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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리스 월드컵에 감동한 사람들? '드림'이 외면한 현실

[리뷰] 영화 <드림> '홈리스 월드컵'을 감동으로만 그릴 때 사라져 버리는 현실

23.06.27 16:17최종업데이트23.06.29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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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 공식 포스터. ⓒ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영화 <드림>은 몰입하기가 다소 어려웠다. 전체적으로 다소 과도하게 연출된 배우들의 연기부터, 웃음을 강요하는 듯한 장면들의 문제는 많은 리뷰들이 이미 지적했다. 그보다 더 문제는 2010년에 있었던 홈리스 월드컵 대한민국 대표팀의 실화를 소재로 삼아 만드는 영화가 홈리스의 현실을 너무나도 무책임하게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흔하디흔한 신파
 
일단 가장 먼저 언급하고 싶은 것은 극이 전체적으로 전개되는 방식이다. 이 극의 주요 인물들은 홈리스들과 이들의 가족, 인성 논란이 있는 축구선수 윤홍대(박서준 분), 다소 삐딱한 성격의 다큐멘터리 PD 이소민(아이유 분), 그리고 잡지 <빅이슈> 관계자들이다. 인성 논란을 '선행'으로 덮어야 했던 윤홍대, 그리고 성과가 필요했던 이소민은 <빅이슈> 관계자들이 준비하고 있는 홈리스 월드컵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에 윤홍대가 감독이 되는 그림을 만들어서 신파 한 번 제대로 찍어 보기로 한다.
 
이때까지만 해도 홈리스를 소재로 하는 신파극에 비판적으로 접근하나 싶었다. 하지만 나의 예상은 가볍게 빗나갔다. 영화는 홈리스 월드컵을 그저 '불굴의 오합지졸 홈리스들의 열정'으로만 그렸다. 그리고 그 열정에 대한 보상은 외국인 관객들이 모두 '대~한민국!'을 외치는 '국뽕' 장면으로 수렴한다. 현장에 있던 사람들, 그리고 나중에 이소민의 다큐멘터리로 홈리스 월드컵을 본 이들은 모두 이들의 '열정'에 감동받았다.
 
홈리스 월드컵을 계기로 윤홍대는 재기에 성공하고, 이소민은 다큐멘터리를 히트작으로 만드는 데 성공한다. 같은 맥락에서 영화는 월드컵 이후 홈리스들이 겪던 문제들이 꽤 아름답게 해결되는 것처럼 연출하기도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문제는 그저 생략되었다. 영화에 나온 홈리스들 중에서 임대주택으로 거처를 옮긴 인물은 한 명뿐이었다. 그럼에도 영화는 깔끔한 해피엔딩처럼 마무리된다.
 
홈리스 월드컵을 소재로 하지만, 홈리스의 현실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는, 흔하디 흔한 신파극일 뿐이다.
 
홈리스의 현실은 웃음거리가 아니다
 

영화 <드림> 스틸 이미지 ⓒ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이 영화가 홈리스들의 현실에 관심이 없다는 사실은 인물들의 홈리스 상태와 결부되는 소수자성을 그저 유머코드로만 소비해 버린다는 데서도 드러난다. 우선 첫째로 정신장애와 지적장애를 다루는 방식의 문제다.
 
물론 장애가 곧 불행은 아니며, 장애의 경험이 항상 심각하게 다루어져야 할 이유도 없다. 그러나 지금의 한국 사회에서 정신장애와 지적장애는 누군가를 홈리스 상태로 내모는 조건이 되기도 하고, 거꾸로 홈리스가 되면 주거 빈곤으로 인한 알콜 중독이나 질병 등으로 인해 정신장애를 겪게 되기도 한다.
 
그리고 '맥락 없이 웃긴 장면'으로 홈리스 선수 영진(홍완표 분)이 커밍아웃을 하며 자신의 성적 지향이 홈리스가 된 계기라고 이야기하는 장면이 나온다. 커밍아웃 직후에 그 자리에 있던 인물들은 일제히 웃음을 터뜨린다.
 
