억울하게 돌아가신 님들께서 부디 평화로운 저 세상에서 편안한 안식을 빌고 또 빕니다"라고 덧붙였다.


이어 열린 추모식에서 노치수 회장은 "아직도 할 일이 많이 남았는데, 제일 큰 문제는 제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가 2020년 12월 출범해 활동하고 있습니다만 진실규명을 요청한 유족들은 고령이라 마음은 급한데 진실화해위에서 아직도 조사를 제대로 못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조사개시결정을 해도 지금에 와서 당시 상황을 증명하거나 증거를 대라며 유족에게 떠넘기는 것은 정말 어불성설이 아닐 수 없습니다"고 했다.

그는 "정부가 사람을 죽여놓고 수십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유족에게 증거를 찾아내라니 이래도 되는 것입니까. 그렇다면 아무것도 몰랐던 어린 자식들에게 연좌제의 굴레를 씌웠던 것은 무엇이었습니까"라며 "그렇게 제재를 가한 그 자체가 산 증거가 아니고 무엇을 더 찾아내야 하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진실화해위는 많은 유족들이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하시기 바랍니다"고 했다.

홍남표 창원특례시장은 김종필 창원시 자치행정국장이 대신 읽은 추모사를 통해 "영문도 모른 채 쓰러져 가신 젊은 영혼들을 생각하면 유족들이 안고온 고통의 역사를 짐작하고도 남습니다. 지난 날의 상처와 설움들을 모두 되돌릴 수 없듯이 억울하게 숨져가신 영혼을 위로하고 그분들의 명예를 되돌릴는 일이야말로 '다시 뛰는 나라, 웅비하는 미래의 대한민국'을 만들어 가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라 하겠습니다"고 했다.

김이근 창원시의회 의장은 "한국전쟁 당시 참혹했던 민간인 희생 사건에 대한 진실규명이 일부 이루어지고 위령제와 추모식이 꾸준히 개최되고 있지만 유족들의 가슴 속에 맺힌 한을 모두 풀기에는 여전히 많은 과제가 남아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라며 "전쟁의 아픔과 함께 해오신 유족 여러분께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고 했다.

김한기 신부(천주교 원주교구 원로사제)는 추모사에서 "만시지탄이기는 하지만, 지아비를 잃은 여인, 부모를 잃은 자식들이 한 많은 세월을 숨죽여 살아온 72년의 세월을 거쳐 혈육의 넋을 위로하고자 하는 유족들의 오랜 염원을 담은 위령탑 건립은 창원시의 배려이지만 우리나라 다른 지역의 과거사 진실규명과 진실, 화해를 위한 큰 디딤돌이 되었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고 했다.

김 신부는 "한국 근현대사를 관통하면서 이념의 갈등과 혼란 속에서 무자비하게 살해된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여러 방법들이 모색되고 남은 가족들에 대한 배·보상이 적절하게 이루어져야 하겠지만,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고 추모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었다는 점은 진실화해를 위한 큰 이정표가 되었으리라 사료됩니다"고 말했다.

무남독녀 외동딸인 조정숙 유족은 '보고 싶은 아버지께'라는 제목의 편지를 통해 "무남독녀로 태어난 저는 홀로 계셨던 증조할머니, 할아버지, 할머니, 어머니와 함께 힘들게 살며 자랐습니다"며 "27세인 아버지가 창원 지귀동에서 이장을 맡고 계실 때 보도연맹에 가입되어 끌려가셨다 들었습니다. 그때 저는 23살인 어머니 뱃속에 있었답니다. 아버지가 끌려가신 뒤로 할머니는 화병으로 자리에 누워계시다 4년만에 돌아가시고 증조할머니조차 5년만에 돌아가시면서 어머니께 '딸 정숙이를 시집 보내고 재혼하라'고 유언을 하셨다 합니다"고 했다.

그는 "어떤 때는 오촌 아재들이 연좌제 때문에 집으로 찾아와 어머니에게 공격을 하는 날이면 어머니는 땅을 치며 대성통곡을 했습니다. 그런 와중에도 어머니는 할아버지를 정성껏 모시면서 어린 딸인 저와 함께 힘들게 생활했습니다"라며 "어머니는 82세에 돌아가실 때까지 정말 힘들게 지낸 세월을 생각하니 가슴이 너무 아프고 눈물이 납니다"고 말했다.

정선호 경남작가회의 회장은 '창원의 영령들이시여, 민주와 통일의 꽃으로 부활하라'는 제목의 추모시를 낭송하며 "...마산만을 건너 제주 4·3항쟁과 10·18 여순항쟁의 영령들, 광주 5월항쟁의 영령들, 진도 팽목항에서 죽은 영령들, 이태원 거리에서 깔려 죽은 젊은 영령들과 살아남은 우리들이 바다에서 손을 잡고, 손을 잡고 끝내 진정한 자유와 민주주의를 되찾고 통일을, 민족 통일을 반드시 이뤄야 하지요, 그대들과 살아남은 우리가"라고 했다.

진효근 색소폰연주자가 추모곡을 연주했고, 천주교 마산교구청 합창단이 추모합장을 했다. 참가자들은 헌화를 하면서 추모식을 마무리 했다.

이날 추모제에는 허성무 전 창원시장, 문순규 창원시의회 부의장, 정홍표 창원시의원, 김영만 김주열열사기념사업회 고문, 박미혜 변호사 등이 참석했다. 

창원위령탑은 한국전쟁 당시 민간인들이 수장되었고 밤이면 고양이 울음소리가 난다는 괭이바다에서 가까운 곳에 세워졌으며, 지난 2022년 11월 26일 준공했다. 명각비에는 희생자 530여명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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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한국전쟁 민간인 희생자 창원유족회는 10일 오후 창원마산 가포동 창원위령탑에서 “제73주년 창원합동추모제 및 가포평화탑돌이제”를 지냈다. 사진은 아버지를 잃은 권경훈(78)씨가 휠체어를 타고 참석해 명각비에 새겨진 이름을 보고 눈물을 보이고 있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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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한국전쟁 민간인 희생자 창원유족회는 10일 오후 창원마산 가포동 창원위령탑에서 “제73주년 창원합동추모제 및 가포평화탑돌이제”를 지냈다. 김산 가수.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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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한국전쟁 민간인 희생자 창원유족회는 10일 오후 창원마산 가포동 창원위령탑에서 “제73주년 창원합동추모제 및 가포평화탑돌이제”를 지냈다. 정기정 진혼무.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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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한국전쟁 민간인 희생자 창원유족회는 10일 오후 창원마산 가포동 창원위령탑에서 “제73주년 창원합동추모제 및 가포평화탑돌이제”를 지냈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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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한국전쟁 민간인 희생자 창원유족회는 10일 오후 창원마산 가포동 창원위령탑에서 “제73주년 창원합동추모제 및 가포평화탑돌이제”를 지냈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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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한국전쟁 민간인 희생자 창원유족회는 10일 오후 창원마산 가포동 창원위령탑에서 “제73주년 창원합동추모제 및 가포평화탑돌이제”를 지냈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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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한국전쟁 민간인 희생자 창원유족회는 10일 오후 창원마산 가포동 창원위령탑에서 “제73주년 창원합동추모제 및 가포평화탑돌이제”를 지냈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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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 창원위령탑.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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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 창원위령탑.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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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 창원위령탑.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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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 창원위령탑 명각비.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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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 창원위령탑.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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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한국전쟁 민간인 희생자 창원유족회는 10일 오후 창원마산 가포동 창원위령탑에서 “제73주년 창원합동추모제 및 가포평화탑돌이제”를 지냈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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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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