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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나라이기에' 용서했던 어느 스토커 이야기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영화] 장나라의 개인기로 먹여살린 영화 <오! 해피데이>

23.06.19 14:46최종업데이트23.06.19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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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계절> <너무합니다> <모두 다 사랑하리> <울고 싶어라> <담다디>. 1980년대 가요를 좋아하는 중·장년의 대중들이라면 위 제목들이 1980년대를 수놓았던 명곡들의 제목이라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하지만 그 시절 대중문화의 사정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1980년대를 강타했던 이 명곡들을 부른 가수가 직접 주연을 맡은 동명의 영화가 제작됐다는 사실도 기억이 날 것이다.

이처럼 1980년대에는 당대의 히트곡 제목을 그대로 딴 영화들이 쏟아져 나왔다. 물론 <창 밖의 여자>와 <비련>(이상 조용필), <그때 그사람>(심수봉), <열애>(윤시내), <사랑의 미로>(최진희), <비 내리는 영동교>(주현미)처럼 제목만 충무로와 공유(?)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가수의 인지도를 극대화하기 위해 해당 노래를 불렀던 가수가 직접 주인공으로 출연한 영화들도 많이 만들어졌는데 대부분은 흥행에서 재미를 보지 못했다.

이처럼 1980년대 한창 기승을 부리던(?) 대중가요와 영화의 '크로스오버'는 1990년대 가요와 영화 산업이 동시에 발전하면서 점점 줄어들었다. 하지만 가요와 영화가 각각 독립적으로 발전하면서 대중들의 삶에 깊이 자리를 잡았던 2003년, 인기가수 한 명의 인지도에 기댄 영화 한 편이 제작·개봉됐다. 2000년대 초반 대중들의 사랑을 독차지했던 슈퍼스타 장나라 주연의 로맨틱 코미디 영화 <오! 해피데이>였다.
 

<오!해피데이>는 장나라의 스타파워에 의해 만들어진 영화임에도 전국 100만 관객을 돌파했다. ⓒ (주)시네마서비스

 
영화에선 재미 보지 못했던 2000년대 초반 슈퍼스타

2001년 5월 1집 앨범을 발표하며 데뷔한 장나라는 데뷔곡 <눈물에 얼굴을 묻는다>로 활동했지만 슬픈 가사와 어두운 멜로디를 가진 미디엄템포의 데뷔곡은 그리 좋은 성과를 얻지 못했다. 그렇게 데뷔 앨범으로 쓴 맛을 본 신인가수가 될 무렵 장나라는 시트콤 <뉴논스톱>에 합류했고 <뉴논스톱>에서 귀엽고 어리바리한 매력으로 시청자들에게 폭발적인 사랑을 받으며 '라이징 스타'로 급부상했다.

장나라는 <뉴논스톱>의 성공과 함께 1집 수록곡 <고백>과 < 4월 이야기 >가 연이어 히트했고 2002년 3월에 방송된 드라마 <명랑소녀 성공기>가 시청률 40%를 돌파하며 '대박행진'을 이어갔다(닐슨코리아 기준). 그리고 이어진 2002 한·일 월드컵 기간에는 통신사 광고에서 황선홍, 안정환 등 장나라가 언급한 선수들이 골을 넣는 '기적 같은 우연'이 계속되며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CF 요정이자 '국민 여동생'으로 군림했다.

2002년 가을에 발표한 2집 앨범 < Sweet Dream >을 크게 히트시키며 KBS와 MBC 가요대상 대상을 휩쓴 장나라는 2003년 영화 데뷔작 <오! 해피데이>를 선보였다. 장나라의 스타성과 개인기에 크게 의존한 <오! 해피데이>는 관객과 평단의 혹평을 받았음에도 전국 107만 관객을 동원했다(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만 기준). 100만이 넘는 관객들이 극장을 찾은 목적(?) 당연히 최고의 스타 장나라였다.

장나라는 이후에도 한국과 중국을 오가며 가수와 배우로 승승장구했지만 '영화배우'로서의 커리어는 매우 짧았다. 장나라는 2000년대 중반부터 중국 활동에 전념하다가 2009년 독립영화 <하늘과 바다>에 출연했다. 하지만 2009년 10월에 개봉한 <하늘과 바다>는 시작부터 교차상영을 하면서 논란이 됐고 결국 1만8000명의 적은 관객수를 기록한 채 보름 만에 극장상영을 마감하며 아쉬움을 남겼다.

장나라는 2010년대부터 한국에서 드라마 위주로만 활동하고 있다. 장나라는 <동안미녀>와 <미스터백> <황후의 품격> < VIP > 등으로 연기와 시청률에서 좋은 성과를 보이고 있다. 이미 2000년대까지 100억 원이 넘는 액수를 기부한 것으로 알려진 장나라는 작년 6월 6세 연하의 영상업계 종사자와 결혼식을 올렸다. 장나라는 최근에도 유기견보호소 등을 방문해 봉사활동을 하며 '선한 영향력'을 세상에 전파하고 있다.

