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내 곳곳에 걸린 에르도안의 포스터
Widerstand
하지만 이번 선거에서 이스탄불은 에르도안을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이스탄불 시장 출신입니다. 국회의원 시절 지역구도 이스탄불이었죠. 2014년 대선에도, 2018년 대선에도 이스탄불은 에르도안을 지지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습니다.
튀르키예는 지역별로 정치색이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에게 해 주변을 둘러싼 도시 지역에서는 진보적인 성향이 강하죠. 이슬람 종교주의에서 벗어난 세속주의 성향이 강합니다. 이런 성향을 튀르키예 초대 대통령의 이름을 따 '케말주의'라고 부릅니다. 튀르키예의 건국 이념 자체가 이 세속주의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이죠.
반면 내륙과 흑해 주변 농촌 지역에서는 여전히 이슬람주의의 영향이 짙습니다. 물론 다른 이슬람 국가에 비해 튀르키예의 이슬람은 원리주의적이진 않죠. 하지만 보수적이고 종교적인 이념이 농촌 지역에는 여전히 짙습니다. 에르도안의 정의개발당 역시 이런 노선을 따르고 있습니다.
한편으로 큰 도시가 없는 내륙 지역임에도, 튀르키예의 동남쪽 지역에는 진보 정당의 지지세가 강합니다. 이것은 세속주의와 이슬람주의의 문제보다는, 이곳에 거주하는 쿠르드인에 관한 문제가 얽혀 있죠. 결국 튀르키예의 정치는 세속주의, 이슬람주의, 쿠르드인이라는 세 가지 변수로 설명할 수 있겠습니다.

▲ 2023년 튀르키예 대선 결과
Wikimedia
하지만 이스탄불은 이런 변수에서 벗어나 있는 지역입니다. 이스탄불은 분명 튀르키예에서 가장 큰 도시죠. 하지만 이스탄불에서는 세속주의와 이슬람주의가 격돌하고 있습니다. 각종 선거에서도 이슬람주의 세력과 세속주의 세력이 엎치락 뒤치락을 계속하고 있죠.
2019년에는 세속주의 세력의 에크렘 이마모을루(Ekrem İmamoğlu) 시장이 당선됐습니다. 하지만 부정선거 논란이 일며 재선거까지 치렀죠. 그러나 재선거에서도 이마모을루 시장은 다시 당선되었습니다.
2017년 이스탄불은 에르도안의 권력 강화를 위한 개헌안에 반대표를 던졌습니다. 하지만 이 헌법에 따라 치러진 2018년 대선에서는 에르도안을 지지한 것이 또 이스탄불이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올해 선거에서는 에르도안에 맞선 야당 후보를 지지했습니다.

▲ 이스탄불 전경
Widerstand
이스탄불은 유럽과 아시아의 가교입니다. 이스탄불의 보스포러스 해협은 유럽과 아시아를 가르는 지리적 기준이라고도 하죠. 이스탄불의 시민들 역시, 아시아인과 유럽인의 정체성 사이에서 많은 고민을 하고 있을 것입니다. 이스탄불 뿐 아니라, 튀르키예의 시민 모두가 그런 고민을 안고 있을 지도 모릅니다.
호스텔에 짐을 풀고, 한참을 걸어 보스포러스 해협에 가 보았습니다. 보스포러스는 예상했던 것보다는 큰 해협이더군요. 여러 배가 해협을 오가고 있었습니다. 이 해협을 건너면 대륙이 바뀐다는 사실을 생각했습니다.
사람의 정체성이 다리 하나를 건넌다고 변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해협을 오가며, 이스탄불의 시민들은 유럽과 아시아의 사이에서 수많은 고민을 하고 있을 것입니다. 세속주의와 이슬람주의 사이의 고민도 다리를 건너 이어지고 있습니다.
다리 하나를 건너 있는 대륙입니다. 그 좁은 해협의 너머엔, 오늘도 튀르키예 시민들의 고민이 서려 있습니다. 다만 저는 오늘 예레반에서 넘어온 저의 비행기가, 보스포러스 해협 저편의 공항에 닿았다는 사실을 다시 생각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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