커밍아웃을 한 홈리스가 인물들 중 비교적 젊은 나이였음을 감안한다면, 그는 청소년기에 자신의 성적 지향에 대한 차별 때문에 탈가정했을 가능성이 크다. 탈가정 청소년들도 성인 홈리스들과 마찬가지로 사생활이 없고 인권 침해가 일상인 시설에 들어가지 않으면 지원을 받을 수 없다. 퀴어인 청소년을 차별하는 직원이 있는 시설들도 있다. 탈가정 청소년은 홈리스 정책에서도 사각지대에 있지만, 퀴어인 청소년은 사각지대 안의 사각지대다.

장애여성을 다루는 방식에서도 큰 문제가 있다. 지적장애여성 홈리스 진주(이지현 분)가 공공장소에서 성폭행을 당할 뻔하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이는 단지 '악당들을 멋지게 때려눕히는' 주인공을 그리기 위한 도구로 동원되었다. 말을 거의 하지 못하는 지적장애인 여성 홈리스가 피해자일 때 수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조차도 영화는 유머코드로 활용한다. 성폭력이 실제로 지적장애여성과 여성 홈리스들의 일상을 위협하는 요소임에도, 영화는 이를 별로 의식조차 하지 않는 듯하다.
 
홈리스 선수 중 가장 어린 인선(이현우 분)은 극 중에서 자폐인으로 추정되는데, 어릴 적 부모의 동반자살 시도에서 혼자 살아남아 보육원에서 지내다가 지금은 쪽방에서 살고 있다. 이는 장애인의 존재를 부정하는 지역사회에서 동반자살을 시도하게 되는 장애인 가족의 현실과 더불어, 보호종료아동이 시설 퇴소 이후에도 홈리스 상태에 놓이게 되는 사회의 현실을 보여준다.
 
하지만 사람들의 연락을 피해 인선이 사는 쪽방에 숨어 있던 홍대는 소민을 만나자 배달시킨 감자탕 고기를 뜯어 먹으며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이 왜 은둔하는지 알 것 같애. 진짜 편해!" 도대체 이게 이 맥락에 넣을 대사란 말인가.
 
무언가를 '유쾌하게' 다루는 것과, '웃음거리'로 만드는 것 사이의 차이를 모르는 이가 만든 영화를 보고 싶지는 않다.
 
'홈리스 월드컵'이라는 형용모순
 

영화 <드림> 스틸 이미지 ⓒ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역사적으로 한국만이 아니라 해외에서도 월드컵이나 올림픽과 같은 국제 행사가 열릴 때면 행사가 열리는 도시의 홈리스들은 일제히 쫓겨났다. 홈리스들은 위험하고 더럽기 때문에 도시 미관을 해친다는 것이다. 이처럼 월드컵과 올림픽은 홈리스들에 대한 차별, 이에 근거한 퇴거와 같은 물리적 배제의 계기였다.
 
물론 홈리스 월드컵이 실제로 참가자들에게 새로운 꿈을 심어주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홈리스 월드컵을 감동적인 일로만 그릴 때, 홈리스의 현실은 사라지고 만다. 바로 이 영화에서처럼 말이다. 홈리스들에게 필요한 건 월드컵이 아니라, 쫓겨나지 않는 것이다. 짐이 쓰레기 취급당하지 않는 것이다. 지붕 있고 사생활이 보장되는 공간으로서의 집에 사는 것이다.
 
난 영화를 보며 정부가 주최하는 4월 20일 '장애인의 날' 행사가 떠올랐다. 장애인이 살아갈 수 없는 세상에서 딱 하루를 장애인들을 위해 내어주겠다는 행사. 하지만 필요한 건 지역사회에서의 365일이다. 장애인 당사자들과 활동가들이 4월 20일을 '장애인차별철폐투쟁의 날'이라고 바꿔 부르는 이유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월드컵이 홈리스들을 쫓아내는 세상에서 홈리스들만의 월드컵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홈리스들을 쫓아내지 않는 지역사회를 만드는 것, 그리고 홈리스들이 홈리스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주거권을 보장하는 것이다. 영화가 세상을 바꾸길 기대하지는 않지만, 최소한 자신이 다루는 소재를 존중하기를 요구한다. 현실에 다가서야 한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을 쓴 안희제 님은 홈리스뉴스 편집위원입니다. 이 글은 홈리스뉴스 113호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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