오직 '장나라 파워'에 의존해 제작된 영화 
 

장나라는 영화 데뷔작으로 여성배우 역대 최고 출연료 기록을 세웠다. ⓒ (주)시네마서비스

 
사실 영화 <오! 해피데이>는 장나라라는 스타가 없었다면 제작이 진행되기 힘든 프로젝트였다. 실제로 장나라는 데뷔 후 시트콤 한 편과 드라마 두 편(단역 출연 제외), 애니메이션 더빙 한 편이라는 짧은 커리어를 가지고도 영화의 단독주연을 맡았다. 게다가 장나라는 드라마와 음반활동으로 살인적인 스케줄을 소화하면서 <오! 해피데이> 촬영까지 병행했다.

사실 장나라가 연기한 <오! 해피데이>의 주인공 공희지는 지금이라면 경찰에 신고당해도 이상하지 않을 스토킹 범죄를 저지른다. 공희지는 우연히 만난 클럽메드의 팀장 김현준(박정철 분)의 명함을 받아 그의 거주지에 무단 침입한 것도 모자라 다이어리를 훔쳐 그의 일정과 성격 등을 파악했다. 현직 성우로 활동 중이고 성우학원에서 지망생들을 가르칠 정도로 번듯한 직업을 가진 '어른'이 할 행동은 결코 아니었다.

하지만 관객들은 공희지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을 쉽게 납득했다. 그런 행동을 자행한 인물이 다른 누구도 아닌 '대세' 장나라였기 때문이다. 연예계 데뷔 후 약 1년 반 만에 최고의 스타로 떠오른 장나라는 대중들이 좋아하는 자신의 개인기를 공희지라는 캐릭터에 녹여내 관객들에게 많은 웃음을 선사했다. 물론 지나치게 이미지를 소비했다는 비판도 있었지만 그로 인해 100만이 넘는 관객을 동원한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희지의 일기 속에서 자신을 향한 그녀의 마음이 진심이었음을 알게 된 현준은 차를 돌려 희지에게로 돌아가지만 희지는 한강다리 위에서 자살을 기도하고 있었다. 이를 말리러 간 현준은 희지와 실랑이를 벌였고 희지는 실수로 다리 밑으로 떨어졌다. 하지만 이는 모두 현준의 마음을 얻기 위한 희지와 가족들의 '작전'이었다. 의식을 잃은 희지를 살리기 위해 인공호흡을 하던 현준은 이미 깨어 있는 희지와 키스를 나누며 해피엔딩으로 영화가 마무리된다.

장나라의 영화 데뷔작 <오! 해피데이>에서 각본과 연출을 모두 맡았던 윤학렬 감독은 < 2424 > <블루>의 각본작업에 참여했다가 2003년 <오! 해피데이>로 데뷔했다. 하지만 2010년에 만들었던 두 번째 영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풍>이 주연배우의 문제로 극장 개봉을 하지 못하면서 커리어가 꼬이기 시작했다. 윤학렬 감독은 2012년에 만들었던 <철가방 우수씨>가 9만, 2017년 <지렁이>가 1900명의 관객에 그치고 말았다.

천하의 장나라가 첫눈에 반했던 남자
 

박정철(오른쪽)은 <오!해피데이>에서 장나라가 첫 눈에 반하는 모든 조건이 아주 좋은 '킹카남'을 연기했다. ⓒ (주)시네마서비스

 
1997년 KBS 슈퍼탤런트 3기로 데뷔한 박정철은 드라마 <덕이>로 주목받기 시작했고 <호텔리어>와 <순수의 시대><스크린> 등에 출연하며 전성기를 보냈다. <오! 해피데이>는 박정철이 한창 바쁘게 활동하던 2003년에 출연한 작품으로 박정철은 유쾌한 킹카 김현준 역으로 장나라와 좋은 연기호흡을 선보였다. 박정철은 2008년 372만 관객을 모은 영화 <신기전>에서도 훗날 문종이 되는 세자 역으로 특별 출연했다.

데뷔작이었던 드라마 <피아노>에서 조인성이 연기한 경호의 동생 주희 역을 맡아 걸쭉한 부산사투리를 구사하며 시청자들을 놀라게 했던 정다혜는 <오! 해피데이>에서 공희지의 동생 공선지를 연기했다. 평소 언니와 티격태격하는 모습만 보여주던 선지는 영화 후반 현준에게 언니의 다이어리를 전달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온 가족이 서울말을 쓰는 희지네 집안에서 선지 혼자 경상도 사투리를 쓴다는 점이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욕을 잘하는 장년의 여성배우를 꼽으라면 아마 많은 관객들이 김수미 배우를 떠올릴 것이다. 김수미 배우의 욕 연기가 본격적으로 빛을 발한 작품이 영화 <마파도>라고 생각하는 관객들이 적지 않지만 사실 김수미 배우는 이미 <오! 해피데이>에서 차진 욕 연기를 선보인 바 있다. 배역이름도 '욕쟁이 할머니'였던 식당 주인을 연기한 김수미는 화려한(?) 욕 연기로 현준을 당황시키면서 관객들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영화 오!해피데이 윤학렬 감독 장나라 박정